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아름다운’, 저승으로 풀어낸 인과응보에 담긴 현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시작해. 악플러, 조회수 팔이 하는 놈들 다 정렬시켜!”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에는 이른바 ‘신지옥’이 등장한다. 악플러나 조회수 팔이처럼, 예전에는 없던 죄에 대한 처벌을 하기 위해 마련된 지옥이다. 지옥으로 끌려온 이들은 저마다 자신은 누구를 해한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들이 키보드로 찍어 넣은 악플들이나, 기사랍시고 조회수 장사로 악플을 유도하기 위해 썼던 글들은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끔찍한 폭력이다. 

 

“죄를 가지고 장사하는 네놈들을 위해서 만든 지옥이야. 발설지옥보다 더 절망적이고 초열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운 이게 바로 신지옥이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이들 악플러들과 조회수 장사를 한 기자들을 신지옥이라는 상상의 공간으로 데려가 기발한 방식으로 처절한 응징을 한다. 모두를 묶고 연결해 키보드 형태의 틀에 가둬두고 거인 같은 염라(천호진)대왕이 키보드를 치자, 가둬진 그들의 머리가 깨져 나간다. 

 

천국으로 간 해숙(김혜자)이 그 곳에서 남편 낙준(손석구)을 만나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던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갑자기 지옥의 풍경이 펼쳐진 건 해숙이 천국에서 잘못을 저질러 그 곳에 떨어지게 되면서다. 해숙은 어느 지옥으로 갈지 정해지는 심사대에서 ‘미분류’가 되어 다시 죄의 무게를 달아 보고 결국 천국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지옥의 끔찍한 광경들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왜? 저쪽에선 죄를 짓고도 아무 단죄 없이 떵떵거리고 살았는데 내가 왜 여기 있나 싶어? 돌아가는 게 뭔가 허술하고 만만했지? 기침과 가난은 감출 수 없듯 이곳 지옥에선 지은 죄를 숨길 수가 없어. 이곳 지옥에선 미제사건도 심신 미약도 전관예우도 사형집행을 유예하는 일도 없어. 그만큼 악을 벌하는데 있어 한 치의 오차도 없단 얘기야.” 이것이 염라가 지옥에 온 자들을 향해 던지는 일갈이다. 거기에는 미제사건으로 남거나 심신 미약, 전관예우 등으로 처벌받지 않은 현실의 범죄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들어있다. 

 

도둑질과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간다는 화탕지옥(끓는 쇳물에 튀겨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을 한 자들이 간다는 발설지옥(죄의 깊이만큼 혓바닥을 뽑는 지옥), 살인, 강도, 성폭행 등 강력범들이 가는 한빙지옥(2억년동안 몸을 얼려버리는 지옥), 불륜을 저지른 죄인들이가는 중합지옥(죄인들을 산 사이에 끼워넣어 눌려 죽게 하는 지옥), 음주나 폭행으로 남을 괴롭힌 자들이 가는 규환지옥(불에 달궈진 줄을 건너다 용암에 떨어지는 지옥), 말로 사람을 현혹한 타락한 정치인 종교인들이 가는 초열지옥(불 위에서 구워지는 지옥)... 

 

<천국보다 아름다운>이 보여주는 지옥은 저승의 풍경이지만 고스란히 현실의 사건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천국을 보여주다가 굳이 지옥까지 그려낸 건, 이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가 뿌리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를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다. 현실에서 죄를 지었지만 처벌받지 않은 이들 역시 저승에서는 더 지독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 

 

물론 이건 정반대로 이승에서 ‘선업’을 쌓은 이들에게는 그 곳에서 돌려받지 못한 보답을 저승에서는 몇 배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해숙이 지옥까지 갈 뻔하다가도 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 일수를 하며 살던 팍팍한 삶 속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던 선업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연고자로 죽은 이를 위해 장례를 치러주고, 가난과 외로움에 죽으려 했던 이에게 매일 찐 옥수수를 가져다주며 계속 살아갈 힘을 줬던 그 선업들이 해숙을 천국으로 오게 한 것이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결국 불교적 세계관이 갖고 있는 업보, 인과응보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 메시지는 ‘신지옥’처럼 현재적 삶의 형태를 염두에 둔 새로운 상상력으로 채워져 있다. 천국의 모습도 과거 <전설의 고향>에서 봤던 그런 모습과는 다르다. 현대화되었고 그 곳의 삶의 방식도 우리가 사는 현재를 그대로 닮았다. 그래서 이 현재화된 천국과 지옥의 풍경은 보다 실감나게 인과응보의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거꾸로 말하면 우리네 현실이 선한 자가 더 행복하게 살고 악한 자는 처벌받는 그런 삶이 아니라는 걸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에둘러 말해주는 면이 있다. 그래서 억울하고 분노하게 되지만, 그런 것들이 저승으로 가면 다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로 이 드라마는 위로해준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판타지가 우리네 서민들의 팍팍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사진:JTBC)

‘언슬전’,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이 의학드라마의 진심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여기서 키도 제일 작고 몸무게도 제일 조금 나가요. 여기서 꼴찌예요.” tvN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에서 엄재일(강유석)은 신생아실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홍도(배현성)에게 자신이 처음 탯줄을 자른 아기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초음파 시절부터 인연이 있다는 그 아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내는 엄재일의 이야기는 언뜻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제 새내기 병아리인데다 하는 일마다 실수 투성이라 선생님들에게 꾸중 듣는 일이 일상인 엄재일이다. 

 

내원한 산모들의 초음파를 볼 때면 자신이 본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레지던트 2년차 선생인 차다혜(홍나현) 같은 선배들에게 끊임없이 연락해 확인을 하는 엄재일이었다. 그 상황을 알게 된 4년차 구도원(정준원)은 그건 책임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행동이라며, 그렇게 차다혜 같은 선배들의 시간을 뺏는 건 그들에게도 다른 환자들에게도 민페가 되는 일이라는 걸 분명히 알려줬다. 

 

사실 <언슬전>에서 엄재일은 종로율제 산부인과에 들어온 1년차 레지던트 중에서도 가장 적응을 잘 못하는 인물이다. 의과에서 배웠던 기본적인 내용조차 기억을 못해 선배들의 지적을 당하기 일쑤고, 산모가 변비로 생긴 변을 종양 같은 문제로 의심해 선배들의 시간을 뺏기 일쑤다. 그러니 자존감이 있을리 없다. 칭찬보다는 늘 꾸중이 일상인 전공의 생활이니 말이다. 

 

그런데 엄재일에게도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게 서서히 드러난다. 민폐를 주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부르지 않아 시간이 상대적으로 나는 엄재일은 산모의 초음파 보는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천천히 자세히 보려 하고 산모의 입장이 되어 편안하게 해주려는 노력을 한다. 아기가 너무 걱정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초음파를 보러 오는 산모를 담당의인 차다혜는 힘겨워 하지만, 대충 보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그 산모에게 “나라도 괜찮겠냐”며 천천히 초음파를 봐주는 엄재일의 모습은 이 인물이 거북이 스타일일뿐, 영 재능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결국 엄재일의 이 천천히 자세히 보는 초음파 검사는 잘 찾아내기 어려운 산모의 자궁파열을 초기에 발견해내는 의외의 성과를 해낸다. 결국 의술이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실수나 잘못은 이들 병아리 의사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엄재일이라는 인물은 말해준다. 그보다 중요한 건 산모와 아기를 지켜내려는 그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런 과정을 거쳐 진짜 의사는 탄생한다고 이 의학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언슬전>은 마치 엄재일이 그러하듯이 처음부터 시선을 확 끄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보다 보면 점점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구도원 같은 인물도 그렇다. 굉장한 능력을 보여주는 인물은 아니지만, 늘 후배들을 챙기려 하고 환자들의 입장이 되어 보려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인물이다. 물론 명은원(김혜인) 같은 여우 의사에게 이용당해도 화를 내지 않으면서 자신을 ‘호구 도원’이라고 말하는 단점이 있지만, 이 부분 역시 대신 욕을 해주는 오이영(고윤정)과 어쩐지 잘 어울리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느껴진다. 

 

“꼴찌면 어때? 지금 꼴찌인게 뭐가 중요해. 나갈 때 1등으로 나가면 돼지. 인생 1일차잖아. 이제 시작인데 뭐,” 신생아실 앞에서 ‘꼴찌인 아기’ 이야기를 할 때 장홍도가 하는 말은 <언슬전>이라는 새내기 의사들이 나오는 드라마에 대한 격려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또한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의 특징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구도원도 엄재일도 처음에는 그저 평범해 보였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걸 이들이 겪는 병원에서의 좌충우돌이 보여준다. 아직 능숙하진 않지만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오히려 산모의 위급할 수 있었던 상황을 찾아낸 엄재일처럼, 촘촘히 보면 볼수록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의학드라마가 바로 <언슬전>이다. (사진:tvN)

‘귀궁’, 이무기와 육성재, 도대체 누가 누구를 삼킨 걸까 

귀궁

‘이 아이의 손길이 이리 부드럽고 따뜻했구나. 또다. 왜 이리 또 쿵쾅대는 거야? 망할 놈의 윤갑 놈. 어찌 이 인간의 몸은 허술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어.’ SBS 금토드라마 <귀궁>에서 강철이는 화살을 맞은 상처를 치료해주는 여리(김지연)의 손길에 가슴에 속절없이 쿵쾅댄다. 윤갑(육성재)의 몸에 빙의된 강철이는 본래 이무기다. 그러니 인간의 손길 같은 감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무려 13년 간이나 여리의 몸주신이 되려 졸졸 따라다녔지만 여리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 건 윤갑의 육신에 들어오게 되면서다. 

 

<귀궁>의 이무기 강철이가 빙의된 윤갑이라는 설정은 이런 지점에서 흥미로워진다. 보통 귀신이 등장하는 퇴마 판타지나 한국형 오컬트 장르에서 빙의는 귀신에 영혼을 빼앗긴 인간이 겪는 공포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귀궁>은 조금 다르다. 강철이라는 이무기의 인간 체험처럼 그려지기 때문이다. 윤갑의 몸으로 들어온 후 강철이는 죽 한 그릇에도 환장하는 미각을 경험한다. 갖가지 음식 맛에 눈뜬 강철이는 천상을 나는 듯한 쾌감을 경험한다. 

 

미각만이 아니다. 뜨끈한 온돌에서 등을 지지는 경험을 한 강철이는 잠자리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그 감각의 제국에 빠져든다. 궁궐에 가서도 그 곳의 화려한 장식들에 눈호사를 하고 푹신한 방석의 편안함을 즐긴다. 그러니 여리가 별 생각도 없이 열이 있는 것 아니냐며 얼굴을 만질 때 심장이 쿵쾅대고 볼이 빨개지는 건 당연지사다. 알고보면 여리가 어려서부터 산길 호랑이를 번개로 쫓아버릴 정도로 강철이는 여리에 대한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사랑의 감정이란 결국 서로의 체온과 감각을 나누는 몸이 있어야 불이 붙는 것이었다. 

 

윤갑의 몸에 들어간 이무기 강철이가 그 몸의 감각과 이를 통한 교감을 통해 여리에게 감정을 느끼는 상황은 그래서 <귀궁>에서는 반전의 이야기를 예고한다. 애초 윤갑의 몸을 이무기 강철이가 차지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 상황은 거꾸로 이무기가 윤갑의 몸에 갇힌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여리가 찾아간 가섭스님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한데 어쩌다 죽은 인간의 몸에 저리 옴짝달싹 못하게 갇히게 됐누?”

 

즉 윤갑의 몸을 통해 인간의 감각과 욕망을 경험하게 된 강철이는 그 몸에 갇힌 채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 그 감각을 통해 여리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가는 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하려는 마음 또한 간절해진다. 여리를 통해 경험하고 알게 되는 인간에 대한 공감은, 이 이무기 강철이가 인간을 해코지 하려는 팔척귀 같은 악귀와 그 악귀를 불러내는 풍산(김상호) 같은 사악한 술사와 맞서게 되는 이유가 된다. 

 

<귀궁>이 신박하게 느껴지는 건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네 무속의 한 면들을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내림굿을 받지 않았지만 여리는 무당이 될 팔자인 영매다. 자신을 몸주신으로 받아들이라며 13년 간이나 따라다닌 이무기 강철이를 거부해왔지만 윤갑을 되살리기 위해 그녀는 강철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즉 <귀궁>은 무속인이 인간을 구하기 위해 몸주신을 받아들이고 사악한 무리들과 싸우는 이야기를, 여리의 윤갑에 대한 사랑(무속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 강철이의 여리에 대한 마음(신의 인간에 대한 이해), 여리와 강철이가 힘을 합쳐 팔척귀와 벌이는 사투(무속인이 신을 불러 인간을 구하는 과정)로 그려낸다. 

 

그래서 혐관 로맨스와 휴머니즘이 더해지고 퇴마 판타지까지 넘나드는 <귀궁>은 그 재미를 통해 우리네 무속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도 담고 있다. 다양한 장르적 결이 더해져 있고 가벼움과 진지함을 오가는 작품이지만, 육성재, 김지연, 김지훈, 김상호, 김인권 등등 연기자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가 이물감 없이 이 다양함을 잘 엮어내고 있다. 특히 여러 전작들에서 1인2역 연기를 줄곧 해왔던 육성재와 달달함과 절절함을 오가는 김지연이 보여주는 연기앙상블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사진:SBS)

‘천국보다 아름다운’으로 손석구와 부부가 된 김혜자의 새 얼굴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러고 돈 버는 걸로 너네 부모 내복 사드렸니?” 험상궂은 조폭들이 빚독촉을 하러 온 집에서 해숙(김혜자)은 빚진 아들은 한강에 갔고 자신은 가진 게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강짜를 놓는다. 결국 “똥 밟았다”며 조폭들이 포기하고 돌아가자 해숙은 본색을 드러낸다. 조폭들은 해숙이 그 집에 사는 남자의 엄마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해숙 또한 그 남자가 빌려쓴 돈을 받으러 온 일수꾼이다. 그 남자에게 자기가 “사람도 죽인다”며 칼을 뽑아 들자 남자는 가진 돈을 털어 놓는다.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이 첫 장면은 김혜자라는 배우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얼굴을 갖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저 조폭들이 그러했듯이 ‘엄마의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금세 돈 받으러온 일수꾼의 냉혹한 모습으로 얼굴을 갈아 끼운다. 물론 목소리는 김혜자 특유의 나긋나긋한 톤 그대로지만, 측은했다가 화를 냈다가 자포자기 한 표정에서 험한 표정을 짓는 그 변화 속에서 이 인물이 주는 감정은 계속 바뀐다. 이것이 바로 김혜자라는 배우가 부리는 연기의 마법이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해숙은 실로 여러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다. 험하게 일수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남편 고낙준의 병수발 때문이라는 건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빚을 받으러 갔다가 아빠에게 학대받던 영애를 빚대신 데려다 딸처럼 키워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코미디와 판타지도 뒤섞여있다. 해숙의 삶은 힘겹기 그지없고, 그래서 결국 남편도 죽고 자신도 죽게 되는 비극이지만 드라마는 이들이 천국에서 다시 만나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그래서 처절한 삶의 비극은 가볍고 발랄한 희극과 겹쳐지고, 무겁디 무거운 삶의 현실은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운 죽음의 판타지를 오간다. “하루 같이 살면은 하루 더 정이 쌓여서 예쁜 건가? 지금이 우리 마누라 제일 예뻐요.” 죽기 전 남편이 했던 그 말 때문에 80의 나이를 선택한 해숙은, 천국에서 만난 젊은 나이를 선택한 고낙준(손석구) 앞에서 아연실색한다. 80의 몸으로 천국에서 젊은 남편과 함께 살아가게 된 해숙 앞에 갑자기 나타나 남편의 품에 안기는 젊고 예쁜 솜이(한지민)가 등장하면서 나이를 뛰어넘는 삼각관계(?)가 예고된다.

 

이처럼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희비극이 얽혀있고, 그래서 비극이 희극처럼 그려지는 드라마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묵직한 비극의 예감을 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다름 아닌 김혜자가 연기하고 2019년작 ‘눈이 부시게’의 제작진인 이남규 작가와 김석윤 감독이 뭉친 작품이기 때문이다. ‘눈이 부시게’ 역시 20대의 나이에 시간여행을 하는 혜자(한지민)가 시간을 잘못 돌려 70대 노인이 되며 벌어지는 코믹한 해프닝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이 70대 노인 혜자(김혜자)의 치매 증상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죽어서 천국에 간 혜자가 그 곳에서 만나게 되는 생전의 인연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참이다. 결국 죽음 이후의 천국의 삶을 그리지만, 죽음 이전의 삶에 담긴 애환 가득한 이야기가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즉 천국의 삶은 웃음이 터지는 희극이지만, 거기서 환기되는 현실의 삶은 비극일 가능성이 높다. 

 

삶과 죽음, 희극과 비극,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그래서 김혜자에게도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벌써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현역 최고의 배우로 살아가는 그녀는 마치 ‘변검’을 하듯이 여러 얼굴들을 순간순간 갈아끼우며 이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는 드라마를 종횡무진한다.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한 소녀 같은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나이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자애로운 엄마의 얼굴과 더불어, 때론 정반대로 냉혹하고 살벌한 얼굴로 변하기도 한다. 실로 김혜자가 지금껏 연기해온 여러 작품 속 인물들의 다양한 얼굴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김혜자는 ‘국민엄마’라는 칭호를 얻은 배우였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은 바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 간 방영됐던 ‘전원일기’다. 그 작품에서 엄마 역할을 하며 매주 얼굴을 내밀었으니 시청자들에게 김혜자가 국민엄마로 각인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에게 고정된 이미지만큼 큰 리스크는 없다. 김혜자는 그걸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배우이기도 하다. 91년에 방영됐던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가부장적인 남편 때문에 기죽어 살면서도 소심한 복수를 하는 당대의 엄마 역할로 변신했고,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가사노동 파업선언(?)을 하는 엄마의 파격을 보여줬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는 광기어린 모습으로 모성애의 끔찍함을 드러내는 연기를 통해 ‘국민엄마’라는 칭호에 갇히지 않는 배우의 공력을 드러냈다. 이 작품으로 김혜자는 아시아 배우 최초로 LA비평가협회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기억을 잃어가는 노년의 희자 역할이나,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라는 엔딩 내레이션으로 유명한 ‘눈이 부시게’의 혜자 역할, 그리고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온 동석 엄마를 소화하며 같은 엄마 역할도 다양한 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김혜자는 손수 증명해 보였다. 그러니 ‘천국보다 아름다운’ 같은 다채로운 얼굴을 요하는 작품 속에서도 별다른 이물감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연기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간 연기로 쌓아온 이 많은 엄마의 얼굴들이 자유자재로 꺼내지고 있다고나 할까. 

 

사실 연기라고는 하지만 손석구와 부부 연기를 한다는 것이 쉬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석구 앞에서 토라지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소녀 같은 김혜자의 모습은 나이가 주는 편견 또한 깨주기에 충분하다. 나이 들면 여자가 아닌 아내나 엄마로 불리고, 또 남자가 아닌 남편이나 아빠로 불리는 그 역할이 당연하다 여기는 건 얼마나 큰 편견인가. ‘국민엄마’라 불려도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얼굴이 아닌 다채로운 얼굴로 떠올리게 만드는 김혜자를 보다보면, 누군가를 그저 하나의 역할로 고정시켜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글:국방일보,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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