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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열의 섬뜩한 광기, 어디서 봤나 했더니(‘계시록’)이 영화는 봐야해 2025. 4. 1. 14:23728x90
‘계시록’, 광신과 확증편향은 어떤 괴물을 탄생시키나
계시록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에서 목사 성민찬(류준열)은 교회를 찾아온 권양래(신민재)의 발목에 차여진 전자발찌를 보고 섬칫 놀라지만 나가는 그의 등 뒤에 대고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은 말 자체로는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죄가 있어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민찬이 생각하는 그 말의 뜻은 조금 다르다. 그가 말한 ‘죄인’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그런 범용적인 의미가 아니다. 권양래가 성범죄자라는 그 사실을 콕 짚어 말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교회는 그를 받아들일 거라는 스스로 해석한 ‘사명’ 같은 의미가 담겨있다. 이 장면은 성민찬이라는 목사가 앞으로 보여줄 끔찍한 광기의 복선처럼 보인다.
‘계시록’은 우연적으로 벌어진 일들을 ‘신의 계시’라 믿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이 신을 대리한 자신의 소명이라 여기는 성민찬이라는 괴물을 그린다. 이미 ‘사이비’나 ‘지옥’ 같은 작품으로 사이비 종교나 광신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일찍이 드러냈던 연상호 감독 특유의 관점이 이 작품 전체에도 드리워져 있다.
‘계시록’이 흥미로운 건 이 확증편향에 가까운 엇나간 믿음이나 광신을 세 인물의 얽히고 설킨 사건들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성범죄자 권양래는 자신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어려서 아버지에게 매일 당했던 끔찍한 학대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노려보는 괴물의 눈을 환영으로 본다. 성민찬 목사는 앞서 말했듯 서로 연결성이나 연관성이 없는 정보들을 제멋대로 연결해 신의 계시라고 믿는다. 그저 저 편에 떠 있는 구름이나 산등성이일 뿐이지만 그의 눈에는 그것이 예수의 형상처럼 보인다.
강력계 형사 이연희(신현빈)는 권양래에 의해 유괴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하고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린다. 동생의 환영은 언니가 구해줄거라고 믿고 또 믿었지만 그 때마다 이를 배반하듯 권양래가 나타나 절망했다고 토로한다. 이연희는 또다시 고등학생의 실종사건이 터지자 그것이 권양래가 저지른 짓이라는 걸 직감하고 끈질지게 사건을 추적한다.
성범죄자와 목사 그리고 형사. 이 세 인물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고등학생 실종사건으로 얽히면서 저마다의 환영을 본다. 성범죄자는 괴물의 눈을 보고, 목사는 신의 계시를 보며 형사는 동생의 환영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다. 그 환영은 오히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들은 달라 보이지만 이런 점에서는 같다. 통제할 수도 없고 그래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을 이들은 헛된 믿음으로 해결해보려고 한다.
사건 감정을 의뢰받았던 정신과 의사의 증언은 ‘계시록’이 이 끔찍한 사건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해 담아낸다. “권양래는 비극의 원인은 괴물이라 하고 성민찬은 신의 계시래요. 이 경위님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시고 이게 다른 거 같지만 사실은 같은 겁니다. 사태의 원인을 하나의 대상에서 집요하게 찾으려 하는 거죠. 이 세상의 비극은요, 대부분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복합적인 원인에서 발생합니다. 악마, 괴물 이런 것들 다 인간이 스스로 편의에 의해서 만들어내는 거예요.”
너무 다작을 하면서 작품의 편차가 심하다는 평가를 받는 연상호 감독이지만, 이번 ‘계시록’은 그간 바깥 쪽으로 돌던 연상호 감독이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작품이다. ‘사이비’나 ‘지옥’의 감성이 엿보이고,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파고 들어가는 특유의 감성이 느껴진다. 류준열의 광기어린 연기는 이 세계에 아우라를 형성하고, 신현빈의 어둠 속에서도 힘겹게 빛을 향해 걸어가는 연기 또한 그 광기의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성범죄자 역할로 류준열만큼 광기 가득한 존재감을 드러낸 신민재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을 보다보면 자기 편한대로 믿어버리는 광신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특히 사실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려는 것이지만 그것조차 신의 계시라고 믿는 성민찬 목사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지가 않아 씁쓸하다. 종교가 진정한 종교의 역할을 하지 않고 정치의 영역으로 욕망을 드러낼 때 보이는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보이는 것만 봅시다.” 정신과 의사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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