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다큐 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것

강직성 척추염을 앓아 허리가 90도로 꺾어진 20대 청년이 말한다. “포기했습니다.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나이는 20댄데 몸은 70대니.” 몸이 뒤틀려 삶의 희망을 저버린 청년에게 PD가 꿈을 묻는다. “꿈요? 그저 보통이 되는 거요. 허리를 일자로 쫙 펴고 자는 거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동네를 걸어보는 거요. 그럼 정말 좋을 거 같아요.” 병원 다큐 프로그램, ‘닥터스’에서 소개된 새우등 청년 진백씨의 이야기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5회에 걸쳐 방영되어 호평을 얻었던 ‘휴먼다큐 사랑’. 특히 2회에 방영되었던 ‘안녕 아빠’편은 죽음을 앞둔 아빠의 가족과 함께 보낸 마지막 날들을 담담하게 담아내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5편 중 단 1편(벌랏마을 선우네)을 빼곤 나머지 4편 모두 병원이 등장한다.

뉴스다운 뉴스 보기 어려운 세상에 진짜 살아가는 사람들의 훈훈한 뉴스를 전해주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이 프로그램에도 여지없이 등장하는 것은 병원의 이야기다. 강화도에서 한 순간의 사고로 입은 화상으로 55년 동안 바깥세상 구경을 못한 화문석 할머니의 이야기, 2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아픈 남편을 지켜온 명랑 아줌마, 김옥선씨의 이야기에도 병원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이런 병원 다큐 혹은 병원 다큐 성격을 가진 영상들에 우리가 흔히 붙이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휴먼다큐’. KBS가 지난 98년 6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7년에 걸쳐 방송한바 있는 ‘영상기록 병원24시’의 후속으로 방영되고 있는 ‘현장기록 병원’ 역시 ‘메디컬 휴먼다큐’를 지향한다. MBC의 ‘닥터스’는 두 가지 포맷을 담고 있는데 ‘응급실 24’는 리얼다큐를, 그리고 ‘미라클’은 역시 휴먼 다큐를 지향한다. 가정의 달 특집으로 방영된 5부작 다큐는 아예 ‘휴먼다큐 사랑’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다큐멘터리에 굳이 휴먼이란 단어를 붙인 것은 병원이란 공간이 갖는 특별함 때문이다. 만일 병원이란 공간에 대해 그저 아픈 사람 치료하는 곳 정도의 기능적 해석을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 아파서 병원을 찾아보지 않았던 사람이거나, 자신의 몸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나 가족이 아파 병원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병원이란 공간이 가진 특별함을 이해할 것이다. 그 곳에는 죽어 가는 사람이 있고 살리려는 사람이 있다. 그 접점은 물리적인 수술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거기엔 그들의 사연이 교차한다.

‘휴먼’이란 단어는 이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제 아무리 기계처럼 감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래서 자신도 결국 아프고 병에 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일 지라도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스스로 사람이라는 걸 자인하게 된다. 어차피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앞에 두는 순간부터, 병원 밖에서 꿈틀대던 거대한 욕망은 허망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카메라는 그저 물리적인 수술실의 메스의 놀림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메스를 든 사람의 이야기와 그 메스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때론 기적 같은 소생과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을 담는다. 그 순간, 환자와 의사의 눈물은 그걸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아 나도 사람이로구나’하는 감동으로 전달된다.

병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벗어버린 욕망이란 외피 탓일까. 그저 사람이란 알맹이들이 꿈꾸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보통이 되는 것’, 혹은 ‘평범한 삶’이 그들의 꿈이다.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환자는 물론이고 의사들까지 사투에 가까운 노력을 한다. 병원 다큐가 시사하는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그 앞에서 거대한 욕망이란 신기루 같은 것이며, 평범하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감동 없는 세상에 병원 다큐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잊고 있던 자신의 실체와 다시 만남을 주선한다는 점이다. 만일 당신이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당신과 당신의 실체가 만나는 지점이다.

'옛글들 > 명랑TV'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니아 드라마는 없다  (0) 2007.07.06
‘쩐의 전쟁’, 참 잘했어요  (0) 2007.07.06
멜로, 만화를 캐스팅하다  (1) 2007.07.04
돈과 사람의 대결, ‘쩐의 전쟁’  (0) 2007.06.29
당신! 울다가 웃었어!  (0) 2007.06.28

만화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커피 프린스∼’, ‘경성스캔들’, ‘메대공’

‘커피 프린스 1호점’, ‘경성스캔들’, ‘메리 대구 공방전’의 드라마 구도는 어딘지 익숙한 것들이다. 우리가 보았던 멜로드라마나 트렌디 드라마, 심지어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가졌던 구도들. 시청자들이 이제는 식상하다며 외면했던 바로 그 틀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이 과거의 그것들과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이유는 무얼까. 이 드라마들은 전혀 식상하지 않고 오히려 참신하며 그 참신함을 넘어서 무언가 새로운 드라마 트렌드의 탄생을 예상하게 만든다. 그 키워드는 바로 만화적인 감수성이다.

만화적 감수성의 시도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풀 하우스’와 ‘궁’에서 시도되었고, ‘환상의 커플’에서 만화 원작이 아닌 드라마 자체로의 시도를 성공리에 끝낸 바 있다. ‘환상의 커플’은 더 이상 ‘만화 같은 이야기’라는 수식어가 ‘황당하고 허술하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재미있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3차원 드라마 세상에 나온 갑작스런 4차원 드라마의 출현이었다. 지금처럼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향의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비현실적이라고? 효과는 만점
만화적인 장치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카메라 연출이다.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화면 속에 넣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담은 자막들은, 만화책의 프레임과 말 풍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참신하게 다가올 것이다. 드라마에서라면 조금은 거북할 법도 한 캐릭터들의 과잉행동은 그러나 만화적인 앵글과 편집으로 경쾌하게 변신한다. 갑자기 본 드라마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 역시 바로 그런 만화적 감수성의 룰 안에서 용인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만화적 감수성은 단지 카메라 연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캐릭터의 설정이라든가, 이야기 전개에까지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메리 대구 공방전’에서 대구의 아버지인 풍운도사(이영하)의 캐릭터 소개는 말 그대로 만화적 설명이라 할 정도로 우화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경성스캔들’에서 모던 뽀이 선우완(강지환)의 캐릭터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사용된 장치 역시, 그를 따르는 지라시 출판사의 만화 같은 캐릭터들의 만화 같은 행동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역시 최한결(공유)이 남장여자인 고은찬(윤은혜)을 애인처럼 보여 선보는 여자들을 따돌리는 설정과 장면들은 바로 그 만화적 장치를 활용했다. 그 과정을 통해 그 둘의 관계가 이어질 거라는 점에서 이 만화적 장치는 비현실적이지만 효과적이다.

이러한 드라마 속 만화적 장치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릴 수밖에 없다. 반드시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대체로 세대로 나뉘어진다. 만화적 표현을 실생활처럼 받아들이면서 살아온 젊은 세대들은 그 장면들에서 편안한 익숙함을 발견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성세대들은 오히려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마치 인터넷 소설에 대한 세대  간의 반응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인터넷 소설이 가진 가벼움을 기성세대는 경박함으로 말하는 반면 젊은 세대들은 상큼 발랄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공교롭게도 세 편 모두 인터넷 소설(한심남녀공방전, 커피 프린스 1호점), 로맨스 소설(경성애사)이 원작이다. 어떻게 대중소설이 만화적 감수성을 갖고 있는가는 그 소설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문학이 가진 완고한 문학적 틀에 반항하기라도 하듯 이들 소설들은 영상의 세례를 받고 태어났다. 그 영상이란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만화도 포함된다. 글이 가진 문학적 묘미보다는,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로서의 글을 갖고 있기에 이들 작품들은 만화적 감수성과 교류한다.

질척이던 멜로를 구원한 만화적 감수성의 힘
새로운 드라마 트렌드의 탄생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이들 드라마들이 만화를 캐스팅하면서 분명히 얻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는 참신한 스토리다. 과거의 사랑타령(?)을 담은 멜로 드라마나 트렌디 드라마들은 거의 빤한 스토리 속에 안주하고 있었던 반면, 이들 드라마들은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를 제공한다.

‘메리 대구 공방전’은 백수인 청년들을 내세워 꿈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기본적으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여기에 제목에서 암시하듯 커피 프린스 1호점을 세우고 키워나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얹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성 스캔들’은 일제시대라는 무게감 때문에 다루지 못했던 그 시대의 연애를 경쾌하게 다루면서도 또 한편으로 당대 젊은이들의 아픔을 놓치지 않는다. 만화적 상상력의 자유로움은 리얼리티가 가진 무게를 벗어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드라마가 만화적 장치를 가져오면서 그간 멜로 드라마들이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갖지 못했던 감정의 균형감각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식상한 최루성 멜로 드라마와 트렌디 드라마들이 일시에 가라앉으면서 드라마가 고민해야했던 것은 앞으로 드라마 속에 어떻게 사랑 이야기를 넣느냐는 것이었다.

통속화되고 공식화된 멜로 드라마들이 만들어놓은 ‘사랑타령’으로 일축되는 현실 앞에서, 드라마의 재미 중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랑이야기의 배치는 첨예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하얀거탑’ 같은 사랑이야기가 없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탄생은 마치 ‘사랑타령’을 드라마의 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만화는 그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지나친 심각함에 빠지지 않으면서 하고자하는 어떤 메시지로 접근해간다. 아무리 생과 사가 오가는 심각한 장면이라도 만화 속에서는 이른바 희화화된 캐릭터의 얼굴이 등장하면서 적절한 감정의 균형상태를 만들어낸다. 만화를 통해 가져온 이 균형감각으로 인해, 이제 드라마들은 과거처럼 질척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심각한 상황 속에서 느닷없이 경쾌한 시그널이 삽입되고(경성스캔들), 속내를 내내 숨기며 시종일관 웃기고 있다가 느닷없이 눈물 한 방울로 찡하게 만들며(메리 대구 공방전), 당장 올려줄 전세금이 없으면 쫓겨나야 할 상황을 오히려 웃음의 원천으로 바꿔버리는(카페 프린스 1호점) 힘은 바로 그 만화적 장치에서 나온다.

지금 등장한 이러한 드라마가 하나의 트렌드를 이룰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히 같은 시기에 등장했을 뿐인지는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드라마의 탄생이 식상한 멜로 드라마와 트렌디 드라마가 해놓은 드라마의 퇴행을 다시 진화의 방향으로 돌려놓은 공이 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멜로를 포함한 사랑이야기는 드라마가 배제하기 어려운 소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멜로를 무조건 비난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로 식상하지 않은 멜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의 성공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와의 공감대가 아닐까. “정말 리얼하다”거나 “대사가 마음에 팍팍 꽂힌다”거나 혹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것은 모두 공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드라마들은 제각각의 방식을 추구한다. 최근 들어 보여지는 그 경향은 ‘리얼하거나 만화 같거나 혹은 그 둘 다이거나’한 것이다.

리얼한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vs ‘에어시티’
불륜이라는 소재만 놓고 보면 ‘내 남자의 여자’는 자칫 천편일률적인 드라마 공식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다. 그랬다면 공감은커녕 비난만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가슴에 팍팍 꽂히는 김수현식의 대사의 맛에,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공감을 끌어냈다. 폼잡지도 않고 또 과장하지도 않는 드라마 전개는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정말 리얼하다’는 반응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이 불륜드라마는 시청률에서의 성공과 함께 불륜이란 소재를 한 차원 더 넓혔다는 가치평가까지 동시에 얻었다.

반면 리얼함으로 따지면 억울할 정도로 탄탄한 현장의 기록들을 해나간 ‘에어시티’의 경우엔 어떨까. 일단 실제 인천공항에서 촬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드라마의 리얼함을 설명해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제작 전부터 국정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정도로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면 반드시 필요한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드라마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기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유는 이 좋은 소재들이 제대로 된 스토리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자 그 무게를 감당 못한 ‘에어시티’라는 비행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리얼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라리 만화 같은 이야기라도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라는 걸 이 드라마는 잘 보여주고 있다.

만화 같은 드라마, ‘쩐의 전쟁’ vs ‘메리 대구 공방전’
반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수목드라마들은 모두 만화의 속성을 갖고 있다. 만일 이들 드라마들을 만화적 장르의 틀로 구분한다면 ‘쩐의 전쟁’은 사실극화가 될 것이고, ‘메리 대구 공방전’이나 ‘경성스캔들’은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이들 드라마 속의 대사들이나 액션은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만화적인 프레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 현실적이지 않은 과장된 장면들을 오히려 재미로 전환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게임과 같아서 일단 그 드라마가 취하는 룰을 인정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룰에 따라서 과장은 오히려 리얼한 재미로 둔갑하게 된다.

그렇다면 똑같이 만화의 속성을 취하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은 왜 성패가 갈리게 된 걸까. 특히 ‘쩐의 전쟁’과 ‘메리 대구 공방전’은 그 이야기 소재에 있어서 돈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메리 대구 공방전’은 멜로 드라마의 퇴조가 가져온 여파에 억울할 것 같다.

이 톡톡 튀는 새로운 형식을 가진 드라마는 그 기본구도를 멜로 드라마로 가져가면서, 만화적인 참신한 시도가 자칫 네 명의 청춘남녀가 벌이는 가벼운 드라마로 오인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메리 대구 공방전’이 그렇게 만화처럼 키득대는 것으로 끝나는 가벼운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반면 ‘쩐의 전쟁’은 만화적인 연출을 가져가면서도 그 태도는 늘 진지함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쩐의 전쟁’에 더 무게를 두게 하는 요인이다.

리얼함과 만화 같음, 그 얇아진 경계
재미있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상충될 것 같은 ‘리얼함’과 ‘만화 같음’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져 간다는 점이다. 과거라면 ‘만화 같은 스토리’라는 문구 속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섞여 있었지만 요즘은 정반대가 되었다. 만화 같은 스토리는 이제 ‘재미있다’는 의미로 더 많이 읽힌다. ‘풀하우스’나 ‘궁’의 성공이 그걸 말해주고, 만화는 아니지만 만화적 감수성으로 성공한 ‘환상의 커플’은 만화적 재미가 이제 드라마 자체로도 생산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된 것은 만화가 그만큼 하위장르에서 상위장르로 승격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제 드라마의 리얼함이라는 것이 늘 검증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한 몫을 차지한다. 인터넷에 몇 마디 키워드만 넣으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현장의 목소리 앞에서 드라마의 리얼함이란 알몸은 그대로 시청자들 앞에 노출된다. 그러니 만화적 감수성을 담은 연출은 여러모로 장점을 갖게 된다. 리얼함의 시험대에 오르지 않아도 되면서, 그 만화라는 장르적 특징 속에서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점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쩐의 전쟁’이다. 만화적인 연출이 의도적으로 사용되지만 그 상황이 늘 긴박한 이유는 바로 이런 장점들을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드라마의 공감대를 말할 때 우리는 장르나 소재 같은 겉으로 드러난 드라마의 모습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보여지는 건 만화적이지만 보면 볼수록 리얼한 드라마가 있는 반면, 보여지는 건 리얼하지만 그 안에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 리얼하지 못한 드라마가 있는 것이다. 결국 드라마에서 중요해진 건 탄탄한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태도로서의 진정성이다. 그것이 담보될 때, 드라마는 리얼하거나 만화 같거나 상관없이 공감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명소가 된 촬영지들, 문제는 없나

평범해 보이기 이를 데 없는 정자. 하지만 뭐가 새로운 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이유는 하나. 그 곳이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영신(공효진)과 기서(장혁)가 첫 키스를 한 장소란다. 또 다른 풍경 하나. 인터넷 영월군의 관광소개(http://ywtour.com)에 들어가면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만을 모은 지도가 있다. 그 지도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 이른바 명소라는 곳의 이름들이다. ‘영빈관’, ‘청록다방’, ‘청령포모텔’등등. 영화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중국집, 다방, 모텔이 관광 코스가 된 것이다.

과거 7,80년대의 여행이 관광이었다면, 90년대 이후의 여행은 체험이었다. 그리고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여행도 문화라는 겉옷을 걸쳐 입었다. 영화, 드라마 속의 공간을 찾아가는 이른바 문화여행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문화라는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일단 고개부터 돌린다. 물론 문화를 모른다면 그 곳은 아무 것도 아닌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다. 그 평범한 장소에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많은 이야기들을.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드라마는 세트장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며, 드라마는 끝나도 세트장을 남긴다. 나주시는 MBC드라마 ‘주몽’의 4만2천 평 규모 오픈 세트장 건립에 약 80억 원을 투자했다. 지난 3월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이 세트장을 삼한지 테마파크로 유료화한 뒤 50여 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그로 인해 14억 원의 직접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는 수익일 뿐, 직접 관광객이 지역에 소비하는 비용과 지역 홍보 및 나주의 이미지 개선 등 보이지 않는 수익을 포함하면 연간 600억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고 시는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 촬영지의 테마파크화를 만든 것은 드라마 ‘태조 왕건’. 30억 원을 들인 이 테마파크가 성공을 거둔 이후, 드라마 ‘해신’은 하나의 성공사례가 되었다. 완도는 해신 세트장을 유치해 2005년도 관광객 500만 명을 유치했으며 이로써 1600억 원의 지역경제파급효과를 거둔 공로가 인정되어 최근 제12회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에서 문화관광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고구려 드라마들의 부흥과 함께 세트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속초에 지어진 ‘대조영’ 세트장이 70억 원, 문경에 지어진 ‘연개소문’ 세트장 역시 60억 원을 들였다. 현재 가장 큰 테마파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태왕사신기’의 제주도 청암영상테마파크로 약 190억 원을 들여 제작되고 있다. 휴가철을 앞둔 지금 벌써부터 이 지역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들썩이고 있다.

문화가 있는 여행은 좋지만, 문제는 없나
한편 영화의 경우,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라디오 스타’ 촬영지인 영월이 될 것이다. 이 인구 4만의 시골은 영화 촬영 이후, 연간 12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2006년만 따진다면 지역 경제 유발효과가 92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지자체의 촬영지 혹은 세트장 유치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관광 수입은 물론 홍보 효과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방송사 입장에선 광고 이외의 별도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도 잘 지어진 세트장은 보다 높은 완성도의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특히 테마파크를 겨냥해 짓는 대형 드라마 세트장의 경우에는 그 실효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규모가 점점 비대해져가고 있는 반면, 실제로 그만큼의 수익 창출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때론 지자체장들의 치적을 위한 무분별한 유치경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테마파크의 부실화를 양산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주민과 그 지역을 찾는 관광객에게 돌아간다.

문화는 장소를 향기롭게 해준다
테마파크를 겨냥해 대형 세트장을 지었다면 드라마가 종영하거나, 영화 상영이 끝났을 경우를 생각해서 향후 대책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인기에 기대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심지어 폐가가 되어버리는 경우를 맞이할 수 있다.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는 ‘태조왕건’의 성공으로 2002년 34만 명, 2003년 37만 명이 찾았으나 그 후 특별한 관광상품을 개발해내지 못해 현재는 7만 명 정도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진 상태다.

문화의 시대, 문화가 여행의 한 축으로 등장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거대한 세트장이 전시행정의 하나로 읽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는 물론이고 사후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딱히 블록버스터나 마케팅이 아니라도 문화는 그 장소를 더 향기롭게 해준다. 새로운 세트장을 짓지 않고 그 동네의 일상을 고스란히 찍어내 오지 중의 오지인 증도라는 섬을 명소로 만든 ‘고맙습니다’ 같은 드라마나, 변방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낸 ‘라디오 스타’가 소중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 교보생명 사외보 <다솜이 친구> 8월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