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2012'의 쓰나미는 온 지구를 삼켜버리지만 그 이유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뭐 과학적인 이론이야 그럴싸하지만 과연 그런 지구 종말이, 그저 예언되어진 대로 벌어지는 것일 뿐, 인간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는 심지어 무책임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하긴 할리우드에서 흥행을 위해 만들어진 재앙 블록버스터에서 윤리적인 측면까지 기대한다는 건 좀 지나쳐 보이기까지 한다. 재앙이 벌어졌으나 거기에 인간의 죄는 묻지 않는 태도,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지지만 먼 거리에서만 바라봐 그 지옥도조차 스펙타클로 여겨지게 만드는 할리우드 CG의 놀라움 앞에서 환경 문제 같은 이야기는 쑥 들어가 버린다.

코맥 매카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더 로드'는 이야기가 약간 다르다. 이 작품 역시 무엇이 그런 지구의 종말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 영화는 이 모든 원인들이 바로 인간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종말 이후의 세계 속에 생존한 인간들의 모습이 그 종말의 원인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파괴된 세계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 때론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끔찍한 카니발리즘을 만나지만 사실 이것보다 더 끔찍한 건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그 순간이다. 희망하는 자는 길을 따라 걸어가고, 포기한 자는 길 바깥으로 나가 짐승의 길을 가게 된다. '2012'는 종말의 스펙타클(?)을 보여주지만, '더 로드'는 보고 싶지 않은 현실, 환경 파괴가 가져오는 그 지옥도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는 점이 다르다.

한편 '아바타'는 이미 파괴될 대로 파괴되고 에너지가 고갈된 지구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 행성인 판도라로 날아간다. 그런데 아직도 인간들은 정신 못 차리고 지구에서의 잘못된 역사를 반복한다. 대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의 터전을 불질러버리는 것. 문명의 바람을 이미 쐰 인간으로서는, 에너지를 얻기 위한 파괴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일까. 휠체어 신세로 다리(아마도 기계 다리)를 얻기 위해 이 행성에 들어와 아바타(분신)를 이용해 나비족에게 접근한 제이크 설리(샘 웨딩턴). 그러나 그는 점점 나비족에게, 아니 이 아름다운 판도라 행성에 빠져든다. 결국 이 판도라 행성을 지키는 제이크 설리의 이야기는 바로 파괴되지 않았던 시절, 자연과 인간이 영적으로 소통하던 옛 시절의 지구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담는다. 판도라 행성을 구해낸 제이크 설리가 기계 다리를 포기하고 주술이 살아있는 자연의 품에서 새 몸을 얻는 장면은, 문명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로도 읽히지만, 지긋지긋한 현실에서의 도피, 즉 가상이지만 낙원으로 영원히 접속되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 '아바타'의 잔영이 보이는 것은 그 판도라 행성의 살아있는 자연이 아마존의 밀림을 그대로 닮아있기 때문이고, 대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그 원주민들의 터전을 불 지르는 인간의 이야기가 바로 이 곳 아마존에서 지금 현재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눈물'의 시선은 '아바타'에서의 제이크 설리의 시선을 따라간다. 아마존 밀림 속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차츰 이해해가는 그 과정에서 저 한 편에서 밀림을 향해 다가오는 기계음을 듣게 되는 식이다. '북극의 눈물'에서 카메라가, 녹아가는 얼음 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북극곰에 머무르는 것으로 지구적인 환경문제를 잡아냈던 것처럼, '아마존의 눈물'에서 카메라는 거기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삶을 따라가며 지구의 이야기를 건넨다. 물론 '아마존의 눈물'에는 파괴되어 가는 '지구의 허파'를 위해 싸우는 제이크 설리 같은 돈키호테는 없다. 하지만 바로 그 곳에 들어가 그 실상을 시리도록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대비시켜 담아온 그들이 바로 환경 파괴에 맞서는 첫 발을 내디디는 제이크 설리가 될 것이다.

올 겨울, 전 세계는 이상기온으로 들썩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때 아닌 폭설에 한파가 몰아닥쳤고, 지구 반대쪽에 있는 호주에는 난데없는 열대야로 펄펄 끓고 있다.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해는 어쩌면 이제 우리가 지금껏 누려온 문명의 평온한 만큼 앞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2012'의 무책임한 태도로 바라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더 로드'의 보고 싶지 않지만 반드시 바라봐야 하는 현실로 볼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아바타'가 그리는 막연한 야생과 자연에의 향수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아마존의 눈물'처럼 그네들의 불행이 우리의 삶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통찰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우리 각자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화는 때로는 이야기와 꿈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지붕킥'의 황정음과 신세경

술에 만취해 한 여인은 끊임없이 웃고, 한 여인은 끊임없이 울어댄다. 웃는 여인은 신세경이고 우는 여인은 황정음.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핵심적인 두 캐릭터들이다. 그런데 왜 똑같은 술을 먹고 신세경은 웃고 황정음은 우는 것일까. 여기에는 이 시트콤이 가진 독특한 재미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알다시피 술이란 놈은 참으로 요상한 물건이다. 평상시에 억눌렸던 감정을 거침없이 밖으로 끄집어내는 이 술을 통해서 웃고 있는 신세경과 울고 있는 황정음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신세경이라는 캐릭터는 시트콤 속에서 우울한 상황에 놓여진 존재로서 그려진다. 아버지가 부재중인 상황에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이순재네 집에서 식모로 살아가는 처지. 그러니 웃을 일이 뭐가 있을까.

한편 황정음은 신세경과 비교해 늘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실제 속은 역시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 서운대 출신이라는 서러움과 돈이 없어 남자친구에게 늘 얻어먹는다는 자괴감 속에서도 늘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녀의 당당함 속에는 숨겨진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슬픔이 있다. 그러고 보면 황정음이나 신세경은 내면적으로는 비슷한 처지에 서 있다고 보여진다. 다만 그 힘겨움의 강도가 다르고, 그것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 황정음의 슬픔과 신세경의 슬픔을 다루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시각이 다르다. 황정음은 슬픔을 웃음으로 전화시킨다. 그녀가 떡실신녀가 되고, 서운대라는 사실 때문에 버스의 서운대 광고에 들어간 자신의 얼굴에 낙서를 해대는 상황은 그녀에게는 고통의 순간이지만 그것이 시트콤의 과장된 연출과 연결될 때, 보는 이들은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삐에로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 웃음을 터뜨리게 하듯이.

반면 신세경은 슬픔을 슬픔 그대로 그려낸다. 이것은 시트콤의 시각이 아니라 정극의 시각이다. 물론 이 '지붕 뚫고 하이킥'의 본질은 시트콤이기 때문에 신세경을 다루는 시각이 모두 정극의 그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를 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다른 어느 캐릭터들보다도 진지한 편이다. 따라서 신세경의 캐릭터는 시트콤과 정극을 오간다. 동생을 위해 샌드위치 많이 먹기 대회에 나가는 신세경이 우스우면서도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여타의 시트콤들과 달리 웃음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감동까지 선사하는 것은 황정음과 신세경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극적으로 보여지듯이, 시트콤의 시각과 정극의 시각을 절묘하게 넘나드는 그 자유자재의 연출력이 대중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웃음은 이 시트콤의 재미를 극대화시켜주고, 감동은 거기에 어떤 의미까지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이 두 코드는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마지막으로 황정음과 신세경을 통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지붕 뚫고 하이킥'만의 매력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웃을 때 눈물을 주기도 하고, 그들이 울 때 웃음을 주기도 하는 그 반어법 같은 이 시트콤만의 쿨한 자세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우는 게 우는 게 아닐 때, 보는 이들은 그 웃음의 과장됨과 눈물의 질척거림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한 웃음과 감동의 강도도 세진다. 거꾸로 말해 웃기기 위해 웃기는 것과 울리기 위해 울리는 것은 뻔하게 여겨진다는 말이다. 즉 이런 상반된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세련되게 웃음과 감동을 그려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황정음과 신세경이 보석 같은 캐릭터인 것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이 두 캐릭터는 실로 시청자들이 이 시트콤을 보며 웃고 울게 되는 그 핵심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장본인들이다. 이렇게 잘 운용된 시트콤의 캐릭터는 그것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이미지까지 제고시킨다. 황정음과 신세경의 주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이 시트콤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연기자들에게도 잘 만들어진 시트콤은 기회의 영역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떤 정극도 해내지 못한 매력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니 말이다.

'제중원, '공부의 신', '파스타'가 그리는 세 가지 성공

'제중원'의 황정(박용우)은 그 신분이 백정이다. 하지만 그가 쥐고자 하는 건 소 잡는 칼이 아니라 사람 살리는 칼이다. 백정에서 의사가 되고자하는 그 지난하고도 먼 길. 신분의 벽을 넘어야 하고,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야 하고, 서양의학이라는 벽을 넘어서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그 멀고도 험한 길을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제중원'이다.

한계를 넘어 성장해나가는 황정이라는 인물. 이 드라마틱한 성장드라마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그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극 중에도 언급되지만 본래 서양의사들의 시작은 칼을 잘 다루는(?) 이발사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아직 서양의학이 도입되기 전인 구한말의 상황에 서양의 이발사와 비슷한 조건을 갖춘 직종은 백정이다. 칼을 잘 다루고, 바느질도 잘 하는 데다, 무엇보다 생명에 칼을 댈 수 있는 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대적 의료교육기관이었던 제중원이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을 때, 박서양이라는 인물이 백정의 아들로 들어와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일곱 명 중의 한 명으로 졸업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의 격동기에 백정의 아들에서 의사라는 길까지 걸어간 박서양이라는 인물의 성장 이야기가 '제중원'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공부의 신'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학교인 병문고의 오합지졸 학생들이 최고의 명문이라는 천하대에 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백현(유승호)은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집마저 쫓겨나게 된 상황이지만 강석호(김수로)의 도움으로 천하대 특별반에 들어와 공부를 하게 된다. 풀입(고아성)은 작은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하고, 찬두(이현우)는 춤과 노래에 빠져있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다. 봉구(이찬호)는 부모의 방임으로 스스로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른 채 살아간다.

이 학생들이 꾸는 꿈은 지독하게도 현실적이다. 이 드라마는 굳이 '꿈을 꾸라'는 식의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대신, '천하대에 들어가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바로 이 점은 우리 시대의 성장에 대한 양면적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천하대라는 특정 일류대에 가는 것이 현실적인 성장이 되는 사회, 하지만 그로 인해 진정한 성장(자신의 꿈을 펼쳐나가는)은 잠시 보류되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담겨져 있다. "저게 현실이야"하고 긍정하다가도, "그래도 저건 좀"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건 바로 이 성장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파스타'는 파스타 요리사가 되기 위한 서유경(공효진)의 성장드라마다. 그녀는 3년이나 이태리 음식점 라스페라에서 보조로 일해오지만 드디어 프라이팬을 잡게 된 순간, 새로운 쉐프 최현욱(이선균)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최현욱은 "자신의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외치는 인물. 그러니 이 성장드라마에서 서유경의 장벽은 바로 최현욱이다.

그런데 이 최현욱이라는 버럭남은 묘한 매력을 갖는다. 따라서 서유경이 요리사라는 직업으로서 성장해나가기 위해서 최현욱은 부딪치고 깨지고 넘어서야 할 인물이지만, 그저 한 여성으로서 멜로적인 판타지를 갖게도 하는 인물이다. 서유경의 성장드라마와 그녀의 최현욱과의 멜로드라마는 이렇게 잘 어울리는 레시피처럼 드라마 속에서 녹아든다. 직업적 성취와 사랑의 쟁취를 성장의 두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파스타'라는 드라마는 맛을 낸다.

신년 벽두부터, 이처럼 드라마들은 모두 성장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은 구한말이라는 과거의 시제로 날아가기도 하고, 지금 이 땅의 교육현실로 돌아오기도 하며, 라스페라라는 자그마한 조리실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꿈을 꾸는 이들이 모두 백정, 열등생, 주방보조라는 측면은 이 사회의 낮은 자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들을 꿈꾸게 한다. 이것이 성장드라마가 현실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현실이 갑갑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꿈을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현실이 그만큼 꿈꾸기 어렵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패떴'의 창조적 해체가 바람직한 이유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가 1기의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새로운 '패떴'은 오는 25일 첫 촬영에 나선다고 한다. 지난 2008년 6월17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한때 30%가 넘는 시청률로 일요 버라이어티의 수위를 지켜왔으나 거듭된 악재와 패턴의 식상한 반복으로 내리막을 걷던 '패떴'은 이제 20개월의 대장정을 마치고 2기로 재정비되는 시점이다. 과연 '패떴1'의 해체와 '패떴2'의 시작은 바람직한 것일까.

먼저 왜 '패떴'이 이런 결과에 봉착했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패떴'에 쏟아졌던 많은 논란들과 그 논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제작진들, 그리고 캐릭터 운용의 실패 등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1박2일'과 비교해 '패떴'은 위기대처능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패떴'은 '1박2일'과 같은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프로그램 형식은 극히 다르다. 먼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이 가진 특징을 이해한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왜 이다지도 다른 길로 갔는가를 알 수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강점에서 빼놓은 수 없는 것이 바로 캐릭터의 성장 스토리다. 여타의 예능과 달리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캐릭터가 서고, 그 캐릭터가 매번 미션을 수행하면서 점차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몰입성을 높인다.

그런데 성장 스토리에는 조건이 있다. 시작하는 캐릭터들이 낮은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낮은 곳에 있어야 성장 가능성이 많아지고 그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은 지속적인 시청을 유도해낼 수 있다.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평균이하에서 시작해서 작금의 위치에까지 올라온 것과, 이제 성장해버린 상황에서 더 이상 캐릭터의 성장스토리로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다. '무한도전'은 이제 프로그램 형식 실험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1박2일' 역시 시작 지점에서 그 출연진들은 그다지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강호동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상태였지만, 김C나 은지원, 이수근, MC몽, 그리고 이승기까지 탑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첫 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장소가 '톨케이트'였고 첫 회부터 먹을 것까지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패떴'이 시작한 마치 시상식 같은 화려함은 사뭇 비교되는 지점이다.

'패떴'은 이들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방향 자체가 달랐다고 달라야만 했다. 즉 출연진들이 레드카펫 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정도로 모두 탑 연예인들이었다. 유재석, 이효리는 물론이고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김수로, 아이돌 대성, 예능감이 살아나고 있던 윤종신이 그들이다. 여기에 초창기 멤버였던 이천희와 박예진은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즉 '패떴'은 '1박2일'이 낮은 위치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그 스토리와는 정반대로, 높은 위치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전략을 취했고, 그것은 주효했다.

요정 같던 이효리가 몸빼를 입고, 아이돌 대성이 유재석과 함께 덤 앤 더머가 되며, 김수로는 이천희와 짝을 맞춰 김계모와 천데렐라가 되고, 박예진은 수수해보이는 이미지에 살벌함을 더했다. '패떴'은 탑의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을 차츰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전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이것은 '1박2일'의 후발주자로서 차별화를 위해서도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1박2일'과 비교하면서 '패떴'은 왜 그렇게 못하냐고 비판하지만, 사실 그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1박2일' 같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초창기 이천희와 박예진에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타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덜 기대하게 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차별화에 성공한 형식은 또한 내적인 문제도 갖고 있었다. 그것은 탑 연예인이라는 지점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형식의 폐쇄성에서 비롯된다. '패떴'은 '1박2일'과 달리 외부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이 패밀리들간의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그 이유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자리한다. 즉 대외적인 인물들과 공공연히 접촉하는 것이 탑 연예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패떴'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 "아예 프로그램을 찍을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 폐쇄성은 고정 멤버들의 이미지 소비를 빨리 가져오게 만든다. 저들끼리 밥 해먹고 게임하는 형식의 반복은 그것이 늘 같은 멤버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쉬 식상해진다. 만일 현지인들이나 제작진과의 대결구도 같은 것을 끌어들여 변수를 만들어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지만 '패떴'은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따라서 '패떴'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게스트의 활용이다. 게스트를 변수로 끼워 넣어 상수의 식상함을 넘어서려 했던 것.

이렇게 보면 지금껏 '패떴'이 걸어온 길이 애초 형식 속에서 어느 정도는 결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박2일'이나 '무한도전' 같은 성장 스토리형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위기가 그 성장의 정점에 설 때 오는 것처럼, '패떴' 같은 정점에서 추락하는 스토리를 가진 쇼의 위기는 한 치의 신비감 없이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준 지점에서 오게 된다. 즉 어떤 프로그램이나 이야기 구조를 갖는 한, 언젠가는 위기가 오고 결국은 사라져가는 운명을 갖게 된다. 다만 '패떴'은 그 형식의 폐쇄성 때문에 캐릭터 소비가 그만큼 빨라 그 사라지는 운명도 빨리 오게 되었던 것뿐이다.

그러니 '패떴'이 가진 이런 형식적인 특징을 감안했을 때, '패떴1'의 해체와 '패떴2'의 시작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패떴'은 그 형식적 특성상 새로운 신비감을 가진 캐릭터들이 계속 투여되어야 지속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멤버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패떴2'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패떴'이라는 형식 자체가 힘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힘을 극대화해낼 수 있는 새로운 인물들의 투입은 그만큼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새로운 인물들이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폐쇄성을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나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숙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인물로 시작하는 '패떴2'가 주는 기대감이 결코 작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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