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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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 김이영 작가가 말한 사극의 힘

D.H.Jung 2010. 3. 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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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사극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김이영 작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사극작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출중한 외모(?)에 이 분이 그 '이산'을 썼던 분이 맞나 의구심마저 들었었죠. 자세히 보니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많이 피곤해 보인다"고 했더니 '동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병훈 감독님이 '워낙 큰 산'이라 그걸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더군요.

그랬습니다. 김이영 작가는 이병훈 감독님이 워낙 꼼꼼하고 완벽하게 모든 걸 준비하는 분이라 거기에 일일이 보조를 맞추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이병훈 감독님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였습니다. 스스로도 그런 과정을 통해 부쩍 성장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했죠.

먼저 사극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여자아이가 음식을 훔쳐먹다 주인에게 잡힌 한 미드의 예를 들면서, 이처럼 "끊임없이 인물이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되고 그 상황을 빠져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했습니다.

'동이'를 보면서 떠오른 것도 바로 그 때 김이영 작가가 예를 들어 말했던 그 어린 여자아이였습니다. 어린 동이(김유정)는 누명에 의해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 늘 있던 아저씨들을 잃고 홀로 벼랑 끝에 서게되죠. 천민 출신이라는 상황에서도 누구 못지 않게 행복해했던 꼬마 여자아이는 이렇게 그 행복마저 빼앗긴 채, 풍비박산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무서워. 나도 따라 가고 싶어"하고 말합니다. 아이가 그 텅빈 집을 바라볼 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극은 어떤 방향성을 갖게 됩니다. 균형이 깨진 아이의 삶은 다시 균형을 찾기 위해 고난을 이겨내려 하죠.

그리고 김이영 작가는 이런 고난 끝에는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너무 힘겨운 고난을 오래도록 지속시키지는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고도 했죠. 그것은 캐릭터에게도, 또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힘겨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이는 이제 바닥의 삶에서 한 걸음씩 보상 받으며 성장해나갈 것입니다. 그것이 성장드라마를 가진 퓨전사극의 매력이죠.

사극의 소재를 어떻게 발굴하느냐는 질문에는 "50부작의 이야기성이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이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충분히 성장과정을 보일 만큼 주인공이 낮은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동이'는 그 소재를 숙빈 최씨에서 찾았죠. 천민에서 출발해 숙종의 후궁이 되고,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이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나는 왕실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아 영조를 낳는 인물이죠.

역사란 늘 왕가의 이야기에 머물기에 그 속에 숨겨져 나타나지 않은 숙빈 최씨의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발굴해내는 것은 실로 흥미로운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영조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숙빈 최씨의 그 발굴되지 않은 이야기는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니까요. 항간에는 이 작품이 결국에는 또다른 장희빈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이것은 포커스가 숙빈 최씨의 성장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은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이영 작가는 무엇보다 사극은 "극성이 강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옛이야기의 특징이 사건 자체가 크고 다이내믹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또한 이 극성이 강하다는 장점은 약점이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사건이 계속 해서 벌어지고 진행되어 가다보면 정작 인물이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했죠. 즉 인물의 감정선이 사건과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사건만 겉도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캐릭터와 사건의 적절한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동이'의 초반부는 사건전개가 빠른 데다, 추리적인 연출 스타일이 겹쳐져 조금은 따라가기 힘든 구석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동이의 아버지가 결계의 수장으로 등장하자마자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고 결국 죽음까지 맞이하게 되는 긴박한 과정은 시청자가 그 인물에 몰입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져 그만큼의 효과를 주지 못했죠. 즉 '동이'는 초반부에 좀더 인물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긴 '동이'는 홀홀단신으로 남게 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김이영 작가는 캐릭터를 고난에 빠뜨릴 때, 반드시 그 해결책을 가진 상태에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즉 고난에 빠진 캐릭터와 같이 생각하면서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스스로 찾는다고 했죠. 그것은 결국 캐릭터의 고난 해결책이 김이영 작가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동이'를 통해 김이영 작가는 스스로를 그 지난한 고난의 작업(?) 속으로 집어넣고 헤쳐나오려 하는 것이죠. 그 끝에는 '동이'가 보여주려는 것처럼 고난을 넘어선 자의 충분한 성장이 그녀에게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김이영 작가가 말한 사극의 힘이란 결국 작가 스스로 그 극한의 상황 속에 스스로를 던져넣는데서(그것을 빠져나오려는 노력에서)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