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경 작가, '49일'에서도 뒷심 보여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49일'(사진출처:SBS)

'49일'의 소현경 작가는 뒷심의 작가다. '검사 프린세스'는 초반에 당시 경쟁작이었던 '신데렐라 언니'와 '개인의 취향'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차츰 반응을 일으키면서 후반에는 이른바 '시후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사실 '검사 프린세스'는 장르적으로도 쉬운 건 아니었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발랄함에 추리적인 요소까지 섞여 있었던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마니아적인 특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뒷심을 발휘하며 선전했다고 보여진다.

'찬란한 유산'은 작품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첫 회가 방영되고 나서 15%대의 시청률을 얻더니, 4회 만에 20%를 넘기고 국민드라마를 향해 질주했다. 이 드라마도 전형적인 주말 드라마 공식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었다. 즉 가족드라마 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니시리즈 같은 긴박감을 잘 조화시켰다. 멜로 라인도 잘 잡혔고, 가족애를 끌어내는 스토리도 좋은 데다, 사회적인 메시지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특징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지기는커녕 점점 뒷심이 붙었다는 것이다.

물론 '49일'의 첫 시청률은 8%. 기대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소현경 작가에 대한 신뢰감은 충분하다. 분명 조금씩 시동을 걸고 차츰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어떤 뒷심을 발휘할 것이라 생각된다. '49일'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첫 회보다는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생기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첫 회는 이 얼키고 설킨 관계의 고리들의 복선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신지현(남규리)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진실된 눈물 세 방울이 필요하다는 이 드라마의 장치는, 그 눈물을 흘려줄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즉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어딘가 야망이 엿보이는 민호(배수빈), 그녀의 옛 친구지만 어딘지 그녀를 사랑하는 듯한 한강(조현재), 둘도 없는 친구지만 숨겨진 속내가 있는 듯한 인정(서지혜). 첫 회는 이 관계들의 겉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스스로 죽고 싶어 하는 송이경(이요원)과 저승사자지만 어딘지 미스테리한 구석을 갖고 있는 스케줄러까지, 감질날 정도로 첫 회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2회부터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그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랑한다 믿었던 민호와 둘도 없는 친구라 여긴 인정이 사실은 숨겨진 연인 관계였다는 게 드러난 것. 본격적으로 눈물 세 방울을 얻기 위해 직접 다시 보게 되는 그 관계의 실상들 속에서 앞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초반에 거의 힘을 쏟아 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들 드라마들은 중간쯤에서부터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초반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으면 중간에 다소 힘이 빠져도 관성적인 시청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달라졌다. 최근 시청자들은 보다가 재미없으면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용두사미형 드라마들이 많이 양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물'이 그랬고 '도망자'가 그랬으며 '아테나', '마이 프린세스'가 그랬다. 하지만 과연 뒷심의 작가 소현경의 '49일'은 다른 면모를 보여줄까. 기대해볼만한 대목이다.

극적 전개보다 인물들의 묘사가 뛰어난 '짝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짝패'(사진출처:MBC)

'짝패', 이 사극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첫 회에 같은 날 태어난 아기들이 뒤바뀌는 장면에서는 역시 '출생의 비밀'인가 했다가, 그렇게 다른 환경에서 한 명은 양반집 자제로 또 다른 한 명은 거지로 자라난 천둥과 귀동이 서로 "짝패 먹자"고 하는 장면에서는 그런 운명 따위는 개척하기 나름이라는 성장드라마의 일면을 보게 된다. 성장한 천둥(천정명)이 동녀(한지혜)와 상단을 꾸려나가는 이야기는 '상도'를 떠올리게 하고, 포교가 된 귀동(이상윤)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장면에서는 '별순검'류의 조선법의학 드라마나 '다모'류의 조선형사물이 떠오른다. 물론 갓바치나 거지패들의 이야기에서는 민초들을 다룬 '추노'류의 민중사극이 연상된다. 도대체 이 사극은 정체가 뭘까.

시대적 배경도 전통적인 사극이 주로 다루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그 시점에 걸쳐있다. 칼 대신 총을 쏘고, 서양의 문물들이 시장으로 들어온다. 민중봉기의 열기가 피어나고 있는 이 시대는 양반제라는 틀이 서서히 균열을 드러내는 시기다.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각기 출신이 다른 천둥과 귀동, 그리고 여성인 동녀가 서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는 장면들이 개연성을 갖는다. 사극이라면 늘상 등장하는 멜로보다, 우정이 더 많이 느껴지는 관계들도 이 사극의 독특한 위치를 보여준다.

드라마의 극적 구성도 기존 우리가 흔히 보던 현대 사극의 틀과는 상당히 다르다. 최근의 퓨전사극으로 주로 다뤄지던 성장드라마나, 장르사극으로 다뤄지던 극적인 전개는 이 사극에서는 그다지 발견하기 어렵다. 물론 그런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그 자극이 강하지가 않다는 얘기다. 대체로 사극이 그리는 한 회의 흐름은 전회에 이어지는 강한 사건의 연속과 함께 중간에 새로운 이야기의 국면이 전개되고 그것이 조금씩 마지막의 극적 갈등으로 이어지다가 다음 회로 넘어가는 구조를 갖는다. 하지만 '짝패'는 그런 전형적인 구도를 벗어나 있다. 어찌 보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이 사극은 담담하다. 마치 일일드라마를 보듯, 인물들 간의 담담한 이야기가 무리 없이 전개되어 나갈 뿐이다.

물론 이 사극도 극적으로 상승하는 어떤 폭발적인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스승의 원수를 갚으려고 현감을 저격하는 장면이 그렇고, 참다못한 민중들이 봉기해 관아를 점령하는 장면들이 그러하며, 스승의 원수지만 친구 귀동의 아버지라는 이유 때문에 김진사(최종환)를 살려주는 장면이 그렇다. 즉 '짝패'는 극적 장면이 있지만, 그것을 통해 의도적으로 다음회를 낚시하는 식의 억지 구성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담담하다.

사극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을 쓰고 있는 김운경 작가의 필모그래피다. 81년 '전설의 고향'으로 데뷔한 김운경 작가는 '한 지붕 세 가족(1986)', '서울 뚝배기(1990)', '서울의 달(1994)', '파랑새는 있다(1997)' 등으로 잘 알려진 베테랑 작가다. 작품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김운경 작가의 작품에는 늘 서민들이 어른거린다. '짝패'는 그래서 어쩌면 이 작가가 고집하는 서민들, 민중들의 이야기에서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사극이다.

천둥이 본래는 양반집 자제지만 거지로 성장하고, 귀동이 본래는 거지로 자라야할 운명이지만 양반집 자제로 자라나는 그 상황에서, '출생의 비밀'로 빠져들지 않고 서로 상생하는 성장드라마로 넘겨올 수 있었던 건 김운경 작가가 늘 쥐고 있는 이 서민 코드 덕분이다. 그들은 뒤바뀌어진 운명 속에서도 자신이 갈 길을 간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지점은 서민들을 향해 걸어가는 그 길 위에서 있다. 그들은 다른 신분에서 출발하지만 같은 길을 걷는 짝패가 된다.

따라서 '짝패'라는 사극을 즐기는 법은 저 성장드라마의 끝없이 치고 달리는 욕망의 흐름이 아니라, 조금은 차분하게 운명을 관조하며 그 속의 인물들이 따뜻하게 서로를 감싸안아주는 그 흐뭇한 장면들을 바라보는 그 지점에서 생겨난다. 천둥과 귀동이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신분이 아니라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런 장면들이나, 동녀를 찾아온 귀동이 친구처럼 같이 술을 나누는 장면들이나, 어딘지 정이 가는 거지 도둑 장꼭지(이문식)의 배꼽빠지는 면면을 보게 되는 장면들 속에서 '짝패'의 진가가 묻어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딘지 수더분해 보이면서 정이 가는 이 사극은 우리가 막연히 부르는 민중의 이미지를 닮았다. '짝패'는 그런 사극이다.

'싸인'이 멜로에 빠지지 않은 까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싸인'(사진출처:SBS)

마지막회에 와서야 왜 '싸인'이 많은 시청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멜로를 발전시키지 않았는지를 알 것 같다. '싸인'의 현실 인식은 섬뜩할 정도로 비장하다. '산 자는 거짓말을 하고 망자가 진실을 말한다'는 말은 그저 하나의 수사가 아니라 이 드라마가 가진 비정한 세상에 대한 시각이다. 모든 명확한 심증과 정황을 갖고 있으면서도 권력의 힘을 빌어 증거를 인멸하고 살아남는 범법자들에게, 윤지훈(박신양)이 스스로 '진실을 말하는' 증거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싸인'이 전하는 세상에 대한 준엄한 경고다. 이렇게까지 해야 겨우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 멜로에 빠지는 것 자체가 너무나 한가하고 심지어 이 땅의 수많은 억울한 망자들에게는 죄스럽게까지 여겨졌을 일이다.

따라서 멜로 없이도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싸인'의 성공은 오히려 그 멜로가 없을 수밖에 없는 작품의 진정성이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죽어나가고 있고, 누군가는 그 죽음을 덮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망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그들밖에 없다. 그 속에서의 사랑타령은 배부른 일로 비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윤지훈이라는 캐릭터의 진지함은 바로 이런 작품의 분위기 속에서 창출된 것이다. 그에 대한 고다경(김아중)의 마음이 사랑 그 이상의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이 멜로의 부재는 작품의 장르적 완성도를 위해서도 필요했을 것이다. 즉 첫 번째 사건이 마지막 사건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에서 그 사건의 해결방식으로서 윤지훈의 죽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마지막 죽음에 증거를 남긴다는 그 강렬한 설정만큼 이 드라마의 주제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예정된 윤지훈이 고다경과의 멜로를 너무 깊게 끌고 가게 되면 그것은 제작진에게도 부담이 됐을 수밖에 없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멜로란 시청자들의 감성에 의해 가장 좌지우지되기 쉬운 설정이 아닌가.

이것은 거꾸로 윤지훈과 고다경이 깊은 멜로 관계를 그렸을 때, 마지막 회 초반부에 일찌감치 윤지훈의 죽음이 드러나는 그 장면에서 느껴졌을 당혹감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윤지훈은 이제 자신이 죽게 될 사실을 알고 마지막을 정리하듯 고다경과의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시청자들과의 마무리이기도 할 것이다.

한 법의학자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권력의 심층부와 연결된 살인사건이 해결되는 이 상황이 말해주는 건 명백하다. 그만큼 권력의 시스템은 공고하고 심지어 살인을 저질러도 권력의 힘으로 그것마저 덮어버릴 수 있는 사회에서 그것을 넘어서고 정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위치에 있는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희생이 '싸인'에서처럼 굳이 죽음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망자들의 이야기를 좀더 가까이 듣기 위해 국과수를 나와 실제 현장으로 뛰어드는 윤지훈처럼 다만 자기의 이권마저 버리는 그 희생의 정신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얘기다.

'싸인'이 멜로 없이도(어쩌면 멜로가 없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 깔려진 깊은 진정성 때문이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망자들의 이야기들 속에서 사랑타령마저 사치이자 호사로 여기는 그 태도. '싸인'의 작품적 완성도와 성공은 바로 그 태도가 보이는 진지함에서 비롯된다.

'싸인'은 현실과 어떤 연결고리를 맺고 있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싸인'(사진출처:SBS)

세상은 좁고, 사건은 넘쳐난다(?). '싸인'의 스토리 구조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싸인'은 법의학을 그 중심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그 스토리는 법의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건사고들을 정치권과 검찰, 경찰, 법의학자 등의 역학관계를 통해 다차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회에 두 개의 사건을 병렬적으로 그려내면서, 이 많은 입장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드라마는 느슨해질 여유를 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과 추격전, 추리의 연속이 '싸인'이라는 드라마의 진면목이다.

어두운 밤길, 급하게 귀가하는 여자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그 뒤를 쫓는 그림자의 발길도 빨라진다. 그리고 결국 벌어지는 살인의 현장. 이 묻지마 살인이 환기시키는 것은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여주인공 고다경(김아중)의 동생이 당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드라마지만 어찌 보면 이 설정은 지나치게 우연적이다. '싸인'이 보여준 일련의 사건들이 대부분 이렇게 주인공들과 연관되어 있다. 한 회사에서 벌어지는 독극물에 의한 연쇄살인은 윤지훈(박신양)의 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은 또 그 아버지를 부검한 정병도(송재호)와도 관련되어 있었다.

또 윤지훈이 수사하고 있는 가수의 의문사 사건은 그가 국과수에서 밀려나게 되었던 사건이기도 하다. 왜 '싸인'은 개연성을 어느 정도 양보하면서까지 사건과 인물들을 밀접하게 그리는 걸까. 이유는 명백하다. 검찰과 경찰, 법의학자가 사건을 파헤치는 그 동기부여를 좀 더 강하게 그리려는 의도다. 그저 억울하게 죽게 된 사람들의 사인을 밝혀내는 것보다, 죽게 된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훨씬 극적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주인공과 계속해서 연루되는 사건들은, 세상에 벌어지는 사건사고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님을 드러내기도 한다. 스릴러가 갖는 스토리 구조의 비결은 비일상적인 사건을 긴장감 넘치게 그리면서, 그것이 일상적인 내 이야기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싸인'에 등장한 사건사고들이 우리가 현실에서 봐왔던 사건들을 연상시키는 것 역시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드라마와 현실은 어떤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게다가 사건을 수사해가는 과정에서 그 당사자들 역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정우진(엄지원) 검사는 게임 시나리오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에게 공격당하고, 공범이 등장하면서 잡혔던 용의자가 풀려나면서 그 위협은 다시 고다경에게로 향한다. 본격적인 멜로는 아니지만 정우진과 사랑하는 관계가 된 강력계 형사 최이한(정겨운)은 이 묻지마 살인이 이제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건으로 변모한다.

사건을 계속해서 터지고 현장을 발로 뛰는 평검사와 강력계 형사, 심지어 지나치게 정치적인 되어버린 국과수를 나와 현장으로 뛰어든 법의학자의 목숨을 건 사건 추격이 이어지지만, 이 상황에서 정치권은 사건의 해결을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은폐하기 바쁘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명시되는 '이 드라마는 특정 기관과 관련이 없다'는 문구는 거꾸로 이 드라마가 그저 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주는 것만 같다. 국가가 정의를 세워주지 않는 상황에서 판타지로서의 영웅들이 탄생한다. 세상은 좁고, 비정하고 사건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질 만큼 넘쳐난다.

'싸인'의 숨 막히는 스릴러는 물론 능숙한 장르 운용의 힘이다. 하지만 장르라는 건 콘텐츠 내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그런 게 아니다. 장르는 당대 현실과 작품과의 조우에서 합의되는 것이다. 물론 현실과 거리가 있는 드라마적 극적 구성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싸인'은 바로 그 현실과의 접점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세상은 '싸인'이 보여주는 것처럼 심지어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그 정의를 세워야할 기관들은 모두 정치적인 입장만을 반복하며 이를 외면한다. 국과수를 지키기 위해 국과수 밖으로 나오는 아이러니한 영웅의 탄생은 이처럼 현실에 깔려있는 어두운 공기들을 포착해내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