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에 <무도>는 왜 무인도를 택했을까

 

<무한도전>은 왜 10주년을 기념해 무인도로 들어갔을까. 물론 이 아이템은 팬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가장 다시 보고 싶은 특집으로 무인도 특집이 꼽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주년을 기념해 무인도로 들어간 이번 특집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했다. 그것은 <무한도전>의 의지를 되새기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팬들 역시 똑같은 걸 원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잘 차려입은 정장차림은 아마도 현재 <무한도전> 멤버들의 위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리라. <무모한 도전> 시절 쫄쫄이를 입고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거나, 포크레인과 삽질 대결을 벌였던 그들은 그렇게 10년이 지나 이제 정장차림이 제법 잘 어울리는 성공한 예능인이 되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그다지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결국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란 가장 낮은 곳에서 평균 이하로 서 있을 때 훨씬 유리한 법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내세우며 프로그램 안과 밖을 연결해왔던 <무한도전>으로서는 따라서 인물의 성장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한다.

 

<무한도전>10주년을 맞아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로 되돌아간 건 그래서 한 편의 우화처럼 보인다. 깨끗했던 정장이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그것은 어쩌면 웃기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으로 점점 더럽혀지고 결국 섬을 빠져나오며 유재석의 바지가 다 찢어져 속옷이 드러나는 걸 발견하는 건 그래서 여전히 그 평균 이하를 지향하는 <무한도전>의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10주년 기념 파티를 위한 케이크 컷팅이 아니라 드론으로 떨어뜨려주는 케이크를 서로 받아먹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누군가의 얼굴에 떨어진 케이크를 혓바닥으로 핥는 광경. 뷔폐 식당이 아니라 복불복으로 선택한 재료와 도구를 이용해 짜장 라면 한 그릇을 그토록 맛있게 나눠먹는 모습.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먹물 폭탄을 감수하면서 처절하게 코코넛을 따먹는 모습이 <무한도전>이 앞으로 걸어가겠다고 선언한 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에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라는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이 김태호 PD가 보고 싶던 것이었다. 그는 어둑해져가는 섬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출연자들을 탈출시키면서 여러분들의 <무모한 도전>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사실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무한도전>이었다. 많은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늘 배가 고팠기 때문에, 도무지 할 수 없는 도전일 것 같았기 때문에 그들의 도전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팬들이나 김태호 PD, 그리고 출연자들 모두가 원하는 건 그들의 변치 않는 그 평균 이하의 모습이고, ‘무모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정장 따위는 진흙에 더럽혀지고 심지어 찢어질지라도, 배가 고파 짜장라면 하나에도 그토록 감격해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무한도전>이 앞으로도 계속 지향할 길이라는 걸 10주년 무인도 특집은 보여주었다.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무한도전>10주년이 그 어떤 10주년보다 빛난 건 그래서다.

 

황석정이 보여준 <나 혼자 산다>의 진가

 

황석정은 드라마 <미생>의 반전뒤태 재무부장으로 대중들의 마음속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러브콜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제 중년에 혼자 살아가는 그녀는 MBC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최적일 수밖에 없다.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소유나 효린, 엠버처럼 간간히 여성 출연자들이 출연하게 된 것은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상에 부려진 관찰카메라의 시선이 자칫 엿보기 악취미로 그려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일상이 주는 헛헛함이 어찌 남성들만의 것이랴.

 

그런 점에서 보면 황석정만큼 그 리얼함의 끝을 보여준 인물도 없을 것이다. 자다 일어난 부스스한 민낯은 기본이고 목욕탕에 쪼그리고 앉아 긴 머리를 벅벅 감는 모습도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같이 사는 반려견 대박이와의 스킨십은 마치 오래된 지인같은 편안함이 묻어나고, 도시락으로 김밥을 마는 솜씨에서는 그녀의 능숙함이 묻어난다.

 

사실 황석정이 등장해서 보여주는 특별함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그것은 그저 그녀의 일상일 뿐이다. 차 한 잔을 들고 나와 베란다에 앉아 마시는 장면이나, 거기에 그녀가 키워놓은 꽃과 야채를 살짝 보여주는 것, 그리고 소파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일상처럼 보이는 대박이를 바라보는 건 남다를 것 없는 보통사람들의 삶 그대로다.

 

이제 대중들이 TV를 통해 보려고 하는 건 셀러브리티들의 특별한 삶에 대한 선망이 아니게 되었다. 관찰카메라의 시대는 보다 일상 가까이에서의 공감을 요구한다. 따라서 황석정이 보여주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소소함이란 다름 아닌 <나 혼자 산다>가 가진 진가다. 이 프로그램을 늘 새롭게 하는 것은 그 특별함을 거둬내고 일상의 자잘함들에 시선을 돌릴 때 생겨난다.

 

민화를 배우고 그렇게 그린 그림을 황정음이나 김광규 같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같은 나이로 혼자 살아가는 대학동기들과 만나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이젠 달콤한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 나이대에 가질 수밖에 없는 솔직한 소회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텅 빈 집으로 홀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누구나 그 삶의 뒤태를 보면 느껴질 수 있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병원 검사비 때문에 한껏 딸을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괜찮다고 재차 말하는 황석정의 무덤덤한 표정 속에는 그래서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담긴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지만 그렇게 하루를 들여다보면 드디어 보이는 그 반짝거림의 실체. 그것은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일상으로 흘러가지만 그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겨지게 만든다는 것.

 

이것은 <나 혼자 산다>가 빛나는 이유다. 이 카메라가 헌사하는 일상에 대한 시선들 속에는 그렇게 무참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에 대한 소중함이 묻어난다. 황석정의 그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들에서 느껴지는 보통의 특별함’. 그것이 <나 혼자 산다>의 진가다.

 

 

<꽃보다 할배>, 타인이 가족처럼 가까워질 때

 

투덜이 이서진은 포세이돈 신전 앞에 가서도 투덜거렸다. ‘가까이 가 봐야 별 거 없다는 이서진의 이른바 그리스 멀리 이론은 멀리서 봐야 더 멋있다는 이상한 관전 포인트를 제시했다. 여행 떠나는 걸 꽤나 귀찮게 여기는 이 귀차니즘의 대가(?)는 여행을 짐스럽게 여기는 짐꾼이라는 캐릭터로 역시 <꽃보다 할배>라는 나영석표 예능에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걸 증명해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세상에 여행 즐기는 이가 여행하는 이야기만큼 평이한 것도 없을 게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나영석표 예능의 페르소나로 자리한 이서진은 경비에 있어서는 한없이 깐깐한 스크루지로 돌변하고,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처지를 그토록 토로하면서도 할배들 앞에만 가면 고분고분한 짐꾼으로 돌아가 소소한 것까지 살뜰히 살피는 사람이 된다. 이른바 나영석 패밀리에 이서진이 중심에 서게 된 건 바로 이 지극히 보통사람의 투덜거림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미션이 떨어지면 보통사람 이상의 정성을 쏟아내는 그의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이서진의 그리스 멀리 이론은 곧바로 <삼시세끼>로 나영석 패밀리에 합류한 옥택연에게 전달된다. 택연은 그리스 여행을 가서 바로 이 그리스 멀리 이론에 적합한 셀카를 찍어 SNS로 화답한다. 이제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 그리고 <삼시세끼>는 각각 동떨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다른 영화에서 다른 조합으로 나와도 <어벤져스>와의 이야기와 연동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은 <삼시세끼>의 강원도 정선집에 놀러와 밥 한 끼를 같이 챙겨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꽃보다 누나>의 누나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지우가 그러한 것처럼 잠시 <삼시세끼>의 게스트로 참여했던 그녀는 <꽃보다 할배>의 신참 짐꾼이 되기도 한다. <꽃보다 청춘>에서 순수 청년으로 등장한 손호준이 <삼시세끼> 만재도편에 갑자기 하차하게 된 장근석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것처럼, 이제 이들 프로그램들은 나영석 월드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동되고 있다.

 

그리스까지 가서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게 낫다는 귀차니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서진이, 해산물 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던 백일섭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음식점에서 그걸 챙겨오는 이야기는 나영석 패밀리가 대중들에게 주는 훈훈한 판타지의 실체다. 이들은 처음 낯선 타인으로 만났지만 여러 차례 여행을 하면서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순재와 한 방을 쓰던 이서진이 아침에 일어나 이순재의 옷매무새를 직접 만져주는 장면은 가족 그 이상의 끈끈함을 보여준다.

 

박근형이 일정 때문에 먼저 귀국하자 셋이 쓰던 방에 그의 빈자리를 느끼는 신구와 백일섭의 모습이 그려진다. 청력이 좋지 않은 백일섭을 위해 여러 차례 큰 소리로 얘기를 해주고 어색할 수 있는 방 분위기를 친근하게 풀어내주던 박근형의 빈자리를 굳이 이 프로그램이 그려 넣는 건 나영석 패밀리가 이렇게 가족이 된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방식이다.

 

그것은 이서진의 방식과 닮았다. 어찌 보면 여행이라고는 해도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 일을 일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는 건 보다 더 깊숙이 가족 같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간만에 나게 된 시간에 나영석 PD는 스텝들을 데리고 이서진을 운전기사로 세워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기가 제일 나이 많은데 운전을 해야 된다고 투덜대면서도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 이서진과 나영석은 그래서 이제는 형제 같고 제작진들 역시 그 패밀리의 구성원처럼 보인다.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운 저녁을 나누며 그리스 여행을 회고하는 자리에는 그래서 나영석 PD도 함께 앉아 있다. 물론 그가 처음 화면에 얼굴을 내밀게 된 건 미션을 부여하는 그 역할을 리얼로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화면 안에 들어와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제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일 관계가 아닌 진짜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고.

 

이것은 나영석 PD표 예능이 매번 성공하는 이유가 된다. 그들이 낯선 타인으로 만나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그걸 계속 봐온 시청자들 역시 가족 같은 친근함으로 이들을 쳐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일섭이 우리는 이제 패밀리가 되었다고 털어놓는 건 진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꽃보다> 패밀리가 주는 판타지는 이 어르신들의 즐거움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또 그 분들이 겪어온 세월에 대해 존경을 표하게 되는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

 

사람들이 잘 안 보이는 <경찰청사람들>의 아쉬움

 

MBC <경찰청사람들>이 돌아왔다. 16년 전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프로그램. 당시에는 이 <경찰청사람들>의 형사들이 하는 인터뷰 말투(거의 국어책을 읽는 듯한 어색함)가 세간에 화제가 됐고 심지어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할 정도였다. 갖가지 실제 사건들을 재연 방식으로 보여줬던 프로그램이다.

 

'경찰철사람들2015(사진출처:MBC)'

돌아온 <경찰청사람들>은 어땠을까.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 여전히 재연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거기에 단지 현역 경찰들을 스튜디오로 출연시켜 그 사건을 추리하게 했다는 것을 빼고 나면 그다지 진화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특히 이런 현역 경찰들이 스튜디오에 나와 사건을 추리하는 포맷은 이미 JTBC에서 201212월에 했던 <당신을 구하는 TV, 우리는 형사다>에서 시도된 바 있다. 구성이나 스튜디오 연출은 <우리는 형사다>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경찰청사람들>이 첫 회에 다뤘던 두 개의 사건도 그리 낯설지 않다. 사채업자에 몰려 결국 돈 때문에 아내까지 살해하는 남편의 이야기나 회사의 경영권을 쥐기 위해 남편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병동에 감금시키는 아내의 이야기. 이미 어디선가 봤던 소재들이다. 추리 형식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 이렇게 쉽게 결말이 노출되는 아이템을 세운다는 건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이경규가 메인 MC로 투입되어 있지만 그 역할도 모호하다. 그저 스튜디오에서의 진행 정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 던지고 받는 역할만을 한다면 굳이 이경규 같은 인물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게다가 출연자로 등장하고 있는 경찰들은 직업적 특성상 조금은 경직된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스튜디오 토크의 긴장감을 살리는 연출적 기법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추리 방식을 가져오면서 그저 사랑방 토크식으로 흘러가는 건 이 프로그램을 밋밋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가장 의아하게 여겨지는 건 <경찰청사람들>이 왜 리얼리티쇼 방식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16년 전 <경찰청사람들>은 해외의 리얼리티쇼 트렌드에 의해 나왔던 프로그램이다. 이미 <캅스>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나오던 시절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정서적인 불편함이 존재했기 때문에 완전한 리얼리티쇼 방식은 구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재연 방식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이제는 우리도 관찰카메라라는 이름으로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다시 <경찰청사람들>이 돌아온다면 본래 어울렸던 그 리얼리티쇼 방식을 시도하는 게 어땠을까 싶다. 물론 이것이 여전히 지상파에는 부담이 됐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돌아온 <경찰청사람들>의 방식은 너무 방송 편의성에만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장성이 하나도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과거 16년 전 <경찰청사람들>이 갖고 있던 우리식의 정서라도 이어줬어야 하지 않을까. <경찰청사람들>이 당대에 화제가 됐던 것은 사건도 사건이지만 거기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범인 잡는 형사들이라고 해도 한 가족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인 그들의 모습이 보였고, 또 범인들도 때로는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내는 이야기가 있었다. 돌아온 <경찰청사람들>을 보며 왜 옛날이 그립지하고 느끼는 것은 이런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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