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듀오>, 콜라보를 통해 할 수 있는 것들

 

음악예능은 너무 많이 나왔고 그래서 식상해진 면이 있다. 특히 가창력 대결을 벌이는 음악 예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미 MBC <나는 가수다>를 통해 노래 신들의 무대를 봤던 이들이라면 가창력 하나를 두고 벌이는 노래 대결이 그리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경험할 건 다 해봤던 느낌들이기 때문이다.

 

'판타스틱 듀오(사진출처:SBS)'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예능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SBS <판타스틱 듀오>에서 에일리가 판듀 후보로 오른 세 명의 청춘들과 함께 보여줄게를 부르는 순간이 그렇고, 신승훈이 고인이 된 유재하와 김현식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아 가리워진 길을 함께 부르는 순간이 그렇다. 그것은 가창력 대결과는 무관한 함께 한다는 의미, 즉 오롯이 콜라보레이션이 주는 소통의 묘미가 담길 때다.

 

에일리는 왜 자신의 노래인 보여줄게를 많은 팬들을 보며 눈물을 참지 못했을까. 그것은 감사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서 자신의 청춘을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 또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래 불렀던 청춘의 시절이 있었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마치 그 때의 자신을 그대로 환기시켰을 것이다.

 

에일리와 함께 무대에 오른 세 명의 청춘들, 부산뱅크녀, 북한산 민물장어녀, 아차산 아이스크림녀들은 각자 저마다의 고단한 청춘을 살아내는 이들이었지만 그토록 밝은 에너지가 넘칠 수가 없었다. ‘당당한 나를 드러낼 것을 다짐하는 가사를 담은 보여줄게라는 노래는 그래서 에일리와 이 세 청춘들이 함께 부르자 몇 배는 더 커진 의미로 다가왔다. 남녀 간의 이야기를 넘어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춘의 의미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두 사람, 유재하가 만들고 김현식이 부른 가리워진 길을 함께 부른 신승훈은 111일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소개했다. 그 날은 신승훈의 데뷔일이면서 두 고인의 기일이었던 것. 이제 고인이 된 김현식의 목소리에 얹어진 신승훈의 노래는 그래서 단지 노래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생전에 꼭 현식이형이라고 부르고 싶었다는 신승훈의 마음을 전하는 메시지였다.

 

<판타스틱 듀오>는 물론 일반인과 기성가수가 듀오를 이뤄 가창력 대결을 벌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음악 예능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결보다는 콜라보레이션이 갖는 그 화음과 협력에 더 집중하고 있고, 가창력을 물론 조명하지만 그 노래 속에 담긴 마음과 마음의 소통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래도 음악 예능이 식상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고, 그 형식도 비슷비슷하며 거기 출연하는 가수들 또한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들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판타스틱 듀오>가 어떤 감흥을 주는 순간은 놀라운 가창력의 소유자가 등장했을 때가 아니다. 그들이 타인과 노래를 통해 어떻게 연결되고 마음을 전하는가 하는 그 지점이 대중들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질 바로 그 때다.

송혜교에 대한 찬사와 설현 지민에 대한 비난 사이

 

사실 눈물이 났다.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자동차 광고 제의를 거절한 송혜교에게 쓴 감사의 편지의 한 구절. “우리나라 대통령도 못한 훌륭한 일을 송 선생님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물이 나고 가슴에 박힌 큰 대못이 다 빠져나간 듯이 기뻤다. 날개가 달렸으면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얼마나 할머니의 힘겨운 삶에 관심을 주고 또 그 고통의 역사를 함께 인식해주며 행동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이토록 절절한 감사의 마음을 표할까.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하지만 정 반대의 일로 눈물을 쏟는 이들도 있다. 걸 그룹 AOA의 설현과 지민이 그들이다. 그녀들은 케이블채널 온스타일 <채널 AOA>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맞추는 퀴즈에서 긴또깡이라고 답해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상식일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순간 대중들은 분노했다.

 

그렇지만 그 분노는 온전히 설현과 지민에게 쏟아내는 분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다 우리네 역사에 이토록 무지해져버린 현실이 되었는가에 대한 분노가 더욱 크다. 역사가 그저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단답식 퀴즈 맞히기의 소재 정도로 활용되는 현실. 비뚤어진 교육 현실 속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역사교육. 그리고 그것이 별 문제도 아닌 것인 양 방치하는 교육 부처들.

 

역사교육은 문제 맞히기가 아니다. 그것은 관점이고 시각을 갖는 교육이다. 역사는 하나의 팩트라기보다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포괄한다. 그러니 그것은 얼굴 하나 내놓고 누구냐고 맞히는 식으로는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입장과 관점들이 있고 시각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후 스스로 역사 인식을 갖는 그 과정이 역사교육이 가야하는 길이다.

 

아이돌 그룹이라는 특성상 교육의 문제는 더 일천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단답화 되어 있는 역사교육은 근본적으로 보면 설현과 지민의 문제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때때로 <무한도전>이나 <12>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역사교육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역사의 한 지점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무한도전>이 들려준 가슴 아픈 하시마섬의 진실이나 우토로 마을 이야기가 그렇고, <12>이 하얼빈까지 가서 들려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 이야기가 그렇다.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역사를 제대로 재조명해 드러낼 때마다 시청자들은 깊은 감명의 뜻을 전하곤 한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울린다. 하지만 그 눈물의 뒤안길을 들여다보면 어쩌다 역사를 예능에서 더 배우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씁쓸함 또한 묻어난다. 이러니 도대체 누굴 탓할 것인가!

 

송혜교의 행보에 쏟아지는 찬사와 지민과 설현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그래서 너무 다른 양극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분노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상식이 사라진 세상에 남는 건 몰상식과 무개념뿐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답답한 현실에 또 눈물이 난다

<신서유기2><아는 형님>, 웃음에 대한 진정성

 

근본 없는예능. ‘언리미티드’. 최근 강호동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 덧붙여져 있는 수식어들이다. ‘근본 없는예능은 JTBC <아는 형님>이 주창하고 있는 것이고, ‘언리미티드<신서유기2>에 붙어 있는 부제다.

 

'아는 형님(사진출처:JTBC)'

<아는 형님>근본 없는예능이라고 지칭하는 건, 어떤 정해진 포맷이 없이 오로지 웃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대본이 있을 리 없고 그저 상황만 주어지며 그 안에서 출연자들의 드립이 난무한다. 상황극이건 콩트건 아니면 개인기건 아무 상관이 없는 이 근본 없는예능은 그래서 웃음이라는 지향점 하나로 빵빵 터트린다.

 

전학생 콘셉트로 게스트를 초대해 주고받는 대화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토크쇼의 완전히 다른 버전이다. 마치 <무릎팍도사>가 점집을 공간으로 구성하고 그 상황극적 요소와 캐릭터를 활용해 토크쇼를 했듯이, <아는 형님>의 전반부를 구성하는 전학생 콘셉트의 게스트 출연은 학교라는 공간을 상황으로 선택해 저마다의 캐릭터를 가진 MC들이 끝없이 드립을 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게스트의 매력이 드러나고 동시에 고정 MC들의 캐릭터들이 구축된다. 강호동은 그 속에서 폭력의 아이콘으로 캐릭터화해 의외로 강호동을 쥐락펴락하는 민경훈과 각을 세우기도 하고, 괜스레 이수근에게 화풀이를 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김희철이 깐족 캐릭터를 시종일관 보여준다면 서장훈은 건물주와 이혼 같은 자신의 실제 상황을 캐릭터로 끌어낸다. 김영철은 뜬금없이 당다라당당-’을 해대며 개인기로 웃기고 이수근은 역시 특유의 순발력을 발휘해 상황극을 끄집어내는 발군의 기량을 보여준다.

 

<아는 형님>이 추구하는 것이 오롯이 웃음하나라는 점은 사실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웃음과 함께 다른 요소들 이를테면 감동이나 의미 같은 것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결국 웃기는 것이 예능의 본분이라는 걸 <아는 형님>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점은 의외로 이 근본 없는예능의 진정성으로 세워진다. 웃음의 강도가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보다 훨씬 높은 <아는 형님>을 보다보면 MC들의 웃음에 대한 노력이 남달리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신서유기2> 역시 웃음에 대한 추구를 가장 중심에 세워두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나영석 PD가 그간 해왔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웃음은 물론이지만 그 이외에 어떤 가치나 의미 등이 많이 들어 있었다면(이를테면 <삼시세끼><꽃보다 할배> 같은) <신서유기2>는 대놓고 웃겨보자는 목적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언리미티드라 붙인 것은 인터넷 버전이 먼저 방영되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웃음을 위해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도 감행한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국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는 <신서유기2>가 갑자기 안재현의 집을 방문하고 어찌 보면 그저 그들끼리 집들이 하는 내용 같은 그 리얼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보여준 것은 실로 의외의 장면들이었다. 안재현과 출연자들이 등장하고, 거기에 이우정 작가와 나영석 PD를 위시해 제작진들이 자연스럽게 동석해 집들이 음식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건 예능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진짜 집들이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영석 PD는 갑자기 사랑한다는 답변을 받는 미션을 제시하는 것처럼 웃음의 포인트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홀로 답변을 늦게 받은 강호동은 그 실제상황에 당혹해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사실 이런 사적인 느낌의 장면들은 그간 예능에서 깊게 다뤄지지는 않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언리미티드라는 부제를 달았기 때문인지 <신서유기2>는 그것이 재미있다면 어떤 것이든 감행하려는 듯한 과감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점점 패턴화되는 예능의 형식을 깨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최근 예능 중 웃음의 강도로만 치면 가장 눈에 띄는 두 프로그램이 <아는 형님><신서유기2>. 물론 시청률은 빵빵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웃음 하나는 빵빵 터트리는 이 두 프로그램은 어떤 면에서는 그간 감동이니 의미니 하며 외도를 했던 예능이 본류로 귀환한 듯한 인상을 준다. 한참 정신없이 웃다보면 그 진정성이 오히려 느껴지는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신서유기2>가 대중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더 라스트 찬스를 선택한 <K팝스타6>의 속내

 

사실 <K팝스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들해질 즈음 다시금 불을 붙여 놓았던 프로그램이다. <슈퍼스타K>가 시즌2에 정점을 찍고 시즌3에서부터 조금씩 하향세를 보이던 시점에 <K팝스타>가 시작됐고 국내의 3대 기획사가 직접 참여한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오디션을 부활시켰다.

 


'K팝스타(사진출처:SBS)'

그리고 어언 5년이 흘렀다. 5년 동안 예능 환경도 또 가요계의 환경도 변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너무 많은 음악 예능들 속에서 대중들에게 피로감을 주었다. 그나마 <K팝스타>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건 심사위원들의 멘트 하나하나가 화제가 될 정도로 힘이 있었고, 참가자들이 기획사에 최적화되면서 연령대가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신선함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시즌5는 괜찮은 시청률을 냈지만 화제성은 예전만 하지 못했다. 시즌6의 제작발표회에서 심사위원들이 했던 말처럼 심사도 어떤 패턴화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 어린 친구들의 참가는 장점만이 아니라 아마추어리즘이 드러나는 단점으로도 작용하기 시작했고, 시즌 초반에 팝 가수들만큼 잘 소화해내 불리던 팝송들은(심지어 이것 때문에 국내 차트에 팝송이 진입할 정도였다) K팝스타를 뽑는 프로그램에 적합한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심사위원들의 진정성과 <K팝스타>가 배출하는 가수들의 특성이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었다. 인디 가수들 같은 숨은 진주를 발굴하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형 기획사들의 수장들로부터 이뤄지는 풍경은 어딘지 낯설게 다가온다.

 

<K팝스타>가 시즌5를 거쳐 오는 동안 또한 바뀐 건 가요계의 가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최근 Mnet<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이미 데뷔를 했거나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있는 가수 지망생들도 참여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실력 있는 일반인과 이미 데뷔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가수, 혹은 기획사 연습생들은 그리 큰 차별점을 느끼지 못하게 된 상황이 됐다.

 

<K팝스타6>더 라스트 찬스라는 부제를 달아 마지막을 선포한 건 이런 여러 가지 그간의 변화들을 읽어내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함이다. 사실 우여곡절은 많았고 구설도 많았지만 <K팝스타>가 가요계에 미친 좋은 영향도 적지 않았다. 악동뮤지션이나 이하이, 백아연 등등 다양한 가수들을 배출하기도 했고, 이진아 같은 인디 뮤지션을 재발견시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시스템이 갖춰진 기획사들의 제작과정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 라스트를 결단하게 된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선택이 상당히 시의 적절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6에 대한 기대감을 확실히 높여놓았다. 소속사가 있는 지망생들에게도 문을 열어 놓음으로써 다양한 출연자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가수 지망생들의 가창력과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기획사들의 프로듀싱 능력을 경쟁적인 틀 안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움도 생겨났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꼭꼭 짜서 <K팝스타>가 시즌1부터 보여 왔던 그 음악의 즐거움을 시즌6에서도 되살려줄 수 있다면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은 그만큼 남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을 선택한 <K팝스타6>. 마지막이라는 수식어의 크기는 그만큼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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