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위선적인 세상을 뒤집다

세상은 얼마나 위선적일까. 가진 자들은 뭐든 손만 뻗으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불필요하다면 언제든 버릴 수 있지만, 그렇게 돈으로 산 세계에 진심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행복한 척 웃고 있지만 사실은 거래에 가까운 삶을 그저 버티고 있을 뿐. 그렇다면 '나쁜 남자'가 그려내는 못 가진 자들은 어떤가. 늘 가진 자들에게 당하는 순박한 존재들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도 못 가진 걸 갖기 위해 가진 자들 앞에서 가면의 사랑을 서슴없이 하는 존재들이다. '나쁜 남자'는 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가진 자들의 품속에 억지로 던져져 홍태성이란 이름으로 살 뻔했으나, 곧 버려지면서 심건욱(김남길)이란 괴물이 탄생했다. 심건욱이 누군가의 위험한 대역을 대신하며 살아가는 스턴트맨이라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심건욱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버린 해신그룹 홍회장(전국환)의 가족들에게 접근해서 하려는 복수극이 남다르다. 그는 폭력으로 물리적인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것처럼 그들에게 치유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면의 사랑'이다. 그는 해신그룹의 막내딸인 홍모네(정소민)의 마음을 뒤흔들고, 동시에 장녀인 홍태라(오연수)에게 접근한다. 심건욱이 그토록 쉽게 그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위선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홍모네는 이 돈 냄새와는 상관없는(관심이 없는) 야성적인 남자에게 빠져들고, 홍태라는 정략결혼이라는 진심 없는 삶 속에서 이 거침없는 남자에게 흔들린다.

한편 심건욱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홍태성(김재욱)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한다. 이 상황에 갑자기 이들 사이에 나타난 문재인(한가인)이 의도적으로 홍태성(사실은 심건욱)에게 접근할 정도의 속물근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그녀는 심건욱이 진짜 홍태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의 진심에 끌린다. 하지만 유리가면을 구하기 위해 간 일본 출장에서 진짜 홍태성을 만나게 되면서 문재인의 마음은 갈등을 일으킨다. 가난한 진심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위선이라도 화려함을 택할 것인가. 이 양 갈래 사이에 놓인 이 드라마의 멜로는 따라서 심건욱이 하려는 복수와 그대로 맞닿아 있다. 그녀가 돈이 아닌 진심을 선택하는 순간, 심건욱은 어쩌면 구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복수가 될 지도.

유리가면을 홍태성이 제 어머니 앞에서 복수하듯 집어던져 깨뜨릴 때, 순간 이 모든 가면의 상황들을 깨져버리고 제 모습을 드러낸다. 홍태성에게 "네가 그렇게 깨뜨릴 물건이 아냐"하고 대드는 문재인에게 오히려 뺨을 올려 부치며 "네가 뭔데, 선을 넘어오는 거야?"하고 말하는 신여사(김혜옥). 그만큼 위선의 세계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던지면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가면처럼 약하기 그지없다.

'나쁜 남자'가 매력적인 것은 이 자본 위에 세워놓은 세계의 위선과 속물근성을 이 심건욱이라는 사내가 적나라하게 헤집어놓는 통쾌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끈이 떨어진 자신의 백을 맨 채, 명품 백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VVIP고객을 위한 홍보용 콜렉션인지도 모르고 신여사에게 선물로 받은 옷을 돈 때문에 환불하는 장면에는, 자본이 만들어놓은 부에 대한 선망과 속물근성에 대한 혐오가 뒤섞여 있다. 이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사랑은 과연 진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속물근성의 하나인가. '나쁜 남자'는 지금 이것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가 '나쁜 남자'인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없는 척 쓰고 있는 유리가면을 그가 거침없이 벗겨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변신 스토리는 우리네 옛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도 이 변신 스토리가 들어있을 정도. 동물은 인간이 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버텨낸다. '구미호' 이야기는 인간이 되기를 희구하는 천년 묵은 여우의 이야기다. '전설의 고향'의 단골 소재로서 '구미호' 이야기는 매년 반복되어 제작되어왔다. 누가 '구미호' 역할을 할 것인가는 당대의 인기 있는 여배우를 가름하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한동안 사라지기도 했지만 '구미호' 이야기는 계속 명맥을 이어가며 1977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30여 년을 관통하고 있다. 도대체 이 이야기의 무엇이 이토록 시대를 넘어 리메이크되게 하는 걸까.

'구미호' 이야기는 보수적이면서도 파격적이다. 이 이야기의 기반은 다름 아닌 보수적인 사회가 제공하는 억압에 있다. 인간이 되려는 여우는, 인간과 여우 사이에는 확연한 금을 그어놓는다. 즉 여우 스스로 자신의 삶이 아닌 인간의 삶을 희구하는 이 틀 속에는 다른 두 존재 간의 서열적인 차별이 내재화되어 있다. 이것은 과거 반상의 구별을 그대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구미호'라는 공포의 탄생은 이야기 속에서나마 이러한 억압을 벗어던지고 차별에 대항하는 인물을 꿈꾸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구미호'는 그 체계 속에서 사랑받는다고 믿었던 억압된 존재들(여성이거나 천민이거나)이 어느 순간 자신들은 태생적으로 저 체계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절망감의 표상처럼 보인다. 보수적인 이야기의 기반은 이 공포의 틀 속으로 들어오면 파격적인 이야기로 변신한다.

하지만 구미호는 결국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함으로써 그 보수성을 유지한다. 그 유명한 대사, "더러운 것이 정이라더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를 뒤엎지 않는 안전한 이야기로 '구미호' 이야기를 회귀시킨다. 이 옛 이야기가 '전설의 고향'이 방영되던 70년대 정서와 맞닿은 부분은 당대의 시집살이가 한 몫을 차지한다. 가부장제 하에 억압받던 며느리들에게 '구미호' 이야기가 갖는 파격성은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더러운 것이 정이라"는 그 보수성의 회귀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할 지라도.

'구미호' 이야기는 이처럼 리메이크되는 당시의 사회적 억압을 그 공포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폭발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2010년 시리즈물로 돌아온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지금까지의 '구미호' 이야기를 어떻게 변주시키고 있을까. 구미호 이야기 자체가 갖는 보수성은 사실상 2010년이라는 시간대에는 그다지 공감의 폭이 넓지 않다. 따라서 대신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천착하는 것은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부모의 자식사랑이다.

이것은 구미호와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증의 대결로 그려진다. 구미호(한은정)는 자신의 딸 연이(김유정)를 구하려고 하고, 인간 윤두수(장현성) 역시 자신의 딸인 초옥(서신애)을 구하기 위해 연이의 간을 빼 먹이려 한다. 모성애와 부성애의 대결. 그런데 여기에는 단지 대결구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윤두수와 구산댁(구미호) 사이에 멜로 라인으로 두 인물은 갈등하게 된다.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서는 연이를 죽여야 하지만, 윤두수는 또한 그 연이의 어미인 구산댁을 사랑하게 된다. 개인적인 사랑과 부성애 사이에서 윤두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이것은 구산댁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딸을 죽이려 하는 윤두수지만 "그 놈의 정 때문에" 또 구미호는 갈등하게 된다.

2010년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이처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간적인 갈등에 더 천착한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부모 자신들의 사랑이 부딪치는 이 작품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이 시대와 조우하는 면이 있다. 자신의 삶과 부모로서의 삶, 어쩌면 그 사이에서 구미호와 윤두수를 억압하는 건 자식이라는 어쩔 수 없는 천륜이다. 그래서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조금 밋밋해 보이긴 하지만 그 보편적인 자식사랑의 이야기에서 힘을 얻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단편이 아니라 시리즈물이란 점이다. 시리즈물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관점들(모성애, 부성애, 사랑, 애증, 자매애, 권력관계 같은)이 제공된다면 이 작품은 새로운 '구미호' 이야기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시청률이 30%를 넘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수목드라마들에 대한 애초 기대감으로 보면 의외의 결과다. '나쁜 남자'는 '선덕여왕'에서 비담으로 특유의 까칠한 아우라를 선보였던 김남길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고, '로드 넘버 원'은 전쟁이라는 다이내믹한 소재에 100% 사전제작드라마, 게다가 소지섭, 김하늘의 출연작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지금 현재 '나쁜 남자'와 '로드 넘버 원'은 한 자리 수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먼저 이들 드라마들이 가진 주요 타깃 시청층을 그 첫 번째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제빵왕 김탁구'는 7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로서 4,5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에게 익숙하다. 통속극으로서의 익숙한 소재들과 코드들이 전면에 배치되면서 시선을 끌었고, 막장에 가까운 자극적인 내용들은 그러나 빠른 전개를 통해 식상함을 넘어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통속극의 익숙함이 아니라 이 익숙함 위에 얹어놓은 김탁구의 성장드라마다. 전반부의 강한 통속적인 이야기로 기성세대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면 이제 성인이 된 '제빵왕 김탁구'는 성장드라마의 대결구도로 비교적 젊은 세대들의 시선까지 붙잡고 있다.

반면 세련된 영상미와 절제된 스토리로 한 파괴된 남자의 외로운 복수를 담아내고 있는 '나쁜 남자'는 안타깝게도 월드컵 방송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거의 한 달여 간의 결방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떨어뜨렸고, 그것은 복수극과 멜로가 적절히 섞여진 '나쁜 남자'로서는 가장 큰 악재라고 할 수 있다. 나쁜 남자라는 트렌디한 캐릭터를 내세운 점이나, 일드를 보는 것 같은 잘 짜여진 대본, 게다가 현대사회가 가진 속물근성을 끄집어내고 조롱하는 그 속 시원한 메시지까지 이 드라마는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작품도 월드컵 편성의 벽은 너무 높았다.

한편 '로드 넘버 원'은 기대감과 우려가 교차했던 작품. 이것은 한국전쟁이라는 소재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남아있는 반공세대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는 이 작품을 시작 전부터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드라마로서는 한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재라는 점에서 기대감도 만들었다. 하지만 제작진들 역시 이런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듯하다. 초반 2회분을 전쟁 자체보다는 멜로에 집중했고, 그러자 전쟁드라마의 기대감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감정선이 얹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빠르게 진행된 멜로의 속도도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3회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전투신과 중간 중간 삽입되는 인물들의 아픈 이야기들은 '로드 넘버 원'이 가진 진면목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강제징집을 하는 국군과 징집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짧게 인서트로 삽입되는 그 인물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이 작품이 가진 휴머니즘을 그대로 드러낸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속에서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잘 표현된 것. 하지만 전쟁이라는 소재 자체가 가진 한계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수목 드라마 세 작품이 가진 성향을 들여다보면 작금의 대중들은 절망적인 과거보다는 희망적인 미래를 보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절망적인 경험 때문에 현재까지 파괴된 삶을 살아가는 '나쁜 남자'도, 또 한국전쟁이라는 잊지 말아야할 우리네 트라우마보다도, 아무리 막장인 삶 속에서도 그걸 이겨내고 성장하려는 탁구(윤시윤)에 더 몰입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독주는 물론 작품 내적인 힘, 즉 통속극에 성장극을 엮은 그 힘이 가장 큰 이유이고, 월드컵이라는 변수와 전쟁 소재가 가진 민감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희망적인 메시지도 분명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극과 시대극 천하, 드라마는 과거를 추억 중

흔히 사극은 장르적인 관점에서 조선시대 이전을 역사적인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일컫는다. 그 후의 역사, 즉 구한말 이후의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시대를 다루는 드라마를 우리는 시대극이라 지칭한다. 물론 장르적으로는 약간씩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거에 있던 역사를 가져와 현재를 말한다는 점에서 사극이나 시대극은 궤를 같이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자세히 분석해보면 시대극들은 거의 사극의 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이언트’는 공간을 강남땅으로, 시간을 7,80년대로 잡고 있지만 그 땅 위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전투(?)와 치열한 복마전은 사극과 거의 유사하다. ‘제빵왕 김탁구’는 70년대의 향수를 근간으로 하지만, 버려졌다가 다시 거성식품이라는 왕국으로 귀환해 왕좌를 노리는 김탁구(윤시윤)의 성장담을 다룬다는 점에서 작금의 퓨전사극을 그대로 닮아있다. 한국전쟁을 겪은 지 60년이 지난 것을 기화로 제작된 ‘로드 넘버원’이나 ‘전우’도 마찬가지다. 이 치열한 전쟁의 풍경은 사극 속에서 익히 보아왔던 처절한 산악 전투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보면 현재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일주일 내내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이 사극의 구조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월화에는 실제로 ‘동이’가 그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자이언트’가 그 뒤를 좇고 있으며, 수목에는 ‘제빵왕 김탁구’가 앞서가고 ‘로드 넘버원’이 그 뒤를 좇는다. 주말 밤에는 새로 편성된 ‘전우’가 17%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존 동일 시간대의 드라마들보다 훨씬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어떤 요소가 이 과거를 추억하는 드라마들을 강력하게 만드는 걸까.

그 해답은 다시 사극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옛이야기가 갖는 힘이다. 옛이야기는 대중들에게 그 극적 상상력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과장을 허용한다. 따라서 좀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가능해진다. ‘자이언트’의 강모(이범수) 가족이 겪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구성되어 있어 우연의 요소들이 많지만, 그것은 시대극이라는 옛이야기의 틀로 들어가면서 시대의 대표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허용된다. 강모는 개발시대의 입지전적인 인물을, 성모(박상민)는 중정으로 표상되는 당대의 권력을, 미주(황정음)는 그 시대를 버텨내고 은막에 오른 스타를 대표한다.

‘제빵왕 김탁구’가 가진 자극적이고 막장적인 요소들은 그 시대가 가졌던 가부장제 하의 몰상식한 일들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인정된다. ‘로드 넘버원’이나 ‘전우’가 다루는 한국전쟁이라는 소재는 전쟁이 으레 그러하듯이 비윤리적인고 폭력적인 이야기들로 점철되며 때로는 생존 앞에 놓인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이해된다.

또한 과거를 추억하는 드라마들이 선전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옛이야기가 가지는 극성이 현대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점이다. 현대극에서 갈등이라고 하면 주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정도가 되지만, 이 옛이야기 속에서 갈등은 종종 그 대상의 죽음으로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 힘이 강하다. ‘동이’ 같은 사극은 물론이고 ‘자이언트’나 ‘제빵왕 김탁구’ 같은 시대극에서도 인물의 죽음은 현대극에 비해 현저하게 빈번하다. 물론 전쟁을 다루는 ‘로드 넘버원’이나 ‘전우’는 말할 것도 없다.

세 번째는 이들 과거를 다루는 드라마들 속에 내재한 성장드라마의 요소다. 이 성장 드라마는 사극의 기본 패턴으로 이제 자리하고 있는 것인데, 시대극이라고 해서 다른 것은 아니다. ‘자이언트’는 개발시대의 비극 속에서 강모의 가족이 생존해가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것은 또한 강모 가족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제빵왕 김탁구’는 불륜과 치정이 난무하는 막장의 시대를 살아내고 성장하는 김탁구의 성장드라마다. 물론 전쟁 드라마들을 성장드라마로 보기는 어렵지만, 분명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장은 거기에도 존재한다.

사극이 가지는 옛이야기의 힘, 강력한 극성, 성장 드라마적 요소는 작금의 시대극들이 왜 선전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어찌 보면 이것은 사극의 확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시대극은 특정한 시대나 인물을 찬양한다는 논란으로 시들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시대극이라면 늘 떠올리는 개발시대의 성공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이 현대인들의 마음에 쉬 닿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극은 현재의 사극들이 계속 추구해왔던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과거를 소재로 한 현재의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청자들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과거라는 시간대가 하나의 강력한 장애요소가 되고, 그걸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이 그 장애를 넘어서는 인물들에 천착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들 시대극은 그 과거의 시간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적인 간극 사이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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