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사다함의 매화'에 대한 갑작스런 관심집중은 조금 뜬금없기까지 합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책력(달력)에 불과하죠. 물론 이것은 현재 시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말이 달라집니다. 천문을 보는 것, 그리고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농사에 기반을 둔 국가로서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권력의 바탕이 되는 것이죠. '사다함의 매화'가 이처럼 베일을 벗고 '선덕여왕'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로 자리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이 즈음에서 다시 '선덕여왕'을 되돌려 생각해보면 이 사극이 어떤 일관성 있는 전개를 해왔다고 보여집니다. 그것은 이 사극이 바로 천문, 즉 하늘의 뜻을 읽는 자들의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덕만과 천명의 탄생과정에서 줄곧 등장했던 별자리 이야기가 그렇고, 덕만이 가게된 타클라마칸 사막이라는 공간에서의 생존(이것은 전적으로 자연을 읽는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죠)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화를 모래가 잡아먹고, 터미네이터 칠숙이 덕만을 잡았을 때 모래폭풍이 이들을 잡아먹는 이야기도 결국 이 자연적 조건과 마주하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덕만이 신라에 와서 가야의 유민들에게 잡혔을 때, 등장한 에피소드 역시 비가 오지 않는 하늘에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천명은 포기하고 있을 때, 덕만은 간절하게 비가 오기를 기원하고 결국 비를 내리게 하죠. 미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다함의 매화' 에피소드를 통해 나온 것은 미실이 사다함을 통해 가야의 책력을 얻었고 그것이 날씨를 예측할 수 있게 했으며, 그로 인해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것이죠. 즉 권력은 백성들의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백성들에게 당시 가장 민감한 것은 생업인 농사이고, 그 농사를 쥐고 있는 것은 날씨이기 때문에 책력을 얻은 미실은 진흥왕이 가질 수 없었던 신적 권위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결국 이 하늘의 뜻을 읽어내는 두 여인 덕만과 미실의 대결구도가 이 사극의 핵심적인 대결구도가 될 것이 자명해졌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정치적인 입지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지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천문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니 이 대결구도는 더더욱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사극이 기존 미션사극들과 궤를 달리하는 특징이 되기도 합니다. 미션사극에는 반드시 그 미션을 내리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인물은 대개 왕입니다. '대장금'에서도 그랬고, '이산'(영조가 그 역할)에서도 그랬죠. 하지만 '선덕여왕'은 그 미션을 내리는 존재가 왕이 아닌 하늘(날씨, 자연)이 됩니다. 그 자연적 상황들을 어떻게 통제해나가느냐가 결정적인 미션의 성패를 가름하게 되는 것이죠. 왕과 달리 자연적 상황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그 미션은 더 흥미진진해집니다. 물론 어떤 면으로 보면 작위적인 구석이 나올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과학적인 발견이 주는 묘미 같은 것이 덧붙여질 수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이로써 미션 사극으로서의 기본틀에 정치사극의 이야기를 덧붙였고, 그 위에 천문이라는 조건을 걸어 이 세가지를 잘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션을 내리는 존재가 왕이 아닌 천문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결국 이 모든 미션이 백성들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왕에서 천문을 통해 백성들로 내려온 미션 내리는 존재의 위치이동은 '선덕여왕'이 가진 새로운 역사의식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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