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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한낮의 극장 풍경은 꽤 낯설기 마련이죠. 텅빈 극장 안 곳곳을 채우고 있는 습기 젖은 먼지 냄새, 아무도 없는 그 거대한 공간 속에 혼자 앉아 있다는 스산함 혹은 음산함, 그리고 압도적으로 커보이는 스크린과 압도적으로 비어있는 객석의 대비가 주는 묘한 쓸쓸함까지... 영화를 얘기하려고 하면서 이런 극장풍경을 주절대고 있는 건, '우리 집에 왜 왔니'란 영화가 바로 이 극장의 풍경과 서로 닮아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가끔 그런 경험이 있지만 '우리 집에 왜 왔니'를 보던 날은 비가 왔고 극장은 텅 비어 있어 저 혼자 그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앉았더랬습니다. 이 영화가 공포영화였나? 죽은 수강(강혜정)의 사체를 근접촬영으로 보여주는 첫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은 그 텅빈 공간이 주는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공포와 스릴러의 트릭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멜로 이야기(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랑타령을 하는 영화는 아닙니다만)를 하고 있죠.
스토리로만 보면 이 영화는 참 기이합니다. 아내와 아기(뱃속의)를 모두 잃고 난 후 자살을 꿈꾸는 한 남자(병희 : 박희순)의 집에, 한 남자에 대한 집착으로 노숙자처럼 살아가게 된 수강이 무단침입을 합니다. 마침 병희의 집에서 그녀가 집착해온 남자 지민(승리)의 동태를 살피기가 좋기 때문이죠.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감금한 채 기이하게 함께 살게된 그들은 서로의 사연들을 털어놓으며 점점 가까워지게 되죠. 그리고 결국엔 헤어지게 되고 길거리를 전전하면서 병희 주변을 맴돌기만 하던 수강이 죽음으로써 병희와 그 마음을 연결시킨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 이렇게 얘기하면 참 단순한 영화로만 보이죠.
하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이 영화가 가진 공간, 즉 집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제목이 '우리 집에 왜 왔니'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것도 바로 그 공간에 대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수강이라는 캐릭터는 '외딴 집에 혼자 사는 미친 년'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죠. 바로 그것 때문에 지민이 말하듯 사람들이 그녀를 멀리하게 됩니다. 그녀의 집에는 애초부터 아무도 없죠. 그리고 그 집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지민이었기에 그녀는 스토커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게 됩니다. 수강에게 집이란 누군가 들어와 채워주었으면 하는 그런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반면 병희의 집은 있었던 모든 것이 파괴된 공간입니다. 아내가 아이까지 갖게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여겼었죠.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집은 이제는 지워내버리고픈 것들로 가득한 공간이 되어버리죠. 아무리 내다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기억을 비워내는 방법은 자살이 유일하기에 그는 자살을 꿈꿉니다. 수강의 집은 애초에 비워져 있어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이고, 병희의 집은 이제는 비워내고 싶어도 비워내지지 않는 악몽으로 변한 기억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공간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병희의 대사대로 표현하자면 병희는 "이제 누굴 사랑하기 글렀고," 수강은 "이제 누구한테 사랑받기 글른" 그런 공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수강의 집착적인 사랑은 자신의 공간에 누군가를 채워넣으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란 걸 깨닫고 또 그걸 깨닫게 해준 병희를 어느새 사랑하게된 수강은 이제 병희의 집 주변을 서성일 뿐, 공간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이제 집착을 벗어난 진정한 사랑에 대해 알게 된 것이죠. 수강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여전히 비관적인 병희(그 자신이 수강을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에게 수강은 병희가 한 말을 되돌려줍니다.
"아저씨가 말한것처럼, 아저씬 다시 사랑하기 글렀고 난 다시 사랑받기 글렀다는게 맞는거 같아. 하지만 그 반대는 어때? 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저씬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그랬죠. 수강이 자신의 공간을 누군가가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갈구하던 모습에서 병희의 집을 찾아 들어간 순간부터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또 바로 그 순간부터 병희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왔는 지도 모르지요. 수강이 끝내 웃으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 그 차디찬 비닐하우스에서도 따뜻했던 병희네 집에서의 추억을 환상처럼 떠올렸다는 건 이 영화가 말하는 독특한 사랑에 대한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그 텅빈 공간이 꽤 쓸쓸했고, 그것이 마치 저 수강이 평생을 느껴왔던 쓸쓸함과 닮아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누군가 찾아와주길 바라는 수강과 이 영화가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죠. 이 정도면 비오는 한낮에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값어치는 충분하다 생각되었습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한낮의 극장 풍경은 꽤 낯설기 마련이죠. 텅빈 극장 안 곳곳을 채우고 있는 습기 젖은 먼지 냄새, 아무도 없는 그 거대한 공간 속에 혼자 앉아 있다는 스산함 혹은 음산함, 그리고 압도적으로 커보이는 스크린과 압도적으로 비어있는 객석의 대비가 주는 묘한 쓸쓸함까지... 영화를 얘기하려고 하면서 이런 극장풍경을 주절대고 있는 건, '우리 집에 왜 왔니'란 영화가 바로 이 극장의 풍경과 서로 닮아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가끔 그런 경험이 있지만 '우리 집에 왜 왔니'를 보던 날은 비가 왔고 극장은 텅 비어 있어 저 혼자 그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앉았더랬습니다. 이 영화가 공포영화였나? 죽은 수강(강혜정)의 사체를 근접촬영으로 보여주는 첫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은 그 텅빈 공간이 주는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공포와 스릴러의 트릭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멜로 이야기(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랑타령을 하는 영화는 아닙니다만)를 하고 있죠.
스토리로만 보면 이 영화는 참 기이합니다. 아내와 아기(뱃속의)를 모두 잃고 난 후 자살을 꿈꾸는 한 남자(병희 : 박희순)의 집에, 한 남자에 대한 집착으로 노숙자처럼 살아가게 된 수강이 무단침입을 합니다. 마침 병희의 집에서 그녀가 집착해온 남자 지민(승리)의 동태를 살피기가 좋기 때문이죠.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감금한 채 기이하게 함께 살게된 그들은 서로의 사연들을 털어놓으며 점점 가까워지게 되죠. 그리고 결국엔 헤어지게 되고 길거리를 전전하면서 병희 주변을 맴돌기만 하던 수강이 죽음으로써 병희와 그 마음을 연결시킨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 이렇게 얘기하면 참 단순한 영화로만 보이죠.
하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이 영화가 가진 공간, 즉 집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제목이 '우리 집에 왜 왔니'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것도 바로 그 공간에 대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수강이라는 캐릭터는 '외딴 집에 혼자 사는 미친 년'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죠. 바로 그것 때문에 지민이 말하듯 사람들이 그녀를 멀리하게 됩니다. 그녀의 집에는 애초부터 아무도 없죠. 그리고 그 집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지민이었기에 그녀는 스토커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게 됩니다. 수강에게 집이란 누군가 들어와 채워주었으면 하는 그런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반면 병희의 집은 있었던 모든 것이 파괴된 공간입니다. 아내가 아이까지 갖게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여겼었죠.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집은 이제는 지워내버리고픈 것들로 가득한 공간이 되어버리죠. 아무리 내다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기억을 비워내는 방법은 자살이 유일하기에 그는 자살을 꿈꿉니다. 수강의 집은 애초에 비워져 있어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이고, 병희의 집은 이제는 비워내고 싶어도 비워내지지 않는 악몽으로 변한 기억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공간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병희의 대사대로 표현하자면 병희는 "이제 누굴 사랑하기 글렀고," 수강은 "이제 누구한테 사랑받기 글른" 그런 공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수강의 집착적인 사랑은 자신의 공간에 누군가를 채워넣으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란 걸 깨닫고 또 그걸 깨닫게 해준 병희를 어느새 사랑하게된 수강은 이제 병희의 집 주변을 서성일 뿐, 공간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이제 집착을 벗어난 진정한 사랑에 대해 알게 된 것이죠. 수강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여전히 비관적인 병희(그 자신이 수강을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에게 수강은 병희가 한 말을 되돌려줍니다.
"아저씨가 말한것처럼, 아저씬 다시 사랑하기 글렀고 난 다시 사랑받기 글렀다는게 맞는거 같아. 하지만 그 반대는 어때? 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저씬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그랬죠. 수강이 자신의 공간을 누군가가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갈구하던 모습에서 병희의 집을 찾아 들어간 순간부터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또 바로 그 순간부터 병희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왔는 지도 모르지요. 수강이 끝내 웃으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 그 차디찬 비닐하우스에서도 따뜻했던 병희네 집에서의 추억을 환상처럼 떠올렸다는 건 이 영화가 말하는 독특한 사랑에 대한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그 텅빈 공간이 꽤 쓸쓸했고, 그것이 마치 저 수강이 평생을 느껴왔던 쓸쓸함과 닮아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누군가 찾아와주길 바라는 수강과 이 영화가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죠. 이 정도면 비오는 한낮에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값어치는 충분하다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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