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사랑의 콜센타' 펄펄 나는데, '트롯신'은 왜 고개 숙였을까 본문

옛글들/명랑TV

'사랑의 콜센타' 펄펄 나는데, '트롯신'은 왜 고개 숙였을까

D.H.Jung 2020. 5. 6. 14:28
728x90

젊은 ‘사랑의 콜센타’와 젊고 싶은 ‘트롯신’의 차이

 

홍진영이 부산에서 거는 전화인 양 숨겨 게스트로 출연한 TV조선 <사랑의 콜센타>에는 시청자들의 불만 섞인 원성이 쏟아졌다. 이유는 명백했다. 시청자들이 원한 건 <미스터트롯> 톱7과 함께 하는 시간이자 무대이지 뜬금없이 몰카 설정으로 게스트를 출연시키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한 번이라도 더 톱7의 무대를 보고 싶어 한다. 물론 다음 주 예고된 것처럼 레인보우 같은 <미스터트롯>이 배출한 또 다른 트로트 스타들을 보는 일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렇듯 <사랑의 콜센타>는 온전히 <미스터트롯>이 이끌어낸 팬덤을 위한 시간으로 자리했다. 스튜디오 예능으로서 시청률이 평균적으로 20%(닐슨 코리아)를 웃돈다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지만, <미스터트롯>이 해낸 신드롬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여겨질 정도다. 임영웅은 애초 예고된 대로 <미스트롯>의 송가인 열풍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지 않은가. 특유의 차분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과 위로를 얻고 있으니.

 

<미스터트롯>이 만든 트로트 열풍은 때 아닌 트로트 소재 프로그램들의 특수를 가져왔다. <사랑의 콜센타>는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건 단지 <미스터트롯>의 후광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방콕할 수밖에 없는 시청자들을 ‘전화 연결’이라는 다소 예스러운 방식으로 끌어안은 점이 주효했다.

 

마치 라디오 방송을 TV 버전으로 옮겨놓은 듯 보이는 <사랑의 콜센타>는 톱7이라는 트로트 신예들의 무대로 꾸며지지만, 그렇다고 트로트에만 국한하는 건 아니다. 임영웅과 홍진영이 ‘그대 안의 블루’를 듀엣으로 부르는 것처럼 트로트는 아니어도 1980~90년대의 감성을 공유하는 이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곡들도 노래한다. 물론 ‘Despacito’ 같은 최신 팝송도 임영웅이 부르면 색다른 느낌으로 전해진다.

 

즉 <사랑의 콜센타>는 지금의 시청자들이 장르적으로도 열려 있고 옛 노래건 최신곡이건 상관없이 좋으면 함께 즐기는 그 폭넓은 공감대를 톱7이라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다. 그래서 <사랑의 콜센타>는 대놓고 옛 감성의 틀과 형식을 가져오고 또 주요 레퍼터리로 트로트를 소화하면서도 젊은 느낌을 준다. 이 지점은 시청자들이 트로트를 들으면서도 자신은 아직 젊다는 걸 확인하게 해주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반면 트로트 열풍을 타고 만들어진 SBS <트롯신이 떴다>는 해외 트로트 버스킹이라는 콘셉트로 화제를 모으며 한 때 15.9%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갈수록 힘이 빠지더니 최근에는 9%대로 추락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코로나19가 가장 큰 악재가 됐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콘셉트인 해외 트로트 버스킹이라는 걸 시도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스튜디오에서 전 세계를 모니터로 연결하고 진행하는 랜선 버스킹을 시도했지만, 생각보다 그만한 감흥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버스킹이 주는 묘미란 노래하는 이들과 이를 듣는 낯선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공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랜선 버스킹은 그런 감흥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랜선 버스킹 같은 시도가 가진 약점보다 더 큰 문제는 여기 등장하는 이른바 ‘트롯신’들의 무대가 별다른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일 버스킹이었다면 현장에서의 긴장감이나 돌발상황들이 같은 노래라도 다른 느낌으로 전해질 수 있었을 게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했던 무대들을 보면 첫 무대만 버스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지 나머지는 해외 순회공연에 가까웠다. 현지인들과 출연자들은 무대와 객석으로 분명히 나눠져 있었다. 이러니 버스킹의 묘미가 살아날 수가 없었다.

 

랜선 버스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랜선으로 연결해 놓았다고는 하지만 가수는 무대에서 노래했고 그저 무수한 모니터들 속에서 관객들이 무대를 바라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를 연결해주는 고리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랜선 무대라는 게 새로운 도전으로 여겨지지만, 그건 이제 중견가수들인 출연자들에게 그리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주기가 어렵다. 이 정도의 아우라를 가진 트롯신들이 젊게 소통하려는 그 자세는 좋아 보이지만, 너무 과한 느낌은 시청자들에게도 어색하게 다가온다.

 

<사랑의 콜센타>는 굳이 나이 들어 보이려 옛 감성을 가진 무대를 가져왔지만 그것은 그저 레트로라기보다는 뉴트로로 보인다. 젊은 가수들이 옛 노래를 향수하는 게 아니라 옛 감성을 힙한 느낌으로 끌어왔다고나 할까. 반면 <트롯신이 떴다>는 젊어 보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뉴트로라기보다는 레트로로 보인다. 렌선 콘서트까지 시도하고 있지만 그 무대가 너무 앞서 나가 있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는 면이 있어서다.

 

<트롯신이 떴다>에서 원로급인 남진이 나와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후배 가수들은 끝없이 상찬을 쏟아놓는다. 하지만 그런 저들 스스로 하는 상찬보다 <사랑의 콜센타>에서 임영웅이 차분히 노래를 부를 때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팬의 감동이 더 마음에 닿는 건 왜일까. 나이 들어 보이려 하는데도 젊어 보이고 젊어 보이려 애쓰는 데도 나이 들어 보이는 아이러니. <사랑의 콜센타>와 <트롯신이 떴다>의 희비가 엇갈리게 된 이유가 아닐까.(사진:TV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