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시청자가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늘 방송 프로그램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시청자가 주인”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몇몇 프로그램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는 옛말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시청자들은 굳이 원하지 않고 불편함을 여전히 호소하는데도 그들만이 사는 세상을 연출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최근 논란을 겪은 SBS <런닝맨>, KBS <1박2일>, JTBC <님과 함께2>가 그렇다.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은 새 시즌을 구상한다면서 멤버 교체 이야기가 나오며 논란을 겪었다. 강호동이 들어와 유재석과 양강체제를 만들고 대신 김종국과 송지효가 하차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 구상은 이뤄지지 못했다. 김종국과 송지효의 하차 통보 과정에서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결국 아쉬움을 토로하는 팬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게 됐고 여기에 부담을 느낀 강호동 역시 <런닝맨> 합류를 포기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논의 끝에 결정한 것이 멤버 전원이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올해 초에 종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이 결정은 번복되었다. 지난 24일 SBS 측은 <런닝맨>이 이 멤버 그대로 종영하지 않고 계속 가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제작진의 설득에 출연자들이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 명분으로 내세운 건 종영을 아쉬워하는 팬들 때문이라고 한다. 

팬들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렇게 계속 말이 바뀌는 결정들을 내놓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실 <런닝맨>이 새 시즌 구상, 멤버 교체, 구상 포기, 종영 결정, 종영 번복을 하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팬들은 이리저리 휘둘린 격이 되었다. 시청자들이 어딘지 과거에 비해 정체되어 있는 <런닝맨>에 변화를 요구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변한 건 없고 계속된 말 바꾸기만 반복된 격이다. 팬들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그저 호명된 명분일 뿐, 사실은 그들만이 결정하고 번복하며 사는 세상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KBS <1박2일>은 사생활 문제로 하차했던 정준영을 말 그대로 ‘전격 복귀’시켰다. 자숙의 기간이 너무 짧고, 또 그 사생활 문제가 온 가족이 보는 프로그램에는 불편함을 만들 수 있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나왔지만 거기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은 보여주지 않고 제작진이 원하고 출연자들이 원하는 대로 복귀 수순이 이뤄졌다. 물론 멤버가 5명이라 프로그램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은 제작진의 입장이 이해되는 바이고, 또한 함께 동고동락했던 출연자들의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배제되어버린 시청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준영 복귀를 위해 채워진 <1박2일>의 경남 거창, 산청에서의 방송 분량은 ‘그들만이 사는 세상’을 확인시켜줬다. 서른 번 정준영의 이름이 나와야 복귀할 수 있다는 미션이 주어지고 마지막에는 출연자들이 눈을 가린 채 정준영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 그 정체를 맞추는 게임이 이어졌다. 그리고 기막히게도 출연자는 정준영을 맞췄다. 그만큼 그를 출연자들이 그리워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지만, 그의 조기 복귀를 원치 않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어딘지 뒷맛이 찜찜할 수밖에 없는 방송이었다. 

JTBC <님과 함께2>는 최근 두바이에서 촬영 중 욕설을 한 서인영의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생긴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출연한 방송 분량을 아무런 편집도 없이 내보냈다. 이미 하차가 결정되었고, 그 논란 동영상들이 유포된 상황이며 게다가 여기에 대해 서인영 측의 사과까지 있던 상황이었다. 물론 서인영 당사자의 사과가 아니라 소속사에서 내놓은 사과에 대해 시청자들의 감정은 여전히 식지 않은 상황. 이런 시기에 방송 분량을 그대로 내보낸다는 건, 서인영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건 시청자들이 원하는 일이 아니다. <님과 함께2>는 가상 결혼을 콘셉트로 삼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그 가상을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제작진과 출연자 그리고 무엇보다 시청자와의 암묵적인 합의가 전제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이 상황이 터진 논란으로 인해 깨져버렸다. 그 상황에서 방송분량을 그대로 내보낸다는 건 전혀 시청자를 고려한 처사가 아니다. 

최근 일련의 방송 프로그램들이 보이는 행보는 안타깝게도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고 그들이 만드는 세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청자들이, 대중들이 있기에 가능한 세상이다. 이걸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방송은 자칫 소통 없는 일방적 질주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일방통행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작금의 우리네 현실이 그 무엇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1>, 세종특집이 보여준 상식과 초심의 힘

 

정준영 하차가 <12>에는 어떤 위기감을 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준영이 <12>에서 보여준 존재감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차치하고라도, 늘 여섯 명이 동고동락하며 합을 맞춰오던 그 균형이 깨진 건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준영 없이 새롭게 시작한 <12>대왕세종 특집은 이런 위기감 자체를 한 방에 일소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시청률은 되레 상승했고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호의적이었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정준영 하차가 과연 적절 했는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12>이 발 빠르게 내린 결정은 결과적으로는 잘 한 선택이 되었다. 사실 법적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시청자들이 느끼는 정서적인 반응들이다. 시청자들은 <12>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는 프로그램으로서 이번 정준영 사안이 어쨌든 가져오게 될 부정적 이미지를 이 프로그램이 떠안는 걸 원치 않았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겠지만 <12>은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을 내렸다. 정준영은 하차했고 다섯 멤버들로 한글날을 기념해 대왕세종 특집을 찍었다. 물론 그 난 자리에 대한 아쉬움의 소회가 없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출연자들은 그 동생에 대한 그리움의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김준호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얘기했듯이 그 동생이 빠진 자리에서 웃기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왕세종 특집은 지극히 <12>다운 기획으로 채워졌다. <12>KBS라는 공영방송에 가장 어울리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예능 특유의 재미를 담보하면서도 동시에 공영성을 가진 의미를 포착해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초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갖가지 복불복을 통한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그 여행지가 가진 의미나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주에서 벌어진 복불복 게임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게임으로 얻어내 그 조합을 통해 음식을 주문해 먹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게임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글이 얼마나 대단한 발명인가를 드러내주었다. 게임에서 별로 이기지 못해 몇 개 안되는 자음 모음을 얻어낸 김준호와 김종민은 그러나 그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한 끼를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의 글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한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세종의 면면을 상기하며 덕수궁에서 펼쳐진 저녁 복불복 행차 음악 만들기 역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아낸 기획이었다. 이들을 돕기 위해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국악계의 김연아라 불리는 판소리꾼 김나니와 쑥대머리의 작곡자인 오철은 그 짧은 복불복 미션 속에서도 우리네 국악이 가진 흥취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이 행차음악에 맞춰 큰 웃음을 만들어내는 출연자들의 우스꽝스런 행차는 이 의미에 재미를 더하게 해주었다.

 

결국 위기를 대처하는 방식은 상식초심이라는 걸 이번 <12>대왕세종 특집을 통해 보여줬다. 물론 본인들은 아쉽고 힘든 결정이었겠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 <12>은 상식적인 결정을 내렸고, 또한 그 빈자리를 느끼면서 방송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출연자나 제작진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재미와 의미를 모두 포착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았다

<12>, 정준영 빈자리 보단 남은 자산 돌아보길

 

KBS <12>에서 정준영은 결국 하차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그 빈 자리가 아무렇지도 않을 리는 없다. 한글날 570주년을 맞아 특집으로 마련된 <12>은 그래서 그 오프닝 자리에 정준영의 빈자리를 에둘러 표현했다. 마치 사죄를 하고 있는 듯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의식했고, 어쩌다 삭발을 하고 온 김준호에게 마치 <12>이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의지를 다진 것 같은 뉘앙스를 덧씌웠다.

 

'1박2일(사진출처:KBS)'

판교역에서 출발해 여주까지 가는 경강선에서 게임을 시작하려 할 때 출연자들은 그 동생의 빈자리를 언급했고 목적지인 세종대왕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을 때도 그 동생을 이야기하며 아쉬움과 그리움을 표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꽤 오랫동안 함께 여행하며 동고동락했던 동생의 빈자리를 단번에 떨쳐낸다는 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12>의 출연자들은 저마다 정준영의 빈자리를 얘기했지만 실제로 그 빈자리는 그만큼 크게 다가왔을까? 이번 한글날 특집으로 마련된 여행이 워낙 잘 꾸려져서인지 그 빈자리는 33으로 하던 게임을 이제는 못하게 된 것 정도로 소소하게 느껴졌다. 이 점은 출연자들이 아쉬워하고 있지만 <12>만의 저력은 여전하다는 걸 말해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특집은 기획적으로 적확했다고 볼 수 있다. 한글날을 맞아 기획된 특집으로 새로 개통된 경강선을 타고 세종대왕릉역까지 가는 여정도 여행정보로서는 괜찮은 선택이었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게임들, 이를테면 만 원 권의 틀린 그림 찾기 같은 게임을 통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하거나 그 외에 여러 발명품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것들이 <12> 특유의 재미와 의미를 모두 담보해주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릉에서 벌어진 복불복 게임으로 승패에 따라 자음과 모음을 나눠줘 그걸 조합해 음식을 얻는 게임은 <12>의 게임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것 역시 게임의 재미와 더불어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가를 그 조합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12>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가치들, 즉 숨겨진 우리네 여행지 소개나 역사적 사실을 재미있게 알려주는 이런 시도들이 이번 특집에서는 잘 구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김준호 같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낼 줄 아는 프로 예능인이 있고, 바른 이미지에 뭐든 적극적으로 임하며 때론 놀라운 지식을 보이면서도 때론 허당의 면면으로 웃음을 주는 동구 윤시윤이 있으며, 오래도록 <12>의 신바(신나는 바보)로서 기상천외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김종민과 프로그램에 따뜻한 정 같은 걸 느끼게 해주는 차태현,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웃기는 먹방러 데프콘은 <12>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는 자산들이다.

 

여기에 유호진 PD 이후 새로 자리해 무도리로 불리는 유일용PD와 최근 무인도 낙오에서 의외의 존재감을 드러낸 새내기 주종현 PD 같은 연출자 이상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제작진이 있다. 물론 프로그램 이면에서 이런 갖가지 게임을 개발하고 여행지와 여행의 방식 등을 기획하는 작가들도 존재한다.

 

그러니 정준영이 하차한 지금,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기보다는 이제 <12>이 충분히 갖고 있는 자산들을 돌아볼 때다. 물론 필요하면 새 멤버를 충원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제작진과 출연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껏 <12>이라는 브랜드가 쌓아놓은 가치들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빈자리가 주는 아쉬움이 있는 건 당연하겠지만.

공식 <무도> 하차 선언한 정형돈, 그렇다고 해도

 

MBC <무한도전>에서는 무한뉴스를 긴급 제작해 정형돈의 공식적인 하차를 알렸다. 물론 잠정이라는 수식어를 떼지는 않았다. 언제든 건강해지면 돌아올 자리를 늘 마련해두겠다는 뜻일 게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공식적으로 하차 선언을 하게 되면서 정형돈이 그간 <무한도전>에 해 놓은 많은 이들이 새삼 주목된다. 사실 초창기만 해도 적응을 못해 힘겨워 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뭐든 다 잘 하는데 웃기는 것만 못하는 개그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물론 그건 뒤돌아 생각해보면 향후 정형돈이 보여줄 미친 존재감이라는 반전을 위한 밑밥 같은 것처럼 보인다.

 

어색함과 부적응이 하나의 캐릭터가 되고 그래서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일 수밖에 없는 <무한도전>에서는 그의 적응기와 성장기 또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도 그 어색함을 인정하고 캐릭터화하자 오히려 정형돈이라는 존재감이 살아났다는 점이다. 그건 김태호 PD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어려운 인정을 스스로 선택한 정형돈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되지 않았을 일이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캐릭터들이 최고의 스타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정형돈은 여전했다. 그는 여전히 패션은 꽝이고 노래는 감정 과잉이었으며 몸 쓰는 일은 둔했다. 하지만 대신 그는 자신의 패션이 최고이고 자신과 함께 노래 부르면 스타가 되며 누구보다 몸 쓰는 일을 잘 한다고 우겼다. 그 우기는 과정에서 미친 존재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건 실제 현실이 되기도 했다.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그와 함께 불렀던 가수들, 지드래곤, 데프콘, 정재형, 혁오 등은 모두 가장 주목받는 가수가 되었다.

 

지못미특집 등을 통해 여장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프로 레슬링 특집에서는 온 몸을 던져 족발당수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함께 하는 팀원들을 진정으로 공감하고 챙기는 눈물 많은 예능인이었다. ‘봅슬레이특집에서 마지막 라인을 통과해 들어오는 동료들을 보며 아낌없이 눈물을 흘려주었고, ‘조정특집에서도 콕스를 맡아 최선을 다한 동료들에게 눈물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형돈의 위치가 <무한도전>에서 빛날 수 있었던 건 그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이 프로그램의 애초 취지에 끝까지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보통의 위치에 있었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최고라고 주장했다. 그런 정형돈이 실제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 보는 팬들의 마음은 똑같이 보통의 위치에서 누구나 그 자신은 최고라는 걸 확인시켜주지 않았을까.

 

정형돈은 하차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존재감은 그가 떠나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하나의 흔적처럼 새겨져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길. 팬들은 앞으로도 기다릴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