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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오버’, 변함없는 싸이의 성공 키워드 집적물

 

싸이의 신곡 행오버는 여러모로 지금껏 쌓여진 그의 성공 노하우가 집적된 작품이다. B급 정서 가득한 뮤직비디오, 한국의 문화와 서구의 유머 코드를 접목시키는 코미디적 요소, 명곡이기보다는 중독성 있는 음악, 유튜브라는 새로운 디지털 유통 채널을 통한 국제적인 규모에 초스피드로 전개되는 유포과정, 따라서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는 조회수 기록만으로도 화제를 만드는 마케팅 등등.

 

'싸이의 행오버(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물론 이러다보니 싸이의 신곡에 대한 반응 역시 과거 젠틀맨이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극과 극으로 양분된다. 정통 힙합이 낯선 이들에게 행오버이게 음악이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스눕독 같은 세계적인 힙합 아티스트의 면면을 인지하는 힙합 팬들에게는 이 곡이 젠틀맨에서 확실히 진일보했다고 평가된다.

 

싸이의 B급 정서에 공감대와 나아가 통쾌함까지 느끼는 이들에게 행오버의 뮤직비디오는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뮤직비디오는 폭탄주로 대변되는 한국 특유의 음주문화가 가진 어두움을 풍자하면서 동시에 한바탕 놀아보자는 싸이 특유의 디오니소스적 끼를 덧붙이고 있다. 즉 이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한국의 음주문화는 부정성과 긍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러니 이에 대한 평가도 양분될 수밖에 없다. 폭탄주를 제조하고, 러브샷을 하고, 마치 이소룡이 대결하듯 술 대결을 벌이는 장면들은 우리가 늘상 술판에서 보던 풍경들이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라면 왜 싸이가 한국 문화의 어두운 면들을 자꾸만 들춰내나 싶을 수 있다. ‘강남스타일이 강남의 허위의식을 끄집어냈다면, ‘젠틀맨은 동방예의지국의 이면을 끌어냈고 이제 행오버는 우리네 극단적인 술 문화의 일단을 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술 문화는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과시하듯 보여주는 어떤 면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잔치와 축제가 가진 특성, 즉 모든 걸 잊어버리고 한 바탕 놀아보자는 한국인 특유의 흥이 자리 잡고 있다. ‘행오버에서 간간이 들어가는 받으시오-”라는 싸이의 목소리는 그래서 은근하게 우리의 욕망을 건드린다. 단단한 사회의 억압된 틀 속에서 술이라는 뮤즈를 통해 잠시나마 꿈꾸는 일탈을.

 

한국적인 문화의 이면을 끌어오는 싸이 특유의 뮤직비디오는 우리에게는 공감대를 서구인들에게는 신기함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다. 이것은 한류 콘텐츠들이라면 공통적인 요소로 꼽히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적절한 결합이다. 우리 것이 바탕이지만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공통적인 공감대도 끌어안으려는 노력. 싸이의 유머코드가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서구적일 수 있었던 건, B급 정서를 바탕으로 우리네 문화의 이면을 보여주는 특유의 시선 덕분이다.

 

물론 싸이의 신곡 행오버를 명곡이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곡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팬들에게 어느 정도 즐길 거리를 마련해주는 곡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명곡이라는 잣대는 싸이에게는 어울리지도 않지만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싸이는 오히려 그 명곡이라는 권위적 틀을 해체하고 그 허위를 폭로할 때 비로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가수다. 이 음악을 듣고 나면 그래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기억 남기보다는 끝없이 반복되는 행오버라는 후렴구의 중독성이 저도 모르게 입가를 씰룩이게 만든다.

 

스눕독이라는 힙합의 거장이 함께 출연하고 있어서인지 싸이의 음악적 분량이 적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뮤직비디오와 음악은 싸이라는 국제가수의 색채와 존재감이 아니라면 도무지 가능한 것 같지가 않다. 싸이와 함께 한국의 음주문화를 즐기는 스눕독 역시 그 그림 속에 들어온 한 부분처럼 여겨질 정도다.

 

유튜브를 통한 엄청난 전파 속도와 조회 수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싸이는 이미 강남스타일에서부터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의 힘을 알리는 스타로서 아이콘화된 인물이다. 그래서 공개 하루만에 1200만 뷰를 돌파했다는 식의 기사들은 숫자에 민감한 우리 정서를 건드리면서 동시에 외국의 반응까지 이끌어내는 마케팅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일단 클릭하고픈 욕구를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신곡 행오버는 변함없는 싸이의 성공 키워드들이 집적된 산물이다. 거기에는 풍자와 일탈 양극단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싸이에 대한 역시 양극단의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그 반응은 화제로 이어지며 노래는 디지털을 타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명민한 선택이다. ‘강남스타일이 그의 존재감을 처음 알렸고 젠틀맨이 그 존재감을 어떻게든 이어가려 한 선택이었다면, ‘행오버에서는 이제 조금은 안정된 국제가수로서의 그의 면모가 느껴진다. 때로는 불편함에 지끈지끈하다가도 때로는 이성의 끈을 잠시 놓아둔 듯한 그 편안함을 그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로 담아내고 있다. 마치 숙취처럼.

Posted by 더키앙

<몬스터>, 동화와 스릴러의 흥미진진한 대결

 

독특하다. 아마도 <몬스터>라는 영화가 주는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물론 아직 거칠지만 그 파격적인 면모는 마치 박찬욱 감독을 떠올리게 하고 단단한 장르 해석 능력은 봉준호 감독을 생각나게 한다. 확실히 <시실리 2km>, <도마뱀>의 시나리오를 쓰고 <오싹한 연애>로 메가폰을 잡았던 황인호 감독은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을 이번 작품 <몬스터>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장르물에 대한 이해가 있는 관객이라면 이 놀라운 이종장르물의 경험에 환호할 것이다.

 

'몬스터(사진출처:상상필름)'

어떻게 피가 철철 흐르는 스릴러 속에서 동화 같은 이야기가 가능할까. 어떻게 연쇄살인범이 다가오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서 폭소가 터지는 게 가능할까. 긴장과 이완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두 축이 분명하지만 이를 동시에 병치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유치한 B급 장르에서 종종 시도되곤 하지만 흔히 평가되듯 B급 정서를 가진 황인호 감독의 작품이 그렇다고 B급은 아니다.

 

그래서 <몬스터>는 장르 파괴물이면서 결코 B급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장르의 재창조물 같은 느낌을 준다. ‘살인마 vs 미친 여자라고 적힌 포스터 문구는 이 두 이질적인 장르와 감성의 대결을 보여주는 <몬스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면이 있다. 사람 죽이는 일을 마치 손톱에 낀 때 빼듯이 저지르는 살인마 태수(이민기).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물려주신 노점상 자리를 제 것이라 여기며 동생 하나만을 바라보는 조금 모자란 미친 여자 복순(김고은). 살인마 태수가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복순은 동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스릴러와 동화가 병치된 독특한 느낌을 전한다. 앞부분에 일찌감치 복순의 할머니 회상 장면에서 보여준 마치 텔레토비 동산의 햇님을 보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은 복순이 살아가는 동화적 세계를 압축한다. 반면 산 속에 위치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올 듯한 외딴 가마터에서 살해한 이들을 구워 도자기를 빚어내는 공간은 태수가 살아가는 스릴러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날 이 이질적인 두 세계는 한 꼬마의 틈입으로 이어진다.

 

스릴러와 동화의 연결고리는 실로 절묘하다. 꼬마를 산으로 데려간 살인마가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마녀 같은 느낌을 주고, 그 살인마로부터 도망친 꼬마가 복순과 함께 싸우는 이야기 역시 동화 같은 뉘앙스가 묻어난다. 꼬마와 복순이 살인마의 집을 찾아 산으로 오르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모험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난 동화 속 아이들의 모습처럼 연출된다.

 

하지만 이러한 복순과 꼬마가 만들어내는 동화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스릴러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복순이 아이의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 대결구도가 마치 살인마로 대변되는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의 대결처럼 여겨지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동화 속에 머물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느슨한 듯 풀어지다가도 순식간에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그 다이내믹한 힘은 아마도 여러 장르를 섭렵하면서 갖게 된 황인호 감독의 이력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시실리 2km>에서도 코미디와 스릴러를 엮어냈고, <도마뱀>에서는 UFO라는 소재에 멜로를 엮어냈으며, <오싹한 연애>에서는 공포와 멜로를 공존시켰다. 이질적인 장르의 결합을 꽤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그 능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색다른 장르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김고은이라는 배우의 재발견이다. 영화 <은교>로 널리 알려진 김고은은 배우의 첫 단추로는 꽤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준 인물이다. 본인 스스로도 말했듯이 이목구비가 흐리멍덩한건 어쩌면 배우로서는 오히려 장점이다. 마치 빈 도화지 같은 인상이랄까. 그래서 그녀는 별다른 선입견 없이 새로운 배역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

 

복순이라는 이름에서 얼핏 느껴지는 것처럼(이건 마치 복수와 순이를 붙인 것 같다) 이 인물은 때로는 미친 여자 같은 광기를 뿜어내면서도 때로는 아이 같은 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 면만을 보고 있는 아이의 또 다른 속성일 수 있다. 아이란 순수함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사회에 있어서는 미성숙을 의미하기도 하지 않는가.

 

실로 이 이중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있어 김고은 만한 배우도 없었을 것이다. 바보 연기에서 살인마와 대적하는 광기를 끄집어내는 모습은 앞으로 이 배우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뚜렷한 한 가지의 이미지가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걸 그녀는 확실하게 <몬스터>를 통해 각인시켜주었다.

 

늘 로맨틱한 분위기의 역할에서 살인마로 변신한 이민기나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는 김뢰하, 김부선의 연기 또한 압권이다. 특히 마치 <넘버3>의 송강호를 보는 듯한 짧지만 굵게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 배성우, 남경읍 같은 배우들을 보는 것 역시 <몬스터>를 즐겁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다. 스릴러와 동화를 병치시킨 <몬스터>라는 괴물은 그래서 그 둘을 한 몸으로 소화해낸 김고은 같은 괴물배우와 이 장르를 재창조시킨 황인호라는 괴물감독을 탄생시켰다. 조그은 낯설 수 있는 이 영화 여행이 실로 즐거울 수 있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크레용팝의 아마추어리즘과 소속사의 아마추어리즘

 

크레용팝의 핵심은 ‘아마추어리즘’이다. 흔히들 B급 정서로 표현하는 것. 하지만 B급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해서 그 콘텐츠 자체가 B급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크레용팝의 ‘빠빠빠’는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경쾌한 록 장르에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고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 있는 춤을 얹은 괜찮은 콘텐츠다.

 

'크레용팝(사진출처:크롬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기존 걸 그룹 시장에서 우리가 늘상 보았던 콘셉트들을 모두 뒤집었다는 데서 그 가치가 새로워진다. 완전체 걸 그룹과는 정반대 놓여있는 크레용팝은 하나하나를 뜯어놓고 보면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걸 알 수 있다. 노래는 좋지만 이들의 가창력은 미지수고, 춤은 중독성이 있지만 그다지 테크닉이 뛰어나다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외모나 스타일은? 헬멧에 트레이닝복을 입혔으니 이 부분은 아예 소속사가 안티인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아마추어적인 면들이 크레용팝의 인기요인이 되었다. 때때로 유명 아이돌 그룹에서도 종종 나오고 있는 ‘패션 테러리스트’ 이미지에 대해 팬들이 ‘소속사가 안티’라며 발끈해 오히려 더 팬심을 높이곤 했던 것처럼, 크레용팝의 헬멧과 트레이닝복, 잘 드러나지 않는 가창력과 멋지기보다는 망가지는 춤은 팬심을 더욱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

 

어딘지 챙겨줘야 할 것 같고 보살펴줘야 할 것 같은 이 ‘빈 구석’은 팝저씨들이 탄생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게다. 하지만 크레용팝의 아마추어리즘이 허용되고 때로는 오히려 더 힘을 발휘하는 건 딱 여기까지다. 콘셉트가 B급이라고 매니지먼트도 B급일 수는 없다. 크레용팝에게 끝없이 쏟아지는 비난 여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일단 알리고 봐야 한다는 갈급함에 커뮤니티의 성격 따위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홍보마케팅을 밀어붙인 것에는 영세 기획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후부터의 좀 더 세심한 관리였다. 막상 크레용팝이 알려지고 나서 비상하는 단계에 발목을 잡은 건 달라진 위상에 걸맞는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베 논란이 계속 되고 있을 때,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던 점은 기획사의 매니지먼트로서는 아마추어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다 광고까지 끊기고 나서(아니 하필 그 시점에) 일베와 선긋기를 시도하면서 공식입장을 발표한 것도 또 그 공식입장에 담긴 공감하기 어려운 해명들도 적절했다 여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난데없는 ‘선물 계좌 개설’ 발언이 또다시 논란의 도화선을 만들었다. 팬들로부터 선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를 받지 않겠다며 대신 계좌를 개설해 현금으로 받아 그것을 좋은 곳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실용적인 판단으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 발언이다. 게다가 좋은 곳에 쓰겠다는 취지 아닌가.

 

하지만 좋은 취지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순수한 의도가 곡해될 수 있다. 특히 ‘현금’이나 ‘입금’ 같은 단어는 자칫 엉뚱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게다가 이 발언은 ‘주겠다’는 내용보다 ‘받겠다’는 전제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결국 받아야 기부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 이런 발언에 대해 대중들이 찜찜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순수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발언 자체를 철회하고 사과했지만 왜 계속 이런 오해와 논란이 야기되는 지 소속사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크레용팝의 현재 발목을 쥐고 있는 것은 이들 신개념 아이돌과 그들의 아마추어리즘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 콘텐츠가 아니라 오히려 소속사의 아마추어적인 관리라는 점이다. 콘텐츠가 B급 정서를 갖고 있다고 매니지먼트까지 B급이어서야 되겠는가.

Posted by 더키앙

싸이가 되려면 크레용팝이 넘어야할 것들

 

몇 개월 전만 해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크레용팝이 최근 보여주는 행보는 놀랍기까지 하다. 소니 뮤직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세계무대로의 한 발을 내딛은 것은 물론이고 빌보드닷컴은 아예 대놓고 “크레용팝이 제2의 싸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크레용팝(사진출처:크롬 엔터테인먼트)'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크레용팝이 내놓은 ‘빠빠빠’는 여러 모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다. 늘 섹시나 큐티 같은 비슷비슷한 콘셉트의 걸 그룹들이 홍수를 이루는 현재 크레용팝이 내건 B급 걸 그룹 이미지는 실로 충격으로까지 여겨진다. 헬멧과 트레이닝복을 입은 걸 그룹이라니. 그 자체로 참신하지 않은가.

 

춤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멋을 느끼기 어려운 동작들은 차라리 체조나 캐릭터 코스프레 동작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의도적으로 허술하고 웃음이 터지는 어색한 동작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고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의 앙증맞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빈 구석이 많다는 것은 채워 넣을 구석도 많다는 이야기. 바로 이 완전체 걸 그룹이 아니라는 점은 크레용팝에 대중들이 개입할 여지를 더 많이 갖게 만드는 요인이다. 무수한 패러디들이 만들어지고 SNS상의 화제가 생기는 건 대중의 자리를 남겨놓는 크레용팝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크레용팝의 ‘빠빠빠’가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비교되는 건, 그 유사성 때문이다. 일단 노래가 단순하면서도 쉽게 귀에 달라붙는다. 여기에 B급 감성 가득한 뮤직비디오는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직렬5기통춤’은 싸이가 했던 말춤의 걸 그룹 버전처럼 따라하고픈 욕구를 자극한다.

 

유튜브라는 매체를 활용한 전파 방식도 유사하다. 유튜브 없는 싸이가 존재할 수 없듯이, 크레용팝 역시 단순한 음악 위에 얹어진 유니크한 비주얼로 무장함으로써 유튜브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패러디처럼 팬들의 참여가 중요한 인기요인인 점도 그렇고, 유튜브에 얹어진 만큼 글로벌하게 이어지는 반응도 유사하다. 물론 노래가사가 외국인들조차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쉽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런 많은 장점들과 유사성들은 크레용팝이 제2의 싸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과연 크레용팝의 세계무대 진출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일단 일본 시장을 필두로 한 아시아 시장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미국이나 유럽 시장 같은 곳에 진출하려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음악적인 실력이다. 유튜브가 띄운 싸이는 마치 비주얼적인 것만 강조된 바가 크지만 그는 음악적으로도 충분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다. 작곡능력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가창실력을 갖춘 데다 무엇보다 그는 무수한 라이브 경험을 통해 관객과 함께 놀 줄 아는 가수라는 점이다. 이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싸이에 대해 미국인들조차 고개를 끄덕였던 셈이다. 크레용팝이 이 정도의 음악적 성취를 갖추었는지는 미지수다.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싸이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소통가능한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언어능력보다 중요한 건 그의 유머감각이다. 미국의 토크쇼 같은 데 나와 그가 언어적인 장벽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영어를 잘한다기보다는 순발력 있게 나오는 유머 덕분이다. 크레용팝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가 없다.

 

마지막으로 크레용팝이 넘어야 할 것은 이미지 관리 능력이다. 물론 팬들과의 잘못된 소통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 수 있지만 크레용팝은 여전히 일베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음악적인 호평도 이런 식의 정치적 색채를 띤 논란에 휘말리면 덮어지기 마련이다. 이념이나 정치성을 넘어서 모두가 응원할 수 있는 이미지를 갖추지 않는다면 이 부분은 언제건 크레용팝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크레용팝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함을 갖추고 있다. 늘 비슷비슷한 걸 그룹들의 홍수로 지칠 대로 지친 대중들이라면 이 재기발랄한 걸 그룹의 탄생에 반색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어렵게 탄생한 만큼 롱런하는 크레용팝을 보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크레용팝은 차분히 본인들이 부족한 면들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 자체도 팬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크레용팝의 매력을 더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세계무대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Posted by 더키앙

<전우치>, 어설픈 CG보다 급선무는

 

<전우치>가 첫 선을 보였다. 전우치라는 새로운 사극의 소재가 갖는 신선함과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주는 기대감 때문인지 첫 방 시청률은 좋은 편이다. 단번에 1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시청률과 다르게 반응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먼저 <전우치>라는 도술을 쓰는 존재를 그려내는데 있어 필수적인 CG가 기대 이하라는 평이다. ‘사극 버전 벡터맨’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전우치'(사진출처:KBS)

물론 CG의 완성도가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액션이 갖는 무게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CG가 아니라 촬영과 연출의 문제일 수 있고, 또 대본이 가진 장르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전우치가 도술을 부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놓고 판타지를 보여주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CG에 확실히 자신감이 있거나 그만한 투자가 이뤄졌다면 모르겠지만 영화도 아닌 드라마에서 그런 CG는 맞지도 않고 효과도 별로 없다.

 

드라마는 결국 볼거리보다는 스토리와 캐릭터에 천착하는 장르다. 영화 <전우치>가 화려한 CG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신나는 한 판 놀이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런 방식이 드라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눈보다는 마음이 움직이게 해야 된다. 게다가 <전우치>는 한 시대의 영웅을 그리는 서사가 아닌가. 그렇다면 대중들이 희구하는 영웅의 요소가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과연 이 사극의 전우치(차태현)는 우리를 가슴 떨리게 하고 마음 한 구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그런 영웅일까.

 

첫 회에서 보여준 이 영웅에게서는 그런 소명의식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탐관오리들이 학정을 펼친다거나 그래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민초들이 있다거나, 혹은 전쟁이 벌어져 외세가 쳐들어와 온 나라를 쑥대밭을 만들었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썩은 정치적 관료들 때문에 백성들이 피폐한 삶을 산다거나 하는 그런 현실을 끄집어낼 요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전우치의 개인사가 어설픈 CG와 함께 액션으로 보여졌을 뿐이다.

 

율도국에서 사랑했던 무연(유이)이 강림(이희준)에 의해 최면에 빠져버리고 전우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건이 첫 회의 가장 큰 스토리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가는 전우치를 살려낸 스승이 조선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강림을 막으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으로써 앞으로 이 사극이 하려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전우치는 결국 조선을 넘보는 강림을 제압하고 무연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은 전우치라는 영웅의 존재의미이기도 하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포졸들에게 쫓기다가 숨기 위해 닭으로 변신함으로써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그런 틀에 박힌 도술 시퀀스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또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에서 나왔던 몇몇 액션 장면들을 따라하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전우치>라는 고전소설의 주인공에게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이 현실의 갈증을 빗대어 풀어줄 영웅의 서사다.

 

이제 겨우 첫 발을 디딘 것에 불과하지만 CG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 전우치라는 캐릭터가 어서 빨리 민초들을 구원하는 소명의식을 갖게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놀라운 볼거리로 승부할 것이 아니라면(이것은 전술했듯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좀 더 명쾌한 대립구도 속에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 대중들이 갖고 있는 갈증을 사극의 형식으로 담아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전우치>는 자칫 B급 CG장르에 머물 위험성이 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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