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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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 황정민·이정재 보러 갔다가 박정민에게 빠져들다

D.H.Jung 2020. 8. 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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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 황정민·이정재만큼 빛난 박정민의 연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이나 느와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만족할만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황정민과 이정재가 보여주는 미친 연기를 보는 맛만으로도 충분히 몰입감을 준다. 이들이 몸 사리지 않고 보여주는 액션은 스타일리시한 영상 연출과 더해져 시종일관 영화의 긴장을 높여준다. 여기에 박정민의 파격적인 변신이 더해주는 웃음은 긴장 속에 숨통을 틔워준다.

 

이야기는 다소 단조롭다. 청부살인을 하며 살아가는 암살자 인남(황정민)은 이제 은퇴해 파나마에 가서 다른 삶을 살려 한다. 하지만 그 때 태국에서 과거 자신과 연인 관계였다 헤어진 여자와 그 딸이 납치되고 그 사건이 사실은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사체로 돌아온 여자를 통해 그 납치된 딸이 바로 자신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된 인남은 태국으로 가게 되고, 자신의 형제가 인남에 의해 죽게 된 사실을 알게 된 레이(이정재)가 복수를 위해 그 뒤를 추적한다.

 

인남이 납치된 딸을 구출하기 위해 태국의 인신매매, 장기매매 조직과 전쟁을 치르는 그 내용은 여러모로 영화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전직 요원이 조폭들과 치르는 전쟁. 인남 역시 과거 국가를 위해 특정 임무를 수행하던 인물이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당대 <아저씨>의 성공이 끔찍한 사건사고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중년남성들의 부채감과 카타르시스를 건드렸던 것처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다소 힘이 빠져버린 아버지들의 부성애 판타지를 건드리는 면이 있다.

 

무엇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아저씨>의 정서를 닮았다 여기게 되는 건, 납치된 딸이 무자비한 액션을 벌이는 아저씨 혹은 아버지들의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납치된 딸들은 어떤 능동적인 행동이나 말도 취하지 않는다. 다만 그 끔찍한 현실 앞에서 던지는 다소 텅 빈 눈빛을 통해 어떻게든 구해내야만 할 존재로서 서 있을 뿐이다.

 

강한 부성애 판타지를 액션을 통해 끄집어내기 위해 아이를 대상화하는 이런 시선은 다소 불편함을 남기지만, 그래도 액션과 느와르를 담은 오락영화로만 본다면 영화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 두 남자의 무자비한 대결 속에 들어오게 되는 유이(박정민)라는 성소수자의 존재는 '미친 존재감'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 재미와 의미를 더해준 면이 있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 유이이라는 성적 경계에 선 존재가 보여주는 휴머니즘은 그 자체로 이 영화가 가진 단점들을 상쇄시켜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정민과 이정재의 연기대결을 기대하고 본 관객이라면 어느 순간부터 의외로 박정민이라는 배우에 대한 매력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의 맛이 남다른 영화다. 하지만 부성애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희생되는 여성과 아이라는 그 설정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황정민과 이정재의 연기 속에서 오히려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면이 있다. 그가 있어 영화가 가진 약점들조차 어느 정도는 상쇄되고 있으니.(사진:영화'다만 악에서 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