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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개콘' 김준호, '씁쓸한 인생'을 끝내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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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구만.." 작년 이 한 마디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김준호. '개그콘서트'와 '희희낙락'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그는 안타깝게도 도박사건에 연루되어 진짜 말 그대로 '씁쓸한 인생'을 맞았습니다.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 부문 수상자 명단에도 올랐지만 자숙하는 의미로 참석하지 않았고, 자신의 개그 인생과 맞닿아 있는 '개콘'이 10주년 특집 방송을 녹화하는데도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씁쓸한 인생'으로 이제 씁쓸했던 그 인생을 훅 날려버리나 싶었는데, '씁쓸한 인생'이 말이 씨가 되어 진짜 씁쓸한 인생이 되어버렸던 거죠.

지난주 개콘 PD와 만난 자리에서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하류인생', '같기도', 그리고 '달인' 이전에 최장수 코너였던 '집으로'에서도 발군의 코미디 연기를 보여준 김준호는 '개콘'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코미디쇼 희희낙락'에서는 자료영상을 합성해 만들어낸 '김준호쇼'를 통해 국내외 유명인사들과의 가상 인터뷰(?)를 보여주었죠. '웃음충전소'에서는 가장 화제가 되었던 '타짱'의 진행자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김준호는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죠. 그는 천상 코미디언이었으니까요. 개콘의 김석현 PD는 코미디는 연기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버라이어티쇼는 코미디하고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는 것이지요.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쇼에 가서 적응을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했습니다. 즉 아무리 개그맨이라 하더라도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김준호는 버라이어티쇼에는 잘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토크쇼에서도 '적응이 안되는 모습'을 오히려 컨셉트로 삼곤 했습니다.

김준호는 대신 드라마쪽에서 오히려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죠. '에어시티'에서 감초연기로 가능성을 보인 김준호는 '뉴하트'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연기자로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즉 희극 연기자로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던 참이었죠. 한편 '개콘'에서 이제 고참으로서 후배들의 든든한 비빌 언덕 역할을 자처했던 김준호는 '씁쓸한 인생'에서 아낌없이 망가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한 순간의 실수로 씁쓸한 인생을 맞았던 거죠.

김석현 PD는 김준호의 복귀 소식을 말하면서 '씁쓸한 인생'도 끝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준호의 복귀와 '씁쓸한 인생'의 끝. 이 두 개가 얼키면서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김준호의 자리를 메워주었던 김대희가 김준호를 보며 "너 때문에 (못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 이제 뭔가 해보겠다고 올라온 김준호에게 알려지는 코너 폐지 선언은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이었습니다.

'씁쓸한 인생'이라는 코너 자체가 그 중심에 앉아있는 인물을 씁쓸하게 해서 웃음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간 그 씁쓸한 역할을 대신해온 김대희가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한 그 모습이 우스웠고, 불운한 실수로 씁쓸한 인생을 지내다 다시 씁쓸한 역할을 통해 개그맨으로 복귀하려 '씁쓸한 인생'이란 코너로 돌아왔지만 코너 폐지를 듣게되는 그 씁쓸한 상황이 우스웠습니다. 어찌 보면 김준호는 이 코너의 시작과 마지막을 잘 장식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즉 마지막까지 (코너 폐지라는 소식으로) 자신을 망가뜨려 웃음을 주었으니 말입니다.

모쪼록 '씁쓸한 인생'이라는 코너의 폐지가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김준호가 겪어온 씁쓸했던 나날들의 종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연기자로서의 희극인이 귀해지는 요즘, 김준호가 한 때의 실수로 인한 씁쓸한 인생을 접고 다시 활기찬 인생을 맞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