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 기안장’, 기안84의 상상을 현실화한 진의 실행, 지예은의 찐공감

대환장 기안장

“나도 울릉도 구경가고 싶다.”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에서 기안84는 창밖으로 펼쳐진 울릉도의 풍광을 보며 말한다. 화창한 날씨에 더더욱 빛나는 울릉도의 풍광이다. 그러자 옆에 앉은 지예은이 신세한탄하듯이 말을 덧붙인다. “나도, 울릉도 왔는데...” 그러자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기안84의 마음이 흔들린다. “우리 한 번만 어디 갔다 오면 안될까?” 기안84의 말에 지예은은 발까지 동동거리며 “한번만 가자”고 애원한다.

 

그런데 기안84가 그렇게 말하며 눈치를 보는 건 다름 아닌 진이다. 사장이 기안84이고 진은 사원(?)이지만, 오히려 기안84가 진의 눈치를 보는 건 요령이나 타협 따위는 없이 원칙을 고집하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장님 놀러왔어?” 그 말에 지예은이 “그럼 우리는 구경도 못해?”라고 묻자 진의 단호한 한 마디가 이어진다. “못하지. 우리는 일하러 온 거고 이분들이 구경하러 온 건데. 우리는 놀러온 게 아니야.”

 

결국 기안84는 꼬리를 내린다. “그래, 놀러온 게 아니지.” 그리고 반성한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네가 잡아줘서 너무 고맙다. 야, 진짜 너 아니었으면 이 봉도 없어지고 1층에 문도 뚫고 지금 다 했을 텐데.. 세탁기 하나 장만하고... 근데 그건 기안장이 아니야.” 단호한 진에 굴복하며 사죄하는 기안84의 모습에 손님들은 빵 터진다. 혹여나 울릉도 구경이라도 갈 줄 알았던 지예은의 짜증 가득한 투덜거림에 또 한번 웃음이 터진다. 

 

이 장면은 <대환장 기안장>의 완벽한 케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기안84조차 자신이 웹툰처럼 상상한 기안장이 실제로는 어떨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래서 막상 처음 기안장에 왔을 때만 해도 자신조차 황당하고 불편한 그 곳에서 자꾸만 타협하고픈 마음을 먹게 됐다. 자신 혼자 불편하다면 상관없는데, 자신의 상상으로 손님들이 불편해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약해진 것. 

 

마침 목수인 손님이 오자 벽을 뚫어 2층과 1층을 봉으로 오르락 내리락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면 어떨까 기안84가 고민했지만, 그 때 진이 나서 결사반대했다. 그건 기안장의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실로 기안장에 투숙하겠다며 지원한 손님들이라면, 저마다 기안84식의 하룻밤을 기대했을 터였다. <효리네 민박> 제작진이 만들었지만 기안84가 출연하니 <효리네 민박> 지옥편이 될 거라고 지원자들이 예상했던 건 그래서였다. 

 

실제로 “너무 쉽게 집에 들어가는 게 꼴보기 싫었다”며 2층으로 난 문을 설계했던 식으로 기안장에는 기안84가 키득거리며 내놓은 상상들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르내리는게 불편해서 내려올 때 쓰는 슬라이드로 올라가는 걸 손님들에게 허용할까도 고민했던 기안84였다. 그 때마다 그걸 막은 것도 진이었다. 진은 문지기를 자청해 슬라이드로 오르려는 이들에게 다시 내려가서 제대로 클라이밍을 해 문으로 들어오라고 지적하곤 했다. 

 

상상은 기안84가 했지만 그걸 원칙 그대로 굴러가게 만든 건 그래서 진의 역할이 지대했다. 기안84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그는 사장이 흔들릴 때마다 멘탈을 잡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치거나 일정 때문에 사장이 부재할 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든든한 역할을 했다. 매끼 손님들이 요구하는 음식을 맛나게 요리해주고, 기안84가 부재할 때 손님들과 광란의 밤(?)을 즐기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은 그가 왜 월드클래스인가를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애초 기안84와 함께 그가 사는 방식을 함께 살아보고 싶다며 이 프로그램에 자원한 진은 그 선택 그대로 요령 없이 기안84의 삶 그대로를 체험한 셈이었다. 힘들고 불편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있어, 이 힘겨움과 불편은 낭만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지예은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찐 공감’ 역시 세 사람의 케미에 균형을 맞춰줬다. 기안84와 진이 ‘낭만’ 운운하며 힘든 상황들을 감당하려 할 때, 지예은은 MZ대세 다운 솔직한 투덜거림으로 이 상황이 얼마나 힘든가를 공감하게 했다. 과도한 낭만으로만 기울어졌다면 감흥이 덜했을 이 체험에 현실적인 찐 공감으로 균형감을 줬다고나 할까. 

 

<대환장 기안장>은 기안84의 웹툰적 상상력과, 진의 원칙을 지키는 실행력 그리고 낭만으로 붕붕 떠오르는 기안장에 지예은이 현실감을 부여하는 찐 공감이 더해져 완성됐다. 9편으로 마무리된 시즌1은 사실상 이 실험적인 도전의 적응기에 가까웠다. 적응할만 하니까 끝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시즌2로 돌아온다면 적응기에서 한 발 더 나간 기안장의 이야기를 보고싶다. 물론 기안84와 진, 지예은이 만들어낸 완벽한 앙상블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사진:넷플릭스)

‘천국보다 아름다운’ 슬픈데 웃기고, 천국인데 현생이 떠오르는 역설

천국보다 아름다운

“스릴러로 살다가 갑자기 교육방송이 되니까 이건 적응하기가 참...”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해숙(김혜자)은 너무나 밝고 학구적인 분위기의 천국지원센터를 보며 그렇게 말한다. 그녀는 죽었다. 그리고 영락없이 지옥에 갈 줄 알았다. 스스로 ‘스릴러로 살았다’고 말했듯, 그녀의 삶은 지독하기 그지 없었고 그래서 시장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오물을 쏟는 일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험한 일수 일을 해왔고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남의 집에 드러눕는 게 일상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서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게 당연하다 여겼는데 웬일로 천국에 가게 됐다. 문제는 천국에서 몇 살로 살거냐는 질문에, 남편 고낙준이 생전 “지금이 가장 예쁘다”고 했던 말만 믿고 “80”이라고 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나이 그대로 팔순의 몸이 되어 천국에 먼저 가 있는 남편을 찾아갔는데, 고낙준(손석구)은 젊은 시절의 나이로 돌아가 있었다. 생전에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던 몸도 생생하게 회복되어 이제 달릴 수도 있는 몸으로 바뀌었다. 해숙의 천국행은 순식간에 지옥 같아졌다. “네가 그랬잖아. 네가 이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자며. 왜 나만 이런데? 이딴 게 무슨 천국이야. 이럴 바엔 차라리 지옥이 나았겠다. 이 나쁜 자식아!”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생전에 절절히 사랑했던 해숙과 낙준이 둘다 차례로 죽어 천국에서 다시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당연히 천국이 등장하는 판타지지만, 여기 나오는 천국은 어딘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비슷하다. 처음 천국에 와서 적응이 안되는 이들을 위한 천국지원센터가 있고 그 곳에는 ‘소울리스좌’처럼 AI 안내를 해주는 직원도 있고 그 곳의 수장인 센터장도 있다. 물론 천국이니 현생과는 다른 판타지도 있다. 생전에 사별했던 이들이 다시 만나 살아가고, 먹고 싶은 건 상상만 하면 먹을 수 있다. 물론 생전에 했던 좋은 일이 손에 통장의 돈처럼 쌓여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천국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지만, 이 드라마에는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현생들이 겹쳐진다. 천국으로 가는 입국심사대 같은 곳에서 한 소방관은 손에 쥔 방독면을 쥐고 놓지 않는다. 그건 화재 현장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끝까지 구하려 했던 소녀에게 씌워진 방독면이다. 자신의 죽음보다 소녀의 안위가 궁금한 이 소방관은 쓰러진 자신에게 방독면을 벗어 씌워준 소녀 역시 그 곳에 오게 됐다는 걸 알고 미안함의 눈물을 쏟아낸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보육원에 보낸 걸 평생 후회하며 돈을 모았지만 아이에게 전하지 못한 채 죽어 그 돈을 꼭 아이들에게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엄마, 며느리 병수발을 한 시어머니에게 다음생에는 꼭 자기 아이로 태어나달라고 해서 아이와 엄마로 다시 만난 시어머니와 며느리, 앞못보는 시각장애인을 옆에서 돕다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 천국의 이야기에는 현생에 그들이 살아왔던 가슴 먹먹한 삶들이 묻어난다. 

 

해숙의 삶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마치 스릴러 속 빚쟁이처럼 살벌하고 독한 그녀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모두 평생을 병수발해온 남편 낙준과의 생계를 위한 것이었다. 정작 마음이 소녀 같은 해숙은 그래서 빚쟁이 집에 갔다가 학대 당하는 아이 영애를 끝내 무시하지 못하고 빚 대신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낸다. 독하게 일수를 받아내는 삶을 살았지만, 약하고 착한 이들 앞에서는 한없이 여린 해숙이었다. 그것이 지옥이 아닌 반전의 천국행을 하게 된 이유다. 

 

이처럼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역설의 드라마다. 천국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현생이 계속 떠오르고,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삶이 떠오른다. 죽음이라는 비극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죽음 이후에 계속 이어지는 삶의 희극이 담겨 있다. 본래 희극과 비극은 원근의 차이일 뿐이라던가.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그래서 슬픈데도 웃기고 웃기다가도 슬픈 기묘한 희비극의 풍경들을 펼쳐 놓는다. 

 

<눈이 부시게>로 노년의 삶을 시간여행의 판타지로 엮어 처음에는 웃기다가 그다음에는 설레고 끝내는 먹먹하게 만든 희비극의 역설을 보여준 이남규 작가와 김석윤 감독은, 이번에도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희비극으로 돌아왔다. 역시 <눈이 부시게>에서 손발을 맞춘 김혜자와 한지민, 이정은이 함께하고 여기에 손석구까지 더해진 드라마는 이제 천국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참이다. 실로 걱정없이 살기 좋은 천국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곳에 오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더욱 아름다운 그 세계는 현생을 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궁금하고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진:JTBC)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민하의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까

내가 죽기 일주일 전

“봄이 제일 힘들다.” 티빙 드라마 <내가 죽기 일주일 전>에서 정희완(김민하)이 하는 이 말은 역설적이다. 만물이 피어나는 봄을 정희완이 제일 힘들게 여기는 건, 죽은 김람우(공명) 때문이다. 좋아했지만 람우는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희완은 대학을 갔지만 4년 간 세상과 문을 닫고 살았다. 람우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탓하며. 모든 게 피어나야할 청춘의 시기에 맞이한 람우의 죽음으로 희완은 그 청춘을 제일 힘든 나날들로 보내고 있다. 

 

“그 중의 4월은 최악이다.” 희완은 그 중의 4월. 그것도 4월1일 만우절을 최악으로 생각한다. 교생선생님을 속이기 위해 람우와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친구들도 선생님도 그들을 바꾼 이름을 부르게 됐고, 나중에는 그들 자신들도 바꾼 이름에 고개가 돌려게 됐던 그 일 때문이다. 물론 그 이름 바꾸기는 희완과 람우 모두 학창시절 가장 재밌던 일이었지만, 람우의 죽음은 그 재밌던 일을 악몽으로 바꿔 놓았다. 희완은 자신이 당첨된 별똥별 보기 천문대 행사에 람우를 대신 보냈다. 평소 별똥별을 보고 싶어하던 람우에게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는 선물이라며. 하지만 그 천문대에 난 화재로 람우가 죽었다. 

 

아름답고 빛나던 삶의 순간들은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는 가장 힘든 기억이 되기도 한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바로 그 빛나던 청춘의 순간들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삶의 의지조차 잃어버린 희완 앞에 어느 날 문을 두드리고 찾아온 람우의 이야기다. 람우는 자신이 저승사자라며 대뜸 희완에게 일주일 후에 너는 죽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람우는 그 남은 일주일 동안 그간 못해본 것들,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하자고 한다. 2인용 자전거 타기, 클래식 공연 보기, 패러 글라이딩 하기 같은 것들을 하게 되지만 그건 희완이 아닌 람우의 버킷리스트다. 

 

희완 앞에 나타난 저승사자 람우라는 존재는,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이라는 드라마를 하나의 판타지로 보이게 하지만 그건 절망의 끝에 서 있는 희완이 이제 더 이상 못버티겠는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처럼 읽히기도 한다. 즉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이제 삶이 너무 버거워 삶을 끝장내려는 희완이 마지막 일주일 동안 람우와의 기억들을 되새기고 남은 이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정리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희완 역할의 김민하는 연기의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매력을 발휘하는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김민하의 화장기 하나 없어 주근깨조차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꾸밈 없는 모습은 희완 그 자체로 보인다. 그 빈 도화지 같은 희완의 모습 위에 김민하는 삶의 생기와 죽음의 허무를 한 인물 안에서 끌어안아 그려낸다. 그래서 이 작품 속 김민하를 보다보면, 청춘의 발랄함과 그 이면을 가로지르는 삶의 유한함이 겹쳐지며 웃다가고 울게된다. 

 

김민하가 연기로 보여주듯 삶과 죽음은 이란성 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있다. 학창시절 설레던 사랑과 따뜻했던 우정으로 빛나던 삶은 죽음 앞에서는 더더욱 아련해진다. 정반대로 사라져 버린 죽음 앞에서 삶의 기억들을 더더욱 찬란하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이 삶과 죽음의 변주를 담아낸다. 그래서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이 드라마는 삶의 활기와 발랄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학창시절 이들이 얼마나 빛났고 행복했던가를 희완은 저승사자로 나타난 람우와 함께 기억해내고, 그 행복한만큼 사라진 시간들의 회한을 느낀다. 

 

드라마는 희완과 그녀의 앞에 저승사자로 나타난 람우가 일주일 간 티격태격하면서 보내는 시간들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희완의 환영이라고 생각하면 이 밝은 시간들이 얼마나 절절한 아픔과 슬픔으로 채워져 있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이름을 서로 바꿔 지내며, 서로의 이름으로 살아왔던 그들이다. 이렇게 저승사자로까지 나타나 희완에게서 떼어지지 않는 람우의 모습은 너무나 이해되면서도 아픈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날밤 이후로 나를 용서할 수가 없어. 그런데 네가 내눈앞에 이렇게 나타나 있으니까 순간순간 니가 진짜로 살아 있다고 기대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 왜 옛날처럼 나한테 잘해주 고 웃어주고 나 때문에 니가 죽은 일이 없는 것처럼 구는 건데? 도대체 너 나랑 뭐하고 싶은 거야, 진짜?” 

 

희완은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적이지만 그런 그녀에게 람우는 말한다. “정희완. 좋아해 희완아. 나 너 많이 좋아했어. 지금도 좋아해. 미안해 너무 늦게 말해줘서. 내가 널 어떻게 미워해? 니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많이 보고 싶어서.” 그건 람우가 못다한 말이면서, 희완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게다. 일주일 후에 희완이 죽는다는 람우의 말은, 희완 스스로 일주일만 살겠다는 의미였을 게다. 

 

하지만 그 일주일 동안 저승사자로 나타나 람우와 보낸 시간 속에서 희완은 생각대로 끝을 맞이할까. 어쩌면 람우와의 빛나던 기억들이 희완이 놓으려하는 삶의 끈을 다시 쥐게 하지는 않을까. 죽음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고통이지만, 망자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그래도 살게 해주는 희망일 수 있지 않을까. 웃으면서도 눈물이 나고, 그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진:티빙)

대환장 기안장

“사람들이 집에 쉽게 들어가는 게 싫었거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기안84가 상상해 지은 민박집의 문이 2층 꼭대기에 달려 있는 이유가 그렇단다. 기안84가 슥슥 상상해서 그려놓은 민박집 기안장은 들어가려면 벽에 만들어놓은 클라이밍을 해서 문까지 기어 올라가야 한다. 어떻게든 들어가보려 클라이밍을 시도하던 직원 역할의 진이 진입에 실패하고 기안84가 실소를 터트리며 하는 그 말에 또 다른 직원인 지예은이 투덜댄다. “아 집에 못들어가잖아요.” 

 

이것은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의 기막힌 민박집 광경이다. 바지선 위에 지어져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민박집은 일단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잠도 테라스처럼 생긴 바깥에 고치처럼 매달려 자야한다. 그래서 비라도 오면 쫄닥 젖을 수밖에 없다. 가까스로 클라이밍을 해 들어가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야 숙소 겸 주방이 있는데 거기도 계단 따위는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따온 오르내리는 봉이 있을 뿐이다. 그 봉을 타고 내려갔다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올라오려면 다른 사람들이 밑에서 받쳐주고 올려주고 해야 하는 생고생이 펼쳐진다. 물론 야외에 워터슬라이드까지 갖춰진 ‘5성급’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걸 타고 내려오면 바다로 뛰어들게 되어 있다. 이러니 이런 상상을 구현해놓은 기안장 앞에서 푸념이 터져나올 수밖에.

 

기안장이 이런 모습을 갖게 된 건, 기안84가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마구 그려낸 ‘낭만’의 결과다. 클라이밍이 숙소에 쉽게 들어가는 게 싫었다는 다소 위악스런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2층과 1층 사이를 연결하는 봉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낭만이 만들어낸 결과다. 고치처럼 매달려 자는 잠자리는 밤 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잠든다는 낭만이 빚어낸 것이고, 워터슬라이드도 숙소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낭만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만화적 상상이 현실과 마주하면 어떤 불협화음을 낼 것인가. ‘대환장 기안장’은 바로 이 지점을 예능적 재미의 포인트로 만들었다. 

 

진짜 현실이라면 이런 민박집이 가능할 리가 없지만 그 상상을 진짜 울릉도 앞바다에 구현해낸 건 우리에게는 ‘효리네 민박’으로 잘 알려진 제작진의 공이다. 정효민 PD와 윤신혜 작가의 이 합작품은 그래서 ‘효리네 민박’의 기안84 버전처럼 보인다. 기안84와 월드스타 방탄소년단의 진 그리고 ‘SNL코리아’의 뜨는 별 지예은이 운영하는 기안장에 일반인 투숙객들을 모집해 함께 지내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은 정반대다. ‘효리네 민박’이 힐링 그 자체였다면 ‘기안장’은 ‘킬링’에 가까우니까.

 

실제 현실이 다르다는 건 울릉도에 첫 입도한 세 사람이 마주한 태풍 앞에서다. 바다 위에 떠있는 기안장에서 지낼 수 없게된 이들은 대안으로 마련해 놓은 산 속 별장(?)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이 곳 역시 만만찮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아슬아슬한 레일 위를 기묘한 기구를 타고 들어가야 하고, 주방과 옛 군대 내무반 같이 꾸려진 잠자리가 한 공간에 있는 숙소는 굴뚝없는 아궁이 때문에 요리를 하면 연기에 질식할 것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젠틀하고 긍정적인 진의 입에서도 “인간아-”라는 볼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첫 손님들 역시 그 불편함에 역시 기안84라는 긍정과 이건 너무했다는 부정이 오간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는 여행과 편안한 숙소에 대한 기대를 깨버리는 이 불편함 속에서 간간히 기안84식 낭만이 고개를 든다. 불편한 잠자리를 보내고 맞이하는 아침에 저편 밑으로 펼쳐진 압도적인 바다풍경이 그렇고, 배 위 야외에서 하늘에 지천으로 떠있는 별자리들이 그렇다. 그 불편함은 숙소들이 편리함을 추구하다보니 지워낸 자연적인 것들을 오롯이 다시금 눈앞으로 끌어내는 요소가 된다. 또 프라이빗을 강조하는 숙소들이 투숙객들 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것과 달리 이 곳은 뭐 하나를 해도 같이 해야 하는 새로운 경험들이 생겨난다. 

 

물론 날 것의 만화적 상상을 구현하다 보니 다소 위험해 보이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것 또한 우리가 편리함과 안전함 속에만 있다 보니 느끼는 위화감이 아닐까 싶다. 기안84의 만화적 상상은 그렇게 우리의 인공적인 편리함에 갇힌 삶을 오히려 되돌아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 물론 그 자체가 주는 포복절도의 웃음과 재미도 빼놓을 수 없지만.(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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