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김씨표류기', 이런 분이라면 재미 감동 두 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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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표류기', 이런 분이라면 재미 감동 두 배

D.H.Jung 2009. 5. 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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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표류기'. 한 줄로 스토리를 얘기한다면 밤섬에 표류한 남자 김씨(정재영)와 저 스스로를 방에 표류시킨 여자 김씨(정려원)가 서로 극적으로 소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참 재미있고 뭉클한 면도 있는 영화입니다. 굳이 비율로 나누자만 웃음이 60% 정도 되고 감동이 40% 정도 된다고 할 수 있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 비율이 거꾸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나 의미 같은 걸 늘어놓는다면 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지만 이제 막 개봉하는 영화에 대고 이러쿵 저러쿵 먼저 얘기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여기서는 간략하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실만한 분(물론 제 맘대로지만)들을 나름대로 적어보겠습니다.

1. 무인도 이야기가 재미있으신 분 : 우스개 무인도 시리즈가 가진 코미디적 요소들에는 무인도 바깥 세상에 대한 풍자가 있게 마련이죠. 무인도 표류기를 다룬 '로빈슨 크루소'나 그 현대판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캐스트 어웨이' 같은 영화 속에는 문명의 세계에 대한 배꼽빠질 풍자정신이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김씨표류기'에도 그다지 무겁지는 않지만 상큼하게 뒤통수를 치는 톡톡 튀는 재미가 있죠.

2. 하루 종일 컴퓨터를 붙들고 사시는 분 :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컴퓨터부터 켜고, 회사를 출근하는 동안에도 핸드폰으로 인터넷 정보를 끄적거리고,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퇴근해서 집에 와서도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 저런 일상을 보내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가 딱입니다. 이런 분들은 분명 보면서 여자 김씨(정려원)에게 말을 걸고픈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날 것입니다.

3. 문득 한강을 건너다 뛰어내리고픈 충동을 느끼셨던 분 : 물론 심각한 분들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 왜 그럴 때 있죠. 사는 게 이게 다 뭔가, 하고 느껴지는 그런 때 말입니다. 매일 매일 어딘가에 쫓기면서 사는 거 같고,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다 등을 돌린 것 같은 그런 때 말입니다. 그런 분들이라면 어쩌면 이 영화를 통해 위안 같은 것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겁니다.

4. 챗바퀴 도는 도시생활에 지치신 분 : 통조림을 뜯어먹는 기분처럼, 왠지 사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죠. 도시의 빌딩들이나 포장된 음식물들이 주는 인공적인 맛에 질릴 때. 별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인공적인 안전함이 갑갑함으로 변할 때.

5. 또 자장면이야? 하고 자장면에 대해 오만했던 분 : 점심 때면 뭐 먹나 하다가 그저 때우자는 마음에 시켜 먹는 자장면. 자장면을 먹으면서 참 인생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분이라면. 자장면 한 그릇이 때로는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될 지도 모릅니다.

6. 진화론에 관심있으신 분 : 뭐 심각한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진화론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극한 조건에서 어떻게 김씨가 진화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꽤 흥미롭다는 걸 말하는 거죠.

7. 생각이고 자시고 그저 한 두시간 머리를 비워놓고 싶으신 분 : 어려울 것도 없고 그저 술술 따라 읽혀지는 이 영화는 당신의 복잡한 머리를 툴툴 털어놓게 해줄 겁니다. 다 털어냈는데도 나올 때 뭔가 기분이 좋다면 그 안에 작은 씨앗 같은 것이 알게모르게 심어져 있기 때문이겠죠.

8. 한참 웃은 영화에 어딘지 남는 게 없어 아쉬웠던 분 : 사실 아무리 웃겨도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그런 영화는 보고 나면 좀 허무해지죠. 이 '1박2일' 같은 야생노숙버라이어티를 담은 영화는 '1박2일'이 그렇듯이 어느 순간에는 찡한 걸 가슴 언저리에 남겨줄 것입니다.

9. 이해준, 정재영, 정려원, 그 이름에 믿음이 가는 분 :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준 감독의 전작인 '천하장사 마돈나'를 재미있게 본 사람입니다. 이해준 감독은 독특한 설정 속에 웃음과 풍자를 뒤섞는 재주가 비상한 감독이죠. 정재영은 진지하면서 엉뚱한 모습을 보일 때 가장 웃기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죠. '자명고'의 박제된 느낌의 정려원에 아쉬웠던 분들이라면, 이 사정없이 망가져도 사랑스러운 여자 김씨 정려원이 그 아쉬움을 채워줄 것입니다.

대충 이정도가 되겠군요. 참고로 이 영화는 남들 다 일하는 낮 시간, 즉 비교적 사람들이 적은 그 시간에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낮 시간 어두운 극장이란 공간은 김씨가 표류한 섬처럼 낯선 느낌을 주기도 하죠.

그래서 재미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답답하시다구요? 제 경우를 말하자면 위 9개 항목에 다 해당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왜 그 9개 항목이 저를 끌리게 했는지는 후에 리뷰에 담겠습니다. 그럼 즐감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