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PD가 전하는 중국판 <아빠 어디가>의 인기비결

 

쌀집아저씨 김영희 PD는 요즘 중국 방송사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한국인 중 한 명이다. 중국 후난TV<나는 가수다> 포맷이 수출되면서 생긴 일이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 지도와 자문역을 맡아 이른바 플라잉 디렉터(FD·Flying Director)로 활약하게 되면서 그는 마치 한류 예능 콘텐츠를 대변해주는 인물로 부상했다. 지난 9월 그는 북경TV제작자협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고 12월에는 광저우 난방TV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내년 2월에도 후난TV 초청 강연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의 강연료는 국내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높은 수치라고 한다. 그만큼 그의 말 한 마디에 대한 중국 방송사들의 갈증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중국에서 유명인사 된 김영희PD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가수다>가 국내 가요계 전반에 미친 영향이 실로 지대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 흔치 않은 오디션은 운용에 있어서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끝없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대중들의 기대치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인물과 스토리를 다양하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이것은 결국 시즌제가 아닌 매주 편성으로 프로그램이 운용되면서 생긴 문제다. 적절히 끊어주고 휴지기를 만들어주는 시즌제는 대중들의 기대감을 조절하고 다양한 가수군과 그들이 전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필수적인 형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결국 김영희 PD<나는 가수다> 형식의 완성은 국내가 아닌 중국이 되었다. 국내에서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나는 가수다> 중국판을 시즌제로 만들었고, 거기에 중국인들의 정서적인 면을 고려한 그들의 영웅상을 무대 형식으로 재현했다. 즉 실력은 출중하지만 메인에서 멀어져버린 가수들을 끄집어내 무대에 올림으로써 중국 대중들의 억눌린 정서를 그 소영웅들을 통해 풀어냈다는 점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즌1의 마지막 시청률이 3% (중국에서는 1%가 성공 시청률이라고 한다)에 육박했던 것.

 

하지만 중국에서의 김영희 PD 입지를 더 공고하게 해준 것은 <아빠 어디가> 중국판의 대성공이었다. 시즌1 중국 시청률이 5%대를 넘었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같은 대도시에서는 무려 8%대에 이르기도 했다. 이 수치는 중국 방송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적인 것이라고 한다. <아빠 어디가>의 김유곤 PD는 국내에서 매주 제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판을 지도 감독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마침 중국에 있던 김영희 PD<아빠 어디가> 중국판의 지도와 자문을 맡게 됐던 것.

 

김영희 PD가 들려준 <아빠 어디가> 중국판을 처음 찍을 때 벌어진 에피소드는 대단히 흥미롭다. 처음 촬영 현장에 나가보니 아이들이 장난이 아니더라는 것. 아빠들이 있어도 도무지 통제 자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방송을 찍어야 하는데 모이라고 해도 모이지도 않는 상황. 결국 김영희 PD는 아빠들을 다 모아 놓고 이렇게 설득을 시켰다고 한다. “당신들의 아이들은 정말 예쁘다. 하지만 지금 이런 식이라면 결코 예쁘게 방송에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아빠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교육적인 면들을 잡아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빠들이 아이들을 조금씩 변화시켜가는 모습이 방송에 잡히면서 <아빠 어디가>에 대한 중국 대중들의 열광이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에는 중국만의 특수한 문화적 요인도 깔려 있다. 중국에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추진했던 산아제한 정책(독생자녀제 獨生子女制)으로 1자녀 이상을 둘 수 없게 되면서 소황제(小皇帝), 소공주(小公主)라고 불리는 독특한 아이들 세대가 생겨났다. 외자녀들이 그러하듯이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이들 세대는 급성장한 중국의 경제 혜택까지 누리게 되었다. 소황제라는 지칭이 말해주듯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칫 이기적이고 나약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문제였다. <아빠 어디가>가 바로 이 가려운 부분을 정확히 긁어주었다는 것이다. 회를 거듭하면서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중국인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나는 가수다>에 이은 <아빠 어디가>가 만들어낸 중국에서의 대성공은 현재 중국의 예능 한류 포맷 러시를 만들어냈다. <12>, <불후의 명곡>, <슈퍼스타K>, <K팝스타>는 물론이고 국내에서 뜨겁다 싶은 예능 프로그램 포맷들이 중국에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포맷이 <아빠 어디가> 같은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12>은 큰 기대를 업고 지난 6월 쓰촨TV에 포맷 수출계약을 맺어 방영되기도 했는데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여행에 대한 우리와 중국의 정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포맷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성패는 잘된 포맷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현지화하는가 하는 제작진의 파트너십과 노력이라는 것.

 

김영희 PD는 중국이 대단히 매력적인 예능 한류의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불안요소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파트너십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진 노하우가 존재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중국의 방송사들은 지금 현재 우리네 방송 노하우를 얻기 위해 일종의 투자를 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 투자가 성과를 보이는 프로그램이 바로 <아빠 어디가>. 이 프로그램은 지금껏 중국 방송에서는 보기 힘든 자막이 본격적으로 예능의 툴로 활용되면서 중국 방송 전체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지금껏 잘 보이려 하지 않던 중국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소재로서 떠오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 시장에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나는 가수다>에 이은 <아빠 어디가>의 성공에 대해 중국의 광전국(우리의 방통위에 해당>이 최근 한 방송사당 1년에 한 편만 포맷 수입을 허가하는 수입제한조치를 내리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는 관대하기 때문에 특히 중국의 예능 한류는 앞으로도 한동안 장밋빛 흐름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2의 쌀집아저씨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국내의 예능 제작진들에게도 고무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예능이 한류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조권에 이어 이하늘까지 심사논란 생긴 이유

 

“노래가 좀 느끼했다.” 박재한이라는 이름으로 <슈퍼스타K5>에 나온 한경일에게 선배인 줄 모르고 던진 조권의 혹평은 엄청난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후배가 선배를 평가할 수 있느냐는 얘기부터, 심지어 깝으로 유명해진 조권이 누구를 평가할 위치에 있느냐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쏟아졌다. 결국 조권은 페이스북에 심사평 논란에 대한 해명글을 올리기도 했다.

 

'슈퍼스타K5(사진출처:mnet)'

하지만 한경일의 노래에 대한 혹평은 슈퍼위크에서도 이어졌다. “기대이하다. 프로였던 분이 오늘은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 오디션 보러 오는 그런 느낌이다. 노래 스타일이 조금 올드하다.” 박재한이 한경일이라는 것이 이미 공표된 상황이었지만 포지션의 리멤버를 부른 한경일에 대한 이하늘의 심사평은 냉정했다.

 

조권에 이어 이하늘의 한경일에 대한 심사평에 대해서도 인터넷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하늘 역시 그가 누군가를 심사할 자격이 되느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보인다. 자타공인 최고의 보컬인 이승철이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윤종신이야 심사위원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지만 이하늘은 무슨 기준으로 심사위원의 자격이 부여되었는가 하는 것이 논란의 밑바탕에 깔린 정서다.

 

왜 유독 한경일에 심사평 논란이 나오게 된 것일까. 그것은 그가 아마추어가 아니라 한 때 잘 나갔던 가수였기 때문이다. ‘내 삶의 반’이라는 2003년에 출시된 곡은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기까지 유행처럼 불었던 록발라드 계열의 곡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가 <슈퍼스타K5>에 나온 것조차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게다. 그런 그에게 “느끼하다”거나 “올드하다”는 혹평이 거꾸로 심사평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

 

먼저 객관적으로 보면 한경일의 노래 스타일이 지금 트렌드와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가창력을 떠나서 이것은 트렌드의 문제다. 제 아무리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라고 하더라도 그 노래가 지금 현재의 트렌드에도 어울리는가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가왕 조용필이 부른 ‘바운스’라는 노래가 신선하고 심지어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창력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트렌드에도 여전히 먹히는, 그 시대를 뛰어넘는 그의 가창스타일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보이지 않는 노력의 산물일 것이지만.

 

조권이나 이하늘이 지적하려 한 것은 바로 이 트렌드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틀린 얘기도 아니다. 한경일의 노래 스타일은 여전히 2003년도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그런 스타일을 여전히 즐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주는 향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스타일이 <슈퍼스타K> 같은 트렌디한 가수를 발굴해내는 오디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그 프로그램에서의 당락이 마치 가수가 되기 위한 절대적인 기준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당락이 말해주는 것은 그 개개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격에 얼마나 잘 부합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허각이나 울랄라세션이 <슈퍼스타K>에서 우승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K팝스타>에 나가도 여전히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게다. 거기에는 상이한 프로그램의 성격이 있고 그에 따른 심사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한경일이 <슈퍼스타K5>에서 혹평을 듣고 심지어 탈락한다고 해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그가 ‘노래를 못한다’는 식의 절대적 평가는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슈퍼스타K5>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거꾸로 이 오디션 스타일에 대한 준비 없이 무대에 오른 한경일에게도 논란의 일차적인 책임은 분명히 있다고 여겨진다. 그는 어쩌면 잊혀지고 있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무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주효했다. 심사평 논란과 함께 그의 ‘내 삶의 반’은 음원차트에서 역주행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혹자들은 조권이나 이하늘이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과연 그들이 누구를 평가할만한 위치에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슈퍼스타K5>라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트렌디한 선택일 뿐이라는 점이다. 즉 거의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자격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다만 그 프로그램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일 뿐이다.

<댄싱9>의 눈물, 진심이 느껴진 까닭

 

<댄싱9>. 이건 실로 오디션의 끝판왕이라고 할만하다.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이 이제는 더 이상 경쟁과 서바이벌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중들이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제 아무리 경쟁의 시스템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여지는 ‘공존과 협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K팝스타>가 배출했던 수펄스가 그랬고, <보이스 코리아>의 백미인 콜라보레이션 미션이 그랬다.

 

'댄싱9(사진출처:mnet)'

그런데 <댄싱9>은 차원이 다르다. 가창의 영역에서 콜라보레이션은 이미 일상화된 것이지만, 춤은 아직까지 실험적인 단계가 아닌가. 도대체 현대무용과 스트릿댄스가 어우러지고, 한국무용과 재즈댄스가, 또 댄스스포츠와 스트릿댄스가 어우러지는 무대를 우리가 어디서 접하겠는가. 물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같은 작품을 통해 비보잉과 발레가 접목됐을 때나, 숙명가야금 연주단과 비보잉 그룹 라스트포원이 만나 절묘하게 꾸며지는 무대를 봤을 때 그 감동이 배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나.

 

단 6시간 정도를 주고 이 다양한 장르의 춤을 한 무대로 선보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자못 무모한 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무대 위에 올라온 결과물을 보면 이건 기대 이상이다. 단지 춤이라는 공유점 하나만을 갖고도 이들은 어떻게 이런 놀라운 결과를 보이는 걸까. 스트릿 댄스를 하는 서영모가 캡틴인 무대에서 한국무용을 하는 김해선의 압도적인 표정으로 무대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면이나, 스트릿 댄스의 하위동이 캡틴으로 나선 무대에서 현대무용을 하는 이선태가 그 느낌을 맞춰주는 장면은 순간 이 무대가 오디션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최선의 무대를 향한 이들의 의지는 심지어 합격과 불합격의 차원을 넘어서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거의 모든 무대 미션은 울음바다가 되기 마련이다. 팀을 이끌었던 캡틴은 누군가 떨어진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기 일쑤고, 떨어진 팀원들은 오히려 캡틴에게 감사를 표한다. 심지어 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어뜨린 마스터들도 눈물을 글썽인다. 이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틀 속에 들어와 있지만 모두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눈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댄싱9>이라는 무대가 이들 춤꾼들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일 게다. 춤. 사실 지금껏 춤은 대중문화의 중심에 들어온 적이 별로 없었다. 현대무용이나 발레 같은 클래식은 어딘지 대중과 유리된 어떤 세계처럼 치부되어왔고, 비보잉 같은 스트릿 댄스는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에 반짝 관심이 모였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의 위상을 바꿔주지는 못했다. 댄스 스포츠는 <무한도전>이나 <댄싱 위드 더 스타> 같은 프로그램으로 전면에 세워진 적이 있으나 여전히 대중문화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춤 하면 여전히 대중들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백댄서. 춤바람. 심지어 제비가 아니던가. 그들은 그렇게 가수들 뒤에서 춤추는 존재들로 치부되어 왔고, 심지어 사모님을 돌리고 돌리는 그런 타락의 존재들로 비하되어 왔다. 이런 편견은 고전무용이나 현대무용 같은 클래식을 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딘지 대중과 유리된 귀족들만을 위한 춤처럼 여겨지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게 그들의 현실이 아니던가.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과거 한 스포츠화 광고에서 이종원이 의자 하나를 놓고 보여준 현대무용이 대중들을 열광시킨 적이 있었고, <백야>의 미하일 바르시니코프는 놀라운 연속 턴으로 발레의 세계에 우리를 푹 빠뜨린 적이 있었으며, 최근에도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블랙스완>이나 하다못해 <개그콘서트>에서 발레를 소재로 했던 ‘발레리노’가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춤은 그렇게 늘 우리 주변에 있으면서 한때 우리를 주목시키기도 했지만 그것이 하나의 독립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장르로 인식되지 못하고 광고나 영화 심지어 개그의 소재로서 일회적인 관심에 그쳤던 감이 있다.

 

‘백댄서’로 표상되듯 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서서 누군가를 돋보이게 했던 그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을 비로소 온전히 무대의 중심에 세워준 <댄싱9>이라는 무대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을 것인가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게다. 그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것은 그 간절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주는 것이고, 또한 춤의 장르는 달라도 ‘춤꾼’이라는 한 마디로 모두가 공감하는 현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콜라보가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에서 <댄싱9>이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주는 ‘춤꾼’의 세계는 그들이 갖고 있는 경쟁적인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춤’이라는 공유지점으로 하나 되는 모습을 지극히 실제적으로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적어도 춤꾼들을 백댄서 혹은 화석화된 고전을 여전히 시연하는 존재 정도로 보는 시선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그 누가 이들을 더 이상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토록 아름답고 인간적인 몸의 언어들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려 몸부림치는 그들을.

<위탄3>, 정직한 오디션의 한계

 

<위대한 탄생3(이하 위탄3)>의 톱3에 한동근, 오병길, 박수진이 통과했고 이형은은 탈락했다. 누가 봐도 당연한 결과였다. 한동근은 비틀즈의 ‘Let it be'를 마치 가스펠처럼 해석해 부름으로써 <위탄3>의 최강자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었고, 박수진은 비욘세의 ‘Halo'를 불러 자유자재의 가창력을 뽐냈으며, 오병길은 노영심의 ‘그리움만 쌓이네’를 특유의 절절한 감성으로 풀어냈다. 반면 이형은은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자기만의 귀여운 스타일로 불렀지만 강한 임팩트를 남기진 못했다.

 

'위대한 탄생3'(사진출처:MBC)

또한 멘토와의 듀엣 무대에 있어서도 오병길은 김연우와 ‘사랑과 우정사이’를 불러 <나는 가수다>에서의 모습을 재연해 보여주었고, 한동근은 김태원의 기타에 맞춰 부활의 <론리 나이트>를 열창했다. 박수진은 용감한 형제의 소속 팀인 빅스타와 ‘말해줘’를 불러 마치 아이돌 같은 면모를 과시했고, 이형은은 김소현 멘토와 ‘오버 더 레인보우’를 뮤지컬 느낌으로 소화했다. 하지만 역시 듀엣 무대에서도 두드러지지 못한 건 이형은이었다.

 

결과는 정직하게 나왔다. 이형은의 탈락. 하지만 이렇게 거의 정해진 듯한 길을 달리는 <위탄3>는 아무런 반전 요소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그만큼 기대감도 떨어뜨렸다. 한동근이 워낙 출중한 건 사실이지만 그가 부르면 이제 당연히 합격이라는 건 마치 기정사실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가 첫 무대에서 ‘데스퍼라도’를 부르고 ‘리틀 임재범’이라는 극찬을 받는 순간부터 줄곧 결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발군의 실력자라고 하더라도 그 당락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반전의 묘미를 갖춰야 그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 강약을 조절하고 때로는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너무 쉽게 결과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 역할을 해주는 이들이 바로 심사위원이다.

 

<K팝스타2>에서 악동뮤지션은 일찌감치 스타의 반열에 오른 후보자다. 이미 광고까지 찍은 그들이 최종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건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과정을 <K팝스타2>는 그리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방예담과의 대결에서 밀려나고 마지막 재대결에서도 아슬아슬한 합격의 과정을 통해서야 악동뮤지션은 톱10에 간신히 들어오는 모습을 연출해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박진영이나 양현석 같은 심사위원들은 악동뮤지션이 가진 약점을 드러내주고 지적하기도 함으로써 어떤 긴장감을 유지시켰던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위탄3>에는 이런 긴장감이 원천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즉 무대에 오르는 후보자들과 심사위원이 멘토와 멘티로 엮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멘티를 다음 무대로 올리려는 멘토들의 극찬이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심사가 가진 오디션 프로그램의 조절 기능이 사라져버린다. 남은 것은 지금껏 오디션 방송을 통해 쌓여져온 후보자들의 이미지와 노래 실력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것뿐이다.

 

물론 실력에 의해 결정되는 당락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직한 승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것은 오디션이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즉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위탄3>는 그런 점에서 반전 없는 오디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한동근인가’하는 기시감이 벌써부터 생기는 건 그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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