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종편이라 안 봐? 그렇다면 지상파는?

 

사실 종편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게다. 이것은 그간 종편의 모체인 보수 언론들이 기득권 세력으로 인지되는 한, 또 그 언론과 종편 채널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는 한 바뀌기 어려운 정서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편에서 방영되기 때문에 무조건 안 본다는 시청자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정서를 빼놓고 콘텐츠만 놓고 볼 때 어떤 경우에는 이런 생각이 무색해질 때가 있다. JTBC에서 새로 시작한 <세계의 끝> 같은 드라마가 그렇다.

 

'세계의 끝'(사진출처:jtbc)

<하얀거탑> 같은 명품 드라마를 연출한 안판석 감독의 작품답게 <세계의 끝>은 지금껏 드라마들이 다루지 않았던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흔히 재난영화에서나 봐왔던 장르적 요소들을 드라마로 끌어온 <세계의 끝>은 그래서 그 자체가 도전이다. 아마도 미드나 일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촘촘한 스토리와 구성,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에 가까운 연출은 어딘지 낯선 느낌마저 든다. 그러니 늘 우리네 드라마하면 떠오르는 식상하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코드들이나 장치들이 전무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의 잣대로 보면 무모하게까지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실험작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끝>은 조금도 서두르는 기미가 없다. 재난장르가 가진 특성에 맞게 아주 서서히 조금씩 긴장감을 높여가면서 드라마의 극적 재미를 만들어낼 요소들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질병관리본부의 셜록 홈즈로 불리는 강주헌(윤제문)의 탐정 뺨치는 치밀한 캐릭터를 세우고, 일단 감염되는 순간 누구든 포기되고 격리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직업적 특징이 소개된다.

 

또 감염된 본인에겐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진 않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치명적인 존재로서의 장티푸스 메리의 등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장티푸스 메리라는 존재가 갖는 심리까지 설명된다. 즉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의식을 갖기 마련인 장티푸스 메리는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그 죄책감을 자기 또한 피해자라는 자기 연민으로 넘어선다는 것. 즉 그만큼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 2회 분량은 이 장치들을 설명하고 깔아놓는 단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하얀거탑>에서 이미 보여주었듯이 <세계의 끝>은 본격적인 대결구도와 극적 긴장감을 높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시청률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적어도 이 작품에는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새로운 드라마적 시도를 한다는 것 그 자체다.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신문 한 귀퉁이에서 봤음직한 바이러스가 앞으로 일으킬 대혼란에 대한 공포감이 이 드라마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 낯선 소재와 연출 때문에, 또 어쩌면 조금은 실험작으로서의 한계 때문에 이 드라마는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끝> 같은 드라마가 지금껏 늘 반복된 코드들만을 보여주던 드라마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요소들을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의 끝>은 늘 반복적으로 때우듯이 먹어왔던 음식이 아니라 새롭기 때문에 낯설고 또한 설레는 음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최근 지상파의 드라마들은 어떨까. 새로운 시도를 한다기보다는 그저 시청률에 목매고 있는 건 아닐까.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복수극(야왕), 한 때 새롭게 여겨졌지만 무한히 반복되면서 이젠 지겨워져 버린 미션 구조의 성장드라마(마의), 매번 출연자만 달라지는 듯한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최고다 이순신), 볼거리에만 치중해 내용이 부실한 블록버스터(아이리스)... 그 밖에도 지상파 드라마라면 어디든 존재하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공식이나 신데렐라의 변종 혹은 캔디형 캐릭터 같은 흔해빠진 지상파 드라마의 코드까지. 스타급 연기자를 캐스팅하고 거기에 맞춰 비슷한 코드의 무한 반복에 머물러 있는 것이 작금의 지상파 드라마들의 현주소가 아닌지.

 

이런 지극히 보수적인 덫에 걸려 있는 지상파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종편이기 때문에 안 본다는 그 정서를 이해하면서도 <세계의 끝> 같은 드라마 앞에서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뭐가 더 보수적인가라는 회의. 지상파는 왜 <세계의 끝> 같은 드라마를 시도하지 못하는가. 그저 기존 시청률 시스템이 제공하는 기존 시청층에 안주해 언제까지 비슷비슷한 드라마의 무한 반복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그렇게 안주해버리는 지상파 세계의 끝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1975년부터 2013년까지, MBC는 왜 허준에 집착할까

 

MBC가 허준 소재의 드라마를 처음 방영한 것은 1975년이다. 당시 <집념>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일일드라마는 고 김무생 선생이 허준 역을 맡았다. 일일드라마라고 해도 거의 세트 촬영이 대부분이었던 76년 방송의 특성상 그다지 고된 작업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당시 신문을 보면 <집념>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매력은 출세에 대한 욕망과 그 성공을 위한 교육과 헌신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분상승 욕구는 개발시대의 대중들이 가장 목말라했던 것이고, 허준의 어머니와 스승 유의태로 대변되는 교육은 그래서 그 유일한 길처럼 받아들여졌을 게다.

 

'구암 허준'(사진출처:MBC)

이 작품을 쓴 이은성 작가는 사실상 허준이라는 사극의 모태가 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드라마 <집념>의 성공으로 이듬해 1976년 이순재를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를 집필했고 이 영화는 77년 대종상에서 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촬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이은성 작가는 거의 평생을 소설 <동의보감>을 쓰는데 보냈는데 미처 완결이 되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소설 <동의보감>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미완의 소설은 1991년에 <동의보감>이라는 제목의 사극으로 역시 MBC에서 제작된다.

 

사극 <동의보감>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겪고 난 후 87년을 기점으로 달라진 대중의식과 민초의식을 상당 부분 껴안음으로써 여러모로 75년도의 <집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허준이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지면서도 동의보감이라는 의서가 어떻게 민중의식을 담고 있는가를 주목했다. 누구나 쉽게 의학지식을 공유하겠다는 그 의식을 담고 있는 동의보감의 탄생 과정을 허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잘 그려냈다.

 

하지만 단 14회로 끝난 91년 작 <동의보감>에 어떤 미진함이 남았던 것인지, 1999년 MBC는 이병훈 PD와 최완규 작가의 <허준>을 제작한다. 이병훈 PD가 이미 91년작 <동의보감>을 기획했던 것으로 보아 그가 이 소재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허준>은 당시 변화해가는 사극의 흐름을 가장 전면에서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퓨전 사극으로서 이야기들은 더 미션화되고 구성과 에피소드가 탄탄하게 배열되었다. 그 유명한 구지침희(九鍼之戱 아홉 개의 침을 닭에게 놓고도 살리는 대결)를 벌이는 양예수와 유의태의 대결이나, 구안와사를 침으로 고치는 에피소드는 퓨전사극 특유의 미션구조와 맞아 떨어지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3년 허준은 이제 MBC에서 <구암 허준>이라는 이름의 일일사극으로 부활했다. 흥미롭게도 2013년 <구암 허준>의 주인공은 <집념>의 주연이었던 고 김무생 선생님의 아들인 김주혁이 맡았다. 의성으로 받들여지는 허준의 모습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허준을 그려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그 내용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게다. 그런데도 도대체 왜 MBC는 이토록 허준이라는 소재를 단골로 활용하는 걸까.

 

여기에는 이미 1975년도에 등장한 허준이라는 소재가 그만큼 파격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 사극이라면 응당 떠오르는 것은 왕조 중심의 정통사극일 수밖에 없다. 그런 시대에 허준처럼 서출에서 시작해 어의가 된 인물의 성장드라마는 이미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약 10년 정도의 터울로 다시 제작되는 허준 소재의 사극은 식상해지기는커녕 당대의 정서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풍요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2013년 <구암 허준>은 지금껏 허준 소재의 사극이 그래왔듯이 과연 성공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미지수다. 일단 같은 일일극이라고 해도 <집념>이 방영되던 75년과 지금은 그 환경이 달라졌다. 세트 촬영으로는 마치 시트콤 같은 완성도에 머무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야외 촬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긴데 사극이라는 노동 강도가 높은 장르를 일일극에 맞춰 찍어낸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다만 허준 소재의 사극을 수십 년 간 반복 제작하면서 갖게 된 무수한 준비된 에피소드들과 노하우는 <구암 허준>의 가능성으로 지목된다. 무엇보다 2013년 현재의 정서를 어떻게 허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투영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첫 회 시청률은 6,7%(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유재석의 스트레스, 우리를 웃게 하는 힘

 

<무한도전> '스트레th' 특집에 나온 유재석은 자신의 장점을 ‘열심히 한다’, ‘잘 웃는다’로 표현했고, 단점을 ‘다소 우유부단하다’, ‘다른 사람이 잔소리로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고민거리를 묻는 질문에 “크게는 없었는데요. 이번 주 녹화 이거 재밌었나.. 다음 주에는 이런 걸 한다는데 이건 어떨까...”라고 답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 장점과 단점 심지어 고민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유재석의 스트레스가 모두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의 장단점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모두 그가 고민거리로 말한 방송에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 열심히 하고 잘 웃으며 때론 우유부단함(캐릭터로 나오는)을 볼 수 있었고 종종 그가 멤버들에게 잔소리를 해 잔소리꾼이라는 핀잔을 듣는 것에 익숙하다.

 

이 장단점과 고민거리 토로에는 유재석이 가진 시청자에게 어떻게든 웃음과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강박증을 읽어낼 수 있다. 그가 ‘잔소리꾼’이 된 것은 그가 말하듯이 ‘잘하자고’ 하다 보니 생긴 습관이다. 자신에 대해 그만큼 엄격한 그이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그만큼을 요구하는 셈이다.

 

그의 스트레스 지수를 진단한 정신과 전문의는 심지어 문진표 “체크란에 동그라미 어느 하나가 경계를 넘는 걸 보지 못했다”며 그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한 그의 성격을 설명했다. 비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거라 말했고, 그가 파란 풍선을 선택한 것을 통해 “본인 스스로는 사교성이 풍부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면에 외로움과 고독이 내재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정형돈이 “맞아 친구 없잖아”하고 맞장구를 치자 하하가 “하지마. 하지마. 나 그랬다가 6개월 욕먹었잖아. 있어, 있어. 대한민국.”이라고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이 짠하게 느껴진다.

 

유재석이 보이는 극도의 조심스러움과 우유부단함은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피해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 그의 유일한 친구가 ‘대한민국’이라는 하하의 농담 속에는 그가 가진 부담감과 책임감이 들어 있었다. 그의 말대로 방송 때문에 해외에 나간 적은 있지만 신혼여행을 빼놓고 개인적으로 동료들과 여행 같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가 아닌가. 일주일 내내 <무한도전>, <런닝맨>, <해피투게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놀러와>까지 소화해내던 그에게 개인 시간이나 여유 같은 건 사치가 아니었을까.

 

<무한도전> '스트레th' 특집에서 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선택한 유재석과 멤버들의 모습은 그래서 뭉클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때 자신들의 스트레스가 비로소 사라진다는 것. 이 지독한 시청자 강박증이야말로 유재석의 가장 큰 스트레스이면서 그가 최고의 MC로 지목받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얼굴을 한껏 무너뜨리는 <무한도전>의 유재석이나 잔뜩 바보 분장을 한 채 바보 연기를 하는 <런닝맨>의 유재석은 어쩌면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런닝맨>의 조효진 PD는, 유재석은 말 그대로 ‘유느님’이라 불리는 게 맞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고 했다. 너무 잘 통하고 선수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제작자로서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유재석의 시청자 강박증의 강도를 미루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광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유재석의 완벽함을 ‘방송 바깥에서 더 철저한’ 모습에서 찾으며 “자기는 그렇게 살라면 자신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을 통해 우리의 웃음이 빵빵 터질 수 있는 것이 유재석의 남다른 시청자(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증 스트레스 덕분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지난 주 뜬금없이 불거진 유재석 태도 논란은 너무 악의적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도 의사의 말대로 “전반적으로 경직”된 유재석이 “조금만 본인에게 느슨하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인에게 관대해야 남들한테 관대할 수 있다는 정준하의 말도 맞지만, 그것은 또한 무엇보다 좀 더 오래도록 도전하고 달리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테니.

아시아 프린스, 광수의 매력에 대한 짧은 탐구

 

“베트남에서는 어떻게 이걸 받아들이고 리액션 해야 하는 지 몰랐어요. 너무 감사한데 말로는 제가 베트남어를 모르니 표현도 안 되고... 또 <런닝맨>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미션 수행도 해야 해서 너무 얼떨떨했죠.” - 아시아 프린스(?)로 돌아온 이광수

 

도대체 이 갑작스런 환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몰려드는 인파에 빠져나가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런닝맨들의 풍경. 최근 <런닝맨> 아시아 레이스에서 마카오에 이어 베트남에서받은 열광적인 환대는 오히려 당사자들까지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런닝맨> 출연자 모두가 그 주인공들이었지만, 특히 플랜카드를 들고 연실 이광수를 연호하는 현지 팬들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는데. 이 놀라운 이광수의 매력은 어디서 생긴 걸까. 우리에게 멱PD로 더 잘 알려진 김주형 PD는 그 이유를 캐릭터에서 찾았다.

 

“먼저 게임이라는 세계 공통분모가 있어서 해외 팬들도 <런닝맨>을 쉽게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또 인터넷을 통한 한류가 이미 있으니까 예능도 그 길을 따라간다고 보입니다. 특히 이광수를 좋아하는 건 그 캐릭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약간 측은한 캐릭터인데 그러다 발끈하는 반전을 보여줌으로써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왠지 감싸주고 싶은 캐릭터잖아요. 근데 늘 당하는 건 아닌.”

 

'런닝맨'(사진출처:SBS)

이광수가 확실히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캐릭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그가 가끔은 김종국 같은 강한 캐릭터와 맞붙는 이변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린이란 별명은 그걸 잘 말해준다. 키가 190센티에 달하는 거구지만 어딘지 약해보이고, 그래도 그 장신이 가진 힘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캐릭터. 덩치는 큰 데 약한 모습이 주는 코믹함과 페이소스가 있다. 임형택 PD는 이광수 캐릭터가 가진 엇박자적인 요소가 그 인기의 요인이라고 꼽았다.

 

“코드가 한국적인 코드라기보다는 외국적인 것 같습니다. 마치 ‘덤 앤 더머’처럼 줄곧 바보스러운 캐릭터로만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모델 출신이라는 것도 엇박자죠(웃음). 언발란스한 면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그런 캐릭터. 그래서 다방면으로 재미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정말 <런닝맨> 캐릭터에 있어서 이광수만큼 여러 결을 보여주는 캐릭터도 드물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이번 아시아에서 본 팬덤이 아직도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무실에서도 기자분들이 전화 와서 그 이유를 묻곤 한다는데 사무실 직원들도 제대로 답을 잘 못하겠던가봐요. 저한테 와서 “너도 모르겠지?” 하고 물으면 “저도 모르겠어요”라고밖에 답할 수가 없더라구요.”

 

왼쪽부터 임형택PD, 필자, 조효진PD, 이광수, 김주형PD

사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싸이가 어느 날 갑자기 국제가수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은 수많은 기존 한류의 흐름들이 만들어놓은 길에서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난 꽃과 같다. 이광수에 대한 해외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이미 예능 한류는 <X맨>과 <무한도전>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재석에 대한 팬덤은 아마도 가장 클 것이다. 이른바 유재석 사단은 <X맨>에서 <패밀리가 떴다>로 이어져 지금의 <런닝맨>까지의 해외 팬덤의 계보를 만들고 있다. 이 꾸준히 만들어낸 예능 한류의 길이 있었기 때문에 이광수라는 캐릭터가 갑자기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 조효진 PD는 실제로 이광수가 더 열광적인 팬이 많았지만 출연자들에 대한 고른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유재석은 말할 것도 없고 김종국, 하하, 개리, 송지효, 지석진까지 플랜카드는 다 비슷비슷한 숫자로 들어 있었어요. 다만 이광수를 연호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죠. 즉 이광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죠. 김주형 PD는 그게 놀라워 자막에 이렇게 달았더라구요. ‘이광수라는 이름이 베트남어로 다른 뜻이 있는 거 아닌가’ 하고요(웃음). 같이 갔던 같은 소속사의 이동욱은 이광수 인기에 깜짝 놀랐더라구요. 결국 이광수 에스코트까지 자청해서 했죠.”

 

이광수는 처음 CF 모델로 데뷔했고 그러다 <지붕 뚫고 하이킥> 시트콤에 발탁됐고 <동이>에 출연할 때 <런닝맨>을 시작했다. 이광수는 당시 <런닝맨>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그런 기회에 해보지 않으면 평생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효진 PD는 당시 이광수와의 첫 만남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유재석, 김종국, 하하는 늘 같이 했던 식구지만 새로운 얼굴이 필요해 여러 명을 인터뷰했었죠. 이런 저런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왔어요. 이광수랑 송중기도 그 때 본 거죠. 처음에 딱 들어서는데 호피무늬 옷을 입고 왔더라구요. 그게 그냥 재밌었죠. 말을 하는데도 사람을 궁금하게 하는 면이 있었어요. 긴장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긴장을 안 한 건데 저렇게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요즘 나오는 모습이 그 때 그 모습이었죠. 당황하면서 한 마디 할 때 빵 터지는 그런 모습. 피디나 작가가 죽 서 있는 데 그게 쉽지는 않은 일이죠.”

 

조효진 PD는 이광수의 장점으로 습득력이 빠른 것을 꼽았다. 사실상 <런닝맨>이 예능을 처음 경험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빨리 적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런 습득력 또한 이광수는 좋은 멤버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캐릭터는 그렇게 <런닝맨> 멤버들과의 케미(관계)가 일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광수는 무엇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 제일 자주 만나고 전화통화 자주 하는 건 종국이형이지만 그래도 두루두루 만나고 물어보는 편이에요. 이런 일 있을 때는 재석이형, 이런 일 있을 때는 종국이형, 이런 식으로요. 주로 개인적인 일들 때문에 전화하곤 하는데요,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지 않죠. 또 제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혼을 내주는 선배도 많지 않아요. 그게 다 저한테는 엄청 도움이 되는 일이죠.”

 

<런닝맨>에서 이광수는 특히 김종국과 기린과 사자 캐릭터로 대립구도를 만들어 큰 웃음을 주고 있다. 두 캐릭터가 만났을 때의 상승효과는 분명하다. 즉 김종국의 강한 캐릭터를 때론 배신하고 눌러주는 이광수가 중화시켜준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 김종국 같은 능력자를 때로는 어떻게 이기는지 그 비결이 궁금했다.

 

“사실 종국이형이 저를 뜯으려고 작정했다 느껴지면 포기하게 되요. 그건 마치 그냥 교통 사고 난 느낌, 그런 거죠. 피할 수가 없어요. 방심도 거의 하지 않죠. 다만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할 때가 가끔 있어요. 물론 제가 뭐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촬영에 몰입하다보면 거의 본능적인 욕구가 생기죠. 정말 이기고 싶은(웃음).”

 

<런닝맨>에서 유재석은 거의 독보적이다. 이광수가 그만큼 편하게 예능을 할 수 있는 바탕에는 그가 있었다고 한다. 이광수가 생각하는 유재석이 궁금했다.

 

“사실 방송보다는 방송 아닐 때 시청자분들이 그 평소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말 의지 많이 하고 개인적인 고민도 많이 들어주시고. 저한테는 카메라 안에서도 큰 힘이 되지만 카메라 밖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그런 분이죠.”

 

함께 초창기에 <런닝맨>에서 뛰었던 송중기는 작년 대세가 되었지만 이광수와는 절친이다. 그래서 이광수는 같이 <착한 남자>를 찍으며 훨씬 더 몰입이 잘 되었다고 한다.

 

“평소 친해서 드라마 같이 찍을 때 편하기도 했고 몰입도 잘됐죠. 송중기는 되게 솔직해요. 남자답기도 하고 섬세한 면도 있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런닝맨>에 공효진씨가 나왔을 때 <착한 남자>에서 송중기씨는 되게 바쁜데 저는 한가하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작가 조카분들이 그걸 보고 작가님에게 전화를 해서 많이 써달라고 했나봐요. 작가님이 미안하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이번 아시아 레이스를 통해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정작 이광수는 그 모든 것이 다른 멤버들 덕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해외에서의 인기란 국내에서와는 달리 좀 더 객관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출연진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게 마련이지만 해외에서라면 그저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역할을 하느냐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예능을 하고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멤버들과의 관계를 얘기하며 주저하는 이광수에게 느껴지는 건 <런닝맨>에 대한 무한 애정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런닝맨>으로 시작해서 형들이랑 같이 이렇게 하고 있는데 다른 데서 다른 사람과 시작하라면 솔직히 자신은 없죠. 촬영하면서 굉장히 편한 게 아무렇게나 막 던져도 형들이 다 챙겨주니까 정말 편하고 자유로워요. <런닝맨> 안에서 그런 모습이 좋다고 말씀해주시는데 다른 데서 하는 것에 그만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 혼자 만든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사실 이광수는 연기자다. 따라서 <런닝맨>이라는 예능으로 먼저 주목받은 것은 부담이 될 수도 한다. 하지만 작년 <착한남자>로 정극연기를 통해 이광수는 연기자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코믹한 이미지와 진지한 이미지를 모두 갖추는 것만큼 연기자에게 좋은 건 없다. 그래서 이광수를 보다보면 마치 영화 <인생의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같은 배우의 이미지가 기대된다. 코믹하지만 계속 쳐다보면 코끝이 찡한 그런 배우. 이광수라는 배우의 매력은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을 얻고도 여전히 수줍고 선한 미소에 있는 것은 아닌지.(사진 : 전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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