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런닝 구'

길면 되고 짧으면 안되는 것. 바로 드라마다. 심지어 50회를 훌쩍 넘기는 장편 드라마들은 50%의 시청률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단 한 편으로 끝나는 단편 드라마의 경우, 5%에서 10% 사이의 시청률을 향해 달린다. 장편 드라마가 풀코스 마라톤이라면 단편 드라마는 단거리 혹은 중장거리 달리기에 해당한다. '런닝 구'는 4부작이다. 그러니 이 사이에 낀 하프 마라톤 코스 정도는 될까?

한편에선 같은 집에서 내놓고 불륜을 저지르고, 욕망을 위해 폭력이 자행되는 지독스런 막장이, 다른 한편에선 전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월드컵이 서 있는 스타트 라인 위에 선 지독해도 착한 드라마 '런닝 구'는 극중 주인공인 구대구(백성현)를 빼닮았다. 이 드라마는 다음에 이어질 MBC의 야심작 '로드 넘버 원'의 페이스메이커다. 그래서 애초부터 불가능한 경쟁 위에 서게 되었다.

'런닝 구'는 구대구처럼 마라톤 풀코스를 달릴 필요는 없다. 그저 30킬로까지 질주하고는 그 힘을 다음 작품에 넘겨주면 된다. '로드 넘버 원'은 그 힘을 받아서 골인점의 승리를 따낼 것이다. "너는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을 둥 살 둥 뛰어주면 그 기운 받아서 지만이는 달려 나가 메달 따고 너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있는 거잖아." 극중에서 행주(박민영)의 이 대사는 런닝 구' 같은 이 땅의 단편 혹은 중편 드라마들의 운명을 말하는 것만 같다.

KBS는 공영방송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단막극의 부활을 주창하며 'KBS 드라마스페셜'을 신설했다. 몇 편이 방영됐지만 각 작품마다 완성도의 차이도 있고 대중성에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건 10%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기도 했지만 보통은 5%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단막극이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청률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짧게 달리는 드라마에서 시청률을 기대하는 것은 좀체 어렵다.

그래서인지 '단막극의 부활'이라는 이 슬로건은 공영방송의 명분 정도에 그치는 느낌이다. 단막극의 부활이 기성보다는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무색하게, '드라마 스페셜'은 기성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재기발랄하고 실험적인 스토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단막극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거리 경기를 마라톤 중계 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면 '런닝 구'라는 중편드라마는 장편들만 살아남는 세상에서 중요한 가능성을 몇 가지 보여주었다. 왜 단막극의 부활이라고 하면 늘 1회로 끝나는 단편만을 생각하는 것일까. 1회는 이미 길어진 호흡에 적응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가 끝까지 달리기에는 너무나 짧아져버렸다. 이미 드라마의 스토리텔링이 점점 장편화하는 추세라면, 그 취지를 살리면서 대중성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왜 2부작이나 4부작 드라마들의 설 자리를 적극적으로 마련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4부작이라고 하더라도, '런닝 구'가 가진 성취는 50부작 이상의 막장드라마들이 거둔 것보다 훨씬 크다. 그저 그런 자극적인 설정 몇 개면 늘 승리해온 장편드라마들의 패배를 모르는 허세보다, 이 작지만 죽을 힘을 다하는 드라마의 선전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끝까지 달리고 싶다"고 말하는 구대구의 진술이 이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드라마들의 항변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막장의 시대를 그린 '김탁구'와 '자이언트', 막장이 아닌 이유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 가난과 비뚤어진 욕망들이 꿈틀대던 막장의 시대는 오히려 극적인 상황을 요하는 드라마로서는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거기에는 빵 한 조각을 놓고 가족을 생각하는 눈물겨운 가족애가 있고, 살기 위해 길바닥에서 뭐든 해야 했던 그 처절함이 있다.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자본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벌어지는 여전한 신분의 차이가 주는 강력한 계급의식이 있다. '자이언트'와 '제빵왕 김탁구'는 그 막장의 시대를 추억하는 드라마다.

막장의 시대를 추억한다고 해서 드라마가 막장인 것은 아니다. '제빵왕 김탁구'는 초반 '하녀' 컨셉트의 치정극처럼 시작했다. 거성가의 회장인 구일중(전광렬)이 보모이자 간호사인 김미순(전미선)과 하룻밤의 인연으로 김탁구(윤시윤)를 낳고, 반발하듯 구일중의 아내인 서인숙(전인화)이 비서실장인 한승재(정성모)와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 마준(주원)을 구일중의 아이처럼 숨기며 키운다. 거기에 한승재가 마준을 거성가의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김탁구와 김미순을 제거하려 한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파에 치정극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런 막장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는 것은 그 속도감 때문이다. 이런 신파적인 요소나 치정극적인 요소들을 이 드라마는 하나의 자극적인 요소로 끄집어냈다가 재빠르게 정리해버린다. 김탁구가 구일중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겼다면 출생의 비밀 코드로 넘어갈 텐데, 이 드라마는 일찍부터 이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자 이야기는 김탁구와 마준을 전면에 세운 대결구도의 드라마로 흘러간다. 선악구도는 아니지만,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대결구도 속에서 행복을 묻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실로 건전하다. 막장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제빵왕 김탁구'가 막장의 시대의 이야기를 가족사적인 틀에서 풀어냈다면, '자이언트'는 좀 더 시대적인 틀에서 이 시대를 다루고 있다. 7,80년대라면 으레 떠오르게 마련인 그 군사정권 시절의 무법천지는, 이 드라마를 시대의 모험극으로 만들어낸다. 뭐 하나 상식적이지 않은 막장의 시대 위에서 가족애와 인간애를 품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 드라마는 묻는다. 성공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조필연(정보석)이 당대 군부시절의 사생아를 대변한다면, 맨 주먹으로 성공의 길을 열어내는 황태섭(이덕화)은 당대 사업가의 비뚤어진 초상을 대변한다.

그 시대 속에서 이강모(여진구)의 가족은 풍지박산이 난다. 가난하지만 단란했던 가족의 붕괴.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고 형과 동생들을 모두 잃어버린 이 불행한 강모의 가족사는 이 막장의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을 표상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 뿔뿔이 흩어놓은 가족이 다시 시대의 아픔을 넘어서 가족으로 뭉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형태는 시대극이고 그 속에 강력한 가족극이 숨겨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자이언트'는 시대극이면서도 지극히 사극이 갖는 극적 재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를 그저 국책성 드라마라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주인공만이 아닌 모든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을 극적으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대결구도의 양상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강모의 성장담에 집중하는 만큼, 그 적이라 할 수 있는 조필연의 성장담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제빵왕 김탁구'나 '자이언트'가 모두 '눈물 젖은 빵'의 시대를 그려내는 것은 아마도 그 막장의 시대가 가진 극적인 요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수하게 되는 그 시대의 공기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로 들어가면 상황은 막장이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정의롭게 살아남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의 행복을 말해주는가 이 드라마들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다. 막장의 시대를 다루는 '제빵왕 김탁구'와 '자이언트'가 막장의 늪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쁜 남자'의 김남길, '동이'의 한효주

사극과 현대극의 연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극을 연기하던 배우가 사극 속으로 들어갔을 때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반대로 사극 속에서 강력한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낸 배우가 현대극으로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부담감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런 변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찬란한 유산'에서 사극 '동이'로 간 한효주와 '선덕여왕'에서 '나쁜 남자'로 온 김남길이 그렇다. 어떻게 그들은 현대극과 사극을 그처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었던 것일까.

먼저 캐릭터를 들여다봐야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의 비밀병기로 등장한 비담이란 캐릭터는 사극 속이지만 지극히 현대적인 캐릭터다. 그는 '선덕여왕' 속 캐릭터들이 하는 것처럼 옛 어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캐릭터는 '선덕여왕'이라는 신라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툭 떨어진 현대인처럼 보인다. 이 지극히 현대적인 일상어투를 사용하는 비담은 심지어 공주(장차 여왕이 될) 앞에서도 반말을 한다.

그저 한없이 착하기보다는 욕망에 충실하며 때로는 지독히도 상대방을 아프게도 만드는 이 캐릭터가 갑자기 이 사극이라는 공간 속에 들어왔을 때 대중들이 열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극이라면 갖게 되는 그 형식적인 무게를 가볍게 깨버리는 그 파격, 그리고 그 파격 속에 자리한 현대적인 쿨한 감성이 버무려지는 순간, 그는 단번에 이 사극 속 모든 인물들과 대비되는 강력한 존재감의 캐릭터가 된다. '선덕여왕'의 후반부로 가면서 비담이라는 캐릭터가 조금씩 존재감을 상실한 것은 그가 악역으로 변신해서가 아니라, 차츰 사극 속의 인물로 변해가며 그 차별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연기자 김남길은 비담이라는 캐릭터 그 자체의 아우라를 그대로 갖게 되었다. 그의 연기자로서의 이미지가 비담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은 그만큼 이 캐릭터가 그에게 부여한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나쁜 남자'. 심건욱은 비담이란 캐릭터의 현대적인 버전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나쁜 남자'라는 드라마는 저 비담이란 캐릭터의 아우라를 이미지로 보유한 김남길을 위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시니컬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속을 시원하게 하는 독한 어투나, 독해보이면서도 슬픈 눈은 이 드라마의 주제와도 그대로 닿아있을 정도다. '나쁜 남자'는 속물로 가득한 세상에 슬픈 눈으로 침을 뱉는 남자의 이야기다. 혹자들은 같은 캐릭터의 반복으로 김남길의 이미지 소비를 빠르게 하는 드라마라고 걱정을 했지만, 실제는 상황이 다르다. 김남길은 사극 밖으로 빠져나와, 현대극 속에서도 비담이 가졌던 그 아우라의 영역을 오히려 공고하게 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전술한 대로 비담이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캐릭터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찬란한 유산'의 은성이란 캐릭터는 현대극이지만 지극히 고전적인 캐릭터다. 착하고 맑고 씩씩하며 때론 지독한 상황에 빠져도 좌절하지 않는 전형적인 캐릭터. '찬란한 유산'에서 그녀가 돋보인 것은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심지어 악마적으로 보이는 현대적 욕망의 화신들과 그녀가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욕망의 시대에 살아남은 지극히 선한 천연기념물처럼 반짝인다.

그런 그녀가 사극 속의 주인공 동이로 분하는 것에서, 어떤 변신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담이란 현대적인 이미지가 현대극으로 와서 심건욱이란 캐릭터로 자연스러운 것처럼, 은성이란 고전적인 이미지는 사극 속 동이라는 캐릭터로 와서도 자연스럽다. 그녀는 여전히 밝고 맑고 그러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는 선한 캐릭터다. 게다가 '동이'라는 사극은 그 인물들의 대사가 이중적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고어가 사용되지만 일상적인 자리에서는 현대어가 나온다. 이것은 깨방정 숙종(지진희)만이 아니라 동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극에서 온 남자, 사극으로 간 여자. 둘 다 새로운 캐릭터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작이 가진 캐릭터를 보다 공고히 하고 확장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보통 똑같은 캐릭터가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 때 흔히 그 어색함이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 두 사람의 경우 그 이질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물론 사극과 현대극의 경계가 그만큼 얇아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들 배우들이 갖는 아우라가(옴므파탈의 절정을 보여주는 김남길과 인상녀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밝은 한효주) 꽤 크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동이'만의 차별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시청률 23%. 그 전후에서 '동이'는 멈춰서 있다. 사극으로 보면 높은 시청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낮은 시청률도 아니다. 그저 틀어놓고 시청하면 꽤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기대를 조금 갖고 보게 되면 조금 시시한 느낌도 든다. 주인공 동이(한효주)가 인현왕후(박하선)와 장희빈(이소연) 사이에서 사지로 내몰리며 그 누구도 풀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을 마치 '별순검'의 한 장면처럼(물론 아주 소프트하게) 풀어내는 과정은 꽤 긴박감이 넘친다.

그런데 하나의 미션이 끝나고 나면 어딘지 허전하다. 미션과 미션 해결 그리고 국면전환은 꽤 매끄럽게 진행되지만 뒤통수를 치는 기발함 같은 것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23%에 멈춰서 있는 '동이'의 시청률은 이해가 된다. '동이'는 지금 미션 사극의 전형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과거라면 이 전형은 꽤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금의 시청자들은 사극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지만 '동이'가 그걸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왜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까.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사극으로 만들어졌다. 장희빈의 그 독한 눈빛과 그런 독한 장희빈에 의해 당하는 인현왕후. 그리고 결국 밝혀지는 진실. 사약을 받고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모습,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려 사약을 들이붓는 장면은 이제 장희빈이라는 콘텐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만큼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결구도는 사극의 소재로서 강하다. '동이'가 새로운 사극이 되려면 그 이상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동이'는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벌이는 왕실암투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미 미션이라는 틀이나, 여성의 성장, 그리고 추리 형식은 이른바 퓨전 사극의 기본기가 되고 있는 상황, 따라서 동이가 매번 미션을 부여받고 그 미션을 해결함으로서 조금씩 성장하며 감찰궁녀로서 사건을 추리하는 모습은 그다지 차별점이 되지 못한다. '대장금'이 특별했던 것은 여성 성장 미션 사극의 출발점이고 추리적인 요소를 가미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기본기를 요리와 의술로 엮어냈다는 점이다. 어떤 요리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 의학지식 등을 통해 해결되는 과정은 '대장금'만의 차별점을 만들었다.

'이산'에서는 정조의 궁에서 살아남기라는 독특한 시선이 존재했고, 무엇보다 도화서의 이야기가 이 사극의 기본기와 잘 엮어져 차별점을 만들었다. '동이'에도 초반부에는 이런 차별점이 있었다. 이른바 '음변(音變)사건'이 그것이다. 사건을 음으로 엮었고 그 음이 왜 변했는가를 찾아가는 동이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동이'만의 차별성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 동이가 감찰궁녀가 된 후로 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버렸다. 주식(이희도)과 영달(이광수)은 바로 이 장악원이라는 이 사극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지금은 장악원과는 상관없이 그저 '자나 깨나 동이 걱정'하고 사극의 상황을 쉽게 설명해주는 코믹한 연사 역할에 머물러 있다.

사극의 미션 속에 들어있기 마련인 추리적인 요소는 드라마라는 특성상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어려워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중간에 보게 되는 시청자나 집중해서 보지 않는 시청자들은 소외될 수 있다. 따라서 사극의 추리는 그 복잡함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특별한 시각이나 소재에서 찾아야 한다. '대장금'의 추리에 음식이 있었고, '이산'에는 그림이 있었다면, '동이'는 음악이 그 추리 요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초반부 음변사건 이후로 '동이'만의 새로운 추리 요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확실한 차별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동이'는 블랙홀 같은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로 회귀하는 느낌을 준다. 동이만의 매력이나 특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이'만이 차별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것은 깨방정 숙종(지진희)과 동이의 로맨스다. 분명 사극은 멜로만의 힘으로는 움직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깨방정 숙종과 동이의 로맨스는 권위의 해체라는 점에서 멜로의 틀 이상의 현재적 의미를 확보한다. 하지만 '동이'가 현재적 의미에 천착하는 사극이라는 특징을 확보하려면 다른 에피소드들도 좀 더 현재성을 강조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감찰부의 에피소드들은 정의가 과연 무엇인가를 좀 더 깊게 다뤘다면 꽤 현재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서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면 오히려 현재에서 그것을 찾는 방법도 방법일 수 있다.

이 '사극의 현재성'이라는 문제는 동이라는 캐릭터에서도 그다지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현재 동이는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풍산'이라는 캐릭터를 얻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그저 착한 캐릭터다. 물론 착한 캐릭터는 대중들에게 '우리 편'이라는 의식을 만들지만 그것이 현재의 시청자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캐릭터인지는 의문이다.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이요원) 그 이상으로 주목받은 캐릭터가 미실(고현정)이었고, 이 미실이 욕망에 충실한 현대적 캐릭터라는 점은 '동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좀더 앞으로 쭉쭉 뻗지 못하는 '동이'의 지지부진은 아직까지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결구도 그 이상을 뛰어넘는 차별성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의 기획의도에 들어있던 음악이라는 요소를 극의 추리적인 요소에 녹여내고,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좀더 현재적인 관점을 담아내며, 동이라는 캐릭터의 성장 속에 단지 착하기만 한 캐릭터가 어떤 목적의식이나 욕망을 갖게 된다면 '동이'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전개양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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