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 포장지만 바꾼 신변잡기 토크쇼의 한계

 

김희선이라는 예능의 새 얼굴은 신선하다. 신동엽의 콩트와 순발력은 여전히 발군이다. 윤종신의 주워 먹기 토크도 살아있다. 최강 솔직함을 보여준 강혜정, 의외의 애교만점 예능감을 선사한 정만식, 거침없는 19금 입담을 선보인 소이현 등등 매 회의 게스트진도 약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족하다. 부제로 ‘마음을 지배하는 자’를 달고 있는 <화신>이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을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다.

 

'화신'(사진출처:SBS)

화려한 포장지로 잘 포장되어 있어 뭔가 특별한 선물인 줄 알았는데 막상 뜯어보니 늘 봐왔던 흔한 선물이다. 게다가 이 선물은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선물 준 사람이 마치 자신을 뽐내기 위해 준비한 것처럼 보인다. <화신>은 그런 선물 같다. 선물이라고 받았으니 즐겁긴 한데 별로 남는 의미나 강렬한 인상은 없는.

 

<화신>의 ‘문제의 발견’은 신동엽의 <헤이헤이헤이>를 재연한 듯 하고, 설문을 가져다 연예인들의 자기 경험을 빗대 얘기하는 부분은 <야심만만>을 보는 듯하다. 물론 <헤이헤이헤이>나 <야심만만>은 훌륭한 형식이지만(그래서 그 조합 역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이 형식들이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를 담고 있느냐는 것이다.

 

만일 <야심만만>이 연일 화제를 끌어 모으던 시절이었다면 지드래곤이 나와서 털어놓는 자신의 연애경험이나 김경호가 최초로 13살 연하의 일본인 여자 친구가 있다는 고백 자체가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그 때와는 정서가 달라졌다. 당시 2003년에는 연예인의 신비주의가 벗겨지기 시작하던 시절로서 그들의 맨 얼굴이 담겨진 이야기 자체가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3년 현재, 완연한 대중의 시대가 열린 지금 연예인의 일상은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상대를 내 애인으로 만들 결정타, 남녀 1위는?’에 지드래곤이 과감한 스킨십을 얘기한다고 해도, 또 ‘당장 헤어지고 싶은데... 이별의 발목을 잡는 것, 남녀 1위는? ’에 대성이 아픈 여자 친구 때문에 여권을 잃어버린 척 하고 해외 공연에 가지 않은 사연을 털어놔도 그다지 흥미롭지가 않다. 왜 그럴까. 그것이 내 얘기가 아니라 저들의 이야기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과거 <야심만만>이 연예인 신변잡기에 머물러 있었어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비주의가 벗겨져 나가는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형식은 우리와 연예인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시켜 주었다. <화신>은 여전히 이 공감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요즘은 대중이 ‘왜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채워줄 수 있어야 공감대가 생기는 시대다. 이제 연예인의 이야기라고 해서 무조건 귀를 세우는 시절은 지나갔다는 얘기다.

 

심지어 예능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던 설경구가 나와 자신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다고 해도 그것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저들의 이야기라고 여겨질 때 대중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하물며 이렇게 강한 이야기도 먹히지 않는데 <화신>처럼 겉만 살짝 드러내는 이야기가 약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토크쇼에서 연예인 프리미엄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한참 저들의 이야기에 웃기는 했는데 그게 우리에게 어떤 감흥이나 의미를 남기지 못했을 때 TV를 끄고 현실로 돌아온 우리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점점 더 저들과는 달리 힘겨워지는 현실은 그 괴리감을 더욱 높이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의미에 빠져 침잠하는 것은 예능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는 건 중요한 일이다.

 

<화신>이 부제와는 걸맞지 않게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은 그 형식이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주제가 2003년 <야심만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려면 먼저 대중의 지금 현재 관심사를 끌어와 대중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화신>은 심지어 19금 토크를 하는 연예인의 속내로 파고들기보다는 진솔하게 대중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마음을 지배할 수 있을 테니까.

설경구의 무엇이 <힐링캠프>까지 킬링하게 했을까

 

방송의 힘을 과신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청자의 의견 따위는 무시하는 것일까. 혹자는 <힐링캠프>에 설경구가 출연하든 누가 출연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것은 제작진들의 선택이다. 다만 방송의 목적이 시청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게스트를 위한 것인지, 혹은 시청자를 낚기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힐링캠프>에 설경구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을 대중들이 반대한 것은 그가 전처와 이혼하고 송윤아와 결혼하면서 생긴 잡음들 때문이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루머인지는 알 수 없다. 부부 간에 벌어지는 일은 당사자들이 아니라면 그 깊은 내막을 알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힐링캠프>에 설경구가 출연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방송의 효과면으로만 생각해봐도 <힐링캠프>와 설경구의 만남은 양자에게 모두 득이 되기보다는 독이 된다. <힐링캠프>는 설경구의 출연, 그것도 2회 분량으로 만들어 첫 회에는 변죽만 때리는 식의 편집으로 사실상 시청자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늘 토크쇼에서 논란이 되었던 문제지만, 그것이 게스트 홍보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시청자를 위한 것이냐는 여전히 뜨거운 문제다.

 

<힐링캠프>는 시청자가 굳이 원하지 않는 게스트를 데려왔고, 데려온 후에도 시청자가 원하는 내용은 쏙 빠져있는 첫 회를 구성했다. 굳이 ‘설경구의 눈물’ 운운하며 예고편을 내보낸 것으로 볼 때 첫 회 편집은 다음 회를 위한 꼼수인 셈이다. 첫 회가 그나마 <힐링캠프> 같은 분위기를 만든 것은 설경구의 얘기 그 자체보다는 김민기나 이창동 감독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방송은 과연 설경구에게도 도움이 되었을까. 설경구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이전부터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만일 설경구와 송윤아의 결혼에 얽힌 이야기들이 루머라고 하더라도 이런 방식의 해명은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렵다. 대중들이 과연 방송을 그렇게 신뢰하는가. 그것도 몇 차례 논란 연예인의 해명 방송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힐링캠프>를.

 

만일 루머라면 억울할 법도 하지만, 대부분의 연예인 루머는 그것이 생기는 이유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실제 사실이 아니더라도 앞뒤 정황이 그렇게 만드는 수도 있고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가 그 루머를 강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루머란 연예인에게 있어서는 평상시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갖기 마련이다. 루머는 그래서 법적인 차원으로도 해결되지 않고(고소를 한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호소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대중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게 마련인 연예인들의 루머는 결국 대중들의 마음만이 풀어낼 수 있다.

 

과거 최민수가 자신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지만 무조건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 한 것은 자신의 존재근거가 결국은 대중들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고 행한 현명한 대처였다. 최민수는 말을 믿지 않았다. 대신 산속에 칩거하는 방식으로 행동을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열었다. 루머란 토크쇼에 나와 답답한 속을 토로하는 것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혹 <힐링캠프>는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있는 것일까. 대중들의 시선마저 교화시키고 바꿀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일까.

 

<힐링캠프>의 설경구 출연이 본인의 힐링에 머물고 대중들에게 다가오지 못할 때 그것은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 될 수 있다. <힐링캠프>는 대중들을 무시한 셈이고, 설경구 또한 프로그램에서는 속 시원할 수 있었을 지 모르지만 대중들과의 교감에는 그다지 성공적이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프로그램의 시청률만이라도 성공해야 할 텐데, 어찌된 일인지 <힐링캠프> 설경구편의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힐링캠프>란 말인가. ‘힐링’이 소통에 닿아있지 않을 때 그것은 자칫 교조적이고 계몽적인 문구가 되어 오히려 대중들에게는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아닐까. 잠깐 논란을 통해 주목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과 소통하지 않는 토크쇼는 결국 그것이 제살 깎아 먹기가 된다는 걸 알아야하지 않을까.

착한 유재석만 있나, 나쁜 유재석도 있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의 변화가 심상찮다. 그간 늘 착한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왔던 유재석이 ‘잔소리꾼’이라는 또 다른 캐릭터를 조금씩 끄집어내고 있는 것. 하와이로 가기 위해 모인 멤버들에게 유재석은 지난 회에 이어서 “형제 4호 발령”을 알렸다. 여기서 ‘형제 4호’란 <무한도전>이 어떤 위기의식을 갖고 심기일전을 하기 위해 유재석이 보내곤 했던 문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유재석은 오프닝에서도 정준하의 새로 한 머리를 꼬투리삼아 그 헤어스타일을 ‘버르장머리’라고 불러 면박을 주었고, 박명수가 딸 민서가 해준 매니큐어를 자랑하며 벌써 “키가 1미터 10 나온다”고 하자 “계속 크겠죠. 2미터 되겠네요.” 해서 그를 자극시키기도 했다. 하와이로 떠나는 공항에서는 ‘무한상사’를 즉석에서 재연하면서 유국장이 된 유재석은 “재미없으면 하와이에서 못 돌아올 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또 “다들 힘든 상황에서 하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라고 묻는 유재석에게 너무 부담주고 그러지 말라는 멤버들의 원성이 자자하자 유재석은 “여러분이 바캉스로 가든 촬영으로 가든 휴가를 가든 재미만 있게 해오라니까.”하고 잔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한상사’에서의 상황극 캐릭터가 ‘스트레th' 특집에서 다시 끄집어내진 후 ‘하와이’ 특집으로 이어진 셈이다. 재미에 대한 강박이 강해진 유재석은 이제 그 재미를 위해서는 ‘착한 캐릭터’마저 훌훌 벗어던질 기세다.

 

유재석의 이런 변화는 <런닝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김수로의 이름표를 송지효가 떼어버리는 놀라운 결과로 혼자 월요 커플을 상대해야 하는 유재석은 그간의 모습과는 달리 안간힘을 쓰며 개리의 이름표를 먼저 떼기도 했다. 결국 송지효의 간지럼 공격에 무너지긴 했지만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던 것. 부표 위에서 벌어진 수중고싸움에서도 유재석은 공격하는 김종국과 하하 송지효를 모두 밀어내는 반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게임에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유재석이 물론 자신의 캐릭터를 완전히 바꾸려는 건 아닐 것이다(이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껏 ‘착한 유재석’만 있었다면 이제는 ‘나쁜 유재석’ 같은 새로운 면모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유재석 스스로 느끼는 위기감과 연관되어 있다. 오래도록 유재석의 착한 캐릭터를 끌어와 착한 토크쇼로 안방을 지켜왔던 <놀러와>가 폐지되었고, <무한도전>의 시청률도 과거만 못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건 일시적인 결과일 수 있지만,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의 성패는 몇몇 팬덤에 의해 유지되던 과거와는 달라진 양상이다. 이것은 팬덤이 사라졌다기보다는 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팬층을 끌어들이지 못한 탓이 크다. 오래도록 착한 캐릭터로 고착화되다보면 의도치 않게 프로그램의 색깔 또한 고정시켜버릴 수도 있다. 워낙 유재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그가 나오는 토크쇼는 모두 착한 토크쇼가 되고, 그가 나오는 버라이어티쇼는 게스트를 배려하는 미션과 도전이 된다. <놀러와>, <해피투게더> 같은 토크쇼가 그렇고,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이 그렇다.

 

늘 1인자다운 모습, 늘 배려의 아이콘다운 착한 이미지는 물론 유재석이 버릴 수 없는(버려서도 안 되는) 그만의 가장 큰 자산이지만 그렇게 고정된 이미지는 본인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유재석 하면 떠오르는 그 인상은 그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유재석은 여기서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좀 더 다채로운 캐릭터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려는 듯하다.

 

최근 서병기 대중문화 전문기자는 <해피투게더3> 촬영장을 찾은 자리에서 유재석의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다면 방송에서 착한 유재석뿐 아니라 나쁜 유재석도 보여줄 수 있다”고. 유재석의 변화는 그 목적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하와이로 떠나는 공항에서 유국장으로 분한 유재석이 “재미만 있게 해오라니까”라고 잔소리를 하는 모습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일 게다. 그 도전이 시청자들을 위한 것일 때 그 캐릭터가 무엇이든 유재석의 변신은 무죄다. 유재석의 새로운 무한도전이 시작됐다.

논문 표절, 왜 연예인만 문제 삼나

 

어찌 보면 참 뜬금없는 논문 표절 논란이지만 그 후폭풍은 강력하다. 국민 강사로 불리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김미경은 실수는 인정했지만 표절 자체를 인정하지는 않았고 그래도 책임을 느껴 자신이 하던 방송 프로그램 tvN <김미경쇼>에서 하차했다. 이미 찍어놓은 방송 분량도 본인의 뜻에 따라 방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고승덕의 집중분석(사진출처:MBN)'

바로 직전에 터진 인문학 비하 논란(사실 오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과 함께 갑자기 터진 논문 표절 논란으로 인해 본인의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탓일 게다. 방송이라는 것이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어떤 논란이 생겼을 때는 증폭된 만큼의 더 강한 후폭풍을 몰고 오기 마련이다.

 

논문 표절. 아마도 대학원을 다녔던 이들이라면 “그게 뭐?”하고 반문할 정도로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석사 논문이라면 논문 몇 개 놓고 적절히 짜깁기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까지 여길 정도다. 이것은 석사 학위라는 것을(이미 대학이 그런 지경이지만) 하나의 스펙으로 여기고 또 학교 측에서도 돈벌이로 생각해 어느 과정을 다니면(돈을 내면) 주는 자격증 정도로 여기는 데서 비롯되는 일이다.

 

논문 표절은 분명 용서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렇게 논문을 사고파는 이른바 스펙사회가 그 본질적인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굳이 석 박사 학위가 필요 없는 분야에서조차 학위를 요구하는 사회는 강사나 심지어 연예인조차 학위를 갖기 위해 엄한 노력을 하게 만든다. 물론 이렇게 논문을 받으려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그것을 간판 삼아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함이다.

 

김미경이야 강사가 직업이니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증표로서의 학위가 필요 했을 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제 아무리 뛰어난 강사라고 하더라도 학위 없는 이들에게 주는 강의가 극히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미경 이후 또 다시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진 김혜수나 김미화 같은 연예인에게 학위가 무슨 소용이 있었는 지 모르겠다. 물론 대학 강단에 서기 위한 목적이나 때로는 강연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연예인에게 학위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김미경이 실수는 인정하나 표절을 인정하지 않은 반면, 김혜수가 쿨하게 자신의 표절을 인정한 것은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김미화가 부정한 이유? 글쎄 진짜 아닐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김혜수와는 조금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활동해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좀 더 결과가 나와야 정확히 알 수 있는 사안이지만 방송 이미지와 활동의 차이가 그 대응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판단이다.

 

어쨌든 김미경에게는 학위가 자신의 위치를 만드는데 그만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한 반면, 김혜수는 연기자로서 학위가 그녀의 위치에 그다지 큰 역할을 한 것이 없다고 여겨진다. 표절을 해서 학위를 받긴 받았지만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았다는 것(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훨씬 더 쉽게 쿨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차이를 굳이 얘기하는 이유는 논문 표절에 있어서 그 활용도를 보자면 연예인보다는 다른 쪽에 더 집중해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우리 대학가에 이미 공공연한 논문 표절 문제가 이렇게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학위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연예인이 그 주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어딘지 과녁이 잘못된 느낌이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많은 이슈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논문 표절 문제가 가장 첨예할 수 있는 공직자나 정치인 같은 전문 직종에 더 집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 강사로 불리며 방송가와 서점가의 스타로 떠오른 이미경은 어쩌면 학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전문가와 연예인(방송인이 더 정확할 것이지만)의 중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 파장이 클 수 있었다. 하지만 김혜수나 김미화 같은 연예인들로 그 불똥이 먼저 튀는 것은(물론 이것도 문제임은 분명하지만) 사안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논문 표절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도 큰 문제지만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 연예인 같은 도드라진 존재 몇 명을 희생양 삼음으로써 오히려 그 문제의 뿌리를 놓치는 행태가 일상화되는 건 더 큰 문제다. 논문 표절은 우리의 눈에 지금 보이고 있는 몇몇 연예인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거의 장사가 되고 있는 대학가 학위의 문제, 실력보다는 그렇게 받은 학위라도 스펙으로 먼저 인정되는 사회, 그래서 이제는 김미경이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돈이 없으면 ‘개천에서 용 나는 건’ 더 이상 어려운 이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다 내포하고 있는 문제다. 연예인 몇 명에 집중하느라 그 문제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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