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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봐야해

‘원더랜드’, 뭐 이토록 애틋하면서도 섬뜩한 인공지능 SF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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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도 결국은 마음의 문제일 수 있다는 ‘원더랜드’

원더랜드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는 인공지능을 소재로 가져왔다. 최근 몇 년 간 급속도로 발전하는 분야이고 그래서 이제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는 기술인지라 이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두려움도 상존하는 분야다. 그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Her’, 마이클 알머레이다 감독의 ‘엑스 마키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아이, 로봇’ 등등 인공지능을 소재로 하는 SF영화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그린 세계는 대부분 섬뜩한 디스토피아에 대한 예고였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가져올 재앙을 꺼내놓았던 것. 

 

‘원더랜드’는 어떨까.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이 된 세상을 김태용 감독은 지금과 그다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풍경들로 담아낸다. 그런데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어딘가 다르다. 이제 자신이 죽을 걸 알고 있는 바이리(탕웨이)는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서비스를 의뢰하는데 꽤 담담하다. 정인(수지)은 사고로 남자친구 태주(박보검)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밝게 살아간다. 원더랜드 서비스가 있어서다. 그 인공지능은 죽은 자와 산 자를 갈라놓는 선을 이어 놓았다. 

 

어린 딸은 ‘원더랜드’ 서비스를 통해 바이리와 영상통화로 일상을 함께 하고, 정인은 이 서비스를 통해 태주와 일상을 함께 한다. 디스플레이 기술은 일상 곳곳을 채우고 있는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태블릿, TV 등등의 화면들을 통해 인공지능으로 복원된 망자들을 산자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죽음을 앞둔 이들도 떠 망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들도 과거 같은 깊은 슬픔 속에 빠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인공지능이 복원한 망자들은 스스로 학습을 계속함으로써 산자들에게 최적화된 소통을 하게 해준다. 

 

이렇게 설명하면 ‘원더랜드’라는 작품이 가질 섬뜩한 파국을 먼저 예상할 테지만, 영화는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애틋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놀라운 기술이 가져올 변화된 세상에 대한 세계관으로 가져왔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을 인간의 마음에 포커스를 맞춘다. 어찌 보면 ‘원더랜드’라는 인공지능 기술 자체가 망자와의 이별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의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이 작품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SF적인 상상력과 더해진 판타지의 세계들을 그려내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보다 더 따뜻할까 싶을 정도의 가족드라마, 휴먼드라마, 멜로드라마의 감성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으로 남은 바이리의 딸에 대한 모성애와 딸을 보살펴주는 엄마에 대한 가족애가 먹먹하게 전개되고, 태주를 너무나 그리워하는 정인의 사랑이야기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만든다. 이들의 이야기에 더해져 죽은 손자를 잊지 못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 후 거기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나, 심지어 인공지능으로 남은 바이리가 원더랜드에서 스스로 겪는 정체성(자신이 죽었다는 걸 모르다 알게되는)의 이야기까지 그저 외적 사건이 아닌 내적 감정을 건드리는 사건들로 펼쳐진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하는 SF 작품들이 자주 문제의식으로 가져왔던 ‘과몰입’에 대한 문제는 ‘원더랜드’에도 똑같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단지 비판적 시선으로만 그려지는 건 아니다. ‘원더랜드’는 과몰입이 망자와 헤어지기 어려운 저마다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래서 비판이 아닌 연민의 감정을 끌어낸다. 이렇게 인간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관점은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들을 남긴다. 

 

과연 감정이란 무엇인가. 그건 그저 몸 안의 어떤 전기적 신호들이 만들어내는 작용일까 아니면 마음이라는 어떤 무형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건 육체의 끝을 말하는 것일까 기억의 끝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은 마치 호접몽처럼 누군가의 꿈으로 남은 기억 한 조각은 아닐까. 담담하고 따뜻하게 펼쳐놓은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의외로 많은 생각과 질문들을 하게 만든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던 인공지능이 스스로 ‘실제의 나’는 죽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인공지능에게 어떤 의식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그저 소통하는 대상에 맞춰 진화한 답변을 한 것뿐일까. 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계속 같이 있어 달라 말하는 산자들의 마음은 그래서 애틋하면서도 섬뜩하다. 그건 망자를 보내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과 더불어, 실체가 아니라도 가상을 진짜처럼 받아들이겠다는 섬뜩한 새로운 세계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영화'원더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