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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의 마지막 장면, 초복이와 은실이가 태양을 바라보며 앞으로 저 해가 누구의 것인가를 말하는 대목에서 문득 대학시절 읽었던 리얼리즘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소설들은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식의 비전을 중요하게 생각했죠. 비록 지금은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결국 도저한 역사의 흐름은 잘못된 역사를 바꿔 놓을 것이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던 87년도. 그 해에 저는 이한열의 죽음 옆에 있었습니다. 그다지 시위에는 관심이 없던 저였지만, 그 때는 모두 강의실을 뛰쳐나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배 누님은 사과탄에 머리를 맞아 살갗이 썩어간다는 얘기까지 나돌았으니, 그 들끓는 젊은 피의 분노가 얼마나 컸던가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딱 반 년 간의 일이었습니다. 6월 시청앞 광장으로 시민들이 모여들고 마치 혁명의 전야가 다가온 듯 흥분되던 그 시점에서 6.29 선언이 나왔죠. 모든 것이 끝나버린 듯, 광장에 모였던 이들은 다시 제 갈길로 사라졌습니다. 대학도 제 자리로 돌아갔고, 시위는 사그러들었습니다. 86학번 선배들은 허탈감에 빠진 듯 보였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1년 전만해도 학교는 학교가 아니었답니다. 전경들이 교내로 들어와 여대생을 희롱하는 걸 매일 봐야했고, 교수가 강의하다 현장에서 체포되는 경우도 있었다니까요.
하지만 그건 모두 옛일로 사라져버린 듯 했습니다.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직선제로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사회는 긍정의 분위기로 바뀐 듯 보였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해보니 학교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혁명을 외치던 그 세대들은 어디론가 숨어버렸고, 대신 적을 잃어버린 방황하는 청춘들의 방탕에 가까운 소모적 삶이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고 우리들은 모두 사회로 들어갔죠...
흔히들 386이라고 말하는 그 세대들은 그러나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서 저마다 자신들의 살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중에는 우리가 젊은 시절 그토록 싸워야할 대상으로 여겼던 그런 권력형 인간으로 돌변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혁명을 외쳤지만 이제는 그것이 "옛 사랑의 그림자"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추노'를 보며 줄곧 이건 바로 그 실패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썪어있고 그것을 고치겠다고 나선 선비들 역시 알고 보면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왕을 바꾸려는 것이었으며(조선비), 권력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작은 권력의 실타래라도 쥐고 휘두르려는 모습(오포교)이나, 여전히 대의를 외치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결국 자신을 소외시키는 송태하 같은 인물, 순진하게 혁명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지만 그것 역시 권력의 장난임을 깨닫는 노비당, 혁명 따위는 믿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몸을 던지는 낭만적인 대길, 세상이 더럽다면서 사실은 그 세상의 무서움을 알기에 도망치는 중인 짝귀, 그리고 결국 역사에 자신 같은 노비 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는 업복.
'추노'는 그 폭풍 같았던 혁명의 시절을 회고하게 만드는 드라마였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도저한 흐름은 결국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전언. 업복이 말했듯이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낮은 자들의 뜨거운 삶을 하나하나 기록했다는 것, 그 자체가 혁명이 되는 드라마. 그래서 실패했지만 그 실패한 혁명을 조명하는 것으로 혁명이 되는 그런 드라마.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견고한 세상에 화살 한 방 날려보는 그런 드라마.
전반적으로다가' '추노'는 그 80년대 옛 혁명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드라마였다고 기억됩니다. 무수히 죽어간 그 인물들의 면면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한 때 길바닥에서 피흘리고 쓰러져 있던, 하지만 세월의 부식으로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던 그 얼굴들을 상기시키는. 그게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태양을 향해 화살을 먹이고는 킥킥 웃어대던 그 시절의 얼굴들.
제가 대학에 들어가던 87년도. 그 해에 저는 이한열의 죽음 옆에 있었습니다. 그다지 시위에는 관심이 없던 저였지만, 그 때는 모두 강의실을 뛰쳐나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배 누님은 사과탄에 머리를 맞아 살갗이 썩어간다는 얘기까지 나돌았으니, 그 들끓는 젊은 피의 분노가 얼마나 컸던가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딱 반 년 간의 일이었습니다. 6월 시청앞 광장으로 시민들이 모여들고 마치 혁명의 전야가 다가온 듯 흥분되던 그 시점에서 6.29 선언이 나왔죠. 모든 것이 끝나버린 듯, 광장에 모였던 이들은 다시 제 갈길로 사라졌습니다. 대학도 제 자리로 돌아갔고, 시위는 사그러들었습니다. 86학번 선배들은 허탈감에 빠진 듯 보였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1년 전만해도 학교는 학교가 아니었답니다. 전경들이 교내로 들어와 여대생을 희롱하는 걸 매일 봐야했고, 교수가 강의하다 현장에서 체포되는 경우도 있었다니까요.
하지만 그건 모두 옛일로 사라져버린 듯 했습니다.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직선제로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사회는 긍정의 분위기로 바뀐 듯 보였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해보니 학교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혁명을 외치던 그 세대들은 어디론가 숨어버렸고, 대신 적을 잃어버린 방황하는 청춘들의 방탕에 가까운 소모적 삶이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고 우리들은 모두 사회로 들어갔죠...
흔히들 386이라고 말하는 그 세대들은 그러나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서 저마다 자신들의 살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중에는 우리가 젊은 시절 그토록 싸워야할 대상으로 여겼던 그런 권력형 인간으로 돌변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혁명을 외쳤지만 이제는 그것이 "옛 사랑의 그림자"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추노'를 보며 줄곧 이건 바로 그 실패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썪어있고 그것을 고치겠다고 나선 선비들 역시 알고 보면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왕을 바꾸려는 것이었으며(조선비), 권력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작은 권력의 실타래라도 쥐고 휘두르려는 모습(오포교)이나, 여전히 대의를 외치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결국 자신을 소외시키는 송태하 같은 인물, 순진하게 혁명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지만 그것 역시 권력의 장난임을 깨닫는 노비당, 혁명 따위는 믿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몸을 던지는 낭만적인 대길, 세상이 더럽다면서 사실은 그 세상의 무서움을 알기에 도망치는 중인 짝귀, 그리고 결국 역사에 자신 같은 노비 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는 업복.
'추노'는 그 폭풍 같았던 혁명의 시절을 회고하게 만드는 드라마였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도저한 흐름은 결국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전언. 업복이 말했듯이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낮은 자들의 뜨거운 삶을 하나하나 기록했다는 것, 그 자체가 혁명이 되는 드라마. 그래서 실패했지만 그 실패한 혁명을 조명하는 것으로 혁명이 되는 그런 드라마.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견고한 세상에 화살 한 방 날려보는 그런 드라마.
전반적으로다가' '추노'는 그 80년대 옛 혁명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드라마였다고 기억됩니다. 무수히 죽어간 그 인물들의 면면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한 때 길바닥에서 피흘리고 쓰러져 있던, 하지만 세월의 부식으로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던 그 얼굴들을 상기시키는. 그게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태양을 향해 화살을 먹이고는 킥킥 웃어대던 그 시절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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