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파트너’의 냉정한 변호사로 돌아온 장나라

굿파트너

지금이야 아이돌 가수들이 연기를 하고 이른바 ‘연기돌’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일이 흔해졌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런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연기자들은 연기를 하고 가수들은 노래를 하는 식으로 ‘영역의 구분’은 확실했고, 따라서 연기자와 가수가 되려는 이들은 거기에 맞는 과정들을 거쳤다. 배우가 신인 연기자로서 단역부터 시작해 자기 영역을 넓혀간다면, 가수 역시 데뷔를 위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영역의 경계를 단번에 해체한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장나라다. 

 

본래 장나라는 SM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 보아와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던 아이돌 지망생이었다. 걸그룹 데뷔를 하려 했지만 당시 SM의 자금난 때문에 자회사격인 퓨어엔터테인먼트를 통해 2001년 첫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했다. 하지만 장나라의 인생을 바꾼 건 우연한 계기로 캐스팅되어 연기를 하게 된 시트콤 ‘뉴논스톱’이었다. 장나라 특유의 귀여운 이미지가 시트콤 속 캐릭터와 맞아 떨어지면서 장나라는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다. 양동근과의 러브라인이 국민적 인기를 끌었는데, 그 연기 호흡은 시트콤 역사상 최고 시청률인 39.3%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트콤의 인기는 장나라의 가수로서의 입지 또한 수직상승시켰다. 갑자기 등장한 장나라의 앨범이 당시 최정상에 있던 성시경 같은 가수들과 경쟁해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2001년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여자 신인상을 휩쓴 이 인물은 2002년 드라마 ‘명랑소녀성공기’로 무려 44.6%의 시청률을 내며 배우로서도 정상을 찍었고, 2집 앨범도 ‘Sweet Dream’, ‘이마도 사랑이겠죠’ 같은 곡들이 모두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로서는 낯선 일이었던 가수와 배우를 넘나드는 ‘멀티 엔터테이너’의 길을 순식간에 개척해냈던 장본인이라는 것. 실제로 장나라가 열어 놓은 이 멀티 엔터테이너의 길은 훗날 무수한 연기돌들이 꿈꾸고 따라오게 된 길이 됐다. 

 

이처럼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구가했던 장나라는 2004년 중국에 진출하면서 일찍이 한류스타로서의 영역 또한 개척한다. 장나라가 주연으로 출연한 코미디 사극 ‘띠아오만 공주’는 당시 첫 방영에서 8.5%(보통 1%만 내도 성공이라고 한다)의 압도적인 시청률로 중국 전역에 장나라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작품 역시 ‘명랑소녀성공기’처럼 장나라 특유의 귀여운 이미지가 잘 어필되는 캐릭터로 주목받았는데, 지금껏 중국 내에서 그가 최정상의 한류배우로 기억되는 이유다. 장나라는 중국에서조차 배우와 함께 가수로서도 활동했는데 2005년에는 중국 가수들과 경쟁해 대륙최고 인기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즉 지금은 K콘텐츠의 인기로 아티스트들의 해외 진출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당시로서는 공고했던 국가의 장벽을 깨고 한류스타로서의 확고한 길을 열어놓은 개척자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2003년부터 2011년까지의 중국 활동은 놀라운 성과를 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그리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것은 중국에 대한 선입견이 상당부분 작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2011년 ‘동안미녀’, 2014년 ‘운명처럼 널 사랑해’ 같은 작품으로 조금씩 국내 활동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장나라는 2017년 ‘고백부부’로 뜨거운 대중들의 반응을 얻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서 20대 대학생의 나이로 넘어가는 타임리프 연기를 특유의 동안과 더불어 풍부한 감정연기로 소화해내면서다. 이를 기점으로 장나라는 훨씬 다채로운 연기 영역에 도전했다. ‘황후의 품격’ 같은 파격적인 설정의 작품에도 안정감을 부여했고, ‘VIP’에서는 VIP 전담팀에서 그들의 불륜까지 덮어주는 일을 하는 나정선이라는 인물이 남편의 불륜을 마주하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연기했다. 또 ‘패밀리’에서는 블랙요원이지만 가족들에게는 그 정체를 숨기며 살아가는 강유라라는 인물을 코미디와 액션이 오가는 연기로 소화해냈다. 즉 이 과정은 과거 귀여운 이미지로 그에 걸맞는 캐릭터를 통해 인기를 구가했던 장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또 성숙해가는 배우의 길을 열어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그가 출연하고 있는 ‘굿파트너’는 그의 연기자로서의 성숙이 어떤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그가 맡은 차은경 변호사는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냉정한 커리어우먼 그 자체다. 유명한 이혼전문변호사로 의뢰인들이 배우자들의 외도 때문에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조차 결코 흔들림 없이 현실적인 최대치의 이득을 의뢰인에게 얻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자신의 역할로 여기는 인물이다. 그런데 일에 있어서 이토록 똑부러지는 인물에게 남편의 외도라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혼전문변호사답게 내색하지 않은 채 증거를 모으고 있던 차은경 변호사는 그럼에도 이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갈등하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그러다 급기야 눈앞에서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게 된 후 이혼을 결심하는데 자신의 이혼소송에 있어서는 냉정함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굿파트너’는 이러한 배신한 남편에 대한 분노의 감정과 더불어, 이혼전문변호사로서의 현실적인 냉정함을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 차은경 변호사를 통해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통쾌한 한판승을 보여주는 복수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복잡한 이 인물의 감정으로부터 작품의 힘이 생겨나고 있는 것. 

 

장나라는 한동안 본인 스스로도 “지겹다”고 말할 정도로 ‘동안’의 아이콘으로 소비된 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고백부부’ 같은 경우 3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넘나드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워낙 동안이라 30대 후반 연기에 있어 나이를 들게 보이려는 노력을 했던 에피소드가 회자될 정도였다. 지금도 4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동안이지만, 장나라가 원하는 건 그런 젊은 외모에 대한 칭찬 따위가 아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가 “동안이라는 수식어는 기자님들이 저를 보면 떠오르는 게 딱히 없어서 붙여주신 것 같다”며 “이번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수식어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던 대목에서 지금 장나라가 원하는 건 보다 성숙한 연기자로서의 성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최고의 위치에 일찍부터 올랐고 다양한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영역들을 개척해놓은 장본인이지만 여전히 자신을 확장하고 성숙시키려는 노력. 지금까지 여전한 최고의 배우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장나라가, 어떤 경계와 한계 앞에 늘 서게 되는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인사이트가 아닐 까 싶다.(글:국방일보, 사진:SBS)

‘의사요한’, 이렇게 깊은 질문을 던진 의학드라마 있었나

 

그는 과연 환자의 생명을 끝까지 살리기 위해 그토록 간절했던 걸까. 아니면 자신과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통해 자신 역시 살고픈 그 마음을 투영했던 걸까. SBS 금토드라마 <의사 요한>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은 무통각증 환자 이기석(윤찬영)을 어떻게든 살려내기 위해 차요한(지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민태경 과장(김혜은)이 더 이상 지속하는 건 환자에게 고통만 더 가중시키는 거라 막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환자의 어머니가 이제 편하게 보내주고 싶다고 하자 그는 멈췄지만, 절망적인 모습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증상을 갖고 있는 환자 기석이기 때문에 요한은 더더욱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어떻게든 그 원인을 찾아 살려내려 안간힘을 썼다. 자신 역시 점점 몸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착은 더 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분명했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도 신의 뜻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니.

 

의사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 또 의사가 할 수 있는 일과 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의사 요한>의 던지는 질문은 꽤 깊다. 생명과 죽음에 대해 이토록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의학드라마가 있었던가. 그것은 아마도 통증의학과 함께 존엄사라는 소재가 갖는 무게감 때문일 지도 모른다.

 

생명이 겨우 유지되고는 있지만 지독한 통증 속에서 버텨내는 것이 과연 환자를 위한 일인가에 대한 질문은 마치 차요한이 안락사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즉 고통을 해결해준다는 안락사 약 케루빔이 전직 장관이었던 이원길(윤주상)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는 분노했다. 이들을 ‘살인자’라고 했다. 이원길은 “죽음이 뭐 그렇게 대단하냐. 누구나 죽는 거 아니냐. 하지만 누구나 평온하게 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평온하게 죽는 건 행운”이라 말했지만, 차요한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약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생명에 대한 생각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즉 의사들도 또 환자들도 끝까지 생명을 지키려 애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단지 고통이 있다는 것만으로 쉽게 생명을 지워내게 된다면 그건 생명에 대한 엄청난 혼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이었다.

 

보통의 의학드라마들이 의사를 전지전능한 존재로 그려낸다. 즉 아픈 환자에게 의사란 신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그려내곤 했다는 것. 하지만 <의사 요한>은 의사는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 신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한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러니 의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하는 것뿐이라고. 신의 일을 의사가 대신 해선 안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희망 없이 고통뿐인 환자를 방치하는 것 또한 의사의 일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이 지점에서 <의사 요한>이 보여주는 의사관에 대한 독특함이 드러난다. <의사 요한>은 의사가 단지 병을 고치고 환자를 살리는 존재가 아니라, 환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에게 가장 이로운 선택을 해줄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통증 속에서 삶을 지연하거나 지연하지 않는 건 환자의 선택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삶은 케루빔 같은 약이 있어 맘대로 끝장낼 수 있는 그런 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차요한은 신적인 천재적 의사가 아니라, 한없이 생명 앞에 부족한 의사로 그려진다. 심지어 보통 이하의 무통각증을 겪는 의사라니. 자신의 한계를 환자에게 투영해 더 세심하게 환자의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차요한이란 존재는 그래서 우리가 죽음 앞에 무력해도 어째서 타인의 고통과 생명에 더 집착하게 됐는가를 잘 그려낸다. 결핍이 만드는 절실함이 때론 가장 인간적인 노력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신의 일 앞에 무력해도 의사(인간)는 의사로서의 일을 끝까지 해야 한다는 것.(사진:SBS)

‘비밀의 숲’이 남긴 여운,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려면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 종영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즌2를 요구하는 등, 이 작품이 엔딩까지 남긴 여운은 지금도 계속된다. 첫 회부터 이토록 숨 가쁘게 달려온 작품이 이렇게 완성도 높은 엔딩까지 보여줬고, 또한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에 남긴 울림도 결코 작지 않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비밀의 숲>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마지막 회에 이르러 이 모든 사건의 설계를 했던 장본인이 이창준(유재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밀의 숲>이 하려는 이야기는 확실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관계와 검찰이 엮어진 오래된 유착과 그로 인해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적폐청산의 문제였다. ‘밥 한 끼’로 시작하는 관계들이 얽혀 거대한 욕망으로 변질되며 그로 인해 탄생하게 되는 괴물들. 한두 명의 검사가 뜻을 갖는다고 해도 결국 그들만 배제되는 ‘비밀의 숲’. 그 비밀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비리의 숲’. 

이 문제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해결해보기 위해 이수연 작가가 필요로 했던 건 이창준 같은 자기희생까지 해버리는 괴물과 심지어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이 제거되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황시목 같은 검사였다. 특히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황시목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적폐청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냉철함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결국 이 모든 적폐들이 쌓이게 되는 그 시발점은 <비밀의 숲>이 말했던 것처럼 별거 아닌 것처럼 하게 되는 ‘밥 한 끼’가 만들어내는 부적절한 관계다. 그 관계에서부터 청탁이 시작되고 그 청탁은 법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검사들의 본질을 흔들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린 본질은 가해자들의 죄를 덮어버리고 대신 무고한 희생자들을 남긴다.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황시목 같은 다소 과장된 캐릭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폐쇄된 조직으로서 여전히 수장의 한 마디가 법이 되는 검찰과,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밥 한 끼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검사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들. 그 뒤엉킨 욕망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일이 이만한 무감함이 아니면 해낼 수 없다는 걸 이수연 작가는 통감했으리라. 

검사가 등장하는 많은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황시목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세워뒀다는 사실은 이수연 작가의 만만찮은 공력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신인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작가는 캐릭터가 바로 주제의식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비밀의 숲>에는 저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처리된 캐릭터가 없었다. 

모두가 상황에 따라 ‘애매하게’ 움직이는 ‘인물들의 숲 속’에서 황시목처럼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 그 숲을 바꾸는 ‘첫 번째 나무’로서 나아갈 수 있었던 그 이유로 엄청난 두뇌나 힘이 아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의지’를 제시했다는 건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을 희구하는 요즘, <비밀의 숲>의 이런 문제제기는 한번쯤 모두가 생각해봐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1> 날게 한 박보검, <런닝맨> 주목시킨 차승원

 

요즘 KBS로서는 박보검을 업고 다니고 싶을 것이다. 그가 출연한 <12>19.9%(닐슨 코리아), 18.2%, 17%로 동시간대 주말 예능 시청률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바로 직전 <12>의 시청률이 14.7%까지 떨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이건 거의 박보검의 매직이라고 불러도 될 만하다. 게다가 박보검은 월화 사극 대전에서도 그가 출연한 <구르미 그린 달빛>16.4%로 경쟁작인 <달의 연인>7%를 두 배 이상 앞질렀다. 이 정도면 박보검은 KBS보검이라 불려도 될 정도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한편 SBS <런닝맨>은 요즘 한참 차줌마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차승원을 게스트로 세웠다. 시청률은 6.1%로 지난 회 5.5%보다 상승했다.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지금의 <런닝맨>을 생각해보면 차승원 게스트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날 있었던 <런닝맨>손 맛볼 지도라는 게임의 콘셉트는 그리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차승원 주연의 <대동여지도>를 상당히 배려한 제목에, 그저 늘 하듯이 편을 나눠 장소를 바꿔가며 대결하는 게임 정도.

 

물론 <삼시세끼>의 차줌마로 주목받는 차승원인만큼 그의 요리 실력을 볼 수 있는 게임이 들어갔다.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요리 장면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런닝맨>의 차승원에게서는 <삼시세끼>의 차줌마 캐릭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런닝맨>은 아예 유해진 이야기를 꺼내 <삼시세끼>에서의 차승원 이미지를 프로그램에서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12>이 무려 3회에 걸쳐 박보검을 게스트로 활용한 건 분명 결과적으로 보면 괜찮은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12>은 물론이고 <구르미 그린 달빛>까지 자연스러운 홍보효과를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 박보검의 출연 하나로 이만큼 극적인 시청률 상승효과를 가져왔다는 건 <12>이 여전히 힘이 있는 프로그램이면서도 무언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일이다.

 

<12>은 그나마 멤버들의 케미가 살아나면서 비슷비슷한 소재의 여행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쇼의 재미가 살아있지만 <런닝맨>의 경우에는 너무 소소한 게임의 연속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관심 자체가 멀어진 상태다. 차승원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도 <런닝맨>에 없던 관심을 만들어냈다.

 

잘 나가는 프로그램은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과거 <12><런닝맨>은 거기 출연하기 전에는 잘 몰랐던 게스트들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다. 매력적인 게스트가 들어와 오히려 프로그램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된 것. 그것도 박보검과 차승원 모두 그 캐릭터를 주목시킨 건 KBSSBS가 아닌 tvN이다. <응답하라1988><꽃보다 청춘>을 통해 박보검의 바른 이미지가 주목되었고, <삼시세끼>를 통해 차승원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박보검 매직과 차승원 효과의 이면에는 그래서 지금 현재 지상파 주말예능이 처한 상황이 드러난다. 한 때는 전체 예능을 이끌어갈 만큼 뜨거웠던 이들 프로그램들이 어쩌다 지금은 관성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을까. 게스트의 힘이 발휘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목매는 모습은 지상파 주말예능이 가진 한계를 드러낸다. 좋은 캐릭터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던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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