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에 따라 달라지는 ‘식객’의 맛, 그 이유

원작 만화 ‘식객’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많은 에피소드들을 과연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 제대로 배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였다. 원작 만화 ‘식객’의 묘미는 편편이 음식 하나하나로 끊어지는 그 독자적인 에피소드들의 상찬에 있다. 거기에는 고구마, 부대찌개, 김치 하나에도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따라서 만화로 ‘식객’을 볼 때 우리는 마치 뷔페식당에 온 듯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당신이 고기류를 좋아한다면 ‘쇠고기 전쟁’을 골라보면 되고, 토속적인 맛을 즐긴다면 ‘청국장’이나 ‘메생이’같은 음식편을 찾아 읽으면 된다.

‘식객’의 영화화는 왜 실패했나
하지만 이 만화라는 매체만이 갖는 찾아보고, 다시 보고 하는 묘미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다. 영화는 한정된 시간(그것도 두 시간 내외) 안에 한정된 공간에서 상영되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주제를 향한 스토리의 연결고리가 그만큼 중요해진다. 영화‘식객’이 처한 불리함은 오히려 너무나 많은 반찬들 때문에 오히려 주요리가 묻혀질 수도 있는 ‘식객’만의 풍족한 재료에서 비롯된다. 어느 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따라가자니 영화 전편으로 꿰뚫기에는 좀 약한 듯 싶고, 그렇다고 몇 개의 에피소드를 가져가자니 얼기설기한 느낌을 주게 된 것이다. 아예 형식 자체를 만화가 가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다는 것은 상업영화로서는 거의 시도하기 어려운 모험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영화화된 ‘식객’이 지나친 대결구도에 몰두하면서 오히려 ‘식객’만의 묘미였던 서민적인 밥상이 외면되었던 것은, 사실은 원작 만화의 진짜 맛이었던 이 소소해 보이는 에피소드들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여러모로 ‘식객’의 영화화가 실패한 점은 그 매체의 다른 특성을 영화적으로 해석해내기가 쉽지 않은 ‘식객’ 원작 만화가 가진 에피소드별 구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드라마화된 ‘식객’, 어떻게 재료의 균형을 맞췄나
그렇다면 드라마화된 ‘식객’은 어떨까. 같은 영상으로의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와 드라마는 그 매체 특성이 다르다.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해야 하는 반면, 드라마는 시간적 흐름(몇 달 동안) 위에 에피소드들을 구성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 리메이크의 관건은 따라서 드라마적 특성인 메인 뼈대(이것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를 세우고, 그 위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살처럼 붙여놓는 작업에 있었다.

드라마‘식객’이 뼈대로 세운 것은 운암정 후계자를 두고 벌이는 성찬(김래원)과 봉주(권오중)의 대결구도다. 드라마 초반부 거의 숨 쉴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어낸 ‘식객’은 그 위에 하나씩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 살이란 성찬과 봉주의 대결 구도 밖에 있는 서민들과 음식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테드 오가 그리워했던 부대찌개에 관한 에피소드,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유순철)의 애끓는 부정(父情)을 얘기해준 게장 에피소드, 직업적인 편견을 넘어선 정형사 강편수(조상구)의 에피소드, 며느리와의 정을 녹차김치에 담아 얘기해준 치매할머니(김지영) 에피소드, 음식은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다는 걸 말해준 진수(남상미)의 어머니 에피소드 등등. 원작만화 ‘식객’이 가진 진짜 맛은 바로 이 살을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내는 깊은 맛에서 비롯된다.

드라마 ‘식객’의 첫맛과 중심 그리고 끝맛
너무 흔한 구도라 하여 식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 전통적으로 드라마 문법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대결구도를 뼈대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쉬운 구도 덕분에 드라마는 폭넓은 시청층의 눈을 일단 잡아끄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통해 ‘식객’ 본연의 맛으로 시청자들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이 가지는 첫맛과 중심의 맛, 그리고 여운의 맛을 구성을 통해 연결해낸 것 같다. 첫맛은 대결구도로 강렬하게 잡아끌고 중심의 맛에서는 음식에 대한 성찬의 철학(서민적인 맛을 지키는)과 봉주의 철학(맛의 세계화)의 부딪침을 보여주며, 마지막 여운으로 음식이 가진 삶의 이야기를 남겨주었던 것이다.

컨텐츠의 융복합이 문화의 한 경향이 되는 요즘, 이처럼 다른 매체는 거기에 담겨지는 컨텐츠의 맛에 영향을 끼친다. 같은 제목이라도 서로 다른 맛을 우리에게 선사한 ‘식객’은 만화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한번쯤 매체가 가진 융합가능성과 그 한계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본 원고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사보 100도씨(100C)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드라마 가을 시즌, 전설이 될 연기자는?

영화의 여름방학 시즌이 있다면 드라마에는 가을 시즌이 있다. 작년 가을 시즌에 맞춰 ‘이산’, ‘왕과 나’, ‘로비스트’, ‘태왕사신기’가 방영되었다면 올 가을은 작년보다 풍성할 것 같다. MBC의 ‘에덴의 동쪽’이 이미 방영중이며, ‘베토벤 바이러스’가 수목(9.10일)에 방영될 예정이다. KBS는 ‘바람의 나라’로 수목(9.10)에 정면대결을 벌일 이며, SBS는 ‘바람의 화원’과 ‘타짜’를 가을 드라마 대전에 내세울 예정이다. 대작 드라마만큼 관심을 끄는 건 이 작품들을 연기할 연기자들의 대결. 신들린 연기로 올 가을 드라마의 전설이 될 연기자는 누가 될 것인가.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 액션과 감성의 배우
‘에덴의 동쪽’으로 돌아온 송승헌은 윤석호PD의 드라마 ‘여름향기’의 감성적인 민우 역할에, ‘그 놈은 멋있었다’, ‘숙명’같은 그간 영화에서 쌓아온 액션 연기가 하나로 합쳐진 듯한 모습이다. 시대극 특유의 비장하고 운명적인 주인공의 면면을 때론 섬세하게 때론 폭발적인 액션으로 풀어낼 송승헌에 대한 드라마 복귀에 관심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

대부분 복귀한 한류스타들이 모두 실패를 겪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송승헌의 복귀는 남다른 편. 한류스타의 초기 부드러운 이미지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거친 카리스마를 덧씌운 점은 똑같은 이미지를 반복해 소비시키려한 여타의 한류스타들과는 비교되는 것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 고집과 집념의 배우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은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연기한 이후, 그만한 캐릭터를 찾지 못했었다. 영화 ‘리턴’의 유재우는 외과의사라는 외피만을 가져왔을 뿐, 그 장준혁이 가진 내면의 끓는 고집과 집념은 가져오지 못했다.

‘무방비도시’의 베테랑 형사 조대영으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 그의 신들린 연기는 이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클래식이라는 음악 하나에 최고를 고집하는 거의 아집에 가까운 모습을 연기할 김명민의 면면에서 장준혁이 가졌던 그 광기를 엿보게 되기 때문이다.

‘바람의 나라’의 송일국, 사극의 지존
사극의 지존이 지존을 만났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송일국이 ‘태조 왕건’, ‘해신’을 연출했던 강일수 PD를 만났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둘은 ‘해신’ 이후 다시 만나 하는 작업이며, ‘해신’은 송일국이라는 배우를 대중들에게 인지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후 ‘주몽’에서 특유의 카리스마와 함께 천진난만함을 선보였던 송일국은 고구려의 3대 대무신왕 무휼을 연기한다. 이로써 그는 보통 사람은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거대한 영웅 연기에 두 번이나 도전하게 된 셈. 특유의 집중력 강한 연기력이 어떻게 신화적인 영웅의 면면을 재현해 보여줄 지 귀추가 주목된다.

‘바람의 화원’의 박신양, 철두철미한 준비된 연기자
송일국이 강일수 PD를 만났다면 박신양은 장태유 PD를 만났다. ‘쩐의 전쟁’에서 특유의 굵직하고 속도감 있는 장태유 PD의 연출력 위에 제 물을 만난 듯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박신양은 ‘바람의 화원’의 김홍도로 그 여세를 몰아갈 예정이다. 이미 사극이라는 장르에 처음 도전하는 박신양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

모든 것을 사전에 철저히 조사하고 계산해 연기에 들어가는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박신양은 이번에도 그 주도면밀함을 김홍도 역할을 통해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상대역으로 나오는 문근영과 어떤 연기의 합을 보여줄 지도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대작 드라마가 갖는 가장 큰 부담감을 어쩌면 온 몸으로 떠 안고 나가야 하는 배우들은 그러나 특유의 신들린 연기로 심지어 부족한 부분까지 충분히 채워주곤 한다. 풍성한 가을밤, 이미 풍년이 보장된 드라마의 밤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에서 이번 가을 드라마의 전설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그것이 누구든 시청자들에게는 즐거운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스토리는 블록버스터의 적이 아니다


흔히들 "재미를 위해 스토리를 단순화시켰다"는 말들을 한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블록버스터가 주는 재미의 적인가. 작년 '디워'논쟁의 중심에 섰던 것도 바로 이 스토리와 블록버스터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디워'는 블록버스터와 스토리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따로 떨어진 것처럼 논점을 이어갔다. 이른바 "복잡한 스토리는 시각적인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논리다.


1년이 지난 이번 여름, 스토리 논쟁이 다시 불거진 것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서다. 김치웨스턴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발굴해내고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만들어낸 '놈놈놈'은 그러나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이야기를 최대한 최소화해 캐릭터와 액션 등 다른 영화적 요소들을 더 많이 부각했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스토리에 집착하는 평단을 꼬집었다.


둘 다 블록버스터로서 스토리를 최소화했다고는 하지만 '디워'와 '놈놈놈'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영상의 완성도 자체가 틀리기 때문이다. '디워'는 스토리의 부재 이외에도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CG 영상 또한 그다지 완성도가 높지 않다. CG기술 중 가장 어렵다는 인물 애니메이션을 한 것도 아니고, 상상 속의 동물을 그려낸(사실 이것은 비교점이 없기에 대체로 그럴 듯해 보인다) CG일 뿐이며, 또한 실사와의 연결 또한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놈놈놈'이 가진 완성도는 남다르다. 만주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장르 속에 우리가 저 서구 세계의 액션 활극 장면으로만 생각해왔던 웨스턴 스타일을 김지운만의 색깔로 녹여냈다. 이 독특한 퓨전의 맛은 고스란히 세 캐릭터를 연기하는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을 통해 폭발적으로 구현되었고, 말 그대로 '보는 맛'을 선사했다. 그만큼 액션의 완성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각각의 액션들을 연결해주는 스토리가 빈약해지면서 눈의 즐거움 이상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작년부터 여름방학 시장을 겨냥한 영화들에 대한 스토리 논란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아마도 과거에는 할리우드에서만 할 수 있다 생각되었던 블록버스터들이 이제 우리 영화계에도 시도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우리가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똑같은 말로 비판했었다. "스토리도 의미도 없는 킬링 타임용"이라 비아냥대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 불가능해 보이는(사실 이건 자본의 문제이지 기술력의 문제는 아니다) 블록버스터를 내놓자, 혼동이 생겼다. 그렇게 스토리 운운하던 태도는 사라지고 그걸 '우리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그 자체에 환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디워'에서부터 비롯된 왜곡된 민족주의가 자리한다.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칸느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사실 스토리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놈놈놈'은 스토리가 약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몇 백만의 관객수로 증명되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화가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한 감독들의 태도다. 감독들은 이 비판에 대해 마치 "블록버스터는 스토리가 부족해도 된다"는 식의 논리로 일반인들에게 섣부른 일반화를 강요한다.


이제 "블록버스터 같은 오락영화가 재미만 있으면 되지 무슨 스토리에 의미를 찾느냐"는 말은 가장 흔한 댓글이 되었다. 마치 블록버스터의 재미와 스토리의 재미는 서로 반비례하는 것처럼 얘기한다. 이제 우리가 과거에 비아냥대던 킬링타임용 할리우드 영화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전범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치부해온 할리우드 영화는 과연 아직도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머물고 있을까.


많은 국내의 영화감독들이 할리우드 영화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전율은 느낀 이유는 무얼까. 무수히 많은 배트맨 시리즈들이 있었지만 아마도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깊이 있는 탐구가 있으면서도 블록버스터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 작품은 보는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보고난 후에는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다. '다크 나이트'가 가진 액션의 특징은 수없이 눈만을 현란하게 만들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여느 블록버스터와는 다르다.


수없이 주먹이 오고 가는 장면들만 모아놓은 것이 다른 롤러코스터 영화라면, 이 영화는 그 주먹을 주고받는 자들의 내면을 파고듦으로서 그 주먹이 던지는 강도를 더 높인다. 두 척의 배를 그저 폭파시키는 것은 스펙터클한 볼거리에 머물지만, 한 쪽에는 선량한 시민을 다른 쪽에는 범법자들을 태운 배에 서로 폭파스위치를 넘기고 먼저 누르지 않으면 상대방이 누를 것이라는 갈등의 스토리를 제공하는 순간, 볼거리는 그 자체로 철학적인 질문이 된다.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볼거리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의 강도를 강화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된다.


흥행을 위해 스토리나 의미를 배제한다는 논리가 가진 위험성은 현재처럼 영화관이 점점 놀이공원화 되는 상황을 더욱 강화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영화의 즐거움이었던 두 축인 볼거리와 의미를 갈라놓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영화관은 지금껏 원격현전으로서의 볼거리(스펙타클)의 즐거움과 그 영상들의 연결에 의한 의미구성이 주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제공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프랜차이즈화되고 대형화되며 비주얼이펙트가 강조되는 사이, 볼거리의 즐거움만을 찾는 곳으로 영화관이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토리는 영화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의 즐거움을 더 강화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유재석과 강호동의 남자 전진, 예능의 조커가 된 이유

지금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는 전진이 아닐까. 물론 과거에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만능 체육맨으로 종횡무진하던 전진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진에게 쏠리는 예능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주목할 점은 그가 국내 최고 예능MC인 유재석과 강호동의 프로그램을 오가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하하가 빠진 ‘무한도전’의 공석으로 ‘굴러 들어온’ 전진은 빠르게 ‘박힌 돌’들 사이에서 적응해가고 있으며, ‘야심만만-예능선수촌’에서는 고정MC를 맡아 특유의 진지 모드로 남다른 예능감을 자랑하고 있다. 한편 객원MC로 출연한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특유의 만능 체육맨으로서 김계모(김수로)와 맞대결을 벌이고, 순위 게임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온 놈’설정으로 웃음을 주었다. 도대체 전진이 가진 그 무엇이 이 종횡무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메인과 게스트 사이, 객원의 자리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있어서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과 캐릭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어 노출되다보면 지겨워지기 마련.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은 새로운 캐릭터를 투입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신 쇼들이 무한소비로 피곤해진 캐릭터를 다시 세우는 방식은 새로운 캐릭터성격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거성에서 아버지로 또 ‘하찮은’으로 캐릭터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격은 그대로인데 껍데기만 바꾸는 식으로 본질적인 해결은 돼지 못한다. 결국 진짜 문제의 해결은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가 출연했을 때 가능해진다. 하하가 군입대로 빠지고 나자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은 더 힘겨운 상황에 놓였다. 캐릭터는 다양한 관계 속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그 하나의 공석은 하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제 7의 멤버, 즉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얘기가 거론되었지만 반대 또한 만만찮은 상황. 그 자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이면서도 동시에 위험천만한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뒤늦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진출한 전진은 그 자리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전진은 고정도 아니고 게스트도 아닌 중간 지점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무한도전’에서는 전스틴과 잔진으로,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게임마왕을 긴장시키는 젊은 피로, ‘야심만만2’에서는 MC몽과 함께 업다운 브라더스로 등장한 그는 ‘객원’의 위치에 서서(그것이 고정이든 게스트든) 프로그램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면서 독자적인 캐릭터로 급부상했다.

전진이 가진 진지함 속의 허술함
그러나 새로운 캐릭터를 가진 게스트가 프로그램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주기는커녕 기존 고정 출연자들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유일하게 게스트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패밀리가 떴다’가 가진 딜레마이기도 하다. 캐릭터 간에 확실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고정MC들 사이에서 게스트는 때때로 꿔다 논 보리자루가 되기도 한다. 중간에 출연했던 G-드래곤이나 신성록 같은 게스트는 열심히는 했지만 패밀리 속으로 완전히 침투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하지만 전진은 출연하자마자 바로 패밀리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김계모와는 묘한 경쟁관계로, 여성 출연자들과는 묘한 애증관계로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가진 객원의 이미지가 그만큼 독자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프로그램에 투입되기 이전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인지되어 있었고, 그것은 지금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는 보기 드는 독자적인 캐릭터였다.

전진은 그 예명처럼 앞으로만 나갈 것 같은 직선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다. 그것은 모든 엉뚱한 상황 속에서도 늘 진지하며, 누군가를 바라보면 거의 다른 쪽에는 눈을 돌리지 않을 정도로 집착하고, 장난처럼 하는 게임에서도 거의 이겨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스포츠맨처럼 과도한 열정을 보인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느슨한 상황(희화화된)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진지함을 유지하는 전진은 늘 깨지고 무너지는 캐릭터들이 이제 조금 물리는 시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늘 도전하지만 지기만 하는 캐릭터도 우습지만, 늘 이기려고 집착하는 캐릭터도 우스운 법이다.

전진이 지금 예능 프로그램의 조커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현재 그가 조금은 지쳐있는 쇼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꾸로 지금 현재 예능 프로그램 속의 캐릭터들이 거의 대부분 무너지고 깨지는 희화화된 캐릭터들로 넘쳐난다는 것을 반증한다. 전진은 그 속에서 오히려 거꾸로 진지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함으로써, 그것이 유재석이든 강호동이든 또 그것이 어느 방송사이든 어느 곳에 투입돼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조커 캐릭터가 된다. 늘 쇼의 밖에 존재하지만 어떤 쇼에든 적용 가능한 조커. 지금 전진의 전성기는 이 자신만의 캐릭터와 현재 피곤해진 예능 환경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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