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 바쁜 의사와 빡센 군인의 로맨스로 펄펄

 

의사면 남친 없겠네요. 바빠서.” “군인이면 여친 없겠네요. 빡세서.” KBS 새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첫 방송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거침이 없었다. 첫 회에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이 만나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 빠르게 전개되었고 또한 서대영(진구)과 윤명주(김지원)의 계급이 다른 군인들 간의 관계는 향후 전개될 두 사람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바쁜 의사와 빡센 군인의 로맨스. 사실 멜로드라마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됐던 것이 극성이 약하다는 점이라면 왜 <태양의 후예>가 이 같은 의사와 군인의 로맨스를 다뤘는가가 이해될 법도 한 부분이다. 사극을 빼놓고 보면 현대극에서 가장 극성이 강한 장르가 의학드라마와 전쟁드라마가 아닌가. 물론 최근에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가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멜로드라마가 스릴러를 덧붙이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관계와 갈등이 상처를 넘어서 죽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는 직업군으로 의사와 군인만큼 센 극성을 만드는 인물군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첫 회가 충분히 입증한대로 총알이 날아다니고 칼부림이 다반사인 전쟁터가 일터가 된 유시진과 역시 생사가 오가는 응급실이 일터인 강모연의 만남은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저 평범하게 만나서 감정을 나누는 식의 일상적인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전쟁터를 오가는 이들의 멜로드라마다. 갑작스런 긴급 상황에 데이트 약속을 미루고 떠나는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병원 건물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떠나기 전 다음 데이트 약속을 하는 장면은 이 멜로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스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슈퍼히어로물에서 지구를 구하러 떠나는 듯한 남자 주인공과 그를 보내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향후 이 드라마는 우르크라는 총알이 날아다니는 가상의 낯선 땅에서 벌어지는 군인과 의사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고 한다. 첫 회 마지막 장면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분쟁지구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그 성격상 스펙터클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스펙터클에 치중하다 엄청난 투자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그 전철을 적어도 이 드라마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전쟁과 사랑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스펙터클 속에서도 김은숙 작가의 확고한 지향점은 결국 사랑과 휴머니즘 같은 사람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블록버스터란 볼거리가 아니라 그 인물과 스토리의 촘촘함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이 멜로의 대가는 잘 알고 있다. 군인이라는 여성들에게는 조금은 낯선 남성적인 등장인물을 세우면서도 첫 회부터 달달한 로맨스의 설렘을 만들어내는 건 이 작가가 가진 공력을 실감하게 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의 대본을 맛깔스럽게 살려내는 연기다. 군 제대 후 더 남성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송중기와 귀여우면서도 당찬 매력의 송혜교, 그리고 진지한 남성의 향기가 느껴지는 진구와 톡톡 쏘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듯한 김지원의 괜찮은 조합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케이블 드라마의 성장으로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그 위기의식이 확실히 높아졌다. 하지만 적어도 <태양의 후예>만큼은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을 제대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 커진 스케일과 멜로와 액션이 넘나드는 스토리. 그리고 지상파 드라마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가져오되 그것을 세련되게 구사하는 대본. 어쩌면 이 드라마는 위기에 빠진 지상파 드라마의 대안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용팔이>의 갑질 폭로 그 어떤 것보다 센 까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 병원이라고 다를까. <용팔이>의 김태현(주원)이 돈만 주면 어디든 달려가는 속물의사가 된 건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휴머니즘? 사람을 살리는 건 의사의 의지이지 돈이 아니다? 그런 선배의사의 말이 그저 순진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용팔이>는 보여준다.

 


'용팔이(사진출처:SBS)'

김태현이 일하게 된 한신병원 12층은 이런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한신그룹의 회장 아내인 이채영(채정안)의 동선을 따라가 보자. 아무 데나 차를 세워두자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주차요원을 발로 차고, 곧바로 12VIP 병동으로 와서는 자신의 전용 방에 다른 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버럭 화를 낸다. 백화점에서 벌어지곤 하는 VIP의 갑질 논란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지 않은가.

 

그 곳의 코디네이터 신씨아(스테파니 리)VIP병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CS(customer satisfaction) 즉 고객만족이라고 한다. 그들은 병원 가면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언제나 준비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기만 하면 되는 고객님들이다.

 

의사가 환자를 고치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이 세계에서는 돈으로 좌우된다는 것이 차이다. 고객님들이 부르는 곳으로 왕진을 간 김태현이 재벌가 자제가 휘두른 깨진 병에 찔려 쓰러진 연예인을 고쳐주는 일은 의료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범죄 사실을 덮는 또 다른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재벌가 자제의 폭력을 덮어주고 돌아온 김태현에게 병원장은 또 다른 의료상품이 생겼다며 칭찬해준다.

 

영화 <베테랑>이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재벌 3세의 갑질 폭력을 폭로함으로써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다면, <용팔이>의 갑질 폭로 역시 결코 약하지 않다. <베테랑>이 그리는 건 조폭과 그리 다르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이지만, <용팔이>는 그것조차 돈만 주면 다 덮어주기도 하는 VIP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갑질 세계의 또 다른 실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곳은 병원이 아닌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의료행위조차 돈에 의해 좌우되는 거래행위로 구현되는 현실을 바라본다는 건 실로 씁쓸한 일이다.

 

<용팔이>의 김태현은 서민의 눈으로 그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 곳은 멋진 옷에 잘 빠진 자동차, 게다가 야외 경관이 뛰어난 창을 가진 개인 진료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돈에 의해 덮여진 포장지일 뿐이다. 그 포장지를 떼어내면 추악한 욕망들이 꿈틀댄다. 무려 3년이 넘게 그 12VIP 층의 제한구역에 누워 있는 한여진(김태희)이 그 욕망의 실체다.

 

그녀는 그녀를 대신해 한신그룹 회장의 일을 하고 있는 배다른 오빠 한도준(조현재)에 의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한신그룹의 상속녀이지만 그녀를 병원에 묶어두고 대신 그룹을 장악하려는 한도준의 욕망이 만들어낸 범죄다. 그녀에게 병원은 생명이 아니라 감옥이다.

 

하지만 어둠의 세계에서 용팔이(용한 돌팔이)로 불리는 김태현은 이들과는 다른 존재다. 그 역시 멋진 옷에 멋진 차 그리고 화려한 진료실을 포장지로 갖게 되고 무엇보다 돈이면 다 하는 속물 의사의 겉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포장지 이면에는 가난하든 부자든 모두 똑같은 생명이라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그가 이 VIP 층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워질 수밖에 없다. VIP 층은 용팔이가 대결하고 있는 돈으로 갑질 하는 세상의 축소판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은 한여진에게 왜 용팔이가 구원의 존재로 다가오는가를 설명해준다. 모든 것이 자본이라는 철창으로 둘러싸고 있는 한여진에게 그것을 거두고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줄 인물은 용팔이 같은 자본의 갑질을 극복하려는 인물 밖에 없기 때문이다.

 

VIP 병동에 들어간 서민 의사(겉으론 속물의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라는 설정은 지금껏 우리가 의학드라마에서 좀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들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병원과 병실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 속에서만 뱅뱅 돌던 의학드라마는 VIP 병동 의사라는 설정을 통해 병원 밖으로 나와 웬만한 범죄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의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팔이>가 괜찮다고 여겨지는 건 물론 극화된 면이 있지만 이 드라마가 지금 현재 병원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를 고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의료민영화가 본격화된다면 이 빈익빈 부익부는 가속되어 생명, 나아가 범죄까지 돈 앞에서 거래되는 현장을 당연하듯 바라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용팔이>가 그려내고 있는 씁쓸한 세계처럼.



<국제시장><가족끼리 왜 이래>처럼 아버지를 다뤘어도

 

<국제시장>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한 개인으로서의 아버지가 살아낸 한 시대를 휴머니즘에 입각해 그려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산업화의 역군으로서의 아버지의 희생만 강조한 채 그 이면에 놓인 어두운 시대의 질곡들은 말끔히 세탁되어 있어 지나친 편향으로 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출처: 영화 <국제시장>과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감독은 현대사를 다루면서 선택과 집중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선택과 집중에는 배제의 의미도 들어있다.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즉 백만을 선택해서 보여주면 흑이 배제된다. 감독은 지나친 이념화를 우려해 흑을 배제한 채 백만을 선택해 보여줬다고 말하는 셈인데, 이것 자체가 흑백 논리를 전제한 발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어쨌든 이념적인 것을 뚝 떼놓고 바라보면 <국제시장>이 다루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우리네 아버지들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희생하는 아버지. 그런데 덕수(황정민)라는 인물이 격동의 세월을 가장으로서 버텨낸 삶이 이해는 되지만 깊은 공감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아버지가 현재를 이야기하기보다는 과거에 머무르며 그 과거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고 하면서도 이 덕수라는 아버지는 자신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자식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시계는 50년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와 동생을 잃었던 흥남부두에 멈춰 있다. 덕수라는 아버지의 입장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가족들은 철없는 인물들정도로 피상적으로 그려진다. 그 중에는 아마도 4.195.16을 겪은 자식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90년대 IMF를 통해 깨져버린 개발시대의 환영이 경제적 양극화로 이어지는 걸 겪었을 수도...

 

그들은 일방적인 아버지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되어 있다. 좀 더 양쪽의 입장을 공평하게 그려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아버지의 입장만큼 자식들의 입장도 똑같이 그려냈다면 <국제시장>은 감독이 그토록 얘기하는 진정한 세대 간 소통의 물꼬가 됐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만을 열거한 후, ‘우리 덕에 잘 사는 줄 알라는 식의 이야기는 소통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느낌마저 준다.

 

물론 영화와 드라마는 장르적인 차이가 크지만 최근 무려 40% 시청률을 돌파하며 화제가 되고 있는 KBS 주말극 <가족끼리 왜 이래> 역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재조명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뤄지고 있는 건 그만큼 우리네 현실 속에서 아버지들의 입지와 위치가 좁아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아버지를 다뤄도 <가족끼리 왜 이래>의 차순봉(유동근)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한 평생 두부를 만들어 자식들을 키운 아버지 차순봉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자식들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저 <국제시장>의 덕수가 보여주는 그런 일방통행식의 이야기를 전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자식들에게 불효 소송을 하는 시퀀스가 있지만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어딘지 가족에서 엇나가는 자식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제 자리를 잡기를 바라는 것.

 

차순봉의 버킷리스트에는 빼곡하게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자식들의 앞날을 위한 것들이다. 딸 차강심에게 좋은 짝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선을 보게 하거나, 형제 남매들이 좀 더 돈독하게 지낼 수 있게 가족 댄스파티를 하는 것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차순봉의 버킷리스트에는 자신이 아닌 자식의 그리고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가 담겨져 있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자식들 역시 마찬가지다. 차순봉의 시한부 인생을 알게 된 차감심과 차강재는 비로소 그 죽음 앞에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를 위해 뭐든 하기 위해 자식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아마도 이 시대의 부모세대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처럼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판타지에도 저 <국제시장>이 그려내듯 일방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자칫 단절될 수 있는 삶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어쩌면 누구나 맞닥뜨릴) 절대적 사안 앞에서 극적인 소통을 이루는 장면들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물론 <가족끼리 왜 이래>가 대단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라고 말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족드라마가 가진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양 방향적 소통을 이뤄가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통을 얘기하면서 일방으로 던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국제시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과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가족의 힘이란 앞으로 나가는데 있다. 물론 그 나가기 위해 이전의 삶들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조명하는 것이 나쁠 건 없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른다면 그 가족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심지어 퇴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과거와 현재의 세대가 함께 나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가족을 다루는 올바른 방식이 아닐까.

 

EIDF의 현명한 선택, 희망과 공존 취지 살렸다

 

결국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는 애초에 계획되어 있던 이스라엘 특별전과 콘퍼런스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 역시 받지 않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과 민간인 대량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와중에, 이스라엘 특별전을 한다는 것이 도의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맞지 않는다며 김조광수 감독, 박문칠 감독, 김일곤 감독 등 영화인 129명이 EIDF 보이콧을 선언한 것에 대한 EIDF 측의 화답이다.

 

'EIDF(사진출처:EBS)'

이스라엘 특별전은 이번 중동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부터 기획되어 왔던 것으로 갑자기 불거진 사안 때문에 EIDF측은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대사관이 EIDF를 공식후원한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스라엘 특별전 행사는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과는 무관하게 진행되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콘텐츠 강국이다. 지난 4월에 열린 세계방송프로그램의 최대 시장인 MIPTV에서도 단연 주목받은 건 이스라엘의 콘텐츠들이었다.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되고 또 세계 시장에 팔려나가는 이스라엘의 콘텐츠 위상을 생각해보면 이번 특별전 행사가 특별한 다른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콘텐츠 자체가 이유가 됐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콧 선언까지 나오고 또 EIDF가 특별전과 콘퍼런스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이러한 콘텐츠 강국으로서의 이스라엘이 부각되고 있는 한편으로 그들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저지르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은 가려진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이번 특별전에 상영하기로 했던 <히틀러의 아이들> 같은 경우만 봐도 그렇다. 히틀러의 지휘 아래 악명 높은 범죄를 저질렀던 이들의 후손들을 추적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핍박받았던 이스라엘의 면모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살자로서의 이미지를 가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EIDF의 슬로건은 희망과 공존이다. 그래서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지구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을 모색하는 다큐멘터리들이 다수 상영될 예정이다. 예고편 트레일러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다큐멘터리가 휴머니즘을 그 기조에 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좋은 취지의 좋은 영화제가 이스라엘 특별전 같은 시의적절치 못한 이벤트로 오점을 남긴다는 건 그간 EIDF라는 영화제가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EIDF는 영화인들과 끝없이 소통하면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특별전 취소 결정은 그 자체로도 EIDF가 어떤 영화제인가를 제대로 보여준 셈이 되었다. 벌써 11회를 맞고 있는 EIDF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계의 다양성과 인간의 발견을 꾸준히 모색해온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이어진 신뢰가 꾸준히 이어지기를. 이번 영화제는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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