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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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랑’ 시청자는 감동에 목마르다

D.H.Jung 2007. 5. 20.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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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기나 했을까. 감동이 자극보다 더 강하다는 걸. 그 반가운 사실을 알려준 첫 번째 주인공은 이미 종영한 ‘고맙습니다’란 드라마다. 에이즈에 감염된 딸과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미혼모가 세상의 편견을 진심으로서 넘어서고, 그 진심이 에이즈보다 더 강력하게 주변으로 전염된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어서 감동을 전해준 두 번째 주인공, 바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5회에 걸쳐 연속으로 꾸며진 ‘휴먼다큐 사랑’이다. 그 중에서도 2회로 방영된 ‘안녕 아빠’편은 전 국민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값싼 눈물이 아닌, 값진 감동이었다. 가족과 사별하는 이야기 앞에 어찌 눈물이 없겠냐마는 이준호씨의 이야기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된 데는 무언가 다른 이유도 있을 법하다.

‘고맙습니다’가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이 작은 미혼모 가족의 바람이 거창한 것이 아닌, 그저 함께 그 곳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소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고맙다고 표현하는 일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호의였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부분에서 ‘이상하다, 뭐가 고맙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을 정도의 작은 호의들. 그런데 ‘휴먼다큐 사랑’을 본 시청자라면 그것이 왜 고마운 지를 알게됐을 것이다.

‘휴먼다큐 사랑’의 다섯 편 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바라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아이를 낳고 싶다는 것이며(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편), 물질이 아닌 자신들의 진짜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싶다는 것이고(벌랏마을 선우네 편) 가족들과 좀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며(안녕 아빠), 아이의 돌잔치를 보고 싶다(엄마의 약속 편)는 것이다. 놀랍지만 이것이 그들이 바라는 전부이다.

하지만 그 간단한 것들을 막는 것들이 존재한다. 무한정 지속될 것만 같던 삶에 장애와 병 같은 것이 들어오자 삶은 더 진지해진다. 그리고 거기서 깨닫게 되는 사실 하나. 우리가 행복을 위해 원했던 것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고 일상적이고 작은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작게 보였고, 그래서 무시하거나 실천하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안녕 아빠’ 편에서 아빠가 무한히 반복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미안하다, 사랑해, 고마워” 같은 대단할 것 없지만 평상시 잘 쓰지 않았던 말들이다. 그것이 이제 한 달도 채 생이 남지 않은 아빠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 그 진정한 의미들은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아빠의 옆을 수호천사처럼 지키고 결국 가슴으로 아빠를 떠나보낸 은희씨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지금처럼 아빠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사랑했더라면 10년 동안 살아 온 결혼생활이 참 행복했을 거란 생각을 해요. 왜 내가 진작 이런 맘으로 남편을 대하지 못했을까. 지금은 저의 모든 것을 다해서 아빠를 사랑하고 있어요.”

이 감동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질문으로 다가온다.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통해서, ‘휴먼다큐 사랑’을 통해서 받은 감동의 실체는 이렇게 우리 삶의 주변까지 둘러보게 만든다. 자신을 그 상황 속에 감정이입시키며 눈물을 흘린 사람이라면 먼저 일상이 되어버린 자신의 사랑 표현과 점점 서먹해져 가는 관계 같은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TV 속 자극적인 것들에 익숙해진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사실 자신 역시 감동에 목말라하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