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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내조' 허태준, '꽃남' 구준표와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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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가 종영하는 그 시점에 주목을 받은 것이 '내조의 여왕'의 구준표, 허태준(윤상현) 퀸즈푸드 사장입니다. 아마도 '꽃남' 종영에 즈음하여 그 아쉬움이 '내조'로 이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불황의 시대에 화려함과 풍요 속에 살아가는 이 두 캐릭터는 실로 판타지적인 매력을 발산합니다. 무엇보다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기저에는 이들이 가진 힘(재력, 능력)이 가장 큰 힘을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얻기 힘든 것들을 드라마 속에서나마 뭐든 척척 해주는 이 캐릭터들은 수퍼히어로의 또다른 이름으로도 보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근근히 먹고 사는 서민들에게 수백 억, 수천 억이라는 재산은 실제적인 수치가 아닌 추상적인 어떤 것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뭐든 돈만 있으면 척척 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그 추상적인 수치의 재력은 수퍼히어로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힘으로 보이기도 하죠.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불황에 오히려 '화려한 그들'이 각광받는 기현상은 바로 이 물신화가 불황 속에서 더 극적으로 고개를 내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드라마일 뿐이니, 거기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수퍼히어로라도 최소한도의 예의 같은 걸 보여주길 기대할 뿐이죠. '꽃보다 남자'의 수퍼히어로 구준표(이민호)는 오로지 그 힘을 금잔디(구혜선)에게만 쓴다는 점에서 진정한 수퍼히어로의 면모를 갖췄다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캐릭터가 아니라 금잔디라는 여성에 헌신하는 남자일 뿐이죠. 이 관계 속에서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판타지란 아무런 사회적 맥락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조의 여왕'에 등장하는 퀸즈푸드 사장 허태준(윤상현)은 구준표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그는 김홍식(김창완) 이사에게 "불황이라고 왜 평직원들 허리띠만 졸라매냐"고 질책한 후, "나는 월급을 반납하겠다"고 말하죠. 물론 이건 현실과는 상관없는 또다른 판타지일 뿐입니다. 현실에서 이런 사장을 만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대사를 허태준 사장의 입을 통해 내뱉게 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그나마 어떤 사회적 맥락을 잡아내게 됩니다.

이 코미디 드라마는 상황 자체를 지독하게 과장시켜 거기서 웃음을 끌어내고 있지만, 바로 이런 현실적 맥락을 담은 판타지를 제시하면서 대중들과의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죠. 허태준이 천지애(김남주)와 엮이고, 또 사장 부인인 은소현(선우선)이 온달수(오지호)와 엮이는 건 만일 이런 공감대가 없다면 그저 돈 많은 이들의 한때 장난처럼 불쾌하게 여겨졌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드라마의 멜로가 가진 불륜 판타지가 위험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만일 사장이 순수한 호감으로서 어려운 직원을 돕는다는 그 선을 유지한다면, 이 드라마의 허태준은 어쩌면 샐러리맨들의 판타지로서의 사장이자 진정한 의미의 수퍼히어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구준표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한 허태준이란 캐릭터에게서 갖게 되는 기대감입니다. 그것이 기대대로 될 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