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제목 논란 여전한 진짜 이유

 

제목은 <최고다 이순신>이지만 이 드라마를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물론 늘 그래왔듯이 시청률에서는 최고다. 하지만 이 관성적인 시청률이 작품의 질을 얘기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일일 게다. 이순신 장군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터지고, 거기에 대한 꽤 세세한 해명들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최고다 이순신'(사진출처:KBS)

먼저 <최고다 이순신>의 전작들이 만들어놓은 KBS 주말극에 대한 기대감이 이 드라마의 실망감을 더욱 크게 한 원인일 수 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내 딸 서영이>는 기존 주말드라마의 공식을 살짝 뒤틀어버림으로써 화제를 모았던 작품들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기존 가족드라마가 늘 그리던 시월드의 세계를 며느리의 시각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신선함을 안겨주었고,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와 딸이 대립에서 소통하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서 신구세대를 끌어안는 드라마가 되었다.

 

반면 <최고다 이순신>은 다시 이들 드라마가 나오기 이전으로 퇴행한 듯한 설정의 드라마다. 출생의 비밀이 바탕에 깔려 있고, 미운오리새끼 모티브에 신데렐라 이야기 게다가 전형적인 딸 부잣집의 결혼 이야기까지 들어 있다. 즉 출생의 비밀을 안고 미운 오리 새끼로 지내던 이순신(아이유)이 가비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신준호(조정석)를 만나 신데렐라가 되어가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주요 얼개다. 여기에 이순신의 친모인 톱 연예인 송미령(이미숙)과의 관계가 드라마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식상할 법도 한 전형적인 틀에 박힌 이 드라마를 위해 사용된 두 가지 방법은 캐스팅을 신선하게 가져가는 것과 초반 자극적인 설정과 대사를 통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아이유와 조정석이라는 캐스팅은 사실상 이 드라마로 채널을 돌리게 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다. 물론 조정석은 역시 탄탄한 연기의 소유자지만 아이유는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의 연기는 아니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어쨌든 이 두 인물의 조합이 이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허술한 구성에 KBS 주말드라마라고 하기엔 자극적인 장면과 대사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순신의 둘째언니인 유신(유인나)은 이 드라마의 초반 자극적인 상황을 거의 떠맡은 인물이다. 툭하면 배다른 동생이라는 걸 이유삼아 순신을 구박하고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조차 순신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는 역할이 유신이다. 게다가 그녀는 술자리에서 비롯되어 박찬우(고주원)와 원 나잇 스탠드를 하기도 한다. 가족들이 둘러 앉아 보기에는 다소 자극적인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회사 말고 독도나 지키라”라는 대사나 극중 이순신에게 신준호가 던지는 “이 100원짜리야”라는 대사는 물론 이순신이 처한 상황을 극대화시키고, 신준호라는 인물의 까칠함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이 나오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빗대서 사용할 정도로 괜찮은 완성도나 신선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과 신데렐라 이야기에 원 나잇 스탠드 같은 자극적인 장면들까지 끼워 넣은 이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차가운 반응은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제목에 걸맞는 최고의 드라마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제목은 이제 이 드라마의 족쇄가 되었다.

<정글>, 행복은 단순한 먹거리에서부터

 

해변 바닥을 가득 메운 전복은 보기만 해도 풍족한 마음을 갖게 했을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오지인 줄 알았던 채텀섬이 알고 보니 거대한 성게와 흑전복 밭이라는 걸 알게 된 것. <정글의 법칙(이하 정글)>의 병만족은 성게와 전복을 원 없이 먹었고, 남은 전복 몇 개를 박보영은 라면, 김치와 물물교환 했다. 그러자 이제는 김치와 전복을 넣은 전복라면이 한 상 걸판지게 차려졌다. 최근 이른바 먹방이 뜨고 있다지만 그 중 최고를 뽑으라면 아마도 이 <정글>의 식사장면이 아닐까 싶다. 조촐하기 그지없지만 한없이 풍족하게 느껴지는.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우리는 흔히 의식주라고 말하지만, <정글>에서는 그 의식주가 해야 될 일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채텀섬에 들어가 잠자리로 동굴을 확보한 병만족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먹거리를 확보하고 요리를 해먹는 일이다. <정글>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그래서 거의 이 먹거리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채텀섬에 지천으로 널렸지만 너무 빨라 잡기가 어려운 런닝새(?) 웨카를 잡는 이야기가 반을 채우고 나면, 나머지 반은 그 웨카를 요리해 먹는 이야기가 채워진다. 그토록 힘들게 잡았지만 의외로 질기고 기름기가 많은 웨카는 병만족의 기묘한 리액션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박보영이 “내일은 물고기 잡아요”라고 하는 말은 그렇게 질긴 웨카 한 끼의 고생을 한 연후이기 때문에 더 실감이 난다. 상처까지 나는 걸 감수하면서 하루 종일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그래서 더 흥미진진해진다. 결국은 썰물이 나가고 어둑어둑해지면서 포기하고 돌아오는 병만족의 어깨가 더 쓸쓸해 보이는 것도 그 공복감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우연히 해변에서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은 노우진이 한껏 흥분하다가 고기를 놓치는 장면이 더없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것도 마찬가지다.

 

먹방이 화제가 된 것은 연예인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심지어 우악스럽게 보일 정도로 맛있게 음식을 먹는 장면이 주는 그 인간적인 친밀감 때문이다. 복스럽게 먹는 장면은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들지 않는가. <정글>이 사실상 최고의 먹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생존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먹어야 살 수 있는 만큼, 먹거리를 찾는 것에서부터 그것을 요리하는 과정이 먹방의 전주곡이 된다면 실제 요리를 먹는 장면은 먹방의 절정이 된다. 그 최고의 연출자는 다름 아닌 배고픔이다.

 

게다가 한 끼 식사를 하고 난 뒤 난데 없이 이어지는 트림 릴레이는 이 먹방의 후식에 해당하는 즐거움이다. 처음에는 트림 소리에 기겁을 하던 박보영까지 귀엽게 트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리키 김은 ‘말하면서 트림하는’ 새로운 재능(?)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 원초적인 체험에서 그들을 힘겹게 하는 것도 먹거리의 문제지만 그들을 또 행복하게 하는 것도 먹거리에서 비롯된다.

 

손만 뻗으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음식들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그런 소소한 식사의 즐거움은 어쩌면 점점 잊혀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라면 한 개, 물 한 통의 소중함을 하나하나 느낄 때, 또 그걸 조리할 수 있는 그릇이나 렌지의 편리함을 새삼 깨달을 때, 음식이 주는 고마움과 감흥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글>은 그 원시적 자연 속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먹방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풍요가 주는 향락이 아니라, 오히려 빈곤이 주는 소중함이다.

<보코>, 오디션 하나하나가 다 작품이구나!

 

오디션 트렌드는 이제 끝났다? 아마 그럴 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면서 그 소비도 빨라졌고 노래하고 점수주고 합격자와 탈락자를 가르는 그 과정 자체가 이제는 식상하게 마저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보이스코리아>는 예외인 것 같다. 마치 파면 팔수록 계속 고이는 우물물처럼 <보이스코리아>가 선보이는 무대의 매력은 예측 불가다. 이유는 단 하나다. 개성적인 보이스들이 만들어내는 거의 완벽한 작품에 가까운 무대.

 

'보이스코리아'(사진출처:mnet)

코치들이 자신들의 팀을 뽑는 블라인드 오디션이 개성적인 보이스들을 가려내는 일종의 음악 재료(?) 선정의 시간이라면 이들 보이스들을 결합시키는 콜라보 미션은 이 재료를 절묘하게 섞어 완벽한 한 상을 차려내는 시간이다. 따라서 블라인드 오디션에서 기성 가요계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놀라운 개성에 깜짝 놀랐다면, 콜라보 미션은 그 하모니를 통해 드러나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된 기량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개성적이면서도 준비된 보이스들이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보컬리스트를 뽑는다는 이 오디션만의 명확한 차별성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김현지와 윤성호가 부른 ‘피리 부는 사나이’는 개성과 개성이 만난 무대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송창식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는 전혀 다른 소울풀하고 완급을 넘나드는 그루브는 거의 완벽한 그들만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가능하게 했다. 코치들이 전부 기립하고, 거미가 “오늘 떨어지든 스카우트가 되든 저희랑 같이 꼭 오래 음악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건 아마도 진심이었을 게다. 그것은 이들의 무대가 더 이상 오디션 무대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자신의 음악세계를 선보이는 무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송푸름, 김인형, 이진실이 부른 싸이의 ‘새’는 한없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다가 ‘Venus'와 접목되면서 빠른 템포로 변환되며 절정으로 이어지는 완전히 다른 노래로 탈바꿈되었다. 김민지와 박의성은 라디의 ‘I'm in love'를 마치 가사 한 줄 한 줄을 씹어 삼키듯 부르다가 하나의 하모니로 이어 붙였고, 서서히 자유자재로 리듬을 타는 놀라운 기교를 보여주었다. 그 무대에 거미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빠져들었다.

 

김우현과 김은지가 부른 샤이니의 ‘셜록’에 대해 사회를 보는 김진표가 “누가 떨어지든 간에 패자가 없는 무대”라고 하거나, 블라인드 오디션에서 올턴녀가 된 유다은과 이시몬이 부른 ‘봄비’에 대해 백지영 코치가 “박빙의 승부”라고 하는 말들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여겨지는 건 이들의 실력이 이미 기성 가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어떤 면에서는 훨씬 나은) 기량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경쟁을 초월한 감동’이라는 표현은 <보이스코리아>의 배틀 라운드 오디션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일 것이다. 참가자들은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고, 코치들은 그 무대를 즐겼다. 그래서 그들이 노래하는 순간에 오디션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속성은 잠시 저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 오디션이 무대에 선 참가자들을 오돌오돌 떨게 만든다면 <보이스코리아>는 오히려 너무 뛰어난 무대를 선보인 참가자들 중 누구를 뽑을 것인가로 코치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러니 ‘누가 떨어지든 간에 패자는 없는 무대’가 되는 셈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정말 너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모두 소진된 것은 아니다. 그걸 증명해주는 게 바로 <보이스코리아>가 아닐까.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이미 준비된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완벽한 무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참가자와 코치 사이의 교감 위에서 그 쇼를 온전히 즐기게 해준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물이라고? 천만에. 오디션 끝판왕 <보이스코리아>를 보라.

'그 겨울', 이미 해피엔딩인 이유

 

멜로라는 장르는 그저 판타지에 불과할까. 우연적인 만남, 운명적인 사랑, 신분과 죽음마저 초월하는 사랑... 멜로라는 장르에는 분명 판타지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판타지들이 하나 둘 모여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어떤 울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멜로가 단지 판타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판타지가 환기하는 현실을 지향하기도 한다는 걸 말해준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는 ‘슬픈 동화’ 같은 판타지를 통해 돈에 지배된 살벌한 현실을 에둘러 보여주는 멜로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차라리 사기를 치지. 사랑을 하게 하지 말 걸. 나 같은 놈, 사랑을 하게 하지 말 걸.” 오수(조인성)의 참회는 이 드라마가 가진 대결의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가짜 오빠 행세를 하며 78억을 받아내기 위해 시각장애인 오영(송혜교)에게 접근했지만 그 사기가 사랑에 무릎 꿇어버린 것. “사랑했어. 너랑 함께 있어서 나도 행복하기도 했어. 그러니까 네가 날 속인 건 무죄야." 오영의 이 비수 같은 말은 오수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78억이 없으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오수의 삶이란 기실 우리네 현대인들의 처지를 그대로 재연한다. 자본주의의 삶 속에서 돈이란 어느새 생명이 되어버렸다. 살기 위해 사기 치는 삶. 그 삶에 의미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오수나 조무철(김태우)은 삶이 살아지니 사는 그런 자본주의에 포획된 삶을 살아가며 힘겨워 한다.

 

반면 어마어마한 자산을 가졌지만 왕비서(배종옥)의 뒤틀어진 모성에 대한 집착으로 눈이 멀게 되는 불행한 삶을 살아온 오영에게 돈은 추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여타의 자산가와 오영이 다른 점이란 그녀는 늘 죽음을 옆에 끼고 살았다는 점이다. 그런 그녀에게 78억 정도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 오빠에서 연인으로 다가온 오수는 그녀에게 한 자락 의미를 전해준 인물이다. 비록 사기로 시작된 것이지만.

 

<그 겨울>의 드라마 구조가 자본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인물들의 변화를 통해 보여진다. 돈을 목적으로 혹은 자신의 이기주의를 채우기 위해 시작된 관계는 후반으로 오면서 그 돈의 관계를 털어버린다. 오수는 결국 받았던 78억의 돈을 거부하고, 그 돈을 종용했던 조무철은 오수를 통해 사랑이 있다는 걸 확인하곤 죽음을 선택하며, 모성이 아닌 집착으로 오영과의 관계를 유지해온 왕비서는 그 집에서 나옴으로써 진정한 모성을 알아간다. 돈 때문에 친구를 배신했던 손미라(임세미)는 돈을 거부하고 진정한 친구관계를 선택한다.

 

눈 먼 오영을 중심으로 세워진 거대한 돈의 관계들이 오수라는 부족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인간과의 부딪침을 통해 사람의 관계로 복원되는 것. 이것이 <그 겨울>이 그리고 있는 세계다. 오영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돈에 눈먼 인간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오영의 감긴 눈은 오히려 세상과 사람들을 더 명료하게 보게 만드는 장치인 셈이다. 우리는 모두 이 오영의 감긴 눈을 통해 어쩌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을 지도 모른다. 도대체 진정으로 눈먼 자는 누구인가.

 

<그 겨울>이라는 멜로의 주인공들이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기약하면서도 웃고 있는 것은 그 자본에 의해 맞이하는 파국 속에서 비로소 그들이 인간 혹은 사랑을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수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오영을 사랑하게 됐고, 조무철은 죽음을 맞이해서야 비소로 오수를 통해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왕비서는 쫓겨남으로써 오영을 통해 모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본이 그들의 피부 속에 각인시킨 그 무엇을 털어버리는(그것은 죽음일 수 있지만) 것으로 진정한 관계를 회복한다.

 

이 메시지는 <그 겨울>이라는 멜로가 얼마나 세상과의 대결을 첨예하게 다루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한없이 끌어당겨진 클로즈업 속에서 우리는 이들의 멜로에, 이들의 사랑에, 이들의 체온에 한없이 빠져들었지만, 그들의 파국을 바라보면서 또한 그 프레임 바깥에 놓여진 비극적인 현실을 떠올린다. 조무철과 오수를 옥죄어오는 저 김사장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그 숨겨진 차가운 현실의 표상이나 다름없다. 돈이라면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워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이라는 이름의 캐릭터.

 

그래서 <그 겨울>은 비극이면서도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의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이지만 그 자본을 벗어나 사랑으로 탈주하려는 이들에게는 비극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달라져 있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에게 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서 <그 겨울>은 눈물 속에서 웃고 있는 캐릭터들처럼 이미 해피엔딩인지도 모른다. 물론 표면적인 결론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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