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시사기획쌈'이 보여준 낙태라는 폭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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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쌈'이 보여준 낙태라는 폭력

D.H.Jung 2009. 5. 13.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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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느 엄마가 저 스스로 낙태를 선택할까. 낙태라는 선택에는 반드시 외부적인 강요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직접적인 것일 수도 있고 암묵적인 사회적 분위기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강요되는 폭력이 주는 상처는 태아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낙태를 선택한 엄마들에게 그 상처는 때론 지울 수 없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시사기획 쌈'의 <낙태, 강요된 선택>편이 조명한 것은 부지불식간에 조성된 낙태불감증이 만연하게 되어버린 세상이다. 아무도 아픈 내색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이면에는 낙태를 둘러싸고 실로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었다.

먼저 카메라가 포착해낸 인물은 타과로 이전한 한 산부인과 전문의. 그는 낙태를 거부했고 그것은 아내와의 불화를 만들었다. 이미 분만만으로는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진 현실 속에서 단 3,40분만에 끝나는 낙태 시술로 3,40만원의 수익을 간단히(?) 얻을 수 있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유혹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간단한 일일까. 의사가 진술한 낙태 시술의 잔인한 과정들(아기를 찢고 하는)을 듣고보면 그것이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낙태 천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낙태 건수가 34만 건(출생이 46만건)이나 되는 것은 원치않는 임신이나 기형아 검사를 통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을 것 같다면 우선 낙태를 선택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말해주는 것. 조사에 의하면 다운증후군 검사에서 이상이 있을 것이라 판단되면 낙태를 선택하겠다는 사람이 63%에 달했고, 원치않는 임신의 경우에는 77%에 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쉽게 낙태를 선택하겠다고 한 것처럼 낙태는 간단한 문제일까. '시사기획 쌈'은 지금껏 낙태의 피해자로 주목되어온 태아의 뒷편에 놓여져 왔던 숨은 피해자인 여성들을 추적한다.

낙태 후 일 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한 여성은 죽고싶은 생각뿐이었다며 임신한 여자를 보기만 해도 늘 괴롭고, 육체적으로도 안좋다고 했다. 임신인 줄 모르고 감기약을 먹었던 그녀는 장애아를 낳을까봐 낙태를 선택했지만 그 미안함은 죽을 때까지 상처로 남을 거라고 했다. 이러한 선택의 이면에는 출산과 육아가 야기하는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미혼 여성의 경우 학업과 진로문제, 사회적 편견 등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잘못된 정보에 의한 낙태의 선택이다. 임신 사실을 모른 채 감기약이나 위장약, 피임약 등 약물을 복용한 여성들이 기형아 출산의 우려 때문에 병원측과 가족측으로부터 낙태를 권유받는 것.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낙태한 기혼여성의 12.6%가 임신 중 약물 복용문제로 낙태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것은 약물에 의한 장애아 발생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약물은 실제로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가진 피임에 대한 인식부족 자체가 낙태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먹는 피임약에 대한 오해는 실로 지나치다 할 수 있다. 이 약들은 호르몬과 관계하는 것으로서 태아에는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지만 단지 먹었다는 그 사실만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오해를 낳고 있다.

캐나다 같은 선진국의 경우에는 마더 리스크 프로그램 같은 것을 통해 손쉬운(?) 낙태 선택보다는 보다 다양한 정보들을 통해 임신을 유지하게 해주는 노력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태는 어떤가. 낙태라는 문제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가 있다. 따라서 사회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지만 장애아에 대한 백안시나 싱글맘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한 싱글맘 여성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등본을 보고는 "미혼인데 애가 있네요?"하는 면접관의 시선 때문에 당황했다고 한다.

'시사기획 쌈'이 보여준 낙태의 문제는 결국 모성권의 문제로 귀결된다. 낙태를 쉽게 선택하게 만드는 상황, 사회적 분위기, 잘못된 정보들 속에서 당사자인 여성들은 말못할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부인과가 출산의 축복을 실현시켜주기보다는 낙태의 고통을 양산하는 사회, 그래서 임신과 피임과 불임 같은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산부인과를 찾아가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낙태의 문제는 원치않는 아이처럼 잉태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교육이나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는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세상 어느 엄마도 쉽게 낙태를 선택하지 않으며, 그 선택은 거의 모두가 강요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낙태는 보이지 않는 심각한 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