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대사의 부재가 드라마를 상투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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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프린세스'(사진출처:MBC)

'마이 프린세스'의 공주 이설(김태희)은 결국 공주가 되고 왕자님 박해영(송승헌)과 사랑을 이루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진행과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드라마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거의 혼자 무너지고 망가지며 극을 이끌어간 김태희라는 연기자의 재발견은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임팩트 있는 여운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아쉬움은 드라마 전체 스토리의 구조다. '마이 프린세스'는 초반 4부까지 거의 모든 스토리를 쏟아 부었지만, 그 후부터는 지지부진한 진행이 이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남녀 인물 간의 심리변화 등을 통해 유발됐어야 할 긴장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된 것은 초반에 일찌감치 공주 대우(?)로 급상승한 이설이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공주라는 설정을 가져왔지만, '마이 프린세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였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설이 어느 날 갑자기 공주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국민투표에 의해 진짜 공주가 되는 과정을 멋진 두 왕자님, 즉 박해영과 남정우(류수영)가 도와주는 스토리. 신데렐라 이야기가 힘을 갖게 되는 건 신분상승 가능성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끊임없이 상기되고 벌어져 있을 때다. 하지만 초반부에 이미 공주 대우가 된 이설에서 이런 긴장감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상승구조를 가져야 힘을 발휘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달리, '마이 프린세스'는 이미 정점에 신데렐라를 세워두고 거꾸로 끊임없이 이 신데렐라를 본래 평범한 인물로 떨어뜨리려는 오윤주(박예진)를 통해 긴장감이 세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지나치게 상투적이다. 오윤주가 가진 힘보다 두 왕자님인 외교관 박해영과 교수 남정우가 가진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설은 여전히 공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공주병을 앓는 그저 예쁘고 귀여운 여인에 머물게 되자, 드라마의 역학구조는 공주를 위협하는 악역과 그것을 막아주는 왕자님 스토리로 퇴행했다.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 신데렐라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기 때문이다. 즉 왕자에게 보호받는 공주가 아니라 스스로 자립하고 일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는 성장형 신데렐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스스로 성장하는 신데렐라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사다. 아무리 스토리 구조가 평이하다고 해도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시크릿 가든'이나 '신데렐라 언니'에서 느껴지는 감성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대사의 부재는 드라마를 상투적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로맨틱 코미디에서 가장 클라이맥스가 되는 프로포즈의 순간에도 그저 수다스럽게만 느껴지는 대사는 드라마를 지나치게 상식적으로 떨어뜨렸다.

스토리와 캐릭터에서 '마이 프린세스'는 많은 허점을 가진 드라마로 남았다. 이미 공주가 되었지만 공주로서 역할을 하려 하지 않고 신데렐라가 되려는 여주인공, 왜 그렇게 악독한지 이해하기 어려운 악역, 그저 여주인공을 무한 보호하고 사랑하는 남주인공들의 긴장감 없는 행보, 무엇보다 지나치게 상식적인 대사들은 '마이 프린세스'를 상투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로 만든 이유들이다. 오히려 이런 허점들을 채워준 건 김태희, 송승헌, 류수영, 박예진의 연기다. 상식적인 상황에서도 어떤 설렘을 끌어낸 건 이들 연기자들이 갖고 있는 배우로서의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라다이스 목장', 제주도를 닮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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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목장'(사진출처:SBS)

'파라다이스 목장'이란 드라마의 멜로는 특이하다. 이미 한 번씩 결혼하고 이혼한 남녀들이 제주도 목장을 배경으로 다시 만난다. 이혼했던 이다지(이연희)와 한동주(최강창민)는 한 집에서 살지만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다. 리조트 개발에 대한 지역주민의 동의서를 얻기 위해 한동주가 이다지의 집에 들어온 것. 그 뿐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지만 진짜 그뿐일까. 이 두 사람은 여전히 부부처럼 툭탁거리고 싸우면서도 자꾸 과거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서로를 도와주려 애쓴다.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지만 때론 부부 같고 때론 연인 같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 서윤호(주상욱)라는 엄친아가 끼어든다. 성공한 리조트 투자자인 그는 이다지의 풋풋함에 빠져든다. 이다지 역시 서윤호를 좋아하게 되고, 한동주는 마음 한 구석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다지의 사랑을 도와주려 한다. 서윤호는 이다지와 한동주가 함께 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 하고, 이다지가 이미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되고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런데 이 서윤호 역시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한(것이나 다름없는) 남자다. 그런 그를 이다지는 역시 사랑한다.

이런 사랑 방정식은 기존 멜로드라마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것들이다. '파라다이스 목장'의 남녀들은 거의 모든 과거의 사실들을 다 알고 있지만, 그리고 그 과거가 여전히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사랑을 포기하거나 연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는다. 그저 늘 웃고 있고, 진심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사랑한다. 어찌 보면 쿨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각자 혼자 남게 된 상황에서 그들 역시 노심초사 마음을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멜로드라마가 사랑하는 남녀와 그들 사이에 놓여진 장벽을 구조로 세워진다면, '파라다이스 목장'은 그 장벽이 헐겁다. 서로가 서로를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역으로 서윤호의 아내가 잠깐 등장하지만 그것은 잠시간의 긴장감만을 만들 뿐 그 이상으로 진척되지 못한다. 이들 사이에 놓여진 탄탄한 신뢰감 앞에 감히 관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튕겨져 나간 셈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파라다이스 목장'은 대결구도 없이 흘러가는 달달하기 만한 로맨스 드라마로 보여진다. 이다지가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한동주와 서윤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두 가지 차원의 멜로를 만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겉면이다. 이면으로 들어가 보면 이다지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치열한 갈등을 하고 있다. 과거에 했었던 사랑의 아련함과 아쉬움.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사랑이 주는 설렘과 두려움. 그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

사실 현실적인 공간에서 이런 멜로는 자칫 설득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파라다이스 목장'에서는 이혼과 결혼, 사랑, 동거 이런 것들이 마구 드러난 상태에서도 여전히 풋풋함을 유지하는 멜로가 가능해진다. 어떻게 그럴까. 아마도 그것은 제주도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혼여행의 대표적인 공간이면서, 현실 공간이기도 한 제주도는 우리가 현실에서 구분하던 이 모든 경계들, 예를 들면 결혼과 연애, 사랑과 동거, 이혼과 새로운 만남 같은 것들이 희미해지는 지점이 있다. '파라다이스 목장' 자체가 제주도를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파라다이스 목장', 제주도를 그대로 빼닮아버린 드라마다.

'마프'의 공주 이야기, 현대인과 공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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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프린세스'(사진출처:MBC)

이 시대에 공주 이야기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는 물론 여전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왕자님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왕자님에 의해 구원받는 그런 공주는 어딘지 공감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당연하다. 현대여성들은 그렇게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을 봐도, '라푼젤'이나 '슈렉'의 피오나 공주처럼 이제 전통적인 공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아예 제목에 공주를 달고 나온 '마이 프린세스'는 어떨까. 초반부까지만 해도 이 드라마가 그려낼 공주에 대한 기대감이 충분했다. 무엇보다 장차 공주가 될 이설(김태희)이란 캐릭터가 한없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모습이 그랬다. 게다가 공주병까지 있는 공주라니. 얼마나 절묘한 캐릭터인가. 이 공주님 앞에 선 왕자님인 박해영(송승헌) 역시 기대감을 높였다. 초기에 이 왕자님은 어딘지 허당 기질이 다분해 보였다.

특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김태희의 망가지는 모습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이고, 김태희의 연기자로서의 기대감도 높였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이 무너진 건, 이설이 공주임이 밝혀지고 궁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궁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반복되었다. 즉 공주 되기의 어려움, 공주가 되는 걸 방해하는 오윤주(박예진), 이설을 보호해주려는 남정우(류수영) 교수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박해영과의 로미오와 줄리엣 식 로맨스. 이런 스토리는 전형적인 공주 스토리로 드라마를 회귀시켰다.

이설도 수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오윤주의 방해와 모략에 늘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이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박해영이나 남정우의 도움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씩씩했던 캐릭터가 그저 대책 없이 눈물만 흘리는 캐릭터로 변하자, 박해영도 왕자 캐릭터로 회귀했다. 발랄함과 풋풋함이 사라지고 전체적으로 과거 전형적 공주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드라마는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시크릿 가든'이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틀을 과감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존재로서의 신데렐라가 아니라 늘 당당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신데렐라. 길라임(하지원)은 늘 도도함과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김주원(현빈)과 늘 동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 이렇게 된 데는 길라임이나 김주원 모두 확실한 자기 직업, 즉 자기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자기 세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설은 공주이고, 박해영은 외교관이지만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전문직 드라마일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이 가진 일의 세계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랑만큼 중요하다. 당당함과 능동성 그리고 자존감이 그 일에서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이 사라진 멜로드라마는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사랑타령으로만 매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이 프린세스'가 초반부의 기대감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주인공들이 자기 세계를 빨리 되찾았어야 했다. 이설은 조금은 엉뚱해도 보다 적극적인 공주로서의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었고, 박해영 역시 이설 바라기로서만의 캐릭터에서 벗어났어야 한다. 그리고 본래 그리려 했던 이설의 성장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멜로드라마는 물론 사랑을 그리지만, 요즘처럼 자기 성장에 주목하는 시대에는 사랑에만 목매는 드라마는 매력이 없다. 자기 성장으로서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사랑이 더 주목되는 시대다. '마이 프린세스'는 왜 처음의 기대감처럼 좀 다른 공주 이야기를 펼쳐나가지 못했을까.

'싸인'의 그 많은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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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사진출처:SBS)

'싸인'의 시청률이 드디어 20%를 넘어섰다. 초반 승승장구했지만 차츰 고개를 숙인 '마이 프린세스'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일련의 용두사미 드라마들, 즉 초반에 기선을 잡았다가 중반부터 힘이 달려 시청률이 떨어지던 드라마들 속에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싸인'의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빠져들게 하는 걸까.

무엇보다 '싸인'의 풍부한 스토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싸인'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이어져 있지만,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소개되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어느 스타의 죽음을 다룬 후, 연쇄살인범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어느 기업에서 벌어지는 연쇄 의문사 사건이 이어지는 식이다.

연속극에 익숙한 우리나라 드라마 시청 패턴 상 병렬적인 스토리 구조를 가진 드라마는 한계를 가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싸인'은 예외적이다. 이유는 병렬적인 스토리들을 박신양과 김아중, 전광렬, 엄지원, 정겨운 같은 굵직한 배우들이 캐릭터를 통해 촘촘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벌어진 윤지훈(박신양)의 아버지와 정병도(송재호) 사이에 벌어진 소견 조작 사건은, 20년 후 윤지훈이 맞게 되는 연쇄 독살사건과 연결된다. 각각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주인공과 연결시킴으로써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

연결이 끊기지 않는 병렬적인 스토리 구조는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바뀐다. 보다 풍부한 스토리를 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마이 프린세스'와 대적할 수 있는 확실한 경쟁력을 만들어준다. 지지부진한 진행, 반복적인 스토리에 인물들 간의 멜로만 부각되는 '마이 프린세스'와, 멜로가 약하지만 매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싸인'은 확실히 대비된다.

게다가 '싸인'이 가져온 사건들이 현실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들을 계속해서 연상시킨다는 점도 시청률 상승의 원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가수 고 김성재군의 의문사 사건이라든지, 화성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최근에는 매 값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들까지 이 드라마는 화제로 끌어들인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 사건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정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여 어떤 대리만족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멜로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과거 멜로는 '싸인' 같은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의 독이 되는 경향이 짙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여기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사건과 그 속에 잘 어우러지는 멜로의 조화는 오히려 드라마의 몰입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전문직의 사건들만으로 20% 이상의 시청률을 계속 끌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멜로가 적절히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멜로에 빠져 사건이 지지부진해진다면 오히려 독이 되겠지만.

'싸인'은 기존 드라마 관행 속에서 여러 약점들, 예를 들면 병렬적인 스토리 구조나 멜로의 부재 같은 것들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것을 거꾸로 강점을 잘 바꿔놓은 드라마다. 무엇보다 박신양과 전광렬의 팽팽한 연기대결, 그리고 송재호의 관록과 김아중의 발랄함이 잘 어우러져 있는 점도 시청자들을 끄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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