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초심은 다큐가 아니라 예능이다.

 

<정글의 법칙(이하 정법)> 뉴질랜드편의 짧은 예고 속에서는 이번 논란의 시발이 되었던 박보영이 “언니 나 이거 안하면 안돼?”라고 하는 말이 짧게 삽입되었다. 아마도 뉴질랜드라는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멋진 풍광의 지상낙원에서 뜻밖의 상황을 맞이한 그들이 겪게 되는 고생담이 이어질 것이란 예고다. 부제도 ‘뜻밖의 여정’이다.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피터 잭슨 감독이 찍은 <호핏 : 뜻밖의 여정>에서 따온 부제겠지만, <정법>이 뉴질랜드에서 맞닥뜨린 뜻밖의 상황을 말하는 제목이기도 할 것이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어딜 가든 여전히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은 아마도 <정법>의 현실일 게다. <정법> 아마존편의 마지막회에서 제작진들의 고생담을 편집해서 보여준 것은 이번 논란에 대한 제작진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정글에서 넘어지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고 끝까지 촬영에 임하고, 때론 온몸이 긁혀 피가 나도 촬영을 포기하지 않는 제작진의 모습 속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고생담이 진짜라는 걸 보여주고픈 <정법>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사실 국내에서 1박2일로 여행을 간다 해도 그것이 촬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 자체도 고생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해외에서 20여일 가까이 강행되는 촬영은 오죽할까. 하지만 제 아무리 고생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감도 있기 마련이다. <정법> 아마존편의 마지막회는 정글 속에서 오히려 느끼는 행복을 잘 보여주었다.

 

마지막날을 위해 김병만이 민물새우를 어떻게든 잡으려는 그 의지는 이미 가족이 된 병만족에 대한 그의 애정이 그대로 묻어났고, 그렇게 잡은 새우와 사유지 주인이 제공한 통돼지로 바베큐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나, 박솔미가 한 자 한 자 적어 보낸 진심어린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는 정글이기 때문에 더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정법>이 작금의 논란을 넘어설 수 있는 길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제작진에게 정글에서 겪는 고생담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지만 적어도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고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주는 것. 정글에서도, 아니 정글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알려주는 것은 <정법>이 지금 현재 처한 현실에서 어쩌면 꽤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다큐적인 요소와 예능적인 요소가 섞여있는 것이 바로 <정법>만의 특징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둘 중 어디에 더 가까운가를 말하라면 아마도 예능일 것이다. 그 곳이 정글이라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김병만과 병만족을 통해 어떤 웃음을 기대한다. 사실 이 부분은 <정법>만이 갖는 특별한 매력이기도 하다. 처음 <정법>이 아프리카의 악어섬에 들어갔을 때도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 힘겨운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심지어 콩트에 가까운 예능을 선보이던 김병만의 모습이었다. 정글에서도 여전한 달인의 모습에 <정법>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던 것.

 

그 진위가 어떻든 이미 진정성이 훼손되어버린 상황에서 <정법>의 고생담은 어쩌면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어필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실제로 겪은 고생담을 의도적으로 편집해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거기서 실제 고생한 출연진과 제작진에 대한 예의가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법>이 작금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그것이 고생담만이 아니라 그 안에 즐거움과 설렘, 심지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함께 했다는 것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 일이다.

 

고생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다큐적인 요소가 전면에 강조될 수 있다. 이것은 작금의 <정법>에게는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고생 보다는 ‘뜻밖의 여정’에서도 느낄 수 있는 행복감과 여유를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물론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이것이 결국은 예능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줘야 한다. 그러려면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정글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갖게 되는 휴식조차 프로그램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과감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생과 휴식의 자연스러운 병치는 그 자체로 다큐와 예능의 상승효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정글의 야생과 고생만을 집중해서는 정글이 또한 제공할 수 있는 행복감을 놓칠 수 있다. 마치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전하려 애쓰던 영화 <인생의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처럼, 혹은 달인이 되기 위해서 그토록 고생을 하면서도 그 고생담을 얘기하기보다는 대중들에게 오히려 웃음을 제공해왔던 김병만처럼, 정글 속에서도 웃음과 행복감을 전해 주려할 때, <정법>의 훼손된 진정성은 어쩌면 회복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속으로는 울고 있어도 겉으로는 웃음을 주는 예능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법>의 초심이 아닐까.

아이돌보다 뮤지션, 악동뮤지션의 가능성

 

버스커버스커가 대단하다는 것은 다가오는 새 봄에 즈음해 작년 그들이 낸 ‘벚꽃엔딩’이나 ‘여수 밤바다’ 같은 노래를 다시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일 년 전의 감성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르는 버스커버스커의 곡은 그래서 지나가면 잊혀져버리는 트렌디한 아이돌 노래와는 다른 면모가 있다.

 

'K팝스타2'(사진출처:SBS)

오디션 프로그램이 낳은 스타,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인기는 더 좋은 가수, 오디션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준비된(자작곡이 충분했던) 신인, 무엇보다 아이돌 보다는 뮤지션에 가깝다는 점. 이런 버스커버스커가 갖고 있던 특별한 면들과 거의 평행이론처럼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바로 <K팝스타2>의 악동뮤지션이다.

 

버스커버스커가 그랬던 것처럼 악동뮤지션도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다. 오디션이란 것이 결국에는 트레이닝을 전제로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커버스커나 악동뮤지션은 모두 트레이닝이라는 말이 무색한 팀이다. 바로 이런 괴리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이들의 평가에 있어서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버스커버스커가 <슈퍼스타K>의 본선 무대에 본래는 오르지 못했던 팀이라는 건 그래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우여곡절 끝에 본선에 들어왔지만 결국 대중들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창력 중심으로 흐르던 것에서 끼나 개성,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보게 되는 새로운 물꼬를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악동뮤지션에 대한 심사위원의 평가와 대중들의 생각이 상반되게 나타나곤 하는 것도 바로 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어울리지 않는 완전체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인 양현석이 “악동뮤지션은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다. 우리는 연습실과 밥만 제공하겠다. 자작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만 달라.”고 한 말은 그저 상찬에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다. 악동뮤지션은 독자적인 자기만의 음악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팀이다. 그러니 이 오디션과 어울리지 않는 팀에게 심사위원들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진다.

 

버스커버스커가 아무런 소속사 없이도 작년 한 해 대단한 성과를 냈다는 것은 오디션을 통해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내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기획사들 입장에서는 도전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기획사가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SM, YG, JYP 같은 국내의 거대기획사들이 악동뮤지션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래서 놀라움도 있지만 불편함도 존재하는 셈이다. 물론 바로 이런 완전체들의 등장 덕분에 이제 기획사들도 트레이닝보다는 프로듀싱과 매니지먼트에 더 집중하는 경향도 만들어지고 있다.

 

악동뮤지션이 생방송 무대에서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문자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대중들의 선택을 받는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물론 방송 프로그램으로서의 흥행을 위한 의도적인 포석일 수도 있다. 그토록 심사위원들이 혹평을 하면 할수록 악동뮤지션을 지지하는 이들은 더 결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가요차트 1위에 몇 곡을 올려놓았고, 그들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몇 백만 뷰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이미 본선에 오르기 전부터 광고에도 출연한 악동뮤지션은 사실상 오디션 프로그램의 틀을 훌쩍 넘어서 있는 존재들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그들이 우승을 하건 중도에 탈락하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버스커버스커가 그랬던 것처럼 악동뮤지션도 이미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이 ‘뮤지션’을 굳이 넣어 단 ‘악동뮤지션’이라는 팀명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지금 악동뮤지션에게 중요한 것은 오디션의 당락이 아니라 이 오디션이 끝나고 그 관심이 끊어지기 전에 자기들만의 색깔을 제대로 대중적으로 엮을 수 있는 음원을 발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지속 가능한 가수의 길을 확장해 나가는 것. 이것이 이미 오디션의 틀을 넘어서버린 악동뮤지션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저 봄날이 다가올수록 새삼 달리 들리는 주옥같은 노래들을 대중들에게 선사한 버스커버스커가 그랬던 것처럼.

' 그 겨울 ', 송혜교·조인성 그 눈빛에 빠져드는 이유

"멜로영화는 더 별로. 말이 별로 없잖아요. 요즘 멜로 영화는 음악만 나오고. 사실 멜로영화에서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건 남자가 여자를 볼 때 어떤 눈빛인가. 여자가 남자를 볼 때 또 어떤 눈빛인가. 둘이 어디서 만나고 무슨 옷을 입고 뭘 먹나 그런 건데 보다시피 난 눈이.." <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 > 의 오영(송혜교)의 이 대사 속에는 이 특별한 멜로가 여타의 멜로와 달리 어떻게 더 절절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비밀이 담겨져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실제로 음악만 나오고 말이 별로 없는 그런 멜로는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오영이 얘기하는 것처럼 멜로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오고 가는 눈빛과 그 속에 담겨진 감정일 것이니. < 그 겨울 > 이 이 감정을 더 정밀하고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그 클로즈업의 미학에 있다. < 그 겨울 > 의 카메라는 배우에 1센티 더 근접함으로써 그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하는 작은 감정들까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그 가까이 다가간 카메라는 송혜교의 앙다문 입을 통해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절망감을 애써 누르는 오영의 감정을 포착하고, 조인성의 흔들리는 눈빛을 통해 오영이라는 여자에게 자꾸만 마음을 쓰게 되는 오수(조인성)의 진심을 담아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오영과 그녀를 바라보는 오수 사이에 놓여진 미묘한 마음의 간극을 < 그 겨울 > 의 카메라는 좀 더 근접한 영상으로 잡아낸다.

겉으로 던져지는 독한 대사와 그와는 상반되게 가녀린 감정을 담아낸 송혜교의 표정은 그래서 오영이라는 인물의 외로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얼마나 외롭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그 상처받은 마음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감추려 하는 걸까. 그녀에게는 엄마 행세를 하지만 엄마는 아닌 왕비서(배종옥)가 있고, 오빠 행세를 하지만 진짜 오빠가 아닌 오수가 있으며, 약혼자처럼 행세하지만 실제로는 돈에만 관심 있는 이명호(김영훈) 변호사가 있다. 마치 가족처럼 그녀의 주변을 감싸고 있지만 그 누구도 가족은 아닌.

이 가족처럼 굴면서 사실은 오영에게 다른 목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의 속내는 그래서 말이 아니라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 그 겨울 > 의 카메라가 인물들이 어떤 대사를 던질 때 그 대사의 내용보다 그 표정에 더 집중하는 건 이처럼 그 속내가 가진 끔찍함이나 혹은 절절함을 보다 강렬하게 전하기 위함이다. 이 클로즈 샷 속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오영 앞에 서 있는 이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또 그들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진심을 알아채는 외로운 오영의 마음이 포착된다.

그래서 이렇게 굳은 표정으로 마치 '난 외롭지 않아'하고 외치듯 버티던 오영이 오수 앞에서 무너져 내리며 "내가 널 믿어도 된다고 해줘."라고 말할 때 그 외로운 감정은 더 극적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믿어'도 아니고, '믿어도 돼?'라고 묻는 것도 아닌 '믿어도 된다고 해달라'는 요청 속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도 믿고 싶은 오영의 절박함이 담겨있다. "난 내 옆에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 제발 오빠 너만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

그런 오영 앞에서 오수도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돈을 위해 오빠라고 속이고 접근했지만 그녀의 절망을 들여다보고는 오빠가 아닌 남자로서 자꾸 마음이 끌리는 것. 오영의 손을 잡는 떨리는 오수의 손과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의 손, 또 저도 모르게 키스할 듯 다가가는 그의 입술은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생 참 별거 아니라고 그저 살아지는 거니 사는 거라는 내가 한 모든 말들은 어쩌면 모두 거짓말이었나.' 오수는 자신에게 그렇게 되묻게 된다.

< 그 겨울 > 의 송혜교와 조인성이 만들어가는 멜로가 더 강렬한 것은 시각장애인 오영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상황이 멜로와 범죄(사기 혹은 거짓) 사이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멜로의 감정을 극적으로 잡아내는 클로즈업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도 이들 연기자들의 놀랄 만큼 섬세해진 연기력이 그 클로즈업의 압박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송혜교와 조인성의 얼굴 표정 하나, 손 동작 하나에도 그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그 겨울 > 이 만들어내는 극성은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아빠 어디가>, 아이들의 트루먼쇼 되지 않으려면

 

최근 예능 프로그램 중에 아마도 가장 뜨거운 걸 꼽으라면 단연 <아빠 어디가>가 될 것이다. 민국이, 후, 준, 지아, 준수. 이 다섯 귀요미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여운지, 하는 일거수일투족마다 화제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민국이가 ‘나쁜 집’에 걸려 대성통곡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더니, 두 번째 여행과 설날 특집에서는 후가 그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아빠 어디가>의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에서는 담력 체험을 통해 준이의 리더십이 또 화제가 되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말과 행동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이 예능 프로그램은 그래서 ‘힐링 예능’이라고 불린다. 특히 자식을 가진 아빠들이라면 웃음이 절로 나고 누구나 마음이 푸근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게다. 그동안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부모들은 <아빠 어디가>에 등장하는 아빠들에 빙의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아이들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이나 보람 혹은 후회가 고스란히 그것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 전해지는 이 프로그램은 확실히 어른들에게는 비타민 같은 예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좋은 예능에 한 가지 드는 걱정이 있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에서 어른들을 힐링시켜주는 아이들에 대한 것이다. 어찌 됐건 여기 출연하는 아이들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될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재미는 아이들의 사적인 생활들이나 성격 같은 것이 가감 없이 보여질 때 생겨난다. 후가 지아 앞에서 “어휴 귀염둥이!”라고 말할 때, 준이 폐가 앞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우린 총사잖아!”하고 외칠 때 우리는 아이들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며 웃음 짓는다.

 

사적인 내용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리얼 버라이어티, 아니 방송의 생리다. 만일 어른들이었다면 이러한 사적인 내용의 공개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사적인 것들이 공개되는 것이 아이들이라고 해서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자칫 아이들에게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최근 이 아이들에게조차 달리는 비판적인 댓글들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아이들의 성격이나 사적인 행동이 공개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물론 말했다시피 이 사적인 내용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방송의 생리일 수 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과 의도적으로 뽑아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아빠 어디가>에서 두 차례 시도되었던 몰카 설정은 그래서 불편한 면들이 존재한다. 꿀단지를 놓고 지키게 하고는 아이들의 반응을 훔쳐보는 것이나, 한밤 중 어른들도 가기 힘든 폐가로 아이들을 보내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은 그래서 몰취미처럼 여겨진다.

 

이것은 아이를 시험에 빠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시험대에서 나온 행동들이 방송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진다는 것은 그래서 아직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가혹한 일일 수 있다. <아빠 어디가> 같은 아빠와 아이 간의 추억 만들기라는 좋은 의도를 가진 프로그램이 왜 굳이 이런 몰카 실험이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그저 재미를 위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어른들의 재미가 아이들에게는 시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빠 어디가>만큼 괜찮은 기획의 예능 프로그램은 최근 <일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괜찮은 기획이 지속적인 공감과 힐링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거기 서 있는 아이들에 대한 극도의 조심스런 배려가 필요하다. 제 아무리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만일 아이들의 <트루먼쇼>가 된다면 그만한 안전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몰카 설정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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