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의 부성애가 보여주는 것

'인생은 아름다워'의 이른바 '꽈당 엔딩'은 드라마에 어떤 역할을 할까. 제작진이 밝힌 대로 이 특별한 엔딩은 일단 재미있다. 이번엔 누가 넘어질 것인가 은근히 기대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엔딩 장면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이른바 드라마들이 늘 엔딩에 보여주곤 하는 '낚시 장면'이 없다는 것이 신선하다. 즉 뭔가 벌어질 것처럼 해놓고 다음 회를 낚는 방식이 아니라, 드라마의 스토리 자체가 보여주는 매력으로 다음 회를 보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하지만 이 엔딩에는 이런 재미나 자신감 그 이상의 의미도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는 점이다. 인생은 이 엔딩처럼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일로 넘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 걷기 마련이라는 것. 혹은 그렇게 넘어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며 일으키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병태(김영철)네 가족의 상황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평생을 밖으로만 떠돌며 딴집 살림을 하다가 늘그막에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와 앉은 할아버지(최정훈), 어느 날 갑자기 커밍아웃을 해버린 맏아들 태섭(송창의)은 이 평탄하지 않은 가족에서 불거져 나온 몇 가지 사건에 불과하다. 그 밑을 들여다보면 재혼 가족으로서 겪었을 민재(김해숙)의 쉽지 않은 시집살림이 보이고,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병준(김상중)과 병걸(윤다훈)이 보인다. 이 밑바닥 상황을 보면 왜 민재의 딸인 지혜(우희진)가 그토록 완벽한 결혼을 꿈꾸는지(엄마의 이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왜 병준과 병걸이 쉽게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는지(이것도 아마 아버지의 평생 외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집안은 바람 잘 날 없이 늘 시끄럽다. 소소해 보이는 일들이(결코 소소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 터지고 거기에 대해 가족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낸다. 수다 떠는 남자로 밉상 역할을 톡톡히 하는 병걸은 이 가족들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에 시시콜콜 참견을 해댄다. 제 아무리 동성애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태섭을 마치 괴물 보듯 대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을 주도적으로 바꾸고 끌고 가는 인물은 민재다. 태섭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맨 앞에 나서 그를 적극적으로 안아준 인물도 민재다. 병준 역시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거침이 없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지혜는 그 엄마를 닮아서인지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스타일이고, 호섭(이상윤)이나 초롱(남규리)이도 신세대답게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한 가족들 속에서 유일하게 침묵하며 늘 빙그레 웃는 인물이 있다. 바로 병태다. 그는 자기주장을 하기보다는 가족들의 상황을 거의 받아들이는 편이다.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억지로 웃는 그의 얼굴은 그래서 이 가족이 실질적으로는 누구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묵묵히 바라봐주고 제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느껴지는 이 아버지의 부성애는 바람 잘 날 없는 이 가족의 크고 작은 일들을 소소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이 아버지의 자애로운 눈은 가족들을 바라보며 이런 얘기를 건네는 듯하다. 살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늘 옆에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래서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은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는 거라고. 울고 싶은 인생이라도 웃어야 웃을 수 있다고.

'제빵왕 김탁구'와 생활의 달인

"제가요. 5년 전쯤에 반죽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었거든요. 밀가루 반죽이 바로 제 담당이었는데요, 거기서 일하는 2년 내내 주구장창 반죽만 해대서 말입니다. 이제 반죽에 손만 대면 반죽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된 거죠." '제빵왕 김탁구'에서 김탁구가 팔봉선생(장항선) 앞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는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프로그램 하나. 바로 '생활의 달인'이다. 아버지에게 배웠던 우아한 빵 동작(?)으로 손가락 끝에 닿는 공기 중의 습기를 체크한다거나, 허공에 스프레이를 뿌리며, "실내가 건조해서요. 이러면 반죽이 금방 마르거든요."하는 김탁구에게서는 저 '생활의 달인'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달인들의 기가 느껴진다.

김탁구의 달인 포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밀가루 덩어리를 대충 떼어낸 후 "제가 잘라놓은 부위가 대충 500g 정도 되니까 100g씩 5등분을 해보겠습니다."하고 호언장담한다. 어찌 그 무게를 그리 정확히 아느냐는 팔봉선생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요. 또 한 일 년 넘게 일한 곳이 있었는데요. 거기서는 근수를 정확히 재는 게 생명이거든요. 자르고 재고 자르고 재고 그렇게 일 년 내내 자르고 재다 보니까 저울에 달지 않고도 대충 손으로도 무게를 알 수 있게 된 거죠."

'생활의 달인'에 등장했던 달인들이 그러하듯이 김탁구의 기예에 가까운 기술은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생활에서 비롯된다. 거의 손버릇처럼 만들고 또 만들고 하면서 이제는 척 만져보기만 해도 반죽의 습도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게 되고, 또 대충 잘라도 정확한 양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린 탁구에서 성인 탁구로 넘어오면서 지나가버린 12년의 세월이 단지 탁구가 엄마를 찾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속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빵과 관련된 일을. 딱 한 번 본 것뿐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그 빵 만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절망적인 시간을 이겨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제빵왕 김탁구'는 이제 2라운드를 시작하고 있다. 1라운드가 김탁구가 살아왔던 평탄치 못한 70년대 막가는 세월을 그려냈다면, 2라운드는 그 세월을 뚫고 성장해온 김탁구가 본격적으로 제빵왕이 되어가는 그 과정을 그린다. 재미있는 것은 김탁구와 구마준(주원)의 빵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대결이다. 구마준이 전 세계를 떠돌며 아버지가 좋아했던 빵들을 교육을 통해 배워왔다면, 김탁구는 그것을 생계와 생활을 통해 배웠다. 이 대결구도는 단순해보이지만 그것이 함의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물론 극적으로 변형되어 상당히 경쾌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거기에는 개발시대에 소외된 우리네 민초들의 삶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기술에 놀라다가 어느 순간 찡한 느낌을 받는 것은 그들을 달인으로 만든 그 시대의 고단함이 거기서 비춰지기 때문이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생활하다보니 달인이 된 그들에게서 우리는 성공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건강함을 발견한다. '제빵왕 김탁구'가 어떤 시대극으로서 당대를 살아온 분들에 대한 헌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김탁구라는 캐릭터 자체가 온몸으로 정직하게 그 시대를 뚫고 성장해온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그러니 어쩌면 한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생활의 달인'이 된 김탁구는, 당대를 건강하게 살아내면서 보잘 것 없는 교육과 위치에도 꿋꿋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성공한 분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표상으로서 김탁구라는 인물의 비범함은 단지 타고난 후각과 기술습득 능력이 아니다. 빵을 만들면서 맛을 경쟁하기보다는 그 빵을 먹을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그를 비범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개발시대를 온몸으로 넘어선 이 땅의 모든 생활의 달인들이 비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제빵왕 김탁구'는 지금 그 시대와의 한판 유쾌한 대결을 벌이는 중이다.

드라마 속 가족애, 집착인가, 보편적 정서인가

"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너희들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 맘이나 니들 맘이나 다 같을 테니까. 근데 저 산을 넘어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너희들도 알잖아. 여기서 목숨이나 부지하면서 벌벌 떨고 있어야 보고 싶은 가족,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난다는 거. 난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그래서 가는 거다." '로드 넘버 원'에서 이장우(소지섭)가 고지 점령을 위한 자원 특공대를 조직하는 이유는 적을 섬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 곳으로 돌아가야 보고 싶은 가족,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60년 전 한국전쟁이라는 소재가 2010년 시청자를 만나는 지점이다. 거기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가족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드라마의 귀결이 가족애(인간애)라는 점은 분명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반전의 또 다른 표현이니까. 하지만 우리네 드라마들의 가족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하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7,80년대의 강남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와 복수를 다루고 있는 '자이언트'도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가족애다. 조필연(정보석)에 의해 뿔뿔이 흩어진 강모(이범수)의 가족들이 성장해서도 서로를 찾기 위해 애를 태우는 장면은 이 시대극 속에 담겨진 복마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암투와 성공에 대한 욕망에 어떤 근거를 세워준다. 여동생 미주(황정음)를 만난 강모는 자신이 성공하려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난 서울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지을 거다. 그리고 그 꼭대기층에서 우리 가족이 다 모여서 살게 할 거다." 어찌 보면 비뚤어진 욕망일 수도 있는 과도한 성공에 대한 집착은 이 '가족'이라는 목적 앞에서 눈 녹듯 녹아버린다.

'제빵왕 김탁구'는 김탁구(윤시윤)라는 제빵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의 성공스토리를 그리고 있지만, 역시 여기서도 발견되는 것은 끈끈한 가족애다. 김탁구가 꿋꿋이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다.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은, 그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했던 그 어떤 행동도 정당화시킨다. 70년대의 폭력적인 분위기가 드라마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 속에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김탁구의 절절한 사랑을 집어넣는 것으로 보편적인 정서로 회귀시킨다.

가족애에 대한 집착은 심지어 '구미호 여우누이뎐' 같은 공포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 작품에서 구미호(한은정)는 자신의 딸 연이(김유정)를 구하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강력한 모성애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한편 연이를 노리는 윤두수(장현성)의 비정함 역시 죽을 운명에 빠진 자신의 딸 초옥(서신애)을 구하기 위한 부성애로 그려진다. 즉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서로 자신들의 딸을 구해내기 위한 모성애와 부성애의 대결이 핵심이다.

우리 드라마에 있어서 가족의 힘은 이처럼 막강하다. 전쟁 드라마 속에서도 가족은 피어나 어떤 공감을 전해주고, 비뚤어진 욕망의 질주 속에서도,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심지어 공포물에서도 가족애는 보는 이를 보편적인 정서 속에 안정시킨다. 무엇보다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강력한 힘으로서 '가족'은 시간의 장벽을 훌쩍 넘게 해준다. 물론 가족애는 자칫 욕망을 정당화시키는 핏줄의식으로 변질될 위험성도 있다. 하지만 이 보편적인 정서가 우리는 물론이고 해외에까지 어떤 감흥을 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가족애가 가진 이 거대한 힘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느냐는 여전히 남은 숙제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 출신(?) 배우들의 정극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먼저 윤시윤은 '지붕킥'에서의 순수한 준혁 학생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제빵왕 김탁구'에서 탁구 역할로 한층 강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부평초처럼 세상을 떠돌던 김탁구가 유일한 단서인 바람개비 문신의 사나이 진구(박성웅)를 만나 오열하는 장면은 보는 이를 뭉클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윤시윤의 연기는 아직까지는 섬세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악에 받친 모습으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연기만으로는 김탁구라는 캐릭터가 지나치게 단순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열정만큼은 높게 사야할 것 같다. 무엇보다 시트콤에서의 가벼움을 벗어던지고 살아 움직이는 정극에서의 눈빛을 가진 것은 가장 큰 성과다. 조금 더 발산하는 연기에서 안으로 응축하는 연기를 덧붙인다면 앞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배우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붕킥'에서의 코믹한 이미지에서 가장 완벽하게 변신을 보인 연기자는 정보석이다. '자이언트'에서 군부 출신으로 정계를 노리는 조필연으로 등장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의 모습을 연기하는 정보석은 그가 정말 그 '지붕킥'에서의 찌질남이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목적을 위해서는 자식까지 정략결혼을 시킬 정도로 냉혹한 조필연이라는 캐릭터를 정보석은 100% 이상 잘 표현해내고 있다.

한편 '자이언트'로 정극 연기에 도전한 황정음은 아직까지 시트콤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대사를 할 때 자꾸만 '지붕킥'에서의 황대장이 떠오르는 것은 그 시트콤에서의 이미지가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차츰 황정음도 정극 연기에 적응을 해내가는 중이다. 특히 31빌딩 앞에서 오빠 강모(이범수)와의 재회신은 황정음의 정극 연기도전의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으로 기억될 듯 하다.

'지붕킥'에서 광수라는 이름을 알린 이광수는 현재 '동이'에서 확고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동이'에서 그의 역할은 감초.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시트콤에서 보여준 것 같은 과장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동이'에서 보여주는 과장연기는 '지붕킥'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장악원 악공 역할을 연기하는 이광수는 이희도와 콤비를 이루면서 '앉으나 서나 동이 생각'하는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대장금'의 임현식에서부터 '선덕여왕'의 이문식 같은 일련의 감초 연기의 대가들 속으로 이광수는 자신만의 궤적을 남길 전망이다.

'지붕킥' 출신 배우들의 정극에서 연기변신은 물론 그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성공적인 편이다. 이것은 배우들이 가진 역량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시트콤이나 정극이나 연기에 있어서는 그다지 경중의 차이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흔히들 시트콤 하면 어딘지 낮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지만, 지금 그 틀 밖으로 나와 보란 듯이 정극에서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은 그 시선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이순재씨의 말대로 시트콤이나 정극이나 연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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