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똥파리', 욕설 들으며 감동 먹긴 처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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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욕설 들으며 감동 먹긴 처음

D.H.Jung 2009. 4. 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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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리뷰를 이미 썼지만 어딘지 미진함이 많이 남네요. 그 미진함의 아쉬움이 다시 자판 앞에 저를 앉게 만듭니다. 사실 이 영화 그다지 기대하고 보진 않았습니다. 낮 시간에 마트에 잠깐 들렀다가 시간이 남아서 찾아간 극장에 마침 걸려있던 영화라 무심코 들어갔던 것뿐이죠. '워낭소리'와 '낮술'로 인해 높아진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저를 그 영화로 이끈 것은 아닙니다. 그 작품들이 아니더라도 늘 저는 독립영화에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영화관에는 낮이어서인지(낮시간 치고는 꽤 많은) 대부분 아줌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그저그런 일상적인 수다들을 떨면서 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렸죠. 이윽고 불이 꺼지고 시작된 영화는 첫 장면부터 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먹질과 발길질. 아마 그 장면들과 대사들(대사랄 것도 없죠. 그저 욕을 해대는 것이니)이 불편한 것은 저뿐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욕과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를 즐겨하진 않습니다. 그런 영화를 볼 때면 마치 제가 욕을 먹고 폭력을 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느 정도 지나니 그것도 다 적응이 되더군요. 욕은.. 그러니까 이 '똥파리'가 사는 화장실 같은 세상에서는 일상용어였고, 폭력은 그 세계를 살아가는 자들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죠. 영화는 아주 근거리에서 그 세계를 조명하고 있었고, 그러니 욕과 폭력은 어쩌면 그 세상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엄청나게 엇나간 듯한 행위들과 또 한편으로는 그럴 만한 세상이라는 이해가 엇갈리면서 그런 상훈(양익준)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 연희(김꽃비)라는 존재는 마치 어둠 속에서 빛 한 줄기를 본 것처럼 어떤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죠.

역시  비슷한 가정환경 속에 살아가지만,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연희는 구원처럼 상훈을 흔들어놓고, 그것은 역시 관객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놓습니다. 사실 연희는 그렇게 예쁘다거나 대단한 몸매를 가진 여자는 아니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마치 뒤에 빛 하나를 갖고 있는 인물처럼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건 아마도 이 화장실 같은 세상과의 대비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설정 속에서는 흔히 신파적인 구도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표현을 극도로 제한시킴으로써 끝까지 쿨함을 잃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그렇게 내내 감정을 숨겨오다가 어느 새벽에 각자의 문제들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서로가 서로를 찾는 장면에도 그 문제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구구절절 이야기를 나누는 대사들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틱틱 욕이나 해대다가 그저 얼굴을 묻고 함께 울어대는 그 짧은 장면에서 역시 불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을 아줌마들마저 훌쩍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말입니다. 저 역시 울컥하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죠.

이렇게 이 불편함이 이해의 차원으로 넘어가자 이제는 왜 저들이 저렇게 살아가는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의 상훈(양익준)과 연희(김꽃비)는 표현은 안해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열고 있는 유일한 대상이지만, 그들 이면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을 가한 흔적들, 징조들이 보여지니까요. 그것은 영화 속 상훈과 연희의 눈에는 비춰지지 않지만 그 상황을 목도하는 관객에게는 모두 보여지는 안타까운 현실이죠.

영화가 프레임안을 잡으면서 프레임 바깥을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똥파리'는 화장실 안의 세계만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화장실 바깥의 이야기를 하고 있죠. 누군가 들어와서 싸놓은 가난과 폭력의 똥들이 쌓여진 '똥파리'의 세계가 보여주는 부조리한 현실은, 바로 그렇게 싸질러대고 가버린 누군가에 대한 가장 강렬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서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두드려맞은 듯한 느낌과 무언가 가슴 한 구석을 확 파헤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대낮의 화려한 쇼핑몰이 보여주는 풍경은 낯선 세계처럼 다가왔죠. '똥파리'라는 영화가 하려는 진짜 이야기가 그 바깥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진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동안 말끔하게 정돈된 프레임 속에 앉아 상투적인 대사를 주고받는 드라마나 영화가 좀 시시해질 것 같은 생각. 맙소사 그렇게 욕설을 듣고 폭력을 보면서도 감동을 먹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