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현, 미친 존재감의 개그맨

"고뤠?!"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김준현이라는 개그맨을 떠올리는 것은. 그만큼 그는 지금 가장 '핫'한 개그맨이 분명하다. 새로 시작한 코너 '4가지'에서도 단연 그의 존재감은 빛이 난다. 뚱뚱한 몸에 뻘뻘 흘리는 땀, 그리고 조금은 걸쭉한 목소리까지. "누굴 돼지로 아나-" 하고 툴툴대며 시작했다가 "마음만은 홀쭉하다"로 끝나는 그 짧은 멘트지만 그가 연기해내는 이 '뚱뚱한 사람(그래서 오해를 사는)'이라는 캐릭터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독보적인 느낌이 있다. 도대체 그게 뭘까. 이 미친 존재감의 개그맨을 직접 만나 물어봤다.

"연기력이 좋다고 하시는데, 과찬의 말씀입니다. 다만 대본을 보고 그걸 어떻게 하면 더 잘 살릴 수 있을 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합니다. 예전보다 조금 편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 때는 이걸 해야겠다. 저걸 해봐야겠다. 이런 의욕이 좀 과잉되기도 했었는데 5,6년차가 되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죠. 그러면서 비로소 코너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죠.”

김준현의 연기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가 코너에서 활약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늘 사이드에서 시작했지만 어느새 중심으로 이동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DJ변의 별 볼일 없는 밤에’에서의 광고 패러디맨도 그랬고, ‘9시쯤뉴스’에서의 잎새반 김준현 어린이도 그랬으며, ‘생활의 발견’의 취객, ‘비상대책위원회’의 군당국자 역할로 그랬다. 그것이 모두 캐릭터를 살려내는 그만의 연기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쪽에서도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만나 본 그는 과연 연기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다.

“연기 고민이 본래 많은데, 관심을 가져주시니 더 고민이 많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해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상한 걸로 한다고 터지는 것도 아니죠. 참 연기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연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굳이 배우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개그맨이지만 진짜 진한 페이소스를 줄 수 있는 그런 연기를 선보이고 싶죠. 김준호 선배님도 그런 쪽으로 길을 많이 뚫고 있는데, 적어도 개그맨들이 한 명의 코미디 연기자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요즘 하고 있는 ‘4가지’는 ‘이 땅에서 오해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언대’로 만들어진 개그 코너다. 김준현은 이 코너에서 ‘뚱뚱한 남자’ 역할을 맡아 뚱뚱하다는 이유로 받는 갖은 오해와 설움을 토로한다.

“처음에는 김기열, 이종훈이 코너를 짰는데 허경환이 나도 시켜줘 해서 들어왔습니다. 나한테는 돼지 캐릭터로 하나 할 거냐는 제안이 와서 하기로 했죠. 그런데 처음에 이것은 콩트 형식이었습니다. 뭔가 빵빵 터지는 게 없어서 계속 고치고 바꾸고 했는데, 서수민 PD가 콩트 말고 그냥 자기의 핸디캡을 털어놓고 그게 어떠냐는 식으로 처음부터 치고 가자고 제안해서 방향성이 잡혔죠. 이 코너는 개그맨들은 바뀌어도 코너는 오래 지속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핸디캡을 내세울 개그맨들은 널려 있으니까요. 김준호 선배도 이 코너를 하고 싶어하시더라구요. ‘오래됐다’는 콘셉트로 “오래된 개그 한번 해줘?”하고 치고 나오면 다들 좋아할 거라는 거죠.”

물론 김준현이 지금처럼 가장 관심을 받는 개그맨이 되기까지는 많은 힘든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서수민 PD는 김준현을 ‘폭소클럽’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 때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는 친구였다”고 한다. 심지어 녹화도 빵구내고 잠수를 타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혼자 코너를 짜야 되기 때문에 외롭기도 했구요. 그게 결국 보니 동기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콘’으로 들어오면서 저도 동기들이 생겼죠. 지금 현재 ‘개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22기가 저의 동기들입니다. 함께 지내면서 서로 의지도 되고 도움도 주면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김준현은 열정의 개그맨으로도 불린다. 그가 코너를 할 때면 유독 땀을 뻘뻘 흘리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후배 개그맨인 정태호는 김준현을 이렇게 평가했다. “안녕하세요” 하나 치는 것도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고. ‘생활의 발견’ 같은 코너에서 식당 손님 역할을 할 때도 그는 기다리는 동안 결코 가만 있지 않는다고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진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연기에 쏟는 그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찬입니다. 물론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사실 체질상 제가 땀을 많이 흘립니다. 냉면 먹으면서도 육수를 뽑아내죠. 그래서 NG도 참 많이 냈습니다. '생활의 발견‘에서 제가 NG 제일 많이 내는 사람이었죠. 오래 기다리는 동안 땀에 마이크가 젖어서 첫 대사가 안 나오기 일쑤였으니까요. 살을 좀 뺄 생각입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너무 많이 찌면 연기하는데도 불편하게 되거든요.”

김준현이라는 미친 존재감의 개그맨이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저 뒷편에 잠깐 지나가는 역할조차 허투루 보지 않고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대본의 그 흔한 대사조차 유행어로 살려낼 수 있었던 것.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겸손하게 답하는 김준현에게서 ‘개콘’의 주축인 22기 중에서도 그 중심에 서 있는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감과 그 이면에 놓여진 노력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김준호, 고참 개그맨으로 사는 법

김준호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서수민 PD는 '연기파' 개그맨으로 분류한다. 제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살리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 개그에 있어 연기력이란 그래서 어쩌면 아이디어나 개인기보다 훨씬 중요한 덕목이다. 특유의 연기력으로 후배들과 만들어낸 개그를 척척 잘도 살려내고, 또 한 번 만들어낸 코너를 오래 지속시키기로도 유명하며, 최근에는 '코코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차려 후배 개그맨들의 뒷바라지를 자처한 '개콘'의 고참 개그맨. 김준호와 기분 좋은 만남을 가졌다. 먼저 최근 뜨고 있는 '꺾기도'라는 개그를 화제로 꺼냈다.

"뭐 그간 '개콘'에서 풍자 개그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나이든 세대들에게 너무 맞춰지는 것 같다는 의견 때문에 좀 연령대를 낮출 수 있는 개그를 짜보려다가 나온 것이 '꺾기도'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냥 한 겁니다. 누구든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개그죠. 의미부여 하지 않고. 처음에는 후배들이랑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 한번 추자는 생각으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모았는데 다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게 뭡니까불이." 그랬는데 빵빵 터지고 난리가 난 거에요. 그렇게 생긴 코너죠. 이건 레퍼토리가 유치하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놀아서 살려야 하는 코너입니다. 그래서 쌍둥이(이상호, 이상민)랑 홍인규랑 같이 그냥 한바탕 놀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죠."

사실 '꺾기도'는 말장난 개그로 아이들에게는 빵빵 터지지만 어른들로서는 어디서 웃어야 할지 요령부득인 경우도 많다. 서수민 PD는 최근 전체 '개콘' 코너가 너무 시사적이고 풍자적으로 고정되는 것은 좋지 않게 여긴다고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좀 더 다양한 개그들이 포진될 수 있게 배분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변화 속에서도 김준호는 꽤 오래도록 코너를 유지하는 개그맨으로 유명하다(서수민 PD는 그가 오래할 수 있는 개그를 잘 짜온다고 했다). 그 노하우를 물었다.

"개그에도 생체리듬이란 게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집으로' 같은 코너를 할 때만 해도 1년 반씩 했었는데 요즘은 6개월이면 장수하는 코너가 됐죠. 그만큼 소비 속도가 빨라졌다는 겁니다. 오래도록 코너를 유지하는 노하우로 특별할 건 없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옛날 개그를 많이 우려먹는다(?)는 겁니다. 사실 슬랩스틱이나 콩트처럼 개그 공식은 거의 정해져 있죠.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을 요새 트렌드에 맞게 바꾸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그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꽤 오래 가죠. 제가 지금껏 해온 개그들을 보면 영화 '달콤한 인생'을 패러디한 '씁쓸한 인생', '이끼'의 '미끼', '평양성'의 '감수성', '집으로' 같은 패러디 형식이 많았는데요. 이게 오래 갔던 이유는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최효종이 하는 개그는 제가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뭐라 얘기하긴 어렵지만, 오래 지속하기는 훨씬 어려운 개그입니다. 캐릭터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 '개콘'은 확실히 몇 년 전에 비교하면 대중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있고 시청률도 훨씬 높아졌다. 서수민 PD가 새로운 연출자로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다. 서수민 PD체제로 들어서면서 생긴 다양한 시청층을 끌어안으려는 노력과 과감해진 수위 등등 다양한 원인을 들 수 있지만, 정작 서PD는 이것이 "자신이 개그를 잘 몰라서"라고 말했다. 즉 너무 잘 알았다면 시청자의 눈높이와 멀어졌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더 큰 요인으로 김준호는 선수들(?)이 많아진 것을 들었다.

"작년에 비해 '개콘'의 위상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여겨지는 건 개그맨들이 CF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공중파에서 하는 핸대폰 광고를 찍고 있죠. 작년에는 '감사합니다'가 뜨면서 정태호는 증권광고를 찍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된 건 확실히 과거에 비해 선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지금 '개콘'의 중추는 22기들인데 이제 30대 초반이 된 이들은 확실히 개그에 있어 숙성된 친구들입니다. 밑에서부터 아이디어 짜는 법, 살리는 법 같은 것을 착실히 배워왔기 때문에 지금 '개콘'의 전성기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개콘'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그맨들이 설 무대는 점점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개콘'의 고참 개그맨으로서 김준호는 무엇보다 이런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처음 내가 시작했을 때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 때는 개그맨들이 할 수 있는 프로가 8개나 있었죠. 그러다 하나 둘 없어지더니 두 개만 남게 되어버렸습니다. '시사터치 코미디파일'과 '개콘' 이렇게 두 개를 했는데, '시사터치 코미디파일'도 없어졌죠. 중간에 '웃음충전소' 같은 프로그램이 생겨서 '타짱' 같은 코너를 하기도 하고, 참 여러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만은 않았죠. 하지만 그래도 개그맨들이 개그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는 서수민 PD와 함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김준호는 최근 코코엔터테인먼트를 차려 '개콘' 소속 개그맨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원래는 매니지먼트 안하려고 했습니다. 갈갈이 패밀리나 컬투나 모두 수익사업을 못 만들어서 어려워졌죠. 그래서 수익사업이 생기기 전에는 안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따르는 20명 정도의 개그맨들이 있었고 그들을 먼저 데리고 해도 되겠다 생각하게 됐습니다. 요청도 있었고. 마침 경영하시는 좋은 분이 나타나서 동업으로 하게됐죠. 현재는 주로 스케줄 관리하는 정도입니다. 또 서수민PD님과 함께 작전 짜서 버라이어티에 넣어주기도 합니다. 수익 분배는 15%-20% 정돈데, 그걸 가져가도 코디비로 거의 쓰니까 수익사업은 아니죠. 공연이나 광고에서 조금 돈이 들어와 그걸로 재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MD사업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김준호의 코코엔터테인먼트는 '개콘'의 서수민 PD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개그맨의 매니지먼트를 제안한 건 다름 아닌 서수민 PD였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많은 인원이 덜컥 김준호와 계약할 지는 몰랐지만. 하지만 내놓고 "우린 불편할 수도 있는 관계다"라고 말하는 두 사람을 볼 때, 그만큼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함이 느껴졌고, 또 위치가 갖는 입장차는 있지만 대의적으로 개그맨들의 비전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개그맨들이 개그만 하면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언젠간 개그맨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설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버라이어티를 하려는 것은 물론 그것이 더 맞는 친구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선택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개그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다양한 무대와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굳이 '개콘' 같은 좋은 무대를 나갈 이유가 없죠."

김준호는 확실히 신망이 두터웠다. PD에서부터 후배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그는 '개콘'의 선배로서 든든한 믿음을 주는 개그맨이었다. 또 개그맨으로서도 뭐든 척척 살려내는 기량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그래서 PD조차 콩트에 있어서는 김준호의 의견을 들을 정도로 신뢰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이 코너든, 개그맨으로서의 입지든 오래 버티는 그 노하우는 바로 그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후배들이 앞으로도 오래 버티는 그 길을 내주지 않을까. 아마도.


달라진 예능 환경, 탁재훈을 깨우는 법

'해피투게더3'(사진출처:KBS)

탁재훈은 역시 애드리브의 대가임이 분명하다. '해피투게더3'에 10주년 특집으로 이효리, 유진, 신동엽과 함께 출연한 탁재훈은 특유의 애드리브로 좌중을 압도했다. 컨추리꼬꼬로 같이 활동했던 신정환에 대해서 '그분'이라고 부르며 "이름을 말하면 편집될 지도 모른다"고 속내를 드러내고, "그분 때문에 우리 노래가 금지곡이 많다"며 하지만 노래는 대부분 자신이 했는데 자기 부분은 살려줘야 하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바다를 만들기도 했다. 또 맨 끝자리에 앉아 있어(승승장구에서도 그렇다) 목이 너무 아프다고 하기도 했고,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승승장구'는 울어야 반응이 좋다"며 그래서 "녹화 전 날 슬픈 생각을 하려 노력한다"고 말해 죽지 않은(?) 애드리브를 뽐냈다.

하지만 탁재훈의 이런 빵빵 터지는 예능감에도 불구하고 인기하락을 겪은 것에 대해서는 함께 출연한 출연자들이 모두 의문을 제기했다. 최효종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고 인기하락을 한 건 미스테리"라고 했고, 이효리 역시 "꾸준히 MC를 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인기가 떨어진 것이냐"고 물었다. 물론 이 약간은 농담이 섞인 질문에 탁재훈은 "이유가 있겠죠"하고 농담으로 맞받아쳤지만 이것은 실제로도 의문시 되는 점이기도 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애드리브가 강하고 예능감이 출중한 MC가 끊임없이 인기 하락을 경험하게 된 것일까.

탁재훈은 혼자만 놓고 보면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기량의 예능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조합이다. 탁재훈과 함께 합을 맞춰야 하는 출연자들은 이 예측불능의 애드리브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게스트뿐만 아니라 함께 고정으로 출연하는 MC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김아중이 전화 인터뷰를 통해 "탁재훈과의 방송이 힘들었다"고 말한 건 그 때문이다. 탁재훈이 최고 주가를 올리던 '상상플러스' 시절에는 노현정 아나운서와의 궁합이 잘 맞아떨어졌다. 탁재훈 특유의 깐죽개그는 그것에 당황해하는 노현정 아나운서가 있어서 먹힐 수 있었다(이것은 노현정 아나운서의 주가도 높여놓았다).

또한 당시에는 탁재훈 잡는 유일한 선수였던 신정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예측불허의 흐름이 어떤 균형 상태를 만들기도 했다. 여러모로 당시 탁재훈이 '예능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자신의 기량과 그 기량이 백분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탁재훈이 예능 대상을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즉 이전에는 개그맨이 아닌 가수가 개그맨들마저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그 놀라운 애드리브가 가진 반전의 효과가 있었지만, 이제 예능대상을 수상한 정상의 예능인 탁재훈은 이미 최고의 예능인으로서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 당연히 반전 효과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높은 지점에 올라온 이는 내려가는 길밖에 남지 않게 된다.

탁재훈의 힘은 애드리브에 있는데, 그것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애드리브를 칠 수 있게 누군가 전면에서 프로그램을 이끌어주고 깔아주는 역할이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강한 애드리브를 누군가 맞받아쳐서 프로그램의 균형을 만들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탁재훈의 애드리브는 웃기기는 하지만 전체 균형을 깨고 독주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게 된다. 혼자만 빵빵 터트린다고 해서 주가가 올라가는 건 아니다. 함께 하는 이들과의 조합이 중요하다. 여러모로 '승승장구'에서 탁재훈이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이런 전체적인 조합을 이제는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해피투게더3'에 10주년 특집으로 출연한 탁재훈의 애드리브가 지나치다고 여겨지지 않는 점이다. 그것은 역시 함께 출연한 게스트들이 모두 정상의 MC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웬만한 이야기에도 당황하지 않고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기에 탁재훈은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드러낼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착한 토크쇼들이 어딘지 심심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는 탁재훈처럼 뾰족하게(?) 분위기를 만드는 캐릭터의 MC에게는 분명 기회요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탁재훈이 예전 '상상플러스'에서 했던 그 발군의 예능감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탁재훈은 현재 적체된 느낌의 토크쇼를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얘기했던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탁재훈이라는 예능의 '잠룡'을 깨울 수도 있지 않을까.


예능에서 저평가된 작가라는 존재의 진가

'1박2일'(사진출처:KBS)

'해피선데이'의 최고 전성기는 재작년일 것이다. 그 때 '1박2일'은 강호동을 위시해 전체 예능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었고, '남자의 자격' 역시 '하모니'편을 통해 그 정점을 찍고 있었다.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PD까지 주목받게 할 정도였으니 그 팬심이 어디까지 닿아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사실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으면서도 전면에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은 '해피선데이'의 숨은 공신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이우정 작가다.

당시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두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를 하고 있던 이우정 작가는 그 엄청난 수의 남자들(이 두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모두 남자들이 아닌가)을 사실상 만들어낸(물론 억지로 캐릭터를 부여한다는 뜻은 아니다) 장본인이지만 인터뷰를 꺼려했다. 그것은 작가, 그것도 리얼 예능의 작가라는 지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얼 예능에도 작가가 있었어?'하는 오해는 이우정 작가라는 발군의 재원이 대중들에게 잘 소개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우정 작가의 기획력과 순간 순간 상황에 따라 만들어내는 아이템들은 이미 당시 '해피선데이'의 CP였던 이명한PD나 PD인 나영석PD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의 전면에 나서 있지만 사실상 프로그램을 이끄는 건 이우정 작가라는 것에 모두 동의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남자의 자격'이 갑자기 프로그램의 매력을 잃게 된 데는 물론 PD 교체의 원인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이우정 작가가 빠져나오면서 생긴 변화라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이것은 어쩌면 시즌2로 만들어지는 '1박2일'에도 해당되는 얘기일 수 있다.

작가들은 직업의 특성상 방송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이직(사실상은 이직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프리랜서니까.)이 그만큼 잦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우정 작가를 놓친 것은 '해피선데이' 최대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문제 그 차원을 넘어선다. 즉 작가는 어찌 보면 프로그램의 인력(제작진에서부터 출연진까지)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유출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타 인력들의 유출(때로는 출연진들까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KBS처럼 스타를 키우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덩치가 커진 PD들이 타방송사로 떠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소속PD들이 이런 상황인데, 소속도 아닌 작가들은 오죽할까. 실제로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두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라는 강행군을 해오면서 이우정 작가가 그만한 대우를 받았을까는 의문이다. 소속되지 않은 작가는 좋게 말해 프리랜서지만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다.

이우정 작가가 '1박2일' 시즌1을 끝으로 '해피선데이'를 떠나게 된 상황은 그래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브레인을 잃은 것이면서 동시에 인맥을 잃은 결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보면 어떤 PD를 세우는 것보다도 작가 하나를 제대로 붙잡아 두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예능과 교양 같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방송작가들에 대한 방송사들의 인식은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제 아무리 리얼이라고 해도, 프로그램의 얼개와 기획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툭하면 자르고 교체하는 지금의 작가를 대하는 방식으로는 프로그램의 핵심인 작가들의 성장을 가로막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결국 프로그램의 질적인 저하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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