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유재석과 홍현희가 기꺼이 깔아준 개그맨들의 시간

 

"제가... 그러니까.. 그렇습니다. 원래 울려고 한 게 아니라 그랬어요 항상 왜 나는 같이 못 있을까? 저 자리에.. 한두 명씩 올라가는데 왜 나는 없을까 했는데 <놀면 뭐하니?>에서 전화 왔을 때 저는 사실 거짓말인 줄 알고 작가님한테도 맞냐고 했었거든요. 근데 오랜만에 이렇게 나와서 막 춤도 추고 현희 언니도 만나고 이렇게 같이 하니까 갑자기 울컥하네요."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개그우먼 김승혜가 마지막으로 방송을 한 소감을 전하는 목소리는 울컥하는 마음에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2006년 <MBC 팔도모창대회> 대상을 타고 2007년 SBS 9기 공채 코미디언으로 개그우먼의 길을 걸었으며, 2014년에는 KBS 29기 공채 코미디언으로도 활동했던 김승혜였다. 그는 KBS <연예가중계>에서 리포터로도 활동했고 현재 그 후신인 <연중라이브>에도 출연하고 있다. 

 

김승혜의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건 그의 소감 속에도 담겨 있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개그우먼의 길을 걸어왔고 현재도 주어진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한 것에 비해 조명 받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게다가 결국 개그프로그램조차 사라짐으로써 그가 늘 서왔던 그 무대마저 사라진 현실이 아닌가. 

이날 예능투자자 카놀라 유(유재석)에게 예능 뉴페이스로서 다섯 명의 개그맨들을 소개한 자칭 '코미디 엔터계 대모' 나대자(홍현희)는 특히 김승혜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김승혜와 SBS 9기 공채 동기로 함께 코너를 짜고 무대에 서며 개그우먼의 길을 시작했었으니 말이다. 홍현희는 "제가 이 친구한테 개그를 배웠어요"라며 애써 김승혜를 추켜세웠다. 

 

이날 소개된 예능 뉴페이스는 김승혜, 신규진, 하준수, 이은지, 김해준으로 카놀라 유와 나대자는 이들을 한 명씩 소개해주고, 그들의 개성과 끼를 뽐낼 시간을 제공해줬다. 김승혜는 조세호와의 썸에 얽힌 비화를 들려주었고, 신규진은 <전국노래자랑>에서 술 취한 어르신이 아이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준수는 웃기지만 어딘지 기분 나쁜 캐리커처로 모두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고 이은지는 댄스 스포츠 선수 출신답게 이국주와 홍현희의 댄스 모사로 웃음을 줬다. 이미 유튜브에서 유명한 김해준은 '최준' 캐릭터의 느끼함 속에 모두를 빠뜨렸고. 

 

결국 이 자리는 유재석이 지난해 <연예대상>에서 대상 수상 소감에 언급했던 '개그맨들의 설 자리'를 작게나마 예고편처럼 마련한 시간이었다. 물론 개그 프로그램처럼 준비된 무대와 관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어색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카놀라 유와 나대자가 아낌없이 칭찬하고 리액션 해주는 모습은 그런 어색함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나대자가 스스로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심지어 "나를 이용해"라고 말하며 출연한 후배들을 위해 이름대로 '나서는' 모습은 그 헌신적인 느낌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하준수는 이날의 느낌을 채찍과 당근에 비유해 "지금까지 채찍만 너무 맞았다면 오늘은 너무 당근을 맛있게 먹은 느낌"이라 했고, 홍현희는 그 말을 살짝 틀어 "끝나고 채찍 또 맞을 줄 알아"라고 해서 빵빵 터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카놀라 유는 "달리는 말에 너무 채찍질 하면 말도 너무 아프다"고 했다. 그 말 속에 그날 후배들을 위한 그의 위로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이은지는 후배 개그맨들에 대한 마음을 빼놓지 않았다. "사실 저희 말고도 정말 정말 재능 많고 정말 정말 잘하는 우리 후배들 신인들이 많거든요. 유재석 선배님께서 시상식에서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훗날에는 정말 그런 프로그램을 함께 할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고요. 오래오래 시청자분들게 얼굴 비쳤으면 좋겠습니다."

 

카놀라 유는 "우리가 하려는 프로젝트도 그렇고 여러분들은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말로 이 시간을 마무리했다. <놀면 뭐하니?>가 새해를 맞아 카놀라 유라는 부캐를 통한 첫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2021판 동거동락'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어떤 뉴페이스들이 어떤 방식으로 모여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줄까.(사진:MBC)

'윤스테이', 최우식이 끌어주고 정유미가 밀어주니

 

너무 손발이 척척 맞아서인지, 여유마저 느껴진다. tvN 예능 <윤스테이>는 첫날과 이튿날의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처음 '윤스테이'에 도착해 주방에 적응하고, 한꺼번에 여러 손님들의 저녁상을 코스로 준비해 내놓는 과정은 멘붕 그 자체였지만, 이튿날 한 팀이 사정으로 취소된 가운데 5명의 외국인들을 위해 서빙하는 저녁시간은 여유를 넘어 '한가함'까지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윤스테이> 이튿날의 영상에는 자주 전날 멘붕 상황에 빠졌던 직원들(?)의 모습과 비교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했다. 또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닌 일들조차 마치 무언가 큰 사건이 벌어진 것 같은 '낚시성 편집'도 살짝 들어갔다. 저녁시간이 지났는데도 식사를 하러 내려오지 않는 신부님들 때문에 걱정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긴장감 있게 편집된 것. 전화를 해도 안 받아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었던 신부님들은 옆방에 있었고 결국 최우식의 통화로 이 긴장감 있던 상황은 금세 해소됐다.

 

영국손님이 다음 날 숙소에서 물이 나오지 않아 전화를 했을 때 윤여정이 "너무 죄송하다"며 연거푸 사과하는 장면 역시 예고편에 슬쩍 등장해 이 여유롭던 '윤스테이'에 무언가 벌어진 것 같은 긴장감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실제로는 그리 큰 문제로 이어지진 않았다. 급수기계의 오작동이 문제였고 그걸 해결하자 다시 물이 나오게 됐던 것. 그 미안함 때문에 '윤스테이'에서는 숙박비를 본래 받던 금액보다 적게 받으며 재차 사과했고, 영국손님은 쿨하게 사과할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사실 '사건'이랄 게 별로 없었다. 그건 '윤스테이'의 사장 윤여정부터, 이서진, 정유미, 박서준 그리고 최우식까지 모두가 단 이틀만에 그 상황에 완벽 적응했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넓은 공간과 한옥 특유의 구조는 손님들을 응대하는 데 있어 쉽지만은 않은 것이었고, 한 끼 식사에 궁중요리를 선보일 정도로 음식을 내놓는 일이나, 숙박이라는 새로운 미션을 수행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그 역할을 찾아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해나갔고 손발이 맞아 떨어지면서 여유까지 찾게 된 것이었다. 그 속에서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은 최우식과 정유미다. 사실 나영석 사단이 지난해 여름에 맞춰 기획해 방영된 <여름방학>에서 이들은 오누이 케미로 등장해 너무나 여유 있는 시간들을 초대한 손님들과 보내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바 있다. 물론 그 때는 베짱이 같은 게으름이 이들의 '한 달 살기'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윤스테이>에서 최우식과 정유미는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실제로 그 일을 즐기는 듯한 밝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프로그램만의 '기분 좋은 정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터미널에 도착한 손님들을 픽업하는 건 물론이고 숙소를 안내하고 음식을 서빙하면서 손님들과 살갑게 소통하며 마치 친구처럼 느끼게 해주는 최우식은, 이서진이 "쟤는 타고났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윤스테이>의 에너자이저 같은 인물로 자리했다.

 

그리고 정유미는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랄 수 있는 음식 대접을 위해 주방을 딱 책임지는 메인 셰프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방영 분량 속에 말보다는 요리하는 모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손님들이 떠난 후 잠시 갖는 브레이크 타임에서도 먼저 조리복부터 말끔하게 다려놓는 그 마음가짐까지 그는 요리에 진심을 담고 있다.

 

둘째 날 이서진이 꼬리곰탕을 만들기 위해 가마솥 장작을 계속 들여다보는 모습에 박서준이 이서진을 '곰탕에는 진심인 남자'라고 말한 것처럼, 최우식과 정유미에게서도 손님응대와 음식에서 저마다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들이 끌어주고 밀어주니 <윤스테이>는 심지어 여유가 느껴진 정도로 편안하게 흘러간다. 너무 여유 있어 제작진이 애써 긴장감을 만들기 위한 편집을 넣을 정도로.(사진:tvN)

TV조선의 좀 더 센 관찰카메라, 트로트 오디션, 막장드라마의 파괴력

 

솔직히 말해 TV조선이 이렇게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보여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워낙 보수언론의 색깔이 강하고, 채널 또한 그런 정치적 색깔들에 편향된 방송들을 계속 쏟아냈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사라기보다는 또 다른 보수 언론 채널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TV조선 채널을 선택하는 건 마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일처럼 보여 꺼려지는 면이 있었다.

 

지금도 완전히 그 느낌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콘텐츠들이 눈에 띈다.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인구에 회자되는 프로그램들도 점점 늘어났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건, 일주일간의 시청률 표를 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월요일에 방영되는 <우리 이혼했어요>가 7%대(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화요일에 방영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은 8%대 시청률이다. 수요일은 <뽕숭아학당>이 12%대 시청률을, 목요일에는 <미스트롯2>가 무려 26%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주말에는 주로 주중 프로그램의 재방송이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최근 시작한 막장의 대모로 불리는 임성한 작가의 복귀작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이 TV조선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인 7%대를 넘어서며 이 시간대마저 채워놓고 있다. 이 정도면 종편 채널에서 초반부터 지금까지 완성도 높은 예능, 드라마 같은 콘텐츠로 도드라진 행보를 보였던 JTBC를 충분히 위협하는 수준이다. 어떻게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가 가능했을까.

 

그 중심에는 SBS에서 이적한 후 강력한 마라맛으로 TV조선의 콘텐츠들을 세워놓은 서혜진 제작본부장이 서 있다. 2018년에 TV조선으로 옮긴 그는 그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독한 관찰카메라'로 <아내의 맛>을 선보이며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논란과 비판이 쏟아졌지만, 워낙 센 소재와 연출을 해왔던 그는 여기서 <연애의 맛> 같은 프로그램을 파생시키며 TV조선에도 보수 정치 콘텐츠만이 아닌 예능 같은 콘텐츠가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그리고 <내일은 미스트롯>으로 홈런을 때리고 난 후, <미스터트롯>까지 연결해 트로트 오디션을 하나의 트렌드로까지 만들었다. <미스터트롯>이 탄생시킨 톱7(후에는 김호중이 빠진 톱6가 됐지만)을 출연시킨 <뽕숭아학당>이 자리를 잡았고, 트로트 오디션은 다시 <미스트롯> 시즌2로 이어지면서 그 힘을 이어갔다. 여기에 임성한 작가의 복귀작이라는 드라마의 승부수까지 던졌다. 예능에 이어 드라마까지 일주일의 라인업이 생겨난 것.

 

이게 가능해진 건 서혜진 본부장이 본래 갖고 있던 '독한 성향'이 TV조선이라는 플랫폼과 맞아떨어진 면이 있어서다. 사실 SBS에서도 <스타킹>이나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같은 프로그램들을 했지만, 늘 독한 선택과 연출은 SBS라는 플랫폼과 마찰을 일으키곤 했다. 시청자들의 논란이 자주 벌어졌고, 그 때마다 방송사는 화제가 오르긴 했지만 불편한 입장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TV조선은 다르다. 종편 채널이라는 지상파에서 한 발 벗어난 지점에 놓여 있는데다, 중장년 보수층을 주요 시청층으로 갖고 있다는 사실은 서혜진 본부장의 '마라맛' 콘텐츠들이 통하게 된 이유가 됐다. 자극이나 논란은 TV조선으로서는 불편함이 아니라 화제성의 불꽃이 됐고, 대중들의 질타와 비판에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서혜진 본부장의 스타일은 TV조선의 색깔과도 잘 어울렸다.

 

그가 기획해서 꺼내놓은 프로그램들의 면면을 보면, 보통 지상파 같은 채널에서라면 "이걸 해도 될까" 싶은 그런 소재나 연출을 저들이 고민할 때 그는 일단 시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고민의 차이는 플랫폼이 가진 특성이 작용한 결과다. 즉 어떤 콘텐츠가 지상파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라도, 이제는 다른 플랫폼에서는 오히려 환영받는 '다채널' 시대에 우리는 들어와 있다. 그래서 서혜진표 마라맛 콘텐츠들은 지상파나 케이블의 관점에서 보면 '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지만, TV조선 같은 보수성이 짙은데다, 어떠한 논란에도 흔들리지 않는 채널에서는 오히려 힘을 발휘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서혜진표 콘텐츠들이 가진 보수성이나 자극성은 여전히 비판의 소지가 높고, 어떤 것들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 같은 문제를 내포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TV조선이라는 채널에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이제 지상파만이 아니라 케이블은 물론이고 종편 게다가 OTT를 통해 해외의 콘텐츠들까지 안방으로 들어온 '다채널 시대'에 콘텐츠는 콘텐츠 자체만이 아닌 플랫폼과의 궁합에 그 성패가 갈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두가 동일한 콘텐츠의 목표를 세울 것이 아니라, 다채널 시대의 다양성에 맞게 콘텐츠 전략을 세워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것을 한 때는 그토록 논란과 비판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이제 그것을 하나의 힘으로 만들어낸 서혜진표 콘텐츠는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사진:TV조선)

'유퀴즈'가 조명한 숨겨진 주인공들의 가치

 

"난리 났네 난리 났어-" 부산세관에서 일하는 김철민 팀장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나와 했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 성대모사는 순식간에 짤이 되어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다른 출연자들이 나왔을 때도 수시로 이를 따라하면서 마치 이 프로그램의 공식 유행어가 됐고, 이는 <난리 났네 난리 났어>라는 스핀오프격의 프로그램으로까지 런칭되어 이제 방영을 앞두게 됐다. 

 

이 유행어가 특히 기분 좋게 느껴졌던 건, 그것이 영화나 드라마의 주연배우의 대사에서 탄생한 게 아니라, 주연 옆에서 잘 드러나진 않지만 맛깔스런 연기로 그 장면들을 빛내주는 조연의 대사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건 늘 TV를 틀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분들이나 세상 구석구석에서 유명하진 않아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분들을 카메라 앞에 보여준 이 프로그램의 성격과도 잘 맞는 일이었다. 

 

마침 'Unsung Hero(드러나지 않는 영웅)'라는 주제로 방영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바로 그 "난리 났네 난리 났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의 아내로 출연했던 배우 김영선을 초대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방영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다. 예능, 아니 방송 출연 자체가 낯설다는 김영선 배우는 자신을 알린 작품으로 <유퀴즈>를 꼽을 정도로, 여러 작품에 출연하긴 했지만 했던 역할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로 데뷔했다는 김영선 배우는 27년 간 연기의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물론 연기만으로 생활하기가 어려워 대리운전, 학습지 배달, 호프집 서빙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고 하는 김영선 배우는, 여러 일을 해봐도 자신에게 맞는 건 역시 연기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에 들어갔지만 숫자에 약하다고 했고, 옷 장사도 해봤지만 대인기피증이 생겼다고 했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천상 배우였다. 

 

놀라웠던 건 눈물 연기를 몰입하는 건 기본이고, 상대 배우가 감정이 잘 안 잡힐 때 그걸 유도해내는 역할 또한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조세호를 대상으로 김영선 배우가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보는 것만으로 조세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막힌 광경이 연출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조세호는 김영선 배우가 눈빛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눈물이 쏟아졌다는 것. 

 

김영선 배우가 보여준 것처럼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영화 판으로 보면 주인공 몇 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김영선 배우처럼 그들 주변으로 수십 명의 인물들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주인공을 빛내주는 그들이야말로 숨겨진 주인공들인지도. 

 

<유퀴즈>가 조명한 국내 1호 로케이션 매니저 김태영이나, 불펜포수 안다훈, 액션 대역 배우 김선웅이 그런 인물들이다.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장소들이나 공간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김태영 같은 로케이션 매니저가 있어 작품이 빛나고, 불펜에서 선수들의 볼을 받아주고 그들의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불펜포수 안다훈 같은 인물이 있어 팀의 보이지 않는 전력이 생겨난다. 또 자신을 최대한 지우고 주인공을 드러내게 하는 게 일일 수밖에 없는 액션 대역 배우 김선웅 같은 인물 또한. 

 

스포트라이트 뒤쪽에 있는 일이 어찌 어렵지 않을까. 안다훈 불펜포수가 자신을 '야구하는 피에로'에 비유한 건 그런 고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팀 선수들의 컨디션까지 체크해야 하는 자신의 직업 속에서 그는 늘 웃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힘겨운 일은 피에로처럼 숨겨야 되는 직업이라는 것. 하지만 그래도 그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들어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배우 김영선과 불펜포수 안다훈 같은 인물들이 넘쳐날까. 그들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진짜 세상이 움직이는 동력이 아닐까. 그러니 운 좋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입장이 된 이들이라면 그들 뒤에 이처럼 실제 동력이 되어주는 'Unsung Hero'들이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기를. <유퀴즈>는 말하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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