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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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위치' 직접보니, 잘되는 이유 있었네

D.H.Jung 2010. 9. 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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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위치' 짝짓기를 위장한 공감버라이어티

'러브 스위치' 스튜디오에 갔었습니다. 아예 방청석에 앉아서 두 시간 넘게 진행되는 촬영을 신나게 즐겼죠. 말 그대로 즐겼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입니다. 사실 신동엽이 그 정도의 진행실력을 갖고 있는지 잘 몰랐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놀랍더군요. 출연한 30명의 여성들을 쥐락펴락하면서 끊임없이 멘트를 던지는데, 던지는 것마다 거의 100% 빵빵 터지기 일쑤였습니다.

매너있게 접근하면서도 순발력있는 대응과 공감까지 가는 멘트까지 '러브 스위치'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은 바로 신동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경규라는 거목이 서 있지만, 촬영후 만난 이경규 역시 "이 프로그램은 온전히 신동엽이 중심"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이경규는 "신동엽이 이 프로그램만큼 잘 맞는 궁합을 본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30명이나 되는 여성 출연자들을 일일히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사전에 어떤 교류 같은 걸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경규는 "전혀 만나서 얘기하지 않는다"며 그 이유로 "그렇게 미리 만나면 마치 짜놓은 듯한 느낌을 만들 수 있어 현장감이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경규나 신동엽 모두 시청자와 거의 같은 눈높이로 스튜디오에 들어서고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궁금해할만한 것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0% 리얼한 질문과 리액션은 거기서 비롯되는 것이죠.

'러브 스위치'는 자체로 그 형식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아니라 해외에서 판권을 사온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형식은 우리 식으로 많이 재해석되어 있는데요, 먼저 원판은 MC 1명이 진행하지만 우리의 '러브 스위치'는 이경규, 신동엽 2MC로 진행된다는 점이 큰 차이점입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때로는 약간의 대결구도도 만들어내면서 '러브 스위치'는 그 원작의 형식에 이끌리기보다는 오히려 이경규, 신동엽 식의 쇼가 된 느낌이 강합니다. 이것은 만일 이경규, 신동엽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죠.

정말 직설적이고 과감한 여성 출연자들의 이야기는 때론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때론 어떤 통쾌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한 때 사자 직업을 가진 분들이 많이 나왔었는데, 초반에 많이들 탈락했던 이유에 대해 이경규는 "아마도 여성들이 그렇게 탈락을 시키면서 어떤 통쾌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사자 직업을 가졌다는 것으로 열쇠를 요구하는 우리네 비뚤어진 결혼문화가 준 억압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러브 스위치'는 물론 짝짓기 프로그램의 진화된 형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토크쇼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매번 출연하는 남성 출연자를 소재로 30명의 제각각 취향과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저마다의 토크를 풀어내는 그런 토크쇼 말입니다. 그네들의 넘치는 활력과 톡톡 튀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보면 우리 시대의 트렌드나 흐름을 자연스럽게 듣게 되죠. 이것이 '러브 스위치'라는 짝짓기를 위장한 공감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요.

(아래 글은 예전 중앙 Sunday에 게재한 '러브 스위치 관련 글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되기를 바랍니다.)

'러브 스위치', 짝짓기도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10년 전만 해도 나이 서른이면 누구나 결혼을 생각했다. '서른 즈음에'라는 김광석의 노래가 가슴을 후벼 파고,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절절히 공감되던 시대.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10년이 지난 지금, 나이 서른에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부모님들의 우려 섞인 한숨소리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삼십대 중반에도 결혼은 차치하고 여전히 연애를 즐기는 당당한 싱글족들이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시대다. 그렇게 연애를 하다 결혼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들 무슨 상관인가. 이 쿨한 세대들은 결과를 목적으로 누군가를 만난다기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러브 스위치'라는 새로운 짝짓기 프로그램의 탄생은 이런 세대들의 변화된 연애관과 무관하지 않다.

'러브 스위치'는 30명의 여성과 1명의 남성이 벌이는 짝짓기 프로그램이다.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30명의 여성들은 그 날 출연한 남성의 외모, 라이프스타일, 단점 등을 보고 들으면서 그를 선택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러브 스위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형식은 지극히 직설적이다. 과거 남녀 비율이 똑같았던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흔히 벌어지던 상대방의 마음을 떠보는 식의 심리게임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다지 발견하기 어렵다. 남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거나, 어떤 모습을 보였을 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저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MC는 불이 꺼진 여성에게 다가가 그 이유를 묻는다. 답변은 대단히 직설적이다. "외모가 별로예요." "경제력이 없어 보여요." 이런 뭉뚱그린 표현은 그나마 양반이다. "붕 띄운 머리가 맘에 안 들어요." "스타일이 너무 구식이에요." "머리에 비해 어깨가 너무 좁아요." 이런 구체적인 지적(?) 앞에 남성 출연자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서너 시간의 촬영시간 속에서 이뤄지는 선택이기 때문에 이런 지적들은 대부분 외모나 지위, 경제력 같은 외적인 것에 치중되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외모가 떨어지면 탈락하기 일쑤고, 조금 삐딱해보여도 경제력이 있다면 용서되기 일쑤다. 그러니 이런 외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프로그램에 논란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 프로그램의 솔직 대담함(?)이 현재 젊은이들의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결혼이라는 목적이 없으니 연애는 남녀 간의 심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서점가를 강타한 심리학 서적 붐의 이면에는 이렇게 변화한 연애관에서 비롯된 남녀탐구 욕망이 숨겨져 있다. '남녀탐구생활'이 빵 터진 것은 그 리얼한 남녀의 심리가 그 속에 녹아들어 보는 이를 공감하게 했기 때문이다. '러브 스위치'에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이 짝짓기 프로그램은 실상 짝짓기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보여지기도 한다. 한 남자를 세워두고 수다를 떠는 여성들의 심리가 오히려 더 관전 포인트다. 그 수다를 듣다보면 작금의 여성들이 남성의 어떤 면들에 호감을 갖고, 어떤 면들에 불쾌해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여성 시청자라면 그들의 수다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외모지상주의적이고 금전만능주의적이라고 할 지라도.

재미있는 것은 왜 여 30 : 남 1의 비율일까 하는 점이다. 왜 거꾸로의 조합, 즉 남 30 : 여 1은 안될까. 여기에도 치밀하게 준비된 남녀 간의 심리가 깃들어 있다. 만일 여성 한 명을 세워두고 남성 30명이 마치 품평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상상해보라. 남성 30명이 함께 서 있을 때 생겨날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떤 면으로 보면 성희롱처럼도 보이는 그 아슬아슬함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성들의 수다보다 여성들의 수다가 훨씬 부드럽고 재미있다는 점이다. 1:1로 만날 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집단으로 모여 있으면 여성들은 술술 풀어내는 심리가 있다. 게다가 '러브 스위치'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의 주시청층은 아무래도 여성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짝짓기라는 소재 이외에 출연하는 30명의 여성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스타일도 이들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관심거리가 된다. 리포터, 작가, 레이싱모델은 물론이고 컨설턴트, 강사, CEO까지 다채로운 직업은 그녀들의 스타일과 어우러져 당당한 여성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들의 거침없는 속내를 끌어내는 것은 대본 없는 100% 리얼이라는 장치다. 물론 이 장치는 베테랑 MC인 이경규와 신동엽에 의해 유도된다. 여성 파트를 맡은 신동엽은 여성들의 답변에 토를 달거나 의미를 확장해석하기도 하고, 그네들의 속내를 대변해주기도 한다. 특유의 깐죽거림은 이 리얼을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웃음으로 전화시킨다. 한편 남성 파트를 맡는 이경규는 여성들의 공격성 발언에 맞대응을 하기도 하고, 출연한 남성의 속내를 대신 표현해주기도 한다. MC가 분명 주도하고 분위기를 이끌어가지만, 그들은 늘 출연자들의 뒤편에 서 있는 위치를 잊지 않는다. MC의 목적은 그들의 심리를 포착해내는 것이지, 자신들의 입담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브 스위치'는 짝짓기라는 형식을 띄고 있지만, 거기서 집중하는 것은 짝짓기가 아니라 거기 서 있는 남녀들이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남녀들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을까.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할까. 물론 그렇게 호기심에 바라본 결과는 때론 참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은 외모와 조건과 경제력에 치중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만큼 가벼워진 프로그램의 성격이면서 동시에 작금의 젊은이들이 갖는 만남의 성격이기도 하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명제가 앞에 와 있으면 오히려 멀리 달아나버리고, 가벼운 연애에 심취하며 그것을 통해 차츰 진지해지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라. 과거 '사랑의 스튜디오'의 딱 맞춰진 남녀비율이 주는 어떤 중압감을(우리는 모두가 연결되기를 희구한다). 하지만 30:1의 비율에서는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인 편안함이 존재한다. 남은 것은 그 과정을 즐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