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탄2', K팝은 과연 아이돌 음악일까

'위대한탄생2'(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2'의 세 번째 생방송 미션은 'K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K팝'이라고 미션을 지칭해놓고 보면 이것이 특정 분야로 분류되는 인상을 준다. 물론 'K팝'은 일본의 'J팝', 중국의 'C팝'처럼 각 나라의 대중음악을 분류하는 지칭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내의 오디션에서 미션으로 'K팝'이 지목되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K팝'이란 한국의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혹 'K팝'은 한국의 아이돌 음악으로 한정되는 개념이었나.

현실적으로는 그렇다. 'K팝'은 SM, YG, JYP 같은 국내 대형 기획사들이 발굴해낸 일련의 아이돌 스타들로부터 그 세계적인 인지도가 생긴 게 사실이다. 따라서 SM의 보아나 동방신기, YG의 빅뱅이나 2NE1, JYP의 원더걸스나 2PM 같은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 K팝을 동일선상에서 인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그들의 노력이 K팝이라는 국가적 인지도를 높인 한류의 새로운 길을 연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열어놓은 'K팝'이라는 국가적인 브랜드를 아이돌 그룹 음악으로 한정지을 때는 그만한 한계가 생겨난다. 즉 그것은 결국 몇몇 대형기획사들의 상품적인 브랜드로 굳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아닌 음악들은 'K팝'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생겨난 아이돌 이외의 대중음악들에 대한 대중적인 호응은 자칫 내수용의 찻잔 속의 폭풍에 머물게 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K팝이 실제로 한국의 아이돌 음악이라고 해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대중음악은 K팝이고 그 K팝은 한국의 기획사들에 의해 배출된 아이돌 음악이라고 인식시키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대형 기획사들에 의해 화려하게 돋보이는 면이 있기 때문에 K팝 하면 아이돌 그룹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K팝을 알게 된 외국인들이 차츰 한국의 다른 음악들, 예를 들면 인디음악 같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돌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2' 같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을 통해 외국인들의 아이돌 음악 이외의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물론 'K팝스타'처럼 아예 대형 기획사 3사가 참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즉 그것은 애초부터 대형 기획사들이 어떻게 오디션을 하고 아이돌을 발굴해내는가 하는 점이 하나의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 참가한 지원자들은 아이돌만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거꾸로 K팝의 하나인 아이돌 음악에 대해 대중들(외국인들도 포함해)이 갖는 편견들(주로 외모가 아닌 가창력과 춤 실력에 대한)을 깨준다는 데서 오히려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2'처럼 오디션의 미션을 제시하면서 막연하게 아이돌 음악을 K팝으로 한정짓는 것은 경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했을 때 우리는 자칫 김건모나 이소라, 신승훈, 임재범 같은 레전드급 가수들이나 국카스텐, 10cm 같은 인디가수들의 음악을 K팝의 하나로 끼워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물론 이것은 그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정한 하나의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무의식에 살짝 각인된 그 무엇이 의식한 것보다 더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에게 K팝은 도대체 무엇일까.


미친 가창력, 돌아버리겠네 정말!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엠넷)

노래가 고조되면 될수록 코치들의 손은 점점 버튼으로 다가간다. 마치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버튼 근처를 서성이는 손은 당장이라도 버튼을 누를 것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노래는 점점 더 고조되고 그럴수록 코치들의 얼굴은 경탄과 갈등과 곤혹스러움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결국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버튼을 누르면 의자가 빙그르르 돌아가고 갈등했던 코치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그걸 본 참가자 역시 한층 신이 나 감동적인 무대를 이어간다.

이것은 '보이스 코리아'라는 블라인드 오디션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구성을 잘 보면 알겠지만 이건 일종의 대결 구도다. 참가자가 노래만으로 코치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 대결. 코치들은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마치 그리스 신화 사이렌의 유혹적인 목소리를 들은 선원들처럼 그들은 결국 이끌리듯 버튼을 누르게 된다. 누가 봐도 톱가수들이자 아티스트인 권위자들이 보여주는 이 일종의 굴복(?)은 대중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권위자들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미친 가창력이라니. 도대체 저들은 누구인가.

첫 회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배근석은 이 프로그램의 파괴력을 가장 잘 보여준 참가자다. 얼굴 노출이 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인터뷰에서부터 그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여겨지더니, 무대에 오르자 거의 여성에 가까운 미성과 매력적인 바이브레이션으로 코치들을 한 명 한 명 돌아 버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이 반전에 반전이었다. 서인영의 '신데렐라'를 선곡했기에 그 중성적인 목소리의 배근석은 코치들에게는 여성으로 인식되었던 것. 코치들은 먼저 그 중성적인 보이스의 매력에 놀랐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것에 또 놀랐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코치들은 보지 못했지만 관객과 시청자들은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이 코치들보다 우위에 선 입장이다. 즉 '보이스 코리아'라는 오디션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권위에 있기 마련인 '심사위원'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관객과 시청자는 참가자를 바라보면서 심정적으로 하나의 팀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 그 참가자의 놀라운 가창력에 코치가 안절부절하고 결국 버튼을 누르는 굴복의 장면에 시청자들 또한 승리감(?)을 맛보게 된다.

'보이스 코리아'가 가진 블라인드 오디션이란 매력적인 특징은 바로 이 '권력의 역전'에서 나오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실제로 지금껏 보지 못한 놀라운 가창력의 소유자들이 이 무대에 서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거장인 퀸시 존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던 정승원이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가 될 뻔했고 요아리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던 강미진, 허각의 쌍둥이 형인 허공 같은 첫 무대에서부터 기대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는 참가자들이 이 오디션에는 넘쳐난다. 특히 보컬 트레이너들이 대거 참여한 점도 오디션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찌 보면 아마추어라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알려졌거나, 혹은 노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참가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이 프로그램만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만으로 승부한다'는 점은 모든 선입견을 지우고 원점에서 시작하게 한다는 점에서 심지어 프로가 이 무대에 선다고 해도 그것을 용인하게 만든다. 어쩌면 기성 가수라면 그 리스크가 더 클 수 있는(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무대이기 때문이다.

코치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이 오디션은 그래서 이제는 식상해진 오디션에 돌아서려 하던 시청자들의 마음도 돌려 세우고 있다. 그래서 금요일 밤이면 우리는 그간 잘 돌리지 않았던 케이블로의 채널을 돌린다. 돌지 않고는 참가자들의 면면을 볼 수 없어 안달하는 코치들처럼.


'라디오스타', 이런 빨대 같은 예능이 있나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연기돌 특집으로 임시완, 유이, 제이, 이준을 게스트로 초대한 '라디오스타'는 먼저 유이에게 애프터스쿨에서의 포지션을 물어보는 것으로 그 포문을 열었다. 가수로서 노래가 포지션이 아닌 유이가 재치있게 "자신의 위치는 포스트"라고 말하자 유세윤은 이것을 "유이는 애프터스쿨의 채치수"라는 말로 받아 넘겼다. 게스트에게 시작부터 툭 치고 들어가는 이런 공격적인 토크 방식은 '라디오스타'만이 가진 일종의 신고식인 셈이다. 윤종신은 이제 군대에 간다는 트랙스의 제이에게 "첫 등장인데 고별방송"이라고 툭 치고 들어갔고, 김구라는 이준에게 아예 노골적으로 "엠블랙보다 비스트가 낫다"고 특유의 직설어법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했다.

'라디오스타' 특유의 공격적인 어법은 그러나 이 프로그램만이 가진 게스트 배려방식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김구라가 툭하면 양배추를 들먹이는 방식 그대로다. 겉으로 보기엔 독설처럼 여겨지지만 그럼으로써 상대를 주목받게 만든다. 단 게스트가 공격을 넘어서 주목을 받으려면 조건이 하나 있다. 이 공격적인 흐름을 잘 타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받아치고 인정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게스트의 면모가 발견될 수밖에 없다. 이준이 갑자기 주목받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이준은 요즘 '해를 품은 달'로 최고로 잘나간다는 제국의 아이들의 임시완과 비교되면서 오히려 이 토크쇼의 중심으로 조금씩 자리했다. MC들은 심지어 가리마가 정반대라는 것까지 짚어서 임시완과 이준이 가는 길이 반대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공격에 이준은 반박하기보다는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솔직히 비스트가 엠블랙보다 더 잘 나간다고 수긍하는 한편, '닌자어쌔신'에 캐스팅될 때 영어를 못해 겪은 굴욕 에피소드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러자 MC들은 유이와 제이에게 연기돌로서 했던 연기를 선보이라며 그 받아주는 역할로 이준을 지목했다. 심심할 수 있었던 연기 재연 장면은 이준을 세움으로써 빵빵 터지는 큰 웃음의 소재가 되었다.

이준은 '꽃보다 남자' 캐스팅이 유력했지만 할 수 없었던 이유로 당시 '닌자 어쌔신'에서 머리를 박박 밀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이 안타까운 사연 역시 '탈모F4'는 어떠냐고 묻는 김구라에 의해 웃음으로 바뀌었다. 이준은 이런 상황에 맞춰 자신만의 독특한 예능감을 드러냈다. 스스로 돈을 아낀다는 그에게 "가장 돈을 많이 쓰는데"가 "이온음료를 살 때"라고 말하는 한편, 한예종 무용과에 입학할 정도로 있어 보이지만 '아침 조 뛸 깅'으로 조깅의 뜻을 알 정도로 무식하다고 몰아세워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불쾌해하기는커녕 이준은 거꾸로 무식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돌발 퀴즈를 내서(오히려 무식이 탄로 나는 것이었지만)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이를 잘 닦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는 얘기에 "맡아 보세요"라고 말하고, 소속사에 대한 불만에 "올드보이처럼 만날 김치볶음밥만 사준다"며 "미각을 잃었다"고 얘기하며, 스스럼없이 자신을 '벗는 담당'이라 밝히며 생방송 중 '흉점 노출'로 겪었던 에피소드를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이준은 그래서 '라디오스타'를 통해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어찌 보면 MC들의 집중공격으로 너덜너덜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으로써 이준은 훨씬 예능감 넘치고 심지어 여유까지 있어 보이는 예능돌로 거듭날 수 있었다. "말만 하면 팬들이 떨어진다"는 MC의 지적에도 선선히 그걸 인정하면서 "하지만 말을 줄일 생각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줬으면 합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이준의 솔직한 매력까지 드러났다.

이로써 '라디오스타'의 연기돌 특집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이준이라는 예능돌의 발견이 되었다. 게스트에게 뭐든 콕콕 찔러서 빼먹을 건 다 빼먹는 '라디오스타'만의 토크 방식은 그 상황에 잘 적응하고 겪어내기만 한다면 '재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이준이라는 예능돌의 탄생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프로그램 말미에 이르러서도 '라디오스타'의 '빨대 토크'는 계속 이어진다. 이준에게 "김종민 같다"고 하고는, 앞으로 '백지돌' 특집을 하자고 말한다. 시크릿의 한선화랑 같이.


발견의 예능, 예능의 발견 '1박'의 나영석 PD

나영석 PD는 역설의 연출자다. 무려 5년 간이나 여행 버라이어티를 이끌어오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이 점이 자신의 장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일 제가 여행 마니아라면 프로그램도 마니아적인 게 됐을 겁니다. 보통 가정에서 여행을 그렇게 자주 가지는 않잖아요. 제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오버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죠."

이 '보통 사람들'의 시각은 다름 아닌 '1박2일'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나영석 PD의 성향처럼 '1박2일'은 늘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은 나이에 걸맞는 혜안이 있기 마련인가 봐요. 촬영을 가서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 툭툭 던지는 얘기 속에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인생의 진리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죠. 강호동씨가 시골에 가면 어르신들 붙잡고 얘기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 분들에게는 정말 뭔가 건질 게 분명히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1박2일'의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 대한 존중은 루머나 오해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일단 PD가 사과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부산 사직구장 논란이 그랬고, MC몽의 흡연 장면 논란이 그랬다. 물론 이건 초창기 일찌감치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즉 밀양 여행 편에서 시골집에 간 이수근이 빨래판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는 장면이 나갔었는데 그것 때문에 '민폐 논란'이 생겼던 것. 하지만 이건 오해였다. 그 집은 본래 나PD의 외할머니집이었고, 빨래판은 오래돼서 본래부터 태우려고 내놓은 것이었다는 것. 그 후로 나PD는 대중들이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1박2일'이 어딘지 투박하고 서민적이며, 꾸며진 화려함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것도 이러한 나영석 PD가 가진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나영석 PD는 애초에 '1박2일'이 '여행'이라는 어딘지 거창한(?) 소재를 겨냥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저 야외에 한번 나가보자.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한번 들여다보자던 것이었죠. 그런데 정말 의외의 재밌는 상황들이 벌어지더라구요. 라면 하나 가지고 누가 먹었냐 안먹었냐를 놓고 재미난 에피소드가 나올 수 있었죠. 물론 그런 상황을 초기에 만든 건 전적으로 강호동씨의 공이 큽니다."

나영석 PD의 '내버려둬도 무언가 나온다'는 이 자신감은 '1박2일'만의 느긋함과 자연스러움을 만들었다. 무언가 인위적인 상황을 부여하기보다는 그저 내버려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발견'해내는 심지어 '다큐스러움'은 그래서 '1박2일'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이 자연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출연자들의 캐릭터다. '1박2일'은 출연자들에게 억지로 캐릭터를 부여하진 않는다. 차라리 내버려두고 스스로 캐릭터를 발견하고 찾아낼 시간을 준다. 이수근이 그랬고, 엄태웅이 그랬으며, 후에 다시 복귀했던 김종민이 그랬다.

이 자연스러움과 기다림의 태도는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마음에 비견된다. 무언가 해줘야 하는 마음은 있지만 급하게 다그치면 본래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고 엄한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부모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것이 출연자들이 더 자연스러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또 갈 길을 제대로 가게 해준다는 것이다. "연출자로서 당장 역할을 못하는 출연자들을 보면 어찌 답답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한 집에서도 잘 나가는 자식이 있으면 묻어가는 자식도 있는 법이죠. 그러다 어느 날은 그게 뒤바뀌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만 굴러갔다면 '1박2일'은 어딘지 밋밋한 느낌의 예능이 됐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영석 PD는 다큐처럼 진지한 모습 뒤에 어린 아이 같은 개구진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늘 야전에 머물면서 시커멓게 타버린 얼굴이 슬쩍 미소를 보일 때 드러나는 게 바로 그 장난기 가득함이다. 이것은 '1박2일'이라는 진국에 톡톡 쏘는 맛을 내는 양념, '복불복'을 그대로 빼닮았다. 복불복이라는 코드는 '1박2일'의 예능적인 부분들을 뾰족하게 담아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물론 '1박2일'이 복불복으로 한 게임들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반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가위바위보, 묵찌빠 같은 이미 누구나 익숙한 기본적인 게임들 아니면, 아예 족구나 탁구 같은 스포츠들의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반복적으로 게임을 하면서도 어째서 '1박2일'의 복불복은 매번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었을까. 이것은 게임은 단순했지만, 그 게임에 거는 것들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텝들 전원 야외취침을 복불복으로 내세우는 상황이니 어찌 간단한 족구 게임이라도 몰입도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때론 다큐 같고 때론 완전한 예능 같은 이 어찌 보면 이질적인 두 분야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어지는 과정은 나영석 PD의 진지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것은 '1박2일'이 나영석 PD를 닮은 것일 수도 있고(그 성향이 묻어난 것), 또 정반대로 5년  간이나 함께 해오면서 나영석 PD가 '1박2일'을 닮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제 우리가 '1박2일'과 나영석 PD를 비슷한 어떤 존재로 보게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제 나영석 PD의 '1박2일'은 그 긴 여행을 끝냈다. 이제 대신 최재형 PD의 '1박2일'이 그 새로운 여행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네 예능에서 한 획을 그은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리면서 나영석 PD를 추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영석 PD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1박2일'이라는 '발견의 예능'은 그래서 새로운 '예능의 발견'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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