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원, 절제와 광기의 절묘한 조화

 

2006년 개봉했던 <해바라기>라는 영화 속에서 김래원의 가능성이 발견되었다면, 최근 드라마 <펀치>와 영화 <강남1970>에서의 그는 그 가능성을 최대치로 끄집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그에게서 발견됐던 것은 광기감성을 공유한 배우였다. 그는 한없이 순진무구해 심지어는 바보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가 어느 순간 악마 같은 광기를 폭발해내는 얼굴로 돌변할 때 그 에너지를 드러낼 줄 아는 배우였다.

 

'펀치(사진출처:SBS)'

<펀치>에서의 김래원은 그 다소 단조롭던 두 가지 얼굴이 여러 개로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태준(조재현)을 검찰총장으로 만들어내는 박정환은 욕망에 충실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태준의 충실한 개가 되어 검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하는 냉혈한이었다. 그랬던 그가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고 그 와중에 이태준의 버림을 받게 되면서 문득 가족으로 돌아온다.

 

갑자기 찾아오는 엄청난 병의 고통을 견뎌내고, 그것보다 더 지독한 이태준과 윤지숙(최명길) 법무부 장관 같은 인물들의 공격을 버텨내면서 그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 그는 병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며 가족 앞에 서는 인물이지만 그 얼굴은 좀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는 통증을 숨기려 자기만의 방안으로 들어가 입술을 질끈 물고, 파상 공격 앞에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표정을 숨긴다. 그리고 가족 앞에서도 여전히 건재한 듯한 얼굴을 보여준다.

 

똑같은 무표정의 얼굴이지만 그 안에는 세 가지 다른 감정들이 요동친다. 병의 고통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모습을 숨기고, 자신을 희생양 삼아 권좌에 오르려는 한때는 같은 꿈을 꾸던 인물들 앞에서는 그 분노의 감정을 숨긴다. 그리고 가족 앞에서는 자신의 이 고통들을 숨기려 애쓴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은 그래서 김래원 특유의 감정 폭발을 만들어낸다. 멀쩡한 듯 보이던 얼굴이 한껏 일그러지고 눈물로 범벅이 될 때 우리는 그간 그의 무표정 뒤에 있었을 고통들을 한 순간에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김래원이라는 배우의 특별함이다. 그는 절제의 미학을 안다. 한껏 감정이 폭발할 때 그것을 한 번 눌러 줌으로써 다음 장면에서 더 강한 긴장감이 유발되고 클라이맥스에서의 강렬함이 커진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그의 얼굴은 그다지 특징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바로 그런 얼굴이기 때문에 무표정에 눌려진 감정들은 더 폭발력을 갖는다.

 

유하 감독의 신작 <강남1970>에서의 김래원은 욕망과 우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용기라는 인물을 연기한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종대(이민호)와 함께 형제처럼 추운 밤을 살 부비며 버텨왔던 그는 차츰 강남이라는 욕망의 중심부로 들어가게 되고 결국은 종대와 맞서게 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 김래원의 무표정은 조직 내에서의 암투를 통해 빛을 발한다. 자신의 진짜 목적을 숨긴 채 하나하나 조직을 잠식해 가면서 또한 형제 같던 종대와의 엇나가는 관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김래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그려진다. 그의 욕망은 그래서 비열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강남1970>이 그려내는 권력자들의 게임 속에 이용되던 희생자들의 이야기에, 광기의 액션과 욕망, 감성을 동시에 드러내주는 김래원만큼 맞춤인 배우가 있을까.

 

<펀치><강남1970> 같은 작품이 모두 권력과 희생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흥미로운 일이다. 그 권력을 추구하며 살아왔지만 그 앞에서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박정환이나 종대는 김래원이라는 배우를 만나 그 무표정 속에 더 아픈 감정들을 담아낸다. 그것은 어쩌면 무표정한 듯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네 보통 서민들이 갖는 욕망에 대한 양가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그 무표정에 더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힘. 이것이 김래원의 특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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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2’, 의학드라마의 또 다른 진화가 되려면

새롭게 시작하는 ‘종합병원2’는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다. 본격적인 의학드라마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종합병원(1994)’의 적통이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은 최완규 작가가 현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병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의 디테일을 살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실로 이 드라마는 전문성이 부족했던 당대 드라마환경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청률은 물론 작품성에서도 호평을 기록한 ‘종합병원’의 성공은 다른 의학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의가형제(1997)’, ‘해바라기(1998)’, ‘메디컬센터(2000)’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 중 ‘의가형제’와 ‘해바라기’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종합병원’만큼의 전문성을 갖지는 못했다.

트렌디 드라마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드라마는 전문성보다는 멜로에 집착했고, 그러자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라는 말이 등장했다. 전문성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본격적인 의학드라마는 부활을 예고했다.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가 본격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이으며 등장해 호평을 받았다.

이 두 드라마는 모두 의학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었지만 그 결이 달랐다. ‘하얀거탑’이 멜로 라인 없이 한 인간의 욕망에의 질주를 그려냈다면, ‘외과의사 봉달희’는 전문직으로서의 의사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의사를 그리며 호평을 받았다. 이어서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이은 것은 ‘뉴하트’로 이 드라마는 ‘외과의사 봉달희’와 ‘하얀거탑’의 요소들을 모두 아우르고, 의학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켰다.

이제 그 계보 위에 세워질 ‘종합병원2’는 어떨까. 2008년에 만들어지는 ‘종합병원2’는 단순히 1994년작 ‘종합병원’의 연장선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간 이어진 계보의 연장선에서 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커진 것은 기대감과 함께 부담감이다. 의학드라마의 효시를 등에 업고 있고, 또한 일련의 진화된 계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다르거나 혹은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기대감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종합병원2’의 차별점으로 일단 제시된 것들은 인물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과 이전보다 더 디테일한 장면 묘사에 공을 들였다는 것 정도다. 이건 사실 정확히 말하면 차별점이 아니다. 세대교체야 당연한 것이며, 디테일한 장면 묘사는 ‘하얀거탑’ 이후 일련의 의학드라마들이 추구해온 방향이다. 또 휴머니즘을 바탕에 깔 것이고, 또 멜로 라인도 필수적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점은 이미 ‘외과의사 봉달희’나 ‘뉴하트’를 통해 반복되었던 것들이다. 이것은 이제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하나의 장르의 요소로서 굳어진 것들이다.

흔히들 의학드라마를 보며 “이런 장면 꼭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의학드라마가 이제 장르가 가진 먹히는 요소들의 유혹을 받는다는 반증이다. 같은 내용에 인물이 조금 바뀌고 장면들이 좀더 세련되게 구사한다고 해서 이제는 더 이상 차별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짜 차별화가 이루어지려면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스토리의 발굴이 필수적이다. 완전히 장르를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큰 틀에서 몇 가지는 ‘종합병원2’가 장르의 유혹을 벗어나 그것만의 차별점을 찾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의학드라마의 계보 위에서 ‘종합병원2’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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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원표 액션 드라마,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말 그대로 딱 정해진 공식을 걸으며 조금치의 곁길을 넘보지 않는 전형적인 장르영화다. 과거에 엄청나게 악명 높았던, 그래서 감옥에 가야했던, 그리고 감옥에서 후회하고 나와서는 ‘술 마시지 않고, 싸우지 않고, 울지 않겠다’며 바보처럼 행세해야 했던, 그러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는 현실 속에서 다시 과거의 그 길을 걸어가야 했던 한 사나이의 이야기. 이 정도면 영화 ‘해바라기’에 대한 대충의 설명은 끝이다.

하지만 그런 뻔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눈물을 흘리거나, 어떤 뭉클함을 받았다면 그것은 오로지 김래원의 몫이다. 이 영화에서 김래원은 정말 김래원표의 드라마와 김래원표의 액션을 섞어 공식적인 신파 속에서 어떤 반짝거림을 발견하게 만든다.

감옥에서 나와 옛 동네로 돌아온 오태식을 연기하는 김래원의 모습에서는 노틀담의 꼽추가 떠오른다. 엄청난 괴력과 악마성을 그 속에 품고 있으나 그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더 이상 상처받는 걸 원치 않는 내면. 자신 속으로 틀어박혀 누가 때리기라도 하면 그 속을 들킬까 더 움츠러드는 몸. 맞는 것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죗값이나 되는 듯 무덤덤해지는 얼굴. 그것들은 저 노틀담의 꼽추의 비극적인 존재를 닮았다.

김래원의 눈빛은 늘 초조하게 상대방의 시선을 바라보지 못하고 몸짓 또한 잔뜩 상처 입은 짐승 마냥 위축되어 있다. 그가 왜 그런 상태를 보여주는지 영화가 설명하기도 전에 우리는 그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슬픔에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그저 동물적인 울림이지만 그것만으로 영화는 관객들을 그에게 이입시키는데 성공한다. 이제 김래원이 사회에서 받는 굴욕과 아픔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되며 마지막 숨겨졌던 괴물의 분노가 드러나는 그 순간까지 관객의 마음 속에서 감정은 켜켜이 쌓여간다.

영화는 특별히 오태식이라는 괴물의 탄생과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인간이 되려하는 오태식이라는 괴물을 다시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자가 조판수라는 두목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활극’이라 불리는 ‘짝패’, ‘비열한 거리’의 조폭들처럼 조판수 역시 바로 그 재개발에 뛰어든 작자다. 보통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밀어버리고 자신들의 건물을 올려 이권사업에 뛰어드는 그들이 최소한 오태식이란 괴물을 다시 불러낸 장본인이다.

‘해바라기 식당’과 그 식당 주변에 심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불도저에 사라져버린 해바라기들은 이 영화의 제목이 발원한 곳이기도 하고, 또한 영화가 말하려는 소박한 주제(사실 이 영화는 주제의식보다는 장르적 재미에 치중한다)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 속의 해바라기들은 단지 그런 배경만이 아니다. 바로 김래원과 그의 엄마를 자청하는 덕자씨(김해숙 분), 그리고 그녀의 딸인 희주(허이재 분)가 바로 해바라기들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해바라기들을 짓밟아버린 그들에게 오태식이 괴물로 돌아오는 장면은 설득력을 얻는다.

폭발적인 라스트신에서의 김래원의 모습은 따라서 그간 숨겨온 악마성이 드러나는 장면이지만, 또한 관객들이 마음 속에 쌓아온 감정이 터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불길을 뒤로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야차처럼 걸어가며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에서 우리는 또 한번 보게 된다. 노틀담의 꼽추. 그 비극적인 몸을 가진 존재를.

김래원은 광기와 감성의 양면을 적절히 가진 배우다. 어떨 때는 한없이 소년 같다가도(청춘, ...ing, 어린 신부) 어느 순간에는 악마 같은 눈빛을 뿜어낸다(미스터 소크라테스). 이런 감성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 ‘해바라기’의 오태식이란 인물이다. 김래원은 소박한 일상이 어색하기만 한 상처받은 짐승이 작은 행복을 찾았을 때 보여주는 순진무구한 얼굴(심지어는 바보 같은)을 보여주면서도 그 이면의 야수성을 연기한다. 아마도 김래원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투사부일체>의 각본을 쓴 강석범 감독이 찾던 바로 그 인물이었을 것이다. 두 작품이 보여준 가족애를 찾는 드라마성과 액션물이 모두 가능한 그 인물.

다소 장르 관습적인 장면들의 과다와, 신파적 구도, 몰입을 방해하는 장르의 혼선 등이 눈에 거슬리지만 이 영화는 김래원의 그 굵직한 연기를 통해 액션 너머의 드라마성과 드라마 이상의 강렬한 액션을 보여준다. 언뜻 보이는 김래원의 쓸쓸한 얼굴 속에서는 심지어 ‘희망노트’에 작은 소망을 적어가며 살아가는 소박한 우리네 서민들의 신산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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