'앨리스'의 뫼비우스 띠 같은 스토리, 김희선·주원이 개연성

 

김희선에 이어 이번엔 주원의 차례인가.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에서 과거로 돌아간 박진겸(주원)은 거기서 어머니인 박선영(김희선)과 살고 있는 과거인 박진겸(주원)과 대치하게 된다. 그런데 과거인 박진겸은 미래에서 넘어간 박진겸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학교 건물 옥상에서 추락한 한 여학생 사건은 과거 자살로 판명이 났지만, 이 세계에서는 과거인 박진겸이 사실은 밀어서 살해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어머니 박선영을 살해한 인물 역시 바로 그 과거인 박진겸이었다. 그러니 미래인 박진겸과 과거인 박진겸은 정반대의 인물인 셈이다. 한 명은 여학생과 엄마를 살리려 하는 박진겸이고, 다른 한 명은 여학생을 죽이고 엄마도 죽인 박진겸이다.

 

시간여행과 평행세계가 뒤섞인 <앨리스>의 복잡한 세계관은 이처럼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이 '선택'에 따라 무수히 많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즉 사고로 인해 윤태이(김희선)와 박진겸이 가게 된 2010년은 그래서 이전에 박진겸이 타임카드를 통해 가게 됐던 2010년과는 또 다른 세계다. 결국 평행세계란 어떤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무수히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니까.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건 윤태이와 박선영 사이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고리다. 2050년에서 1992년으로 간 미래인 윤태이(박선영)가 구해낸 장박사의 딸은 다름 아닌 훗날 괴짜 교수로 성장하는 과거인 윤태이다. 그런데 2010년으로 가게 된 과거인 윤태이가 박선영을 만나 들은 윤태이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기묘하기 이를 데 없다.

 

윤태이의 어머니가 바로 예언서를 발견한 장본인이고 그는 예언서를 갖고 1986년으로 도망친다. 거기서 장박사와 만나 결혼해 윤태이를 낳다가 죽는다. 그 후 1992년에 선생의 사주를 받아 예언서를 차지하러 온 괴한에 의해 장박사가 살해되고 마침 그 때 도착한 미래인 윤태이가 과거인 윤태이를 구해낸다.

 

그리고 그 아이를 미래인 윤태이(박선영)이 자식처럼 키우려 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도 고아였기 때문이란다. 또한 그가 시간여행 시스템 앨리스를 만들어내게 된 이유도 바로 자신의 부모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남다른 과학적 재능을 갖고 있는데다 예언서의 마지막 장을 외우고 있는 아이가 위험해질 걸 알게 된 박선영은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떠나버린다.

 

이 이야기는 미래인 윤태이와 과거인 윤태이의 삶이 다른 듯 유사한 흐름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미래에서 과거로 가서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그렇고, 그 아이는 고아가 되어 부모가 누구인가를 찾고 싶어 하고 그것이 시간여행이라는 앨리스 시스템을 만들게 되는 이유가 된다는 게 그렇다. 이야기는 미래에서 과거로 왔다가 다시 미래로 가고 거기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된다.

 

사실 이런 복잡한 흐름을 이해하려고 애써 노력하게 되면 <앨리스>는 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세계관은 완벽하게 짜인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풀기 힘든 복잡한 퍼즐처럼 다가오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개연성 없는'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그나마 이 문제작을 계속 보게 만들고 그럴 듯하게 해주는 건 연기자들이다. 미래와 과거를 넘나드는 걸 넘어서 두 세계의 같은 인물들이 서로 마주하며 심지어 완전히 다른 인물로 대치하는 그 장면이 주는 '괴상함'을 연기자들의 감정 연기가 채워주고 있어서다. 김희선이 40대에서 30대 그리고 20대까지를 오가며 여러 윤태이의 모습을 연기해낸 것이 드라마의 초중반부라면 후반부로 넘어와 주원이 연기하고 있는 완전히 다른 두 명의 박진겸 연기가 도드라진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있는 복잡한 스토리 속에서 이 연기자들이 유일한 개연성처럼 여겨질 정도로.(사진:SBS)

'앨리스'의 시간여행, 예언서와 클리셰에 담긴 메시지들

 

시간여행에 평행세계. 다소 복잡한 세계관을 갖고 있지만 9회까지 방영되면서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의 세계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간단하게 보면 2050년 시간여행 시스템 앨리스를 가진 미래인들이 과거로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평행세계의 부딪침을 다루는 드라마다.

 

이야기 구조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는 이유는 순방향으로만 흐르던 시간이 앨리스 시스템에 의해 역방향으로도 돌아가게 된 세계관 때문이다. 미래인인 윤태이(김희선)는 연인인 유민혁(곽시향)과 함께 2050년에서 1992년으로 온다. 예언서를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예언서를 갖고 있는 장동식(장현성)이 살해되고 윤태이는 그의 어린 딸을 구해낸다. 그런데 윤태이가 구해낸 그 딸은 바로 어린 나이의 자신이다.

 

그런데 그 딸을 구한 미래인 윤태이는 마침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시간여행으로 방사능에 노출될 것을 꺼려하며 그 시간대에 남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윤태이는 박선영이라는 이름으로 아이 박진겸(주원)을 낳고 홀로 키운다. 그러니 미래에서 온 윤태이(박선영)와 장동식의 딸로 성장하는 과거인 윤태이가 그 세계에 공존하게 된다. 과거인 윤태이가 자라나 대학생이 되던 2010년 거대한 달이 뜨던 날 박선영은 살해당한다. 박진겸은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형사 고형석(김상호)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 형사가 되고 어느 날 드론을 쫓다가 교단에 선 괴짜교수 윤태이를 만나고 놀란다.

 

만일 세계가 하나만 존재한다면, 이 이야기는 계속 빙빙 도는 이상한 세계가 되어버린다. 즉 미래에서 과거로 와서 구해낸 윤태이가 자라서 다시 미래인 윤태이로 성장하고 그는 앨리스 시스템을 만들어 다시 과거로 가는 그런 과정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리스>는 세계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고 말한다. 평행세계의 이론이 그러하듯이 여러 가능성의 세계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미래에서 과거로 와 과거를 바꿔놓으면 다른 선택지의 미래 세계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이 복잡한 세계관을 <앨리스>는 의외로 쉽게 풀어냈다.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박선영과 박진겸의 모자관계, 그리고 과거인 윤태이를 다시 만난 박진겸의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연인으로서의 애정이 묘하게 얽힌 감정 변화,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만남과 이별 사이에서의 그리움 같은 다소 익숙한 가족드라마와 멜로드라마의 코드들을 활용한다.

 

중요한 건 이 세계관 속에서 인물들의 행동이 무얼 지향하고 있고 그것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하기 위함인가 하는 점이다. 그 지향점이 없다면 이야기의 동력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앨리스>에는 과거인들이 있고 앨리스 시스템으로 시간여행을 통해 미래에서 과거로 온 미래인들이 있다. 그리고 역시 미래에서 온 알 수 없는 어떤 세력이 윤태이와 박진겸을 위협한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드라마 초반부터 지금까지 찾고 있는 건 바로 '예언서'다. 도대체 이 예언서가 뭐기에 이렇게 모두가 집착하는 걸까

 

예언서는 말 그대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역사처럼 기록된 책일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빼앗기 위해 괴한이 찾아들었을 때 장동식 박사는 예언서의 맨 마지막장을 찢어 어린 딸(윤태이)에게 준 바 있다. 왜 책의 어느 특정 부분도 아닌 마지막장을 찢어 줬을까. 그것은 시간여행이라는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 과거에서 미래로 또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을 자유자재로 여행할 수 있게 되는 세계라면 가장 중요한 건 그 끝이다. 보통의 삶은 어떻게 끝날지 모른 채 시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하지만 끝을 알게 된다면 그 운명을 바꾸려는 욕망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저마다의 욕망의 부딪침은 혼돈과 파멸을 예고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윤태이도 박진겸도 박선영이 남기고 간 타임카드를 가진 채 우연한 사고를 겪으면서 시간여행을 경험한다. 박진겸은 2010년 자신의 어머니인 박선영이 죽던 날로 돌아가지만, 그는 그 살인을 막지 못한다. 윤태이는 2021년으로 넘어가지만 박진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절망한다. 과거로 가도 미래로 갈 수 있다고 해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다만 일어날 일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이미 벌어진 일을 알고는 절망하는 걸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2020년 현재로 다시 돌아온 윤태이와 박진겸은 모두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미래로 갔던 윤태이는 거기서 자신의 가족들을 만나지만 그들 사이에는 1년의 공백기가 존재한다. 그래서 2020년으로 되돌아온 윤태이는 현재를 함께 겪어가는 자신과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진정으로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애초에 시간여행을 소재로 가져오면서부터 어쩌면 <앨리스>는 그런 시간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행위가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많은 일들을 겪고 또 시간을 넘나들어도 이들에게 남은 소중한 것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나눴던 어찌 보면 틀에 박힌 가족드라마나 멜로드라마 속 클리셰 같은 일상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을 지배하고 그 끝을 알려고 하는 건 오히려 그 일상들을 모두 헛되게 만들고 무가치하게 느껴지게 만들 뿐이니.(사진:SBS)

'앨리스', 얽히고설켜도 김희선과 주원이 있어 따라가게 되는 건

 

만일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려 한다면 아마도 머리가 지끈해질 게다. 처음부터 등장한 '시간여행'이라는 세계가 먼저 시청자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2050년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세계, 그 앨리스라는 시스템을 만든 과학자가 바로 미래에서 유민혁(곽시양)과 함께 1992년으로 온 윤태이(김희선)다. 그는 모든 걸 종말로 이끌 수 있는 예언서를 찾기 위해 과거로 오지만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앨리스로 돌아오지 않고 과거에 남아 아이 박진겸(주원)을 낳는다. 윤태이는 박선영이라는 이름으로 진겸을 키우지만 드론이 나타난 어느 날 살해당한다.

 

그런데 형사가 된 진겸이 엄마와 똑같이 생겼지만 괴짜 교수인 윤태이를 만나면서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혼돈에 빠뜨린다. 진겸은 그를 진짜 엄마로 착각하며 껴안고 눈물을 흘리지만 차츰 그가 자신의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남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카드'를 갖고 다니던 중 자동차 사고를 당하며 카드가 작동해 과거로 넘어간 진겸은 대학생인 윤태이를 만나고, 그 시간대에 박선영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두 사람이 다른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시간여행을 다루는 장르물들을 염두에 두고 들여다보면 박선영과 윤태이가 동시에 서로 다른 인물로 공존한다는 사실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앨리스>에서는 죽은 딸을 살리기 위해 미래에서 온 은수모(오연아)가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른바 '타임 패러독스'가 떠오르는 이 장면은 시간여행이라는 세계관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즈음에 <앨리스>는 이 드라마의 세계관에 시간여행과 함께 겹쳐져 있는 '평행세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미래인'과 '과거인'이 공존할 수 있고, 그들은 생긴 건 같아도 전혀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앨리스>의 세계관은 이 시간여행 시스템을 통해 미래인들이 저 마다의 목적(주로 죽음 같은 이별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이들을 시간여행을 통해 만나는 목적)으로 과거를 여행한다. 하지만 그 여행 속에서 은수모처럼 미래인들은 과거에 집착하며 사건을 일으킨다. 앨리스 시스템은 그런 일들을 과거인들 모르게 처리하는 일을 한다.

 

<앨리스>는 양자역학이 등장하고 그래서 슈뢰딩거 고양이 실험의 이야기가 은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실 과학에 그만한 관심이 없는 이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드라마를 굳이 과학까지 공부해가며 볼 필요는 없다. 그런 설정들이 어떤 세계관을 그리고 있는 것인가만 이해하면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과거와 미래를 오가고, 평행세계로서 과거인과 미래인이 공존하는 <앨리스>의 세계관은 복잡하다. 중요한 건 이 시스템을 통해 미래에서 온 어떤 세력들이 과거인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앨리스에서 일하는 이들과는 다른 무리들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그 세력과 싸우게 되는 박진겸과 윤태이 그리고 아마도 유민혁 또한 그들을 돕는 이야기로 전개되지 않을까 예상하게 만든다.

 

도대체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얽혀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코 <앨리스>는 쉬운 드라마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복잡한 드라마가 의외로 편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것은 드라마가 일일이 이런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인물들에 더 집중하고 있어서다.

 

윤태이와 박진겸은 이 복잡한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캐릭터들이다. 물론 윤태이는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가 박선영이 되어 살아가며 박진겸과 모자지간의 절절한 사별의 순간을 만들어내지만, 미래로 가기 전 현재의 과학자로 박진겸과 만나 연인 관계 같은 케미를 보여준다. 모자지간과 연인관계를 오가는 이 설정들은 시간여행과 평행세계라는 세계관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다소 복잡한 것이지만, 윤태이와 박진겸 사이의 오가는 감정들로 표현되고 있어 시청자들은 의외로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역시 연기자들의 공이다. 20대, 30대, 40대의 윤태이를 오가는 연기를 보여주는 김희선은 사실상 이 드라마가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주는 중심 축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고 있고, 그와 함께 다양한 감정들을 끄집어내는 주원 역시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복잡한 세계관을 가진 드라마지만, 흔들리지 않는 연기력으로 서 있어 이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길을 잃지 않는다고나 할까. 물론 앞으로 그 복잡한 세계관과 많은 떡밥들이 어떻게 풀어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또한 적지 않지만.(사진:SBS)

최근 우리네 콘텐츠에도 유행처럼 부는 소재 중 하나가 평행세계다. SBS 드마라 '더 킹'이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두 평행세계가 겹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OCN 드라마 '트레인'은 한 사건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인물이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평행세계가 겹쳐지면서 벌어지는 스릴러를 다뤘다.

 

양우석 감독이 3년 만에 가져온 '강철비2'는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이지만, 3년 전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어냈던 '강철비1'과 기묘한 평행세계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것은 정우성과 곽도원이 '강철비1'에서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와 남측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로 등장하지만, '강철비2'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정우성)과 북 호위총국장(곽도원)으로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이건 전작에서 좋은 합을 보였던 배우들과 감독의 의기투합으로 이뤄진 결과이겠지만 '강철비'라는 세계관이 그려내는 한반도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선택지들과 그 선택에 의해 공멸하던가 아니면 공존하는가가 결정되는 그 변수들을 떠올려보면 의도적으로 평행세계 같은 뉘앙스를 담으려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강철비2'는 전작에서 그랬듯 '선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남과 북 그리고 이를 둘러싼 미,중,일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때론 국가의 존폐 아니 나아가 전 인류의 존폐를 결정짓는 건 대통령이나 최고지도자 같은 이들의 선택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강철비2'가 흥미진진해지는 이유다.

 

호위총국장에 의해 발생한 쿠데타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 그리고 북한 최고지도자인 위원장(유연석)이 북한 핵잠수함에 인질로 잡히는 상황은 그들의 죽고 사는 문제만이 아닌 남북한과 미국 나아가 중국과 일본의 운명까지 결정할 수 있는 중대사가 된다.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세 정상의 갈등과 협력은 마치 하나의 상황극처럼 그려지지만 적어도 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 늘 놓여져 살아가는 우리네 관객들에게는 손에 땀을 쥐고 볼 수밖에 없는 몰입을 만들어낸다.

 

영화 '강철비2'는 대부분 핵잠수함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핵잠수함과 다른 국가의 잠수함들과의 교전상황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잠수함이 등장하는 전쟁영화들이 주는 그 긴박한 스릴러의 묘미를 그려내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부딪치는 인물들의 치열한 부딪침을 담는다. 흥미로운 건 세 정상이 좁은 방 안에서 벌이는 소동이 우리네 한반도 상황과 이를 두고 국가 간 외교를 해나가는 정상들의 모습들을 자꾸만 연상시키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폐쇄공포증을 일으키는 잠수함 속에서의 이야기는 때때로 그 긴장을 무너뜨리는 풍자적 웃음이 채워지기도 한다.

 

'강철비2'는 한반도 인근 해상에서 벌어지는 이 사건을 마침 북상하는 태풍과 겹쳐 이야기한다. 태풍의 이름이 'Steel rain'이고 그것은 마치 한반도 상황이 일촉즉발의 태풍을 마주하고 있다는 걸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관객들은 저들의 올바른 '선택'에 의해 이 태풍 같은 긴장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게 된다.

 

'강철비1'과 '강철비2'는 연달아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특정 상황극을 마치 평행세계의 이야기처럼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평행세계는 결국 선택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선택은 국가의 정상들만의 몫은 아니라는 걸 엔딩크레딧이 끝난 후 대한민국 대통령의 목소리로 전한다. 자칫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슬기롭게 넘겼다 해도 궁극적으로 분단을 넘어 통일로 향해가는 길은 우리네 국민의 선택에 의해 가능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사진:영화 '강철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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