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다>, 멜로가 사회적 메시지를 만날 때

 

“높은 담장 밖에서 너는 죄도 없이 고개 숙이고 있었어. 하지만 난 아버지 땜에 고개 숙이지 않을 거야. 수연아 사랑하자.. 우린 사랑하자. 더 많이 사랑하자.” <보고싶다>에서 한정우(박유천)가 이수연(윤은혜)에게 키스하며 깔린 이 속 얘기에는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결을 잘 보여준다. 이 대사는 한정우와 이수연의 14년에 걸친 사랑을 압축하면서도, 동시에 이 사랑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보고싶다'(사진출처:MBC)

이수연이 죄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살인자(심지어 실제 살인자도 아니었지만)라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후 그 아버지 세대가 씌우는 주홍글씨는 이제 한정우의 몫으로 다가온다. 이수연이 사망한 것처럼 꾸민 것도, 강형준(유승호)을 절름발이로 만들고 그의 어머니를 정신병자로 만든 것도 모두 한정우의 아버지 한태준(한진희)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드라마 속 거의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바로 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한정우는 “아버지 땜에 고개 숙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한다. 그것은 그 시대의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연에게 “사랑하자”고 한다. 과거 어른들의 굴레 속에서 더 이상 그 자식들이 고통 받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다.

 

또한 어찌 보면 이수연은 한정우와 엮이면서 자신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휘둘리게 된 이 드라마 속 최대의 피해자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과거의 기억조차 하기 힘든 상처를 다시 바라보고 다시 한정우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걸까. 또 그녀는 자신을 14년 간이나 보살펴온 강형준이 그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돌변해 그녀에게 살인 누명까지 씌우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이수연은 이렇게 토로한다.

 

“벌 받아야지. 그런데 나한테 해줬던 것처럼만 해줘. 정우야. 나 너 많이 미워했었다. 억울한 데 화낼 데가 없어서 복수해야지 그러구 너 괴롭히기도 했었잖아. 근데 네가 너무 사랑해주니까 미움도 싹 없어지더라구. 상처도 다 나아지고.” 이 드라마는 심지어 살인이 벌어지는 복수를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복수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상처가 복수를 통해서 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보고싶다>는 그 상처가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는 길은 처벌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한다. 나쁜 기억은 지워내고 좋은 기억을 더 많이 살리라는 것. 이것은 <보고싶다>라는 멜로드라마가 사회적 메시지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사회적인 아픔, 특히 잘못된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통에서 벗어나는 젊은이들의 처절한 노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읽으면 어른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사회와 그 사회에 의해 고통 받는 작금의 청춘들은 이 드라마의 이야기와 조응하는 면이 있다.

 

한정우는 이수연의 발에 난 상처를 보며 묻는다. “아직도 볼 때마다 아파?” 그 상처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아니. 이 상처 보면 아빠 피해 도망치던 기억보다 네가 지금처럼 내 발등 감싸주던 기억이 더 많이 난다.” 그 기억 속에서 어린 한정우는 어린 이수연의 발에 난 상처를 손바닥으로 가리며 이렇게 말해준다. “이제 안 아프지? 안보이니까.” 그리고 손 마술을 한다. “쏴- 지워졌다. 나쁜 기억. 이제 다시 만들면 돼. 좋은 기억.” 고통이나 상처는 그 제공자에 대한 복수로 인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내는 좋은 기억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고통 없는 좋은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이 드라마는 한정우의 흥미로운 농담으로 그 메시지를 전한다. “닭장 속에는 암탉이. 꼬끼오- 문간 옆에는 거위가. 꼬끼오- 배나무 밑엔 염소가 꼬끼오- 외양간에는 송아지. 꼬끼오-” 한정우의 농담에 까르르 웃는 이수연에게 그는 이제 진짜 노래를 불러준다. “닭장 속에는 암탉이. 꼬꼬댁- 문간 옆에는 거위가. 꽥꽥 꽥....외양간에는 송아지. 음메- 도로 위에는 경찰들이 거기서!” 깜짝 놀라는 이수연에게 한정우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이 노래에는 깊은 뜻이 있어요. 암탉은 꼬꼬댁, 송아지는 음메, 경찰들은 거기서. 다 각자 위치에서 제목소리를 내면서 살자는 뜻이지. 김형사 아저씨가 그러셨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멜로가 존재할까. 남녀 간의 달달한 사랑의 대화 속에서조차 사회적인 메시지가 불쑥불쑥 나오는 멜로라니. 심지어 취조실에서조차 눈물과 감동을 느끼게 하는 <보고싶다>는 멜로드라마이면서 동시에 휴먼드라마이고 또한 사회극의 하나라고 볼만 하다. 흔히 퇴행적인 신데렐라로만 달려감으로써 점점 가치를 잃어가던 멜로드라마는 이로써 <보고싶다>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었다.

<내 딸 서영이>, 그 막장과 국민드라마 사이

 

<내 딸 서영이>가 시청률 40%를 넘겼다고 난리들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최근 들어 40% 시청률이라는 것은 거의 경이적인 수치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청률 40%를 넘겼다고 섣불리 국민드라마 운운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작년 <추적자>는 20% 안팎의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국민드라마로 칭송되었다. 이제 국민드라마라는 칭호가 시청률이 아니라 대중들의 공감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그렇다면 <내 딸 서영이>는 과연 이런 의미에서의 국민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 항간에는 막장드라마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만은 충분한 드라마라 여겨진다. 먼저 이서영(이보영)이라는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관점과 이삼재(천호진) 같은 아버지로 대변되는 나이든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관점이 갈등하고 부딪치면서 어떤 교집합을 찾아가는 면모가 대단히 참신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기획의도와 설정이 존재하는 것과 동시에, 이 드라마는 자칫 잘못하면 막장으로 흘러갈 자극적인 포인트들도 갖고 있다. 즉 서영이 아버지를 부정했던 그 과거의 비밀이 그렇고, 초반부터 이미 복선으로 제시되었던 강성재(이정신)의 출생의 비밀이 그렇다. 이 비밀들은 흔히 그러하듯이 자극으로만 치닫게 되면 막장이 될 수도 있지만, 잘만 균형점을 잡으면 드라마가 굴러가게 하는 적절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초반에는 이 균형이 잘 유지되었다. 이삼재의 입장에서 보여준 절절한 부성애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동시에 아버지를 부정하고 난 후 가시방석에 살아가는 이서영의 마음도 시청자들을 아프게 했다. 또한 이서영을 위해 모든 걸 배려하는 강우재의 모습은 훈훈하면서도 극에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이상우(박해진) 역시 강미경(박정아)과 풋풋한 연인관계를 이어가면서 후에 드러날 이서영과의 얽힌 관계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많은 비밀들이 풀어져 나가는 단계에 이르러 <내 딸 서영이>는 균형점을 잃고 그 흔한 막장드라마들이 쓰던 자극 코드들을 반복하고 있다. 강미경의 오빠가 서영이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우가 강미경과 헤어지는 것도 모자라 최호정(최윤영)과 결혼까지 하는 것은 과도해 보이고, 강우재가 서영이의 비밀을 알아채고도 직접 소통하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죽만 때리는 행동도 그다지 개연성 있다 여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강우재와 서영이의 비밀을 둘러싼 냉전이 해소되지도 않은 채, 갑자기 드러난 강성재의 출생의 비밀 역시 너무 전형적인 자극 코드로 풀어내짐으로써 <내 딸 서영이>는 마치 갑자기 막장드라마가 된 듯한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주었다. 분노에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고, 누군가의 뺨을 때리고, 어제까지 그토록 아끼던 자식을 하루아침에 원수 보듯 하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이 비밀들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조금만 달랐다면 <내 딸 서영이>는 더 큰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전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통칭해서 부르는 막장드라마라는 수식은 참 애매한 표현이다. 그저 출생의 비밀이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가 막장드라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없다고 해서 막장드라마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공감대와 자극의 문제다. 공감대가 없이 자극으로 자꾸 흘러가게 되면 같은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도 대중들은 막장으로 드라마를 인식하게 된다. 그만큼 그 자극 코드들이 너무 많이 사용되면서 대중들을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시청률 40%가 넘었다고, 단지 그 수치적인 것에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그것이 그대로 드라마의 공감대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대신 <내 딸 서영이>가 그 시청률이라는 수치를 위해 더 멀리 가기 전에 빨리 본래의 좋은 의도, 즉 세대와 계층과 성별이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로 돌아오길 바란다. 시청률 높은 막장드라마가 되느니 차라리 조금 시청률이 낮은 국민드라마가 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SBS 연기대상, <추적자>와 손현주의 의미

 

2012 SBS 연기대상의 두 주역은 <신사의 품격>과 <추적자>였다. <신사의 품격>은 최우수연기상을 장동건과 김하늘이 나란히 수상했고, 베스트 커플상(김민종, 윤진이), 시청자 인기상(김하늘), 10대 스타상(장동건, 김하늘), 주말 연속극 부문 우수연기상(김수로), 공로상(김은숙 작가), 주말 연속극 부문 특별연기상(김민종, 이종혁, 김정난), 뉴스타상(이종현, 윤진이)까지 거의 전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SBS연기대상'(사진출처:SBS)

하지만 <추적자>의 바람도 결코 작지 않았다. <추적자>는 10대 스타상과 영광의 대상을 거머쥔 손현주를 비롯해, 방송3사 PD가 주는 프로듀서상(박근형), 미니시리즈 부문 우수연기상(김상중, 김성령), 미니시리즈 부문 특별연기상(장신영), 뉴스타상(고준희, 박효주)을 거둬들였다. 사실상 2012년 최고의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신사의 품격>과 <추적자>는 작품의 완성도도 높았고 당연히 그 정도의 상을 받을 만큼의 명품 연기들도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좋은 작품이지만 그래도 대상으로 손현주의 손을 들어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손현주의 수상소감에 이미 다 들어가 있다. 그는 대상 수상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처음 내뱉은 말은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군요.”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것은 손현주라는 연기자 개인으로도 그렇고, <추적자>라는 작품에게도 그렇다. 언제나 드라마에서 중견 연기자로서 굵직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늘 상은 젊고 잘생긴 주연들에게만 돌아가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추적자> 역시 스펙(?)만으로는 상과는 별로 상관없는 드라마처럼 보였다. 손현주는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촬영하는 내내 우리 드라마에는 없는 게 너무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돌이 없고 스타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성패는 결코 스펙만으로 결정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손현주는 보여줬다. 그는 드라마에서 진짜 연기의 중요성을, 함께 한 연기자들을 거론함으로써 드러냈다.

 

“우리 드라마에는 뭐가 있는지 아십니까? 박근형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함께 대립각을 세우며 열연을 펼쳤던 김상중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함으로써 <추적자>가 온전히 좋은 대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로 승부한 작품이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했다. 바로 이런 혼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손현주가 표현한 대로 ‘변방’이었던 작품이 중심에 설 수 있게 되었던 것.

 

사실상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인지하듯 대본이다. <추적자>나 <신사의 품격>이 올해의 최고 드라마로 평가받고 또 연기대상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작품 모두 훌륭한 대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좋은 대본이 있어 훌륭한 연출이 세워질 수 있었고, 기억에 남을 명대사로 기억되는 캐릭터와 연기자들이 있을 수 있었다.

 

손현주의 수상소감은 전혀 능숙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소박해 보였다. 그래서 더 짠한 느낌을 주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노력해 왔으니 상에 대한 욕심 자체가 있을 리가 없었을 게다. 오로지 좋은 작품에 대한 노력만 있었을 테니 말이다. 손현주의 수상은 그래서 화려한 캐스팅과 어마어마한 규모의 제작비 같은 외관만 화려한 몇몇 드라마들에 시사하는 바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각자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개미들과 이 수상의 영광을 같이 하겠습니다.” 이 마지막 소감처럼 손현주의 수상은 스펙이 화려하지 않아도 뒤에서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힘이 되어주었다. <추적자>라는 작품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진구, 김소현, 박유천, 유승호 그리고 윤은혜까지

 

좋은 작품은 좋은 캐릭터를 만들고, 좋은 캐릭터는 좋은 연기자를 발견한다. <보고싶다>는 딱 그런 작품이다. 주역으로서의 아역(여진구, 김소현)에서부터 성인역(박유천, 유승호, 윤은혜)까지, 그리고 조역이지만 든든한 기둥을 세워주는 중견(송옥숙, 한진희, 전광렬, 김미경)까지 <보고싶다>는 말 그대로 연기 보는 맛이 나는 작품이다.

 

'보고싶다'(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을 통해 시청자들을 품은 여진구는 <보고싶다>에 와서 더 단단해진 연기의 무게감을 보여주었다. 누가 그를 보고 아역이라고 하겠는가. 김소현과 함께 보여준 풋풋한 멜로 연기는 물론 <해를 품은 달>에서부터 정평이 나 있었던 것이지만, 그녀를 홀로 버려두고 도망친 후 죄책감과 그리움이 뒤엉켜 울부짖는 모습은 여진구만의 아우라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이지만 아이 같지 않은 감성 연기는 앞으로 그가 하는 작품에 여진구 프리미엄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여진구와 함께 절절한 멜로 연기를 보여준 김소현도 마찬가지다. 아역으로서 성인들의 감성까지 울리는 여자배우로 여진구가 <해를 품은 달>에서 함께 연기한 김유정이 거의 유일하다 여겼다면 이제 김소현도 그 자리 하나를 차지한 셈이다. 하지만 김유정과는 달리 더 갸냘픈 그녀만의 선은 보는 이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이건 김소현이라는 준비된 아역(사실 아역이란 표현이 어설프다)과 함께 여진구라는 든든한 상대역이 서로 시너지를 만든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보통 이런 정도의 아역들의 존재감은 그 바톤을 이어받는 연기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어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여진구와 김소현의 바톤을 이어받은 박유천과 윤은혜는 놀랍게도 그 감성을 더 깊게 만들면서 아무런 이물감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무려 14년을 미친놈처럼 잃어버린 그녀를 찾아온 그 절절한 그리움은 박유천이라는 몰입 좋은 배우의 깊은 눈빛으로 되살아났고, 상처를 지우려 과거를 지워버렸지만 다시 나타난 그로 인해 옛사랑 앞에 흔들리는 그녀는 윤은혜의 눈물 연기 속에서 절절해졌다.

 

그 둘 사이에 서 있는 해리이자 강형준(유승호)은 분열된 두 개의 자아를 가진 인물이다. 그에게 과거는 지워야할 상처이면서 동시에 복수해야할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수연(윤은혜)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다가도 돌아서면 차가운 복수와 욕망에 시달리는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다. 류승호에게 이런 캐릭터는 이중의 어려움을 만들어낸다. 즉 유승호가 가진 너무 앳된 동안은 진중한 성인역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 위에서 그는 이중성격의 소유자를 연기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이 어려움이 유승호에게서 아역의 딱지를 떼어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수연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그 욕망은 서서히 어린아이처럼 웃는 유승호의 이면에 놓여진 섬뜩함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마도 앞으로 유승호가 걸어갈 연기세계에서 <보고싶다>는 그에게 대단히 중요했던 전기를 제공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이 젊은 배우들이 마음껏 감정의 폭발을 할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을 만들어주는 중견들을 빼놓을 수 없다. 거칠지만 대단히 인간적인 엄마상을 그려내고 있는 송옥숙은 아마도 이 드라마의 반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는 연기자일 것이다. 그가 있어서 맘껏 울 수 있고 어리광부릴 수 있는 박유천과 윤은혜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한진희는 이 드라마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악역이고, 전광렬은 이 어른과 아이들의 대결구도 속에서 어른이면서 아이의 마음을 가지려 했던 어찌 보면 드라마의 주제와 맞닿는 캐릭터를 보여준 연기자다. 물론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피해자 어머니 역할의 김미경도 빼놓을 수 없다.

 

<보고싶다>는 바로 이 든든한 중견의 바탕 위에서 젊은 연기자들을 재발견해준 드라마다. 아마도 훗날 제 각각의 연기 영역을 펼쳐나갈 이들은 어쩌면 <보고싶다>를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연기 가능성을 최대치로 뽑아내준 이 작품은 그래서 그들의 성장과 함께 훗날 자꾸 더 보고 싶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연기자는 좋은 작품을 통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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