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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장르만', 지금 개그맨들의 무대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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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종영 아쉬움보다 '장르만 코미디' 신설이 반가운 이유

 

"나는 스물다섯 살에 들어와서 지금 서른넷이니까 거의 10년 있었네." JTBC <장르만 코미디>의 '장르만 연예인'이란 코너에서 서태훈은 KBS <개그콘서트>를 했던 시간들을 반추했다. 2,30대를 <개그콘서트>와 함께 해온 그에게 이 프로그램의 폐지가 주는 허전함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10년을 <개그콘서트>에 몸담았다면 어느 정도 유명해지거나 인기가 있을 법도 한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른에 <개그콘서트>를 시작해 이제 마흔이 된 임우일은 여전히 대중들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개그맨이다. KBS 앞 개그맨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편의점 사장님은 그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동안 먹여주고 한 고마움이 있어 KBS를 향해 절을 올리는 임우일에게 짠내 나는 웃음이 묻어난다.

 

임우일 집에 모여 앉은 실직 개그맨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현실감 100%다. 물론 천상 개그맨들이라 자신들의 짠한 현실조차 웃음으로 바꿔 놓지만 소소한 방송 스케줄 몇 개밖에 없는 이들은 스티커 사진기 부업을 하고, 대리운전, 배달알바를 하며 생계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 처한 개그맨들은 JTBC에서 전화가 왔다는 김기리의 얘기에 이목이 집중된다. 새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 실직 개그맨들의 의욕이 불타오른다. 이런 현실 앞에서 뭘 못할까. 웃음을 주기 위해 이들이 앞으로 어떤 도전을 할지 더욱 기대되는 건, 그들의 현실에 대한 공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장르만 코미디>의 한 코너인 '장르만 연예인'은 아마도 이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를 리얼리티와 콩트를 섞어 전하려 했을 게다. 무려 21년이나 지속되어온 <개그콘서트>의 종영으로 가장 걱정되는 건 KBS도 아니고 프로그램 제작진도 아니다. 그보다는 박봉이어도 매주 그 무대에 서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고 연기를 했던 개그맨들이다. 그래서 <개그콘서트> 종영 소식이 들렸을 때 그 아쉬움보다 <장르만 코미디>라는 새로운 코미디 프로그램이 신설된다는 소식의 반가움이 더 컸다.

 

<장르만 코미디>는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개그맨들이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지만, 다양한 장르 이를테면 '끝보소(끝까지 보면 소름 돋는 이야기)' 같은 스릴러나 2312년에서 타임리프한 아이돌의 이야기를 다룬 '억G&조G'같은 SF(?), 일자리를 잃은 개그맨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르만 연예인' 같은 휴먼다큐(?), '찰리의 콘텐츠 거래소' 같은 다소 전형적인 콩트 코미디, 그리고 <부부의 세계>를 패러디한 '쀼의 세계'의 명작드라마 같은 다양한 장르들이 시도됐다.

 

지금껏 공개코미디 중심으로만 되어 있던 코미디와는 달리 코미디의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 <장르만 코미디>가 가진 괜찮은 덕목이다. 물론 첫 방송이니 아직은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오만석이 코미디 연기에 도전하는 '끝보소'는 그 반전의 이야기가 주는 묘미가 느껴지고, 억G&조G'는 벌써부터 '뼈 is bone'의 '뼈뼈뼈뼈뼈-'가 중독성 있게 귓가에 맴돈다. '장르만 연예인'의 일자리 잃었던 개그맨들이 어떤 변화와 성장을 보여줄 지가 기대되고, '찰리의 콘텐츠 거래소'에서는 마술과 기예를 섞은 코미디를 보여주는 나일준과 '짤'을 부르는 이현정의 "나야"가 큰 웃음을 줬다. 또 본격 드라마 패러디를 가져온 '쀼의 세계'도 어떤 전개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장르만 코미디>는 이제 공개코미디가 아닌 다른 코미디를 실험한다는 것과 무엇보다 개그맨들이 그 실험에 동참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물론 어떻게 하면 공개코미디와는 다른 장르의 색깔이 묻어난 색다른 웃음의 질감을 전할 수 있을까가 숙제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첫 스타트는 잘 끊었다고 생각된다. 모쪼록 코미디의 새로운 장을 열어 더 많은 개그맨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기를.(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