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의 박형식, 매운맛 드라마에 더한 설득력

보물섬

청춘은 밝고 경쾌하다. 그래서 보는 이들을 풋풋한 그 시절로 소환하는 힘이 있다. 박형식은 그런 이미지를 타고난 배우다.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들고, 한없이 밝고 맑으며 가벼웠던 청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배우.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나이 들어가면서 무게감을 요구하는 역할들로 영역을 넓혀야 하는 배우에게는 정반대로 장애요소가 되기도 한다. 발랄함의 가벼움을 넘어 인생의 무게감을 짊어지고 그 그늘을 매력으로 끄집어내야 하는 느와르 장르나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돌아와 분노를 뿜어내는 처절한 복수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형식이 최근 출연한 드라마 ‘보물섬’은 그에게는 보물 같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있다고 보인다. 이 작품을 통해 그간 밝고 경쾌하게만 보였던 청춘의 아이콘은 사뭇 무겁고 깊이감까지 갖춘 ‘남자’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보물섬’에서 박형식이 맡은 서동주라는 인물은 등장부터 선한 청춘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다크한 어른의 면모를 드러낸다. 대산그룹 차강천 회장(우현)이 총애하는 비서로 회사에 불리한 증언들이 청문회에서 나오기 시작하자 대뜸 돈다발을 들고 의원을 찾아가 회유하고 협박하는 인물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금품을 제공하기도 하고 때론 주먹질도 하며 몰래카메라로 찍은 영상으로 협박하기도 하는 그런 인물. 그간 박형식이 해온 풋풋한 청춘과는 등장부터가 다르다. 

 

우리에게 박형식의 이미지는 그의 전작이었던 <닥터 슬럼프>에서의 여정우 역할에 가깝다. 그는 늘 밝았고, 심지어 모든 걸 잃고 밑바닥으로 추락한 후에도 여전히 밝았다. 잘 나가던 성형외과의사이자 인플루언서였던 여정우는 한 순간의 누명으로 모든 걸 잃는다. 그런데 이 청춘은 자신의 만만찮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선배의사들에게 이용만 당하다 결국 우울증을 갖고 쫓겨나게 된 남하늘(박신혜)을 위로해준다. 생존경쟁과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오다 그 지경에 이른 남하늘이 “잘못 산 것 같다”고 말할 때 “네 잘못 아니야”라고 얘기해준다. 박형식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는 그래서 남하늘은 물론이고 자신까지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여정우라는 캐릭터에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박형식이라는 청춘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이러한 ‘회복력’은 그가 사극에 도전했던 ‘청춘월담’에서도 힘을 발휘한 바 있다. ‘청춘월담’은 저마다 저주와 누명을 뒤집어쓴 청춘들이 그들을 가둬놓았던 담을 뛰어넘는 이야기다. 이환(박형식)은 형을 죽이고 왕세자 자리에 올랐다는 누명을 쓴 채 혹독한 저주를 받은 인물이고, 민재이(전소니)는 사랑하는 부모와 오라버니를 독살한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채 도망자가 된 인물이다. 왕세자와 도망자의 처지이지만 그들은 둘다 누명을 쓴 청춘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함께 그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 진실을 향해 나간다. 어두운 곳에 놓여져도 오히려 빛나는 밝은 이미지를 드러내는 박형식인지라, 그는 속박된 틀을 벗어나 훨훨 담을 넘어가는 ‘청춘월담’의 서사와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박형식의 밝은 이미지는 심지어 좀비 장르에서도 설렘을 주는 면모를 발휘한다. 좀비들이 창궐하는 아포칼립스 상황 속에서도 한효주와 달달한 멜로 구도를 그려냈던 ‘해피니스’에서의 박형식이 그렇다. 어찌 보면 좀비가 창궐하는 아포칼립스의 암울한 상황과 이러한 발랄함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오히려 ‘해피니스’는 이런 팬데믹 분위기와는 상반된 발랄한 극의 분위기가 특징인 작품이다. 팬데믹 이후의 달라진 인식 기반 위에 세워진 이 드라마는 좀비 장르를 통해 팬데믹 상황을 은유하긴 했지만 너무 어둡지 않은 전망을 담으려 했다. 그래서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어둡지만은 않은 작품을 그리려 했고, 그래서 멜로 같은 달달한 분위기를 살리려 했다. 밝은 미소가 더 어울리는 박형식과 한효주가 작품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배우에게 있어서 고정된 밝은 이미지는 성장에는 족쇄가 되기 마련이다. 박형식은 제국의 아이들의 아이돌로 시작했지만 2012년부터 배우로 데뷔해 지금껏 10여년이 넘게 연기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 나이도 30대에 접어든 그가 계속해서 청춘의 아이콘으로만 머물러서는 여러모로 한계를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다. 그가 ‘보물섬’ 같은 욕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와 복수가 이어지는 느와르에 가까운 작품으로 돌아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이러한 이미지 변신이니 말이다.

 

실제로 예고편이 등장한 후 대중들은 박형식의 다른 면모에 적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훨씬 굵어진 선이 강조되는 이미지에, 강렬한 눈빛과 다크해진 모습들이 그렇다. 물론 등장은 사랑에 진심인 순정남으로서의 면모로 시작한다. 사랑을 위해 야망까지 접고 여은남(홍화연)이라는 여인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정남의 면모는 첫 회만에 깨져버린다. 여은남이 차강천 회장의 외손녀였고, 비선실세로서 최강빌런인 염장선(허준호)의 조카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면서다. 서동주는 이로써 사랑을 배신당하고, 나아가 대산그룹에서 성공하려던 그 야망 또한 저지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2조원의 비자금을 만든 후 팽 당할 위기에 서게 되는 서동주의 선택은 우리 모두가 기대하듯이 처절한 복수다. 

 

사실 어찌보면 ‘보물섬’은 돈과 권력의 세상 속에서 저마다의 ‘보물’을 찾아가는 이야기지만, 그 구성이나 소재는 막장드라마에 가깝다. 그런데 이러한 막장의 요소들이 박형식이라는 배우가 가진 진중함과 만나 중화되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지금껏 신뢰를 주던 박형식이기에 믿고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밝은 이미지로만 채워져 있던 박형식에게도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간 청춘의 아이콘으로만 그려져오며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졌던 깊이감의 부여랄까. 이것은 아마도 박형식이 이 작품을 통해 얻게 된 진짜 보물이 아닐까 싶다. (글:국방일보, 사진:SBS)

‘보물섬’, 자칫 막장 같은 상황에 깊이감을 주는 배우들의 힘

보물섬

사랑과 욕망, 그리고 배신과 복수. 극강의 권력을 가진 비선실세와 그가 짜놓은 덫에 걸려 죽을 위기에 몰리는 주인공. 하지만 죽지 않고 돌아와 복수하는 몬테 크리스토 같은 익숙한 서사에, 2조원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액수의 돈이 불러 일으키는 욕망들... SBS 새 금토드라마 <보물섬>은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소재들은 다 가졌다. 

 

제작발표회에서 밝힌 것처럼 이 드라마는 아예 ‘매운맛’을 전면에 내걸었다. 일단 서동주(박형식)라는 인물 자체가 순하지가 않다. 목적을 위해서는 대산그룹 차강천 회장(우현)이 시키는 불법적인 일들도 맡아서 하는 인물이고, 한때는 야망을 위해 대산가의 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려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최강 빌런인 염장선(허준호)은 비선실세로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하려 하는 인물이고, 그와 비즈니스적으로 얽혀 있는 차강천도 만만찮으며, 차강천의 사위인 허일도(이해영)는 회장이 아끼는 서동주를 경계하는 야심 가득한 인물이다. 

 

저마다 욕망이 드글드들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 그 판 위에 던져진 비자금 2조원이라는 돈은 이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염장선은 서동주를 이용해 비자금을 만든 후 그를 죽이려 하고, 차강천은 자신의 혼외자 아들 지선우(차우민)를 서동주의 도움을 받아 후계구도에 끼워 넣으려 한다. 대산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하는 차강천의 맏사위 허일도는 이 사실을 알고는 서동주를 제거하라는 염장선의 사주를 받게 된다. 

 

돈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대결구도 속에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이 사랑 이야기도 그저 달달한 순한 맛이 아니라, 쟁취하느냐 마느냐 하는 매운 맛이다. 사랑을 위해 야망까지 접었던 서동주는 뒤늦게 자신이 사랑한 여은남(홍화연)이 차강천 회장의 외손녀라는 사실과 더불어 그녀가 자신을 배신하고 염장선의 조카인 염희철(권수현)과 정략결혼을 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된다. 

 

이제 서동주는 돈과 권력 쟁탈의 투쟁 속에서도 밀려날 위기에 처했고, 또 사랑에 있어서도 배신당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남은 일말의 자산이 있는데, 그건 한 번 보면 사진처럼 잊지 않는 기억력과 은근한 신임을 얻고 있는 차강천 회장 정도다. 2회까지 그려진 밑그림은 그래서 앞으로 뻗어나갈 치열한 욕망의 매운 대결을 기대하게 만든다. 

 

중요한 건 이러한 욕망들의 부딪침을 다루는 작품들이 허무맹랑한 수준까지 치고 나가는 막장 같은 느낌을 줘서는 오히려 매운 맛이 실소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김순옥 작가가 쓴 <펜트하우스>가 그 매운 맛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7인의 탈출>이라는 괴작을 만들어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매운 맛에만 집착해 현실감까지 날려버리는 전개가 드라마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 오히려 매운 맛을 싱겁게 만들어버리는 결과가 생겨났던 거였다. 

 

<보물섬>은 그런 점에서 보면 과잉된 전개조차 적절히 눌러주는 균형감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소재적으로만 보면 막장 전개의 갖가지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개연성을 넘어섬으로써 가벼워질 수 있는 작품을 눌러주고 있는 건 배우들이다. 주인공 박형식은 그래서 이 작품이 막장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고, 그와 대결구도를 이루는 허준호는 극악한 모습을 세움으로써 그와 맞서게 되는 박형식을 더 현실감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보물섬>의 대결구도는 박형식과 허준호의 연기 대결을 통해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물론 박형식은 이 작품을 통해 보다 선굵은 이미지를 앞으로 가져갈 것이지만, 드라마 초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과정은 이 배우가 이전부터 쌓아오고 있었던 밝은 이미지들이 있어 더 극적으로 보인다. 등장부터 흰색 런닝 차림에 마른 멸치를 먹는 모습만으로도 날카로운 인상을 드러내는 허준호는 말이 필요없는 극적 긴장감으로 박형식의 추락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대결구도는 복수극이 가져올 반격의 기대감 또한 높여놓는다. <보물섬>이라는 작품의 보물은 그래서 이 두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사진:SBS)

왜 오수재인가

‘왜 오수재인가’, 우리의 정체에 대해 묻는 드라마

 

“빼어날 수 맑을 재. 근데 그 이름을 함부로 쓴 거야. 빼돌린 돈을 세탁하는 계좌에 그 이름을 막 쓴 거야.” 오수재(서현진)는 TK로펌 최태국(허준호) 회장이 바하마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그 돈 세탁에 사용된 해외계좌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마구 사용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 사실을 밝히고 저들과 싸우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태국 회장에게 이 일을 묻어주는 대가로 700억을 요구한다. 그걸 최태국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름값이 700억이냐고.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가 드디어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놨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누군가의 ‘이름값’에 대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빼어날 수에 맑을 재’라고 이름을 지어준 건 그렇게 빼어나고 맑게 자라라는 염원이 있어서였을 게다. 하지만 최태국 회장 같은 이들은 그의 이름을 함부로 돈 세탁에 이용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수재는 자기 이름이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기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공찬(황인엽)은 그게 남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김동구라는 이름을 쓸 때 의붓동생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고 진범이 잡혀 풀려났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이미 더럽혀져 있었다. 누명을 벗고 출소하던 날 의붓엄마는 그의 뺨을 때렸고, 그가 김동구라는 걸 알아보는 학교 친구들은 그를 재수 없어 했다. 눈빛도 이상하다며. 오수재가 더럽혀진 자신의 이름에 분노하는 것처럼, 공찬은 자신의 진짜 이름 김동구를 찾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 중이다. 당시 진범이라 자수한 이가 진범이 아니라며 그 때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려한다. 그것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길이라 여긴다. 

 

오수재는 자신의 이름이 돈세탁에 쓰였다는 사실을 공찬이 찾아내 준 것이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영 좋지 않다. 뭔가 들킨 거 같고 쪽팔린 것 같다. 그래서 공찬을 피한다.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드러낼 때 공찬은 말한다. “나도 그런 거 있어요. 차라리 들켰으면 싶기도 한데 또 몰랐으면 싶기도 하고 교수님만 그런 거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또 퉁쳐요. 우리. 안 좋은 일들만 몰아닥치는 것 같은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다 둘러보면 좋은 일들이 옆에 와 있어요. 일도 사람도.” 그건 오수재에게 하는 말이면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수재는 최태국 회장이 부탁한 아들 최주완(지승현)의 이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아내를 임승연(김윤서)을 만난다. 양육권과 친권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을 꺼낸다. 딸 재희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 그러면서 재희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잃었다고 말한다. “난 재희 때문에 내 아이를 잃었어요. 튼튼이. 뱃속에서 튼튼하게 자라라고 태명을 그렇게 지었는데 어느 날 뱃속에 있는 튼튼이가 심장이 안 뛴다고 하더라구요. 재희가 있다는 거 알고 내가 매일 같이 울고 토하고 잠도 못자고 그렇게 두 달을 보냈더니.”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임승연에게 최태국 회장이 재희를 자신이 낳은 딸로 세상에 알리겠다고 했다는 거였다. 너도 그게 좋지 않겠냐며. 그 이야기에 오수재는 잊고 있던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절망한다. 최태국 회장에 속아 미국까지 보내져 사산된 아이. 하지만 그 아이에게도 ‘하늘이’라는 태명이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그 예쁜 이름을 지우고 살았다고. 그래야 살 것 같아서.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아무도 모르길 바라고...”

 

<왜 오수재인가>라는 제목이 붙여진 건 이 드라마가 결국 이름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게다. 누군가는 함부로 이름을 이용해먹고, 누군가는 누명 때문에 진짜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대외적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타인의 딸을 친딸인 양 속이며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너무 아픈 상처라 살아가기 위해 죽은 아이의 이름을 지우며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죽은 아이를 잊지 못해 그 이름 언저리 한쪽을 쥐고 원망의 대상으로서 누군가의 이름을 증오하며 살아가고.

 

오수재는 자신의 이름값으로 복수하듯 700억을 요구하고, 그래서 그걸 받아내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건 700억이 별거 아니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값의 무게와 가치가 그것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다. 그래서 이 오수재가 갖고 있는 ‘이름값’에 대한 서사는 우리에게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월급이나 연봉처럼 이름은 이 자본화된 세상에서 흔히 가격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건 가당한 일일까. 당신의 이름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 아니 어떤 진짜 가치가 있는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사진:SBS)

‘모가디슈’, 두 시간이 쫄깃한 남북 공조 소말리아 탈출기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모가디슈>는 먼저 그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유발한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1991년 그 곳에서 벌어진 내전을 소재로 했다. 한국영화가 한국도 아닌 해외 배경으로, 그것도 아프리카라는 공간을 소재로 가져온 것만으로도 색다른 그림과 스토리가 기대될 수밖에 없다. 영화 시작부터 부감으로 보여지는 모가디슈의 이국적인 풍광은 그 곳에서 벌어질 대혼전을 예고하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이 배경 위에 남북한의 외교 총력전이라는 대결구도를 세워두니, 영화는 더욱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이역만리의 땅에서 벌어지는 대한민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 사이의 치열한 외교전이 그것이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으로 국제사회에 발을 디딘 한국이 UN회원국으로 가입하기 위해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한 표를 얻으려 하고, 이미 이전부터 그 곳에서 입지를 마련하고 있던 북한 대사관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 하지만 이 남북 대결 구도는 내전이 벌어지면서 생존을 위한 ‘협력’의 구도로 바뀌게 된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게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남북 간의 분단을 넘은 우정 이야기 같은 것이다. 실제로 <모가디슈>에서 한국 대사관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는 외교전 속에서 티격태격하지만 생존상황을 맞이하면서 ‘휴머니즘’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물론 각자 자국을 대표하는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는 그들은 쉽사리 선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을 나눠 먹고, 탈출하기 위해 저마다의 루트를 통해 타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려는 인간애를 발휘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구도로 보면 <모가디슈>는 자칫 섣부른 신파적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이 작품에서 감정 과잉을 유도하는 신파적 장면들을 되도록 배제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함께 협력하며 탈출해야 하는 남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과잉된 정을 담는 식의 설정 또한 피한다. 

 

대신 <모가디슈>는 마지막까지 어쩔 수 없이 협력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남북 간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게 가능해진 건 한신성 대사를 돕는 안기부 출신 정보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과 북한의 림용수 대사를 돕는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의 팽팽한 대결구도 때문이다. 북한 대사관이 약탈당하고 갈 곳이 없어 한국대사관에 의탁하게 되는 그 상황 속에서 이 두 사람은 각자 서로 다른 의중으로 대결한다. 즉 강대진은 이들을 ‘망명자’로 만들려고 하고, 태준기는 아예 한국대사관을 무력으로 장악하려 한다. 이 팽팽한 대결구도가 있어 한신성과 림용수 사이에 만들어지는 화해적 분위기와 균형을 이루면서 지나친 ‘신파 구도’의 위험성을 벗어나게 된다. 

 

류승완 감독은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이 내전 상황을 마치 실제처럼 영화로 재현해낸다. 모로코에서 100% 로케이션으로 찍은 영화 속 장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로 내전의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실감을 준다. 긴장감 가득한 내전의 풍경 속에서 가장 섬뜩한 건 아이들마저 마치 장난감총이나 되는 듯 소총을 들고 위협하고 총을 허공에 쏘아대는 장면이다. 내전이라고 하지만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폐허가 된 도시 풍광이나 그 곳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던가를 잘 표현해낸다. 

 

또한 흥미로운 건 <모가디슈>를 통해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색다른 액션이다. <모가디슈>는 결국 탈출기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공격하는 액션이 아니라 방어하고 도망치는 액션에 집중되어 있다. 추격하는 반군과 정부군의 총격을 피해 도주하고, 위험천만한 상황들 속에서 빠져나가는 그 과정들이 마치 실제 관객이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실감으로 전해진다. 

 

김윤석, 허준호 그리고 조인성의 연기는 이러한 실감을 몇 배로 몰입하게 해주는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 작품의 발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구교환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이 영화가 신파로 흐르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은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데는 구교환의 날 선 연기가 한 몫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밖에도 정만식, 김소진, 김재화, 박경혜 같은 현실감을 채워주는 연기자들이 있어 <모가디슈>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다. 

 

한 마디로 <모가디슈>는 ‘선수들이 만든 작품’이다. 현지 로케를 통한 당시 상황의 완벽한 재현과 류승완 감독의 균형감 넘치는 연출 그리고 배우들이 제공하는 몰입감으로 두 시간이 순삭되는 액션과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이 대폭 줄어든 상황이지만, 영화관에서 보길 권한다. 그래야 그 실감이 200% 느껴질 작품이니까.(사진:영화'모가디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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