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강조한 박, ‘서민’ 강조한 문

 

지난 2002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광고에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과 함께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던져진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말 한 마디는 정책보다 더 강력한 이미지의 힘을 대선 광고를 통해 보여주었다.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그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광고는 욕 먹으며 밥 먹는 장면을 통해 당시 이명박 후보의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이 말은 ‘경제만 살리면 다 용서된다’는 위험한 발상을 담고 있었지만 당시 팍팍한 서민들의 귀에는 달콤하디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사진출처:새누리당, 민주통합당

광고는 물론 실상이라기보다는 이미지에 더 가깝다. 그것이 광고가 가진 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밥집 광고에 등장하는 욕쟁이 할머니는 연기자였음이 밝혀지기도 했고 <MB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이 광고의 메이킹 필름을 통해 그 이미지가 얼마나 허상인가를 폭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선 광고가 가진 힘은 강력하다. 짧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그래서 더 압축적이고 더 이미지적이다. 따라서 그 이미지의 파괴력을 가진 대선 광고는 그만큼 조심스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첫 선을 보인 광고 안에는 어떤 이미지 전략이 들어있을까.

 

왜 박근혜는 ‘상처’를 끄집어냈을까

박근혜 후보는 첫 광고에서 ‘상처’를 끄집어냈다. 2006년 신촌 피습 사건 장면이 스틸 컷으로 들어가고 뺨 부위에 테이프를 붙인 박 후보의 옆얼굴과 그로 인해 남게 된 상처의 흔적을 클로즈업하면서 그 위에 ‘그날의 상처’의 의미를 되새겼다. 박 후보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촛불집회 장면이 삽입되고 “여러분이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남은 인생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하고 자신의 출마 근거를 제시한 후 마지막에 “이제 여러분께 저를 바칠 차례입니다.”라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캐치 프레이즈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이 광고가 끄집어내는 건 박근혜 후보가 가진 ‘상처’의 이미지다. 물론 독재 정권이 가진 한계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어찌됐든 그녀의 부모가 모두 총탄을 맞고 사라진 사실에 대한 보수층의 동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이것은 정치와는 무관해보이지만 박근혜 후보가 가진 이미지적인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정책을 끄집어내면 낼수록 과거 독재정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반면, 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때 동정적인 이미지는 더 커진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가 유독 대선 토론을 회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정책적인 약점이 있다기보다는 이미지적으로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를 드러낸 박근혜 후보의 첫 대선광고는 바로 그 정책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동정적인 이미지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부가되는 것은 ‘여성’이라는 위치가 만들어내는 막연한 ‘희생’ 같은 이미지다. “이제 여러분께 저를 바칠 차례”라는 말은 그래서 다양한 뉘앙스로 읽힌다. 그것은 자신을 살려낸 국민들에게 이번에는 자신이 국민들을 살려낼 차례라는 뜻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개발시대의 향수를 가진 보수층들에게는 그녀의 부모를 잇는 희생처럼 들리기도 한다.

 

‘서민’을 끄집어낸 문재인이 주장한 세 가지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문소리가 부르는 가수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 바탕으로 깔리고 문재인 후보의 자택 일상이 광고에 담긴다. 이것은 여러모로 박근혜 후보가 갖고 있는 귀족적인 이미지와의 차별화를 위한 포석이다. 가사가 전하는 ‘하늘’과 ‘그대 얼굴’은 기묘하게도 대통령과 서민의 이미지로 전화된다. 일상적인 장면 속에는 문재인 후보가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 들어있지만 그 깔리는 목소리기 무수한 연설 속에서 그가 했던 목소리들인 것도 마찬가지다. 즉 일상과 정치가 하나로 엮여진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다.

 

이것은 문재인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수평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다. 한 편에서는 열심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일상이 깔려 있고 서민이 스며있다는 것. 문재인 후보는 광고를 통해 국민여러분에게 묻는다. “국가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십니까? 나의 어려움을 함께 걱정해주는 정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아마도 서민들이 지금의 정부에게 가진 가장 큰 아쉬움일 것이다. 나라는 세계 몇 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연일 대서특필되지만 정작 더 팍팍해져만 가는 서민들의 삶. 문재인 후보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그런 서민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던진 세 마디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의 대부분을 잡아낸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그럼으로써 생겨나는 정의로운 결과가 바로 문재인 후보가 국정 운영을 통해 세우려는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라는 것. 그럼으로써 마지막 슬로건이 제시하듯 ‘사람이 먼저’인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이 이 광고의 주 메시지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첫 광고 이미지 전략은 이처럼 서로 판이하다. 박근혜 후보의 광고가 정책적인 내용이 쏙 빠져버린 한계를 지니면서도 동정적인 이미지가 가진 힘을 한껏 강조함으로써 박근혜 후보가 가진 장단점을 제대로 활용해내고 있는 한편, 문재인 후보의 광고는 서민적인 이미지와 함께 자신의 핵심적인 정책 기조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광고의 이미지적인 힘으로만 보자면 문재인 후보의 첫 번째 광고는 이미지와 정책 기조가 결합됨으로써 박근혜 후보의 광고에 비해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 정책 기조가 현실로 다가오는 서민들에게는 어쩌면 그의 광고가 훨씬 더 실제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첫 포문을 연 두 후보들의 이미지 전쟁. 향후의 전략적 행보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드라마의 제왕>, 재미있지만 부족한 2%

 

이 거창한 제목의 드라마, 왜 제목처럼 되지 못할까. 아마도 <드라마의 제왕>이 그저 그런 드라마라면 이런 질문은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이 드는 것은 이 드라마가 꽤 재미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본도 탄탄하고 연출도 나무랄 데 없으며 연기도 좋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렇게 잘 만든 드라마도 흔치 않은데 왜 시청률은 좀체 오르지 못하는 것일까.

 

'드라마의 제왕'(사진출처:SBS)

물론 작금의 시청률이라는 게 그 드라마의 인기를 정확히 말해주는 척도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의 제왕>에는 대중적으로 부족한 2%가 존재한다. 그것은 대중들이 정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애매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렇게 질문으로 바꾸면 좀 더 명쾌해진다. 왜 대중들이 굳이 다른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의 제왕>을 봐야 할까.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연기자들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그 스토리가 주는 재미 때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내용과 상관없이 거기 나오는 패션이나 스타일 때문이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일반 대중들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이야기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정서적인 유대감 때문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드라마를 소재로 다룬다. <경성의 아침>이라는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뛰는 앤서니 김(김명민)과 그를 방해하고 막으려는 제국프로덕션의 오진완(정만식)의 대립구도가 기본구도이고 이 위에 작가 이고은(정려원), 남주인공 강현민(최시원), 감독 구영목(정인기), 여주인공 성민아(오지은)와의 갖가지 충돌과 사건사고를 펼쳐놓았다.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데 넘어야 할 무수한 산들이 극의 위기상황과 대립구도로 제시되는 식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그래서 마치 게임을 하듯 끝없는 위기상황과 해결의 반복으로 이뤄져 있다. 드라마 투자를 위해 간신히 작가를 잡아오면 편성이 문제가 되고, 편성을 따려 하면 연기자가 문제를 일으킨다. 편성도 확정되고 연기자도 결정된 상황에서는 감독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여주인공이 하나의 숙제로 제시된다. 끝없는 미션이 제시되기 때문에 드라마에 일단 발을 디디면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미드식의 장르 드라마 구조다.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 속도감이 좋지만 이 게임 식의 전개방식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이미 전술한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2%의 공간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그 롤러코스터에 타면 빠르게 흘러가는 스토리가 대단히 재미있지만 정작 드라마가 갖는 의미는 빠져 있다. 왜 대중들은 드라마를 보는가. 드라마는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바로 이 점은 그토록 드라마를 제작하려는 앤서니 김의 꿈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며, 또한 그가 그렇게 힘겹게 만들려는 드라마가 어떤 가치를 갖느냐의 질문이기도 하다. 그저 앤서니 김의 성공을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이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물론 복마전이 되어버린 드라마판을 보는 재미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일반 시청자들이 채널을 고정시킬 강력한 동인이 되지는 못한다.

 

<드라마의 제왕>은 재밌다. 하지만 그 재미는 정서를 동반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앤서니 김의 성공을 지지하는 그 마음이 생겨나질 않는다. 그가 놀라운 꼼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하고 한 단계씩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은 머리를 즐겁게는 하지만 마음까지 뿌듯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바로 이 안타까운 2%를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만 있다면, 어쩌면 이 괜찮은 드라마는 제목 값을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개콘>, 여전히 시청률은 1위지만

 

<개그콘서트>는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다. 한때 17%까지 시청률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8주째 20% 선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매주 기록하고 있다. 코너들도 그런대로 화제가 되는 것들이 적지 않고, 이 코너들이 쏟아내는 유행어도 꽤 많다. 무엇보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위상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제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들을 다양한 CF에서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렇게 전체적으로 안정된 지표들이 존재하지만 실상 <개그콘서트>의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렇게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코너들이 전체적으로 적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고, 이미 만들어진 유행어와 상황의 반복으로 웃음을 주고는 있지만 무언가 새롭다거나 신선하다는 인상은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몇몇 유행어와 개인기 혹은 상황 연기로 이미 뜬 개그맨들이 매주 비슷한 아이디어의 코너들을 그저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대표할만한 이른바 잇(it) 코너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개그콘서트>의 위기상황을 잘 말해준다. <꺾기도>는 이번 주 불방됐지만 이미 너무 맥락 없이 반복되는 바람에 그 기력이 소진된 아이템이기도 하다. <핑크레이디>는 노래와 상황만 제시될 뿐 아이디어가 보이질 않고, <좀도둑들> 역시 유행어의 반복에 머물러 있다. <아빠와 아들>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이지만 그 ‘뚱뚱하다’는 아이템 하나에 집중되어 있어 다채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배우들>은 김영희가 새롭게 투입되었지만 박지선이 근근히 코너를 살리고 있는 정도이고, <어르신>도 이른바 소고기 개그를 하는 김대희가 주목될 뿐이다. <갑을컴퍼니>는 그 상황극 자체가 괜찮은 아이디어지만 그걸 매주 살려내는 한 방이 부족하게 여겨진다. <생활의 발견>은 좀 더 다양한 상황이 가능하지만 남녀의 이별 상황에만 매몰되다 보니 신보라가 스스로 비판하듯 ‘게스트빨’에 ‘홍보의 발견’이 되어가고 있다. 이승기가 출연한 이번 주 분량은 물론 이승기 본인이 살린 부분이 많았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와 광고를 홍보하는 느낌이 강했다.

 

꽤 주목을 끌었었던 <용감한 녀석들>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박성광과 이승건 PD의 대결구도가 화제가 되었지만 그것은 코너가 가진 본질적인 재미는 아니다. 김준현을 탑으로 끌어올린 <네가지>도 예전처럼 빵빵 터트리는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허경환의 <거지의 품격>과 정태호의 <정여사>가 <개그콘서트>의 얼굴이 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반복적인 유행어에 점점 의지하는 인상이 짙다.

 

새로운 코너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개그콘서트>의 위기 상황이다. 새로 시작한 최효종의 <주부9단>은 검사인 아들과 의사인 딸을 둔 주부가 뭐든 못하는 게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지만 과거 그가 했던 특유의 공감개그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코너가 계속 해서 생겨나고 적체된다 싶은 코너는 과감히 사라지던 그간의 방식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개그콘서트>는 어딘지 변화를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다.

 

신랄한 현실 풍자 같은 날선 느낌과 힘겨운 서민들을 대변하는 듯한 그 헝그리 정신은 모든 코너에서 상당 부분 희석되어 있다. 여장남자 캐릭터가 너무 많은 것도 어떤 시대의 트렌드라기보다는 아이디어 부족을 얘기하는 것만 같다. <좀도둑들>의 김혜수 분장을 하고 나오는 이상훈, <갑을컴퍼니>의 희숙대리 김지호, <생활의 발견>의 김준현, <정여사>의 정태호, 김대성, 그리고 새로 시작한 <주부9단>의 최효종까지 여장남자 캐릭터는 넘쳐난다. 이렇게 많은 여장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여성 캐릭터에 대한 수요가 높은 반증이기도 하지만 이들 코너가 그런 느낌을 살리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개그콘서트>는 여전히 시청률은 1위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주는 체감은 예전만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것은 코너들의 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몇몇 톱스타 개그맨들 중심으로 코너들이 유지되는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청률 1위와, 배우나 가수 못지않게 잘 나가는 개그맨들(물론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고 힘든 개그맨들이 대부분이지만)에 도취된 나머지 생겨나고 있는 매너리즘이다. 이를 사전에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개그콘서트>가 계속 예능 전체의 수위를 차지할 것이란 보장을 하기가 어렵다. 위기는 항상 최고 정상에 있을 때 오는 법이다.

로이킴은 어떻게 <슈퍼스타K4>가 되었나

 

간발의 문자투표 차이로 로이킴이 딕펑스를 이기고 <슈퍼스타K4>가 되었다. 우승과 준우승을 가른 표 차이는 실로 미미했다. 당일 심사위원 점수는 283점으로 둘 다 똑같았고 인터넷 점수는 로이킴(90점)이 딕펑스(100점)보다 10점 낮았지만 당일 투표점수는 로이킴(600점)이 딕펑스(588)보다 12점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2점 차이로 로이킴이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슈퍼스타K4'(사진출처:mnet)

너무 미소한 차이였기 때문에 딕펑스를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이 결과가 자못 아쉬울 수밖에 없었을 게다. 심사위원 점수가 똑같았다는 것에 대해 일부 팬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당락을 결정지은 것은 문자 투표였기 때문에 심사위원 점수가 같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쉽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번 시즌은 유독 역대 그 어떤 <슈퍼스타K>보다 그 오디션의 승패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의외의 결과 때문에 심사방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정준영은 그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top6에서 음 이탈을 하고도 붙었을 때는 왜 붙였느냐는 논란이 생겼지만 상대적으로 잘했던 top3에서 떨어졌을 때는 또 왜 떨어뜨렸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붙고 떨어지는 것은 심사방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거의 문자투표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제작진이나 심사위원은 그 가이드라인 정도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들리는 바로는 이번 본선 무대의 결과에 대해서 제작진들 역시 곤혹스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제작진들도 나름 이런 친구가 올라가면 방송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거의 대부분 그 예측이 맞아떨어졌는데 올해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슈퍼스타K>를 가장 대중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세운 시즌2에서 허각이 보여준 것은 실력, 그 중에서도 가창력이었다. 허각 신드롬까지 생겼던 것은 그가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슈퍼스타K2>의 판타지는 그 무대가 현실과는 달리 공정하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 공정함 위에 오로지 실력만으로 겨루는 그 과정에 대중들은 매료되었던 것.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대중들은 그 실력, 즉 가창력 대결 자체를 피곤해하고 있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2>, <위대한 탄생>, <탑밴드>, <K팝스타> 등등 무수히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몇 단 고음을 치는 가창력의 소유자들이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놀라웠지만(<나는 가수다>가 대표적이다) 차츰 식상해졌다. 성대 대결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는 그렇게 서서히 음악에서의 실력이 단지 가창력(고음이나 음정 리듬감 같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가창력이 아니면 그럼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유독 심사결과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올해 <슈퍼스타K4>는 이런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top12 안에는 실로 다양한 개성의 인물군들이 들어 있었다. 연규성이나 홍대광처럼 강력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후보들이 있는 반면, 유승우나 김정환처럼 노래보다는 작곡이나 편곡에 능한 아티스트도 있었다. 정준영처럼 하나의 스타일이 압도적인 경쟁력이 되는 인물도 있었고, 가창력은 떨어지지만 연주와 아이디어로 승부한 딕펑스 같은 밴드도 있었다.

 

즉 이렇게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한 무대에 세워서 오로지 실력만으로(그 실력의 기준을 대중들은 여전히 가창력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우위를 판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중들은 결국 자신들이 좋아하는 취향대로 투표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가창력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홍대광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고, 스타성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정준영을 더 선호했을 가능성이 높다. 무언가 창의적인 무대 퍼포먼스에 더 치중하는 대중이라면 딕펑스에 열광했을 것이다. <슈퍼스타K>라는 한 무대에 서 있다고 해서 그들을 이제 유일한 하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가창력 하나를 잣대로 보던 데서 이제 우리의 시선은 음악의 다양한 면들로 돌려지고 있다. 이 과도기적인 상황은 당연히 논란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로이킴이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가창력에 좋은 스타성 그리고 아티스트적인 이미지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준영과 대결해도 스타성에 덧붙여 노래 실력이 더 좋아 보이고, 딕펑스와 대결해도 괜찮은 무대 퍼포먼스(비주얼만으로도!)를 보여준다. 홍대광이 확실한 스토리를 가졌다면, 로이킴은 거꾸로 곡절 없는 그 엄친아 스토리가 있다.

 

즉 로이킴의 우승은 각각의 개성을 가진 경쟁자들과 비교해 그들에게 없는 한 가지씩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따라서 로이킴이 우승했다고 해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양성의 관점으로 보면 무대 퍼포먼스는 확실히 딕펑스가 좋고, 스타성은 여전히 정준영이 낫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슈퍼스타K4>의 본선 무대에 오른 top12가 모두 우승자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개성에 있어서는 확실히 인정받은 셈이니까.

 

로이킴의 우승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달라져가는 대중정서 속에서 <슈퍼스타K>가 대중들에게 주는 판타지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슈퍼스타K2>가 공평하지 않은 현실에서 공정한 무대를 세움으로써 판타지를 주었다면, <슈퍼스타K4>는 단지 타고난 가창력만이 아닌 다양한 음악적 개성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로서의 판타지를 제공했다. 일반인들은 그 무대를 보면서 뭔가 자신이 부족해도 자기가 가진 개성을 창의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통해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대중정서의 반영이면서, 또한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가창력에서 개성적인 목소리와 끼의 소유자들을 찾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 물 갔다는 얘기가 나오는 그 지점에서 새로운 판타지로 무장한 오디션 제 2기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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