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불륜을 통해 가정을 이루는 게 불가능한 까닭

 

"망상에 빠진 건 그 여자가 아니라 나였어. 이제 모든 걸 알아버렸다고. 당신한테 난 지선우 대용품일 뿐이었다는 걸. 그 여자한테나 가."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여다경(한소희)은 결국 이태오(박해준)를 떠나며 그렇게 일갈했다. 그리고 이런 여다경의 선택은 결국 벌어질 일이었다. 어쩌면 그의 믿음은 내가 하는 건 불륜이 아닌 로맨스라는 망상 위에 세워진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태오. 나랑 잤어." 지선우(김희애)의 그 한 마디가 촉발시킨 것이지만, 사실 여다경은 늘 불안해했다. 이태오가 아들 준영(전진서) 때문에 지선우와 만나는 것도 왠지 불안했다. 혹여나 그것이 이태오의 지선우에 대한 미련 때문은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애써 그걸 부인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지선우와는 다르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한 번 깨져버린 신뢰는 노력한다고 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다경은 지선우와 잔 게 "사고 같은 것"이었다는 이태오의 변명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침을 차려주고 일하러 나가는 남편은 배웅했다. 하지만 그렇게 금이 간 신뢰는 계속해서 여다경을 흔들었다. 지선우가 아들과 함께 고산을 떠났다는 게 사실인가를 확인하러 일부러 그 집을 찾아갈 정도로.

 

지선우는 결국 여다경을 만나 그가 망상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일깨워줬다. 지선우가 쓰던 속옷이나 향수 같은 것들이 자신이 쓰던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다경은 부인했던 현실이 실제였다는 걸 깨달았다. 지선우는 여다경이 자신과 똑같은 일을 겪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이태오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사태는 여다경이 이태오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래서 지선우의 가정을 파괴한 후 자신과 다시 가정을 꾸린 그 지점에서부터 예고된 일이다. 자신은 그것이 로맨스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결국 불륜이었다. 즉 이태오는 그 순간 배우자에 대한 신뢰를 깬 것이고, 그건 여다경이라고 해서 벌어지지 않을 일은 아니었다. 여다경이 늘 가진 불안의 실체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어쩌면 제2의 지선우의 위치에 들어가며 자신은 다를 거라 애써 부정해 왔던 것이니 말이다.

 

<부부의 세계>에서 파경에 이른 여다경과 이태오 부부의 이야기는 그래서 불륜으로 이뤄진 부부의 연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를 드러낸다. 그건 마치 불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내로남불'하며 자신들은 다를 거라 강변하지만, 작은 틈 하나만으로도 애초부터 존재했던 불신의 그림자는 틈을 비집고 나와 이들을 덮어버린다.

 

<부부의 세계>가 여다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내려 한 건 불륜이 얼마나 허망한 망상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사랑이라 여길지 몰라도 그가 사랑한다 믿는 이가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그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여다경이 처음에는 가해자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 역시 망상의 피해자였다는 걸 드라마는 그 파국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사진:JTBC)

‘부부의 세계’가 막장을 빗겨 화제작이 될 수 있었던 건

 

아슬아슬하다. 전개 자체만 두고 보면 막장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전개가 어찌 된 일인지 납득이 간다. 그래서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막장을 살짝 빗겨가며 화제작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저마다 다음 전개를 상상하지만, 드라마는 항상 그 상상에서 한 걸음씩 더 나간다. 충격적인 전개지만, 그건 거기서 머물지 않고 또 다른 충격으로 나간다. 이것이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의 세계다.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이라면 사실 첫 회부터 그 끝에 이르러 뒤통수가 얼얼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게다.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 지선우(김희애)가 그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건 불륜만이 아니었다. 주변 지인들과 동료, 이웃까지 그 남편의 불륜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었다는 것. 예상에서 한 발 더 나간 이 전개는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4회에서 남편 태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지선우가 어떤 반격을 할 것인가가 궁금해졌을 때, 놀랍게도 한 발 더 나아가 손제혁(김영민)과 맞불륜을 저지르고 그를 통해 태오의 회계 관련 정보들을 빼내는 대목도 놀라운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또 이태오와 여다경(한소희)의 불륜과 임신 사실을 여다경의 부모인 여병규(이경영)와 엄효정(김선경) 앞에서 폭로하는 핵폭탄급 전개는 물론이고, 고육지책까지 써가며 이태오를 폭발시켜 아슬아슬했던 아들의 양육권을 지선우가 가져오는 대목도 그랬다.

 

6회에 이혼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이대로 끝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시청자들은 다시 가정을 꾸려 이 마을로 돌아온 이태오와 여다경의 이야기로 충격을 줬고, 여기에 민현서(심은우)와 폭력을 일삼다 감옥까지 갖다 온 박인규(이학주)가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내고 결국 박인규의 사망사건이 벌어지면서 그 범인이 누군가에 대한 치열한 심리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범인으로 몰린 이태오가 범인이 아니라고 증언하고 나선 건 놀랍게도 지선우였다. 지선우는 민현서가 믿는다며 줬던 이태오가 떨어뜨린 반지를 증거물로 제시하며 이태오가 자신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함으로써 그를 구해냈다. 지선우가 그렇게 한 명분은 자신의 아들 준영이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쓰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드라마는 또 그 예상을 뛰어넘는다. 지선우와 이태오가 격정적인 키스와 동침을 하면서 여전히 애증이 남은 관계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파격에 파격을 더하고, 시청자들이 예상하는 것에 하나를 더 나아가 이야기를 전개시키며, 때론 그 이야기를 뒤집어버리는 반전도 거침이 없다. 하지만 놀라운 건 이런 전개의 예측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반전의 충격 속에서도 그것이 또한 납득되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부부의 세계>가 가진 가장 큰 폭발력이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세계. 그것이 부부라는 질깃질깃하게 이어지는 관계의 실체라는 걸 이 드라마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막장 전개가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화제작이 된 건 매 회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면서도 이를 납득시키는 대본과 연기, 연출이 있어서다. 또한 어떤 작법에 휘둘리지 않고 과감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은 드라마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것이 아슬아슬하면서도 빙빙 돌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풀어나간 <부부의 세계>에 시청자들이 빠져든 이유다.(사진:JTBC)

‘부부의 세계’,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딱 그렇다. 바람을 피워 이혼 당하고 결국 내연녀와 결혼해 가정까지 꾸린 이태오(박해준)는 어째서 지선우(김희애)를 자꾸 신경 쓰는 걸까. 그건 여전히 남아 있는 미련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애증 같은 것일까.

 

이태오는 지선우가 김윤기(이무생)와 가깝게 지내는 걸 자꾸만 신경 쓴다. 이미 이혼으로 끝나버린 부부 관계지만 이태오가 이러는 건 그의 엇나간 애정관 때문이다. 그는 과거 여다경(한소희)과 바람을 피울 때도 뻔뻔하게 두 여자를 다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이 죄는 아니지 않냐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뻔뻔한 애정관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여다경과 꾸린 가정은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여다경은 자신이 저질렀던 불륜의 대가를 결혼 후 자신이 지선우의 입장이 되어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남편의 사무실을 염탐하게 하고 그의 서랍에 숨겨진 또 다른 핸드폰에서 지선우의 사진을 발견한 여다경은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자신이 했던 일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거라는 불길한 예감.

 

그런데 이태오는 박인규(이학주)를 사주해 지선우를 위협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고 또한 그의 부원장직을 물러나게 하는 조건으로 병원에 투자를 제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태오는 지선우를 동네에서 몰아내려 하고 받은 만큼 갚아주려 하는 복수심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다치거나 하는 건 원치 않는다. 그는 너무나 유아적인 본능에 휘둘리는 인물처럼 보인다. 화가 나면 화를 내지만 또 그러면서도 질투를 하기도 하는 그런 이율배반적인 인물이 그다.

 

속을 알 수 없는 건 이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선우를 돕는 괜찮은 남자로 그려져 온 김윤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선우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여병규(이경영)와 연결된 인물이라는 게 드러났다. 여병규는 은근히 김윤기를 부원장으로 밀고 있고, 그를 통해 지선우와 이태오의 현재 관계를 묻기도 한다. 과연 김윤기는 여병규가 사주한 인물일까. 아니면 여병규가 그렇게 믿게 만들면서 나름대로 지선우를 도우려는 인물일까. 그의 속내 역시 알 수가 없다.

 

<부부의 세계>에는 관계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지선우의 이웃인 고예림(박선영)과 손제혁(김영민)의 관계도 그렇다. 손제혁은 또 다시 바람을 피우고 있고, 고예림은 그 사실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쇼윈도 부부처럼 보이지만, 또 “우리도 아이를 가질까”하고 묻는 손제혁 앞에서 고예림은 눈물을 쏟아낸다. 가식으로만 가득해 보이지만 때론 진심이 겹쳐지는 그런 관계가 이들의 부부 세계다.

 

상습적인 폭력으로 감방에까지 갔다온 박인규와 그가 다시 찾아간 민현서(심은우)의 관계도 애매모호하다. 민현서는 더 이상 그와 얽히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딱 선을 긋지는 않는다. 그건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여전히 남은 미련 같은 것일까. 자신을 감방에 보낸 민현서를 찾아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박인규도 마찬가지다. 그건 진심일까 집착일까.

 

<부부의 세계>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봐왔던 관계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든다. 지극히 완전해 보이는 부부 관계가 실상은 완전히 깨져 있기도 하고, 이혼으로 끝난 관계지만 그 고리가 여전히 이어져 있기도 하다. 제 버릇 남 못주듯 계속해서 바람을 피우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허무함을 느끼며 아내 앞에 진심을 꺼내놓기도 하고, 재혼을 했지만 여전히 미련과 집착이 남아 전처를 신경쓰기도 한다. 그래서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부부의 세계>의 깊은 몰입감을 만든다. 지금껏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혹은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그 관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꺼내 보여주고 있으니.(사진:JTBC)

'부부의 세계' 상황 더 까칠해진 김희애, 통쾌한 반격 안길까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2막으로 돌아왔다. 외도하면서도 뻔뻔하기까지 한 이태오(박해준)와 결국 이혼하고 아들의 양육권까지 쟁취한 지선우(김희애)의 6회까지의 이야기가 1막이었다면, 2년 후 여다경(한소희)과 가정을 꾸려 성공한 영화 제작자로 금의환향한 이태오와 그로부터 위협받기 시작하는 지선우의 7회부터의 이야기가 2막을 열었다.

 

하지만 1막이 워낙 파괴력이 컸던지라 2막부터는 힘이 빠질 거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혼 후 무슨 이야기가 더 이어질 수 있을 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 2막은 어떤 면에서는 1막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상황을 들고 왔다고 보인다. 그것은 1막에서 지선우가 싸워서 쟁취하려 한 것이 최소한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면, 2막은 그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터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태오와 여다경이 이 동네로 돌아와 자축하는 파티를 열고 그 지역의 유력자들을 초대하는 건 단지 뻔뻔하게도 영화제작자로 성공해 돌아왔다는 걸 알리려는 의도만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가진 돈과 권력을 이용해 그 곳 지역의 커뮤니티에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지선우를 그 터전으로부터 밀어내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태오는 병원 이사장에게 투자를 얘기하며 그 조건으로 지선우를 부원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라 말하고, 절친인 척 하는 설명숙(채국희)은 그 빈틈을 파고 들어와 자신이 그 부원장 자리에 대신 앉으려 한다. 또 이태오는 민현서(심은우)를 상습폭행했다는 진단서로 감방에까지 갖다온 박인규(이학주)를 시켜 지선우의 터전을 위협한다. 돌을 던져 창을 깨고 그것도 모자라 집안으로 난입해 지선우와 난투극을 벌인다.

 

지선우는 결국 일터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고, 집에서도 안전을 위협받으며 나아가 아들 준영(전진서)이 부모의 이혼이 자신 때문이라 자책하며 흔들리면서 돌아온 아빠 이태오를 자꾸만 찾아가는 것에 엄마로서의 위치 또한 위협받는다. 하지만 지선우가 어디 그냥 당하기만 할 인물인가. 그는 대놓고 여다경이 들어간 ‘여우회’에 들어간다. 자신이 위협받는 커뮤니티부터 반격에 나설 거라는 행보다.

 

<부부의 세계>는 이로서 2막의 전선도 확실하게 만들어 놓았다.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이태오와 여다경이 저 편이라면, 지선우와 그를 옆에서 지켜봐주는 김윤기(이무생)와 여우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듣고는 지선우가 걱정되어 다시 연락한 민현서(심은우)가 이 편이다. 저편이 뻔뻔한 가해자들이면서도 돈과 권력을 통해 화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이편은 피해자이면서도 여전히 그 가해자들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다.

 

과연 2막에서도 지선우는 이런 위협들을 보기 좋게 이겨내고 저 뻔뻔한 가해자들을 처절하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 <부부의 세계>는 이제 부부라는 관계를 연장시켜 지역 커뮤니티 사이에서의 권력 구도와 대결로 확장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혼을 한다고 해도 그저 끝나지 않는 관계가 바로 부부의 세계라는 걸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자식으로 연결되고, 지역 사회의 권력 구도까지 들어간 사회적 관계로도 얽혀있다. 그 복잡 미묘한 관계 속에서 지선우는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2막의 이야기가 더 강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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