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1박2일'과 '패떴', 현지인들에 대한 예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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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과 '패떴', 현지인들에 대한 예의

D.H.Jung 2009. 5. 1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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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과 '패떴'은 모두 여행을 컨셉트로 삼고 있기 때문에 현지인들과의 접촉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접촉에 대한 이 두 프로그램의 방향은 사뭇 다르죠. '1박2일'은 '집으로'편에서 볼 수 있었듯, 현지인들과의 보다 긴밀한 관계를 지향합니다. 반면 '패떴'은 정반대입니다. 도착하는 순간, 그 집 주인분들을 여행보내드리고, 하루를 온전히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즐깁니다. 집 주인조차 도착했을 때와 떠날 때 잠깐 만날 지경이니 현지인들과의 접촉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패떴'이 지금껏 단 한번도 현지인들과 만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음식을 만들어 주민들과 나눈 적도 있고, 지역주민들을 모셔놓고 미니 공연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벤트는 어딘지 인위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그것은 프로그램 성격 자체가 현지인과 어우러지는 형식이기보다는 패밀리들끼리의 놀이판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 꼭 시골에 갔다고 시골 분들과 만나고 함께 어우러져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행 버라이어티는 기본적으로 그 장소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어쩌면 이것은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들의 윤택한 삶의 뒤편에 병풍처럼 서서 바보처럼 모든 것을 내주는 시골에 대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1박2일-집으로'편에서 기산댁 할머니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다가 문득 거기서 환하게 웃고 즐거워하는 이들을 낯설게 여깁니다. 왜 자신은 이 산골에서 하루종일 고단한 노동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한탄을 손주같은 순길이(이승기)와 멍충이(MC몽)에게 해주죠. 그러자 그 둘은 일어나 할머니 앞에서 즉석 공연을 펼칩니다. 바로 그 장면은 '1박2일'이 가진 여행의 미덕을 드러내는 것이었죠.

예능 프로그램은 웃겨야 하고, 따라서 여행 버라이어티도 여행이라는 틀 속에서 웃음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웃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 점은(그것이 또 시청률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도시에서 시골로 가져간 논리일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반드시 시골의 진짜 힘겨운 삶과 부딪치는 면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1박2일'이나 '패떴'이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최소한 그 시골이라는 공간을 조명하는 태도에 '따라 그 민폐아닌 민폐는 소통이 될 수도 있고 그저 민폐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1박2일'이 찾아간 기산리 마을의 이야기는 그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웃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그들은 거기서 비로소 그분들과 교감하고 웃음과 눈물을 나눔으로써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패떴'에는 시골의 공간 속에서 도시적 아이콘처럼 보이는 손담비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패떴'이 어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얘기가 많이 나와서 그랬는지, 그나마 남아있던 시골적 감수성(도회적 감수성이 부딪치는)은 사라지고, 폐가로 상징되는 공포의 공간으로서의 시골과, 촌스러움 속에서도 도시적 세련됨을 과시하는 아이템들이 더 많이 등장했죠.

아마도 '1박2일'이 보여준 산골 어르신들과의 교감이 준 감동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패떴'의 그림들이 그것과 비교되면서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말입니다. '패떴'은 여전히 시청률 최고의 주말 예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시청률이 바로 그 시골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폐쇄적인 형식을 벗어버리고 좀더 현지인들과 다가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면서 또한 현재 '패떴'이 처한 고인 물 같은 프로그램의 매너리즘을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