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시트콤 같은 <내 딸 금사월>? 차라리 시트콤이 낫다

 

“<내 딸, 금사월>이 여러가지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가족 스릴러 시트콤처럼 가볍게 시작한 오락 드라마다. 진지하게 평가해서 줘서 민망하다.” 지난 16일 열린 2016 MBC 드라마 라인업 기자간담회에서 박성수 MBC 드라마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모로 MBC 드라마 전체가 막장으로 치부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기자간담회였고, 새로 시작하는 네 편의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호소하는 자리였다.

 


'내 딸 금사월(사진출처:MBC)'

사실 MBC 드라마 전체를 막장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박성수 국장이 말한 것처럼 실제로 지난해 <킬미힐미> 같은 작품이나 <그녀는 예뻤다> 같은 좋은 작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최근 방영되고 있는 <한 번 더 해피엔딩>은 재혼이라는 새로운 관점에 맞춰진 괜찮은 로맨틱 코미디이고 주말에 방영되고 있는 <엄마> 같은 작품도 지금껏 MBC 주말드라마를 채웠던 자극적인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드라마다. 박성수 국장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MBC 드라마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중요한 건 MBC 내부의 주장이 아니라 대중들이 MBC 드라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다. 실제와 달리 MBC 드라마하면 대중들은 어째서 막장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을까. 한때는 드라마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최고의 퀄리티와 완성도, 작품성을 가진 드라마들은 모두 MBC에 있다고 했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단 몇 년 만에 이런 오명은 왜 생겨난 것일까. 이 부분이 사실은 중요한 대목이다.

 

이렇게 된 건 그간 MBC 드라마가 해온 전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건 일일드라마에 임성한 작가의 <오로라공주>, <압구정 백야> 막장드라마 두 편을 무려 150부작으로 방영한 일이다. 숱한 논란들이 쏟아져 나왔고 드라마 문법 자체를 파괴하는 파행을 겪었지만 그런 문제적 작가를 또 다시 일일드라마에 편성시켜 저녁 시간대에 방영했다는 건 어떤 얘기로도 변명이 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주말드라마에 역시 막장 작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김순옥 작가의 <왔다 장보리><내 딸 금사월>을 세워둔 것도 MBC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등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다. 김순옥 작가의 이런 작품들에 대해서는 기성 드라마 작가들조차 한숨을 내쉬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막장이 저지르고 있는 드라마 문법의 파괴는 그 자극으로 인해 해당 드라마는 시청률을 가져갈지 모르지만 다른 작가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내 딸 금사월>을 가벼운 스릴러 시트콤 정도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임성한 작가의 막장으로 채워졌던 일일드라마 시간에 차라리 김병욱 PD 같은 거장의 시트콤을 편성하는 일이다. 사실 시트콤 자체가 그렇게 가벼운 장르도 아니다. 시트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이 분명하고 그것이 하나의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김병욱 PD는 일련의 <하이킥> 시리즈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나마 MBC가 이런 기자간담회까지 연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지금이라도 좋은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의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간담회나 몇 마디 말로서 시청자들에게 덧씌워진 MBC 드라마의 이미지가 바뀌는 건 아닐 것이다. 향후 진짜 좋은 드라마들이 MBC에서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최소한 드라마 문법을 파괴하는 막장은 보이지 않기를.

시트콤, 굳이 심각해질 필요 있을까

 

<스탠바이>는 확실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만큼 화제가 되고 있지는 않다. 시청률에 있어서도 5% 정도에 머물러 있다. 역시 시트콤에 있어서는 김병욱 PD가 갖는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하이킥> 시리즈가 시트콤들 중에서 가장 도드라진 지점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좀 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이킥>은 그 자체가 낮은 자들이 높은 자들에게 날리는 것이니까.

 

 

'스탠바이'(사진출처:MBC)

그래서 <하이킥> 시리즈를 볼 때 우리는 조금 진지해진다. 캐릭터가 표상하는 현실 반영적인 지점을 찾아내려 하고, 그들 사이의 권력 관계와 그 변화를 예민하게 바라본다. 또 이야기 소재에 있어서도 그 스토리가 갖는 풍자적 의미 같은 것을 찾아내려 한다. 당연히 이런 지점들은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에 화제성을 높이는 요소다.

 

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의미화가 시트콤이 갖는 발랄함을 자칫 무겁게 만들 수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후반부로 가면서 동력을 잃었던 것은 그 무거움 때문이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이 갖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코미디와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 현실의 무게는 시트콤을 블랙코미디와 심지어 비극으로 몰아가기도 한다(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과도할 때 시트콤의 본질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스탠바이>가 가진 <하이킥>보다 나은 지점들이 보인다. <스탠바이>는 전형적인 시트콤에 충실한 작품이다. 긴 서사보다는 말 그대로의 상황(시추에이션)에 더 집중하고, 아이디어만큼 캐릭터에 신경을 쓰는 시트콤. 확실히 <스탠바이>의 최대 장점은 견고한 캐릭터들에 있다.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특유의 천사표 마음을 갖고 있는 류진행(류진)은 과도한 결벽증이라는 캐릭터로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낸다. 사소한 흐트러짐조차 가만 두고 보지 못하는 그 성격은 특별한 사건이 개입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반복되어 드러나면서 서서히 웃음의 강도를 높여간다. 류기우(이기우)와 고교시절 같은 학교 출신이었지만 그것을 숨기고 있는 하석진(하석진)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캐릭터이고, 류진행을 짝사랑하는 털털한 성격의 김수현(김수현)은 겨털 에피소드처럼 한없이 망가지면서도 귀여운 면모를 잃지 않는 매력의 소유자다.

 

갑자기 가족을 잃고 류진행에 의해 같이 살게된 시완(임시완)은 뭐든 잘 하는 캐릭터로, 뭐든 잘하는 게 없는 김경표(고경표)와 비교되는 캐릭터이고, 진행의 아버지인 류정우(최정우)는 특유의 가부장적인 아버지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준다. 이밖에도 방송사의 간판 아나운서인 박준금(박준금)이나 노총각 작가인 김연우(김연우), 또 류정우가 운영하는 스파게티 가게의 종업원인 쌈디(사이먼디), 그리고 정육점하는 아버지를 둔 덕(?)에 고기로 남자친구를 유혹하는 여고생 김예원(김예원)까지 소소한 캐릭터들조차 반짝반짝 빛나는 면모가 있다.

 

아무래도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고, 그 반복적인 행동과 말투를 과장되게 보여주기 때문에 <스탠바이>는 캐릭터들의 유행어가 유독 많은 편이다. 박준금은 입만 열면 "○○가 장난이야?"를 반복하고, 김연우는 "저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하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뭐든 다 튀어나는 그 요술 가방(?)에서 기상천외한 것들을 꺼내주는 것으로 캐릭터가 구축되어 있다. 하석진은 직장에서의 일로 화가 나면 차에 앉아서 "나랏말쌈이 뒹국에 달아..."를 연발하는 습관이 있고, 류진행은 특별히 반복하는 대사는 없지만 늘 억울한 얼굴로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늘 불안하게 여겨졌던 것은 전작이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새드 엔딩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과연 누가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졌었다(물론 이건 기우에 불과했지만).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시트콤의 발랄함을 유지함으로써 심적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스탠바이>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스탠바이 된 캐릭터들은 차츰 시트콤이 진행되면서 점점 힘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스탠바이>는 물론 그 <하이킥>시리즈가 가졌던 블랙코미디적인 요소 즉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화제성이 조금 떨어지는 게 있고 시청률도 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스탠바이>는 그 부담 없는 시트콤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스탠바이>는 이제 이미 충분히 날린 잔 펀치들만이 아니라, 묵직한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한 방이 있다면 이 준비된 시트콤은 어쩌면 좀 더 대중들의 편안한 저녁의 부담 없는 웃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형은 가끔씩 수수께끼를 내고는 하루 종일 답을 알려주지 않곤 했다. 답이 뭘까 곰곰 생각하며 답답해하는 내 모습이 자못 재밌었던가 보다. 하루가 꼴딱 지나고도 답을 몰라 묻는 내게 형은 적선하듯 답을 알려주곤 했다. 그런 형이 미웠던 걸까. 언젠가부터는 형에게 묻지 않고 혼자 문제를 풀려고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어려워 문제풀이를 결국 들여다봐야 할 때마다 형의 장난스런 얼굴이 떠올라 괜스레 약이 오르곤 했다. 어쨌든 세상사에 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고 또 모두 어떤 답이 분명히 있다고 착각하게 됐던 건 아마도 이 어린 시절 체화된 문제 풀이 경험 때문일 게다. 하지만 어디 사는 게 수학문제 같을까. 때론 답이 없는 게 삶이고, 어쩌면 그저 문제만 던져진 것이 삶이라는 것을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하이킥'(사진출처:MBC)

수학공식 같은 드라마를 볼 때마다 "저건 거짓말이야"라고 생각하게 된 건 그래서일 게다. 첫 회를 보면 마지막 회를 예감할 수 있는 공식적인 드라마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때마다 이건 어딘지 아니다 싶은 마음에, 언젠가부터는 마지막 회를 안보는 습관까지 생기기도 했다. 그 예정된 결말이 과정들을 너무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곤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늘 그런 결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 같은 의외의 결말도 있으니까.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교통사고. 멈춰버린 시간. 희극과 비극이 겹쳐지는 그런 결말. 그래서 보는 우리들에게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는 결말. 수학문제처럼 답이 있다고 여기는 우리들의 단순해진 생각을 단번에 뒤집어놓는 충격요법.


그래서일 것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마지막을 수놓은 신세경에 대한 수많은 해석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장면 장면의 디테일 속에 숨겨진 것들을 끌어 모아, 신세경이 애초부터 귀신이었다거나 연년생 동생이 있었다는 해석은 얼마나 대중들이 그 충격으로부터 그럴 듯한 답을 구하고픈 욕망이 강했던가를 잘 말해준다. 수수께끼 같은 결말을 던져주고 답을 주지 않을 때, 이제 그 남은 빈 여백은 온전히 각자가 채워 넣어야 할 것이 되어버린다. 어린 시절, 알려주지 않는 수수께끼의 답을 내 상상력으로 채우려 했던 것처럼.


삶이 답 없는 문제의 풀이과정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중년의 나이에 도달해서였다. 사실 그저 널려진 자연 속에 어떤 법칙이나 흐름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건, 그 해석이 삶에 유리함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별 그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다만 그 별들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그리고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인 사람들의 해석이 있었기에 그 별에 의미가 생긴 것이리라. 우리는 날 때부터 커다란 빈 도화지 한 장을 받았고 아무런 법칙도 흐름도 물론 답도 없는 저 마다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운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삶의 흐름이 생각했던 답에서 멀어진다고 하여, 슬퍼하거나 당황해하지 말라. 그것이 우리네 삶의 본질이니. 다만 주어진 것을 해석하고 풀이하라. 그것이 우리 삶을 저마다의 의미로 만들 것이다. '하이킥'의 결말이 우리에게 던진 숙제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사극의 그들, 예능에서 주목되는 이유

'1박2일'(사진출처:KBS)

우리가 알고 있던 이서진의 모습은 사극 속의 왕이 대부분이다. 반듯한 이미지에 신뢰 가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대사를 던지는 이서진에게서는 진짜 '왕족'의 아우라가 느껴지곤 했다. 그런 그였기에 그 반전이 주는 웃음도 클 수밖에 없었을 게다. '1박2일' 절친 특집에 이승기의 초대로 출연한 이서진은 지금껏 궁 안(?)에서 보여주던 반듯함을 깨고, 은근히 승부욕 있고, 은근히 폼생폼사하며, 은근히 성깔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대형(미대 다니는 형)'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물론 이런 '미대형'이란 캐릭터가 창출된 것은 거기 혹한기 실전캠프를 함께 한 '1박2일' 멤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이서진의 야생에서도 어딘지 도도하려 하고,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순간순간 드러나는 그의 맨 얼굴을 찾아내며 '미대형'이란 캐릭터로 추켜세웠다. 여기에 족구 게임이나 아침 기상 미션에서 군고구마 빨리 먹기 게임을 하는 장면 등에서 이서진의 면면을 편집 장면으로 집중시킴으로써 그 캐릭터는 더 부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변인물들의 도움과 편집이 있었다고 해도 이런 캐릭터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서진이라는 독특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드라마 속의 반듯한 이미지만을 떠올릴 지 모르지만, 사극이라는 제작 환경은 '1박2일'의 야생보다 더 생야생인 경우가 많다. 혹한에도 야전에서 잠 못 자며 몸으로 부딪치며 촬영해야 하는 그들이지만,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면 캐릭터에 맞게 반듯한 이미지를 고수하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다. 그러니 '혹한기 실전 캠프'에서의 이서진 같은 캐릭터가 가능한 것이다. 힘겨워도 카메라가 돌면 그 누구보다 열심이고, 투덜대다가도 일단 시키면 군말 없이 잘 하는 그런 캐릭터. 그러면서도 어딘지 캐릭터가 주는 아우라를 카메라 바깥에서도 지키려는 모습. '미대형'은 그렇게 탄생된 캐릭터다.

사극에서 반듯한 이미지를 선보이다가 예능(시트콤을 포함한)에서 주목받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 아우라가 깨지면서 주는 웃음이 있다는 점이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발굴한 최고의 유망주 박하선이 대표적이다. 이 시트콤에 출연하기 이전에 박하선에 대한 대중들의 선입견은 '동이'의 인현왕후 이미지였다. 고고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자애롭기까지 한 그 이미지. 하지만 그 이미지는 이 시트콤에서 때론 급 흥분하는 모습,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모습, 때로는 '롤리폴리'를 추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깨져버렸다. 그만큼 대중들의 호응도 커졌다. 아우라의 파괴를 통한 웃음이 가져오는 힘이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다른 작품 혹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제 아무리 아우라를 파괴시킨다고 해도 그것이 완전히 소진되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대중들의 뇌리에 그 잔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즉 순간적인 아우라의 파괴는 그들의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주지만, 곧 다시 평소대로의 얼굴로 돌아가면 예전 왕과 왕후로서 근엄했던 이미지로 되돌아간다. 즉 이들이 아우라의 파괴로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은 하나의 부가된 이미지이지 과거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신비로운 느낌이 생겨난다. 즉 어떨 때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앉은 듯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면모에서 일종의 통쾌함을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 변함없는 고고함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도대체 누구냐 넌?"하고 묻는 이유는 바로 그 신비로운 이미지의 체험을 순간 이들에게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극이 갖는 힘이 클 것이다. 그 야전의 제작환경 속에서도 근엄함을 잊지 않아야 하는 그 경험치는 예능의 맨 얼굴과 만났을 때 그만큼 큰 반전을 주기 마련이다. 게다가 휘발되지 않고 다시 본래의 아우라로 돌아가는 이미지라니. 어찌 신비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이서진과 박하선, 역시 왕족(?)이 주는 웃음은 뭔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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