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과 김종민, 그들의 공통고민은?

 

이제 김종국 없는 <런닝맨>을 상상하긴 어려울 것이다. 제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톰이 있어야 하고, 뽀빠이가 힘을 쓰기 위해서는 브루터스가 있어야 하듯이 이광수나 지석진 같은 초식동물들이 있는 <런닝맨>이라는 정글에서는 김종국 같은 육식동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바탕으로 <X맨>에서 주목을 받은 그는 <패밀리가 떴다>를 거쳐 <런닝맨>에서는 확실한 예능의 ‘능력자’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출처: 원오원엔터테인먼트

<런닝맨> 같은 게임 예능에서 김종국 같은 능력자가 부여하는 긴장감은 필수적이다. 그가 얼마나 <런닝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는 그가 없다고 상상해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가 없었다면 배신의 아이콘 광수도 없었을 것이고, 서로 만나면 형 동생 하면서 때론 짓궂은 장난을 치는 하하도 없었을 거다. 심지어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유르스 윌리스 같은 캐릭터도 그렇게 멋있게 포장되기 어려웠을 게다.

 

최민수 같은 공포(?)의 캐릭터가 나왔을 때 그 공포감을 더 극대화시켜주는 역할도 역시 김종국의 몫이다. 능력자인 그가 꼬리를 내리거나 게임에서 지게 되면 그를 이긴 게스트는 더 강하다는 것이 그 자체로 입증되기도 하니까. 한편 반전을 통해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추신수와 류현진이 나왔을 때 모두가 벌벌 떨던 추신수의 이름표를 떼어냄으로써 그에게 승부욕을 자극한 것도 김종국이고, 얘기하는 척 하다가 갑자기 이름표를 떼 내면서 류현진이 가진 의외의 귀여운 면모를 끄집어낸 것도 김종국이다.

 

<런닝맨>은 물론이고 예능에서 능력자로 자리매김한 그지만 바로 예능에서 너무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그에게 고충이 되기도 한다. 그가 예능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을수록 그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가수라는 직업은 가려지기 마련이니까. 2010년 1월에 6집 ‘열한번째 이야기’를 발매하고 근 3년이 지난 올 10월 그는 7집을 발표했다.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예능 동료가 된 개리와 하하가 피처링한 ‘너에게 하고 싶은 말’과 마이티 마우스가 피처링한 ‘남자도 슬프다’에 이어 타이틀곡인 ‘남자가 다 그렇지 뭐’도 특유의 하이톤의 미성 보컬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예능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모두 김종국 같은 것은 아니다. <1박2일>의 김종민은 그룹 코요테에서 끊임없이 새 곡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코요테에서 거의 신지가 노래하는 분량이 절대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워낙 <1박2일>을 통해 갖게 된 이미지가 강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독 가수 출신 MC들이 많았던 <1박2일>은 가수들이 예능을 통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가를 보여줬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MC몽과 이승기, 김C, 은지원은 <1박2일>을 통해 갖게 된 확고한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음악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되자 이들에게도 같은 고충이 생겼던 게 사실이다. MC몽은 물의를 일으키면서 하차했지만, 스스로 하차한 김C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예능으로 소비되는 자신의 이미지가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승기는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발판을 만들었지만 역시 가수라는 본업에 아쉬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은지원도 <1박2일>을 하차하고 클로버를 결성해 좀 더 음악활동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길과 개리 그리고 하하 같은 예능인이 다된 가수들은 그 두 영역을 잘 넘나들며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슈퍼7>콘서트가 논란에 빠지자 길과 개리가 선뜻 하차를 표명하고 본업인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이들에게 음악이 얼마나 돌아가고픈 고향인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수들에게 분명 예능은 하나의 기회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가수 활동의 한 영역이 된 상황이다. 성시경이 성발라에서 성충이가 되는 과정은 어쩌면 이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연예환경 속에서 꼭 필요한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도 성충이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져 성발라가 잊혀지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고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건 균형 감각이다. 어느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덮어버리지 않게 양쪽을 공존하게 하려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노래 하나로 승부해도 충분하다면 최선이겠지만, 예능이 가수로서의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된다면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만한 가치는 분명 있을 것이다.

아이유, 국민여동생 이미지 벗어나야

 

슈퍼주니어 은혁과 함께 찍은 셀카 사진이 SNS를 통해 유포되면서 아이유의 국민여동생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귀여운 외모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찬 모습의 그녀가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하고 노래를 부를 때 삼촌 팬들은 열광했었다. 하지만 이 야릇한 사진 한 장은 그 모든 이미지와 판타지를 깨버렸다. 아이유와 아이유 소속사로서는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아이유'(사진출처:로엔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또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다. 국민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누구나 성장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성장하고 있는(또 해야 하는) 연예인에게 국민여동생이란 이미지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물론 아이유는 그 이미지를 통해 많은 팬덤을 형성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얻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게 굳어져버린 이미지는 아이유에게는 결국 독이 되기 마련이다.

 

영원히 팬들에게 국민여동생으로 남기 위해서는 그 어린 나이에 성장이 멈춰야 한다. 이미지적으로 말하면 이미지가 변질되기 전에 은퇴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영원히 아이유는 국민여동생으로 봉인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아이유는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많은 가능성과 장점을 가진 가수이기 때문이다.

 

셀카 사진이 이미 SNS를 통해 유포되었을 때 소속사가 “아이유 집으로 은혁이 병문안 와서 찍은 사진”이라고 진실 공방으로 대응한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이미지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믿고 싶은’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속사가 봐야 했던 것은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대중들이 뭘 믿고 싶어하는가 하는 그 정서다.

 

이것은 SNS 시대에 언제고 터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연예인들의 이미지 논란에서 반드시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다. 타블로와 티아라 사태가 일파만파 번졌던 것은(그리고 여전히 그 불씨가 남아있는 것은) 바로 이 대중정서를 읽지 않고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에만 억울해하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미지로 벌어진 사건은 사실 진실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

 

아이유는 스스로도 자신이 국민여동생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을 버거워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대중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인 걸. 과거 문근영이 국민여동생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겪은 성장통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덧입혀진 그 이미지를 벗어던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말해준다.

 

그 사진의 진위가 어떻든 셀카 사진 한 장으로 생겨난 이 아이유 이미지의 균열은 그녀에게는 어쩌면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그녀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면모를 가졌고 털털하면서도 개념 발언을 많이 한다고들 한다. 통기타 하나 들고 앉아 자신이 만든 곡을 담담히 불러내는 싱어 송 라이터로서도 그녀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가수다. 그간 너무 ‘여동생’의 이미지를 부여한 가사에서 탈피해 그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 아이유는 기대하면 안 되는 일일까. 이번 일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아이유는 더 롱런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제왕>과 <골든타임> 작가 논란

 

<드라마의 제왕>의 이고은(정려원)은 신인작가다. 아직 정식데뷔도 못했고 유명작가 밑에서 갖은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보조작가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악명 높은 제작자인 앤서니 김(김명민)에게 이용당하고는 드라마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후 쫄딱 망한 앤서니 김은 이고은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일본투자자에게 투자받기 위해 그녀와 다시 계약한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의 편성권을 따내게 되자 신인작가에게 작품을 맡길 수 없다는 방송국측의 의견에 따라 앤서니 김은 이고은을 교체해버린다.

 

'드라마의 제왕'(사진출처:SBS)

드라마라서 극화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적어도 여기 등장하는 신인작가 이고은이 당하는 처지는 그다지 과장이 없다. 외주제작 시스템 속에서 신인작가들이 겪는 고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제작자에 의해, PD에 의해, 방송국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조금만 반응이 달리 나와도 전면적인 작품 수정을 요구 당한다. 심지어 이고은처럼 아이디어만 쪽쪽 빼먹고 이용만 하다 버려지는 경우까지 있다. 제 아무리 무던한 사람이라도 이런 환경에서 작품 하나를 하고나면 자신이 생각했던 작가라는 세계와의 괴리감에 자괴감마저 들게 마련이다.

 

<드라마의 제왕>을 보면서 최근 월간 <방송작가>에 게재된 인터뷰로 논란이 된 <골든타임>의 최희라 작가가 문득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 “완장을 찬 돼지 같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이 한 줄의 표현이 그대로 문자화되면서 최인혁이라는 놀라운 캐릭터를 연기한 이성민이 도마에 오른 것이 최희라 작가에게는 논란의 빌미가 되었다. 만일 그 표현을 하지 않았더라면, 또 했더라도 그것이 기자에 의해 활자화되지 않았다면 그 인터뷰의 전체 내용은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겼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한 인터뷰와 그 인터뷰 내용을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다룬 <방송작가>측의 행동이 경솔했고 잘못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추호도 두둔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이 인터뷰의 진짜 내용은 배우를 디스하려는 그런 목적에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신인작가가 드라마판에서 겪고 있는 많은 충돌과 고충, 그리고 작가로서 지켜야할 소신과 현실 사이의 갈등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다만 그것이 너무 거친 표현으로 직설적으로 다뤄졌다는 것이 본질을 호도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뿐이다.

 

최희라 작가는 2010년 <산부인과>로 데뷔한 후, <골든타임>이 두 번째 작품으로 거의 신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방송작가>와의 인터뷰의 첫머리에서 <산부인과>를 쓸 때 겪었던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신인작가가 쓴다고 하니 제작 여건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시청률이 오르고 조금씩 반응이 오니까 그제서야 오만 군데서 달려들어 흔들어 대기 시작하는 거예요. 한번은 한 회 대본 전체를 다시 써야 했죠. 한 회가 바뀌면 이미 써 놓은 뒷부분의 대본도 다 고쳐 써야 하는 거잖아요.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9일 동안 5회 대본을 다시 썼어요. 그런 고통을 겪고 나니까 이 바닥이 나와 맞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어요.”

 

흔히들 드라마 작가라고 하면 모두가 엄청난 고료를 받고 배우들 누구나 고개를 숙이며 존경하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전체 작가들 중 상위 몇 프로에 해당되는 얘기다. 최희라 작가는 <골든타임>을 하면서도 권석장 감독과 부딪쳤던 점들을 인터뷰를 통해 피력했다. 그녀의 말로는 권석장 감독은 “청년 인턴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를 찍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희라 작가가 쓰려던 것은 좀 더 중증외상학과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감독과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10회를 넘어서부터 상황이 더 힘들어졌어요. 현장에서는 대본 대로 찍을 수 없다고 하지, 배우들은 자신의 분량을 늘려달라고 하지... 이 드라마를 지켜야 하는 건 순전히 작가의 몫이었어요.” 최희라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말한 것처럼 권석장 감독이 “최인혁과 이민우의 이야기보다 이민우와 장재인이 함께 하는 장면을 더 넣어달라고 요구”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시청률에 있어서 달달한 멜로라인이 갖는 힘이 분명 있다는 것을 권석장 감독이 알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작가는 시청자가 “이미 최인혁과 이민우를 통해 중증외상환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의견충돌은 당시 그녀를 괴롭혔을 게다. 물론 그녀는 인터뷰에서 “지금은 감독님께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인터뷰 내용에서 문제가 된 배우에 대한 이야기는 격앙된 표현 부분만 떼놓고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다. <드라마의 제왕>에서 강현민(최시원)이라는 배우가 이고은 작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보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의 힘겨루기가 역할에 따라 나눠지기보다는 누가 힘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희라 작가는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끌고 가 줘야 하는 게 주인공의 몫”이라고 했다. 최인혁이라는 캐릭터가 점점 대중들에 의해 중심으로 오면서 본래 다루려 했던 멘토와 멘티 관계를 넘어 지나치게 주목되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작가로서는 부담이었을 수 있다.

 

이러한 불편함은 주목받으면서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갑자기 생겨난 최인혁과 신은아의 멜로에 대해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에 어느 정도 담겨있다. “최인혁과 신은아 두 사람의 멜로도 그랬어요. 나이답지 않게 순수하고, 어색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봐야 하는 시점에서 마치 작가 몰래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연기했어요.” 이 캐릭터의 균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이선균에 대한 칭찬 속에 들어 있다. “그에 비하면 이선균씨는 분량이 제일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 않게 주위 배우들과 밸런스를 맞추면서 최인혁의 캐릭터가 빛이 날 수 있도록 해줬어요. 이선균씨가 그동안 왜 그렇게 많은 작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지 느꼈죠.”

 

<골든타임>에서 이성민의 연기는 분명 작품을 살리는 힘이 되어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건 연기가 살아나는 것이 전적으로 연기자의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최인혁이라는 캐릭터가 작가에 의해 축조된 바탕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성민이 수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골든타임>을 통해 주목받게 된 것은 그런 이유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최희라 작가가 최인혁이라는 캐릭터를 잘 만들었기 때문에, 이 인터뷰의 논란은 더 큰 파장을 낳게 되었다. 여전히 최인혁이라는 캐릭터는 서민들의 메시아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분명 경솔한 인터뷰였지만 거기에는 아직 신참으로서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작가의 순진함도 묻어난다. <드라마의 제왕>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 제작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것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니까. 최희라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서 여전히 작가를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신인작가라는 현실 속에서 작가라는 정체성 자체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골든타임>이 좋은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모쪼록 이 한 때의 실수로(그것이 작은 실수는 아니지만) 또 다른 좋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마의>에서 허각이 떠오르는 이유

 

"나 인의라는 것 해보고 싶습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얼마나 잘난 일인지 정말 나 같은 놈은 꿈도 꿀 수 없는 건지. 나 그거 한 번 해볼 겁니다." 여기서 ‘나 같은 놈’이란 마의인 백광현(조승우)의 신분을 뜻한다. 요즘 사회를 태생부터 미래가 결정되는 스펙사회라고 하지만 조선시대 만큼일까. <마의>가 현재에 던지는 판타지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마의'(사진출처:MBC)

사극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그린다고 했던가. 사람을 살리고도 마의라는 신분 때문에 장 30대를 맞는 <마의>가 그리는 세상은 작금의 스펙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그 손이 그 손일진대 “짐승이나 만지는 천한 손으로 사람의 몸에 침을 놓는 건 맞아죽어도 싼 죄”로 치부되는 곳이 바로 <마의>의 세상이다.

 

백광현은 다름 아닌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청춘이다. 그런데 그런 그를 신분이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 바라봐주는 인물들이 있다. 그가 의과시험을 치르게 도와주는 강지녕(이요원)이 그렇고, “자네가 실력만 있으면 되지 출신성분이 뭔 상관인가”라고 말하는 고주만(이순재)이 그렇다. 숙휘공주(김소은)가 저도 모르게 백광현의 매력에 끌려 볼에 입맞춤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그녀는 강지녕의 말대로 백광현의 “신분이 아닌 사람을 본 것”이다.

 

<마의>가 절묘한 지점은 바로 조선시대라고 하더라도 이 신분이 무화되는 공간들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드라마 초반에 등장했던 이타촌(외국인들이 사는 마을)이 그렇고, 무교탕반이라는 왕에서부터 서민들까지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그렇다. 고주만 영감이 의과시험을 누구나 실력이 있으면 응시할 수 있는 시험으로 만드는 것도 그렇다. 바로 그 공간이 있어 백광현은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실력으로 1차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 백광현은 저 <슈퍼스타K2>의 허각이 만들어낸 신드롬을 사극으로 재현하는 인물이다.

 

그가 응시하는 의과시험의 풍경들은 며칠 전 끝난 수능시험을 떠올리게 한다. 시험 전날 자꾸 까먹는 자신을 한탄하며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고 있을 때 강지녕이 건네주는 요약본은 지금으로 치면 ‘족집게 과외’ 같은 것. 백광현은 그 요약본에서 절반 이상이 시험에 나왔다며 기뻐한다. 우리네 스펙사회에서 그 첫 발이 대학입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마의>의 백광현이 첫 발을 내딛는 의과시험은 꽤 의미심장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의>가 현재적 의미를 드러내는 건 동물의 병을 돌보고 고치는 마의라는 존재 자체일 것이다. 생명을 고치는 손에 마의가 따로 있고 인의가 따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건 생명을 살린다는 것 그 자체가 아닌가. 조선이라는 신분 사회 속에서도 결국 하나의 인간으로 공유되는 지점은 결국 의술이 다루는 몸이다. 양반이건 노비건 몸은 똑같이 병들고 죽게 마련이니까.

 

<마의>를 보면서 그것이 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이야기로 느꼈다면 그것은 이 사극이 얼마나 현재의 대중들의 정서를 들여다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신분과 빈부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공간과 상황들 속에서 그렇게 백광현이 성장하는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강력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사극은 그렇게 과거를 다루지만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하는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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