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심장'과 '스타킹', 연명만이 최선일까

'강심장'(사진출처:SBS)

강호동의 잠정은퇴로 가장 큰 충격을 입은 방송사는 KBS도 아니고 MBC도 아닌 SBS다. KBS의 '1박2일'은 강호동의 빈자리를 나머지 연기자들과 제작진들이 충분히 채워주었고, MBC '무릎팍도사'의 빈자리는 '라디오스타'가 확실히 메워주었다. 하지만 SBS의 '강심장'과 '스타킹'은 다르다. 강호동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고 그 여파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강심장'은 본래부터 강호동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20여 명의 게스트와 맞설 수 있는(?) MC로 강호동 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었다. '강심장'이 추구하는 강한 토크, 심장을 뛰게 하는 토크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렸다. '강심장'은 그래서 그 '강'의 의미가 온전히 강호동을 떠올리게 하는 토크쇼임이 분명했다. 물론 강호동 옆에 청출어람 이승기가 있었지만.

그런 강호동이 잠정은퇴로 빠져나간 것은 '강심장'으로서는 마치 기둥뿌리 하나를 빼낸 것과 다름없는 충격파였을 것이다. 프로그램의 중심이 사라진 것이니 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간 강호동 옆에서 착실히 성장해온 이승기가 그 충격을 상당부분 상쇄시켜주었다는 점이다. 이승기는 강호동과는 달리, 부드럽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는 예리한 순발력으로 '강심장'을 계속 뛰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이승기마저 '강심장'을 떠난다. 새로 이동욱이 MC를 맡는다고 하지만(또 다른 MC가 대기중이라고 한다), 아직 검증된 것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강심장'의 두 축인 강호동도 없고 이승기도 빠져나간 상황에서 전혀 새로운 인물을 투입한다는 것은 제작진에게는 너무 잔인한 일처럼 여겨진다. '강심장'이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자칫 연명을 거듭하다가 본래 명성조차 흐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타킹'은 사정이 더 안 좋다. '스타킹'이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형식은 굉장히 참신하고 진취적인 것이었다. 연예인들이 거의 무대를 장악하던 시절, 일반인들을 무대에 올리고 오히려 연예인들이 보조를 맞춰주는 이 역발상은 '일반인 방송 출연시대'의 서막을 연 셈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지금, 방송 환경은 변해버렸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과 리얼리티쇼가 방송 트렌드로 자리하면서 별의 별 일반인들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그다지 큰 화제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특히 '스타킹'을 감성적으로 뒤흔들어주던 놀라운 가창력의 '일반인'들은 이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빛에 가려져버렸고, 한 때 국민적인 관심을 가져왔던 숀리의 헬스 트레이닝 프로젝트 역시 이미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빠져나간 상태다. 그러니 지금은 '성형술'이나 '목청킹(음치 탈출 프로젝트)' 같은 마이너한 아이템들이 이 프로그램에 남게 되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라도 강호동이 있었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호동도 없는 자리에, 달라진 환경에 의해 소소해진 소재들은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이 본래 갖고 있던 그 혁신적인 이미지마저 지워버리고 있다.

과연 그럭저럭 시청률이 유지된다고 해서 대충 다른 인물을 끼워 넣어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것만이 상수일까. 잔인한 얘기일 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에는 연명하는 것보다 과감히 산소 호흡기를 떼는 것이 지금껏 고생한 이들에 대한 예의인 경우도 있다. 털어내고 새로운 것을 채워 넣는 것. 그것은 제작진들에게도 박수 받을 때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제작진들이 새로운 것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강심장'과 '스타킹'. 정말 괜찮은 형식이고 좋은 프로그램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저 연명하는 것으로 그 좋은 프로그램의 이미지마저 사라지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라디오스타', 누가 나와도 되는 이유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현재 토크쇼는 '게스트쇼'가 되었다. 게스트로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재미의 편차도 크고, 시청률의 등락 폭도 크다. '힐링캠프'는 박근혜, 문재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시청률이 급상승했지만 이민정, 이동국, 최민식이 나왔을 때는 다시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 그러다 최근 차인표가 나오자 다시 시청률이 반등했다. 이런 사정은 '놀러와'나 '승승장구'도 마찬가지다. '놀러와'는 '세시봉' 이후로 끊임없는 추락을 경험했는데 '기인열전'을 했을 때 잠깐 반등했을 뿐이었다. '승승장구' 역시 MC스페셜로 '이수근편'을 했을 때의 주목도와 다른 게스트들의 주목도 차이는 크게 나타났다. 결국 현재의 토크쇼들의 성패는 거의 대부분 '섭외'가 관건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것은 토크쇼들이 일제히 '게스트 중심'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현재의 토크쇼들은 '게스트를 편안하게 모시는' 분위기다. 그러니 게스트 자체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차인표처럼 웃음과 감동, 의외의 발견까지 해줄 수 있는 예능의 블루오션 게스트가 등장할 때와 그렇지 않은 보통의 게스트가 나왔을 때는 편차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게스트에 따른 편차가 없는 토크쇼도 있다. 바로 '라디오스타'다. '라디오스타'는 이제 누가 나와도 '재미있는' 토크쇼로 자리했다. 그 비결은 게스트가 아니라 호스트, 즉 MC들에 있다.

'라디오스타'를 보는 재미는 게스트들의 인생역정이나 특이한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MC들이 게스트로부터 어떻게 토크 어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콕콕 찍어서 끄집어내는가 하는 그 과정에서 나온다. 김진아, 임성민, BMK처럼 그다지 핫(hot)하게 여겨지지 않는 게스트들이 나왔을 때 김구라가 던진 첫마디는 "홍보할 게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사심 없는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여타의 토크쇼들과 비교해보면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홍보 포인트가 없는 이들에게서 더 과감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그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여 출연한 이들에게 처음 만났던 이야기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하나 둘 끌어내면서 MC들은 끊임없이 거기에 토를 달고 살을 붙인다. 김진아가 출연했던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을 소개할 때 뒤에서 유세윤이 지나가는 소리로 "귀한 딸이네요."라고 덧붙이는 것으로 빵 터트리고, 엉뚱하게도 블랙호크를 몰았던 BMK의 남편에게 직업을 알선해준다며 헬기를 잘 안다는 고영욱에게 물어보겠다는 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라디오스타'에서는 일반 토크쇼에서는 통상적인 소개에 그치는 이름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김구라는 김진아씨의 이태리식 남편 이름을 아는 척 하다가 틀리자 "희성이시네요"라고 덧붙이고, 임성민 남편의 미들 네임이 안소니라고 하자 뜬금없이 "보수적이시네요"라고 툭 던진다. 그러자 주워 먹는 토크의 달인인 윤종신이 나서서 "개방적인 이름은 소니"라고 덧붙인다. 여기에 유세윤도 "남편의 성을 붙여 성민 엉거라고 부르냐"고 한 숟가락을 얹는 식이다. 즉 이 기묘한 토크쇼는 게스트들의 이야기만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추임새를 붙이고 엉뚱한 해석을 하고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식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삼천포 토크(?)'가 갖는 매력은 토크의 내용이 아니라 그 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토크 속에서 드러나는 게스트의 반응에서 나온다. 심지어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비화되고 과장되지만, 그것을 웃음으로 받아주고 농담으로 받아치는 과정에서 게스트들의 몰랐던 매력이 끄집어내진다는 얘기다. 다른 토크쇼에도 여러 번 나왔던 이준이 유독 '라디오스타'에 나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삼천포 토크' 속에서 그만의 엉뚱한 매력이 자연스럽게 뽑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기존의 '게스트 중심 토크쇼'들은 게스트들의 삶과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으로 동력을 얻는 반면, '라디오스타'는 오히려 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동력을 얻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게스트 편차와 상관없이 누가 나와도 된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토크쇼는 그저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야기의 내용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즐거운 분위기 즉 형식이다. '라디오스타'는 물론 내용을 갖고 접근하지만, 그 내용 바깥으로 끊임없이 빠져나가려는 MC들의 '삼천포 토크'에 의해 내용 그 이상의 것을 포착하는 토크쇼다. 이 놀라운 토크쇼가 그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아니 심지어 홍보 포인트가 없는 게스트일수록 더 재미를 주는 이유는, 그 토크의 주도권이 온전히 MC들에 의해 쥐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어떤 게스트들의 인생역정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MC들이 그 게스트들을 갖고 어떤 '삼천포 토크'를 할 것인가를 궁금해 한다. 바로 이 점이 거의 유일하게 게스트에 좌우되지 않는 '라디오스타'를 만드는 가장 큰 힘이다.


'1박2일', 긴장감을 살릴 캐릭터는 누구?

'1박2일'(사진출처:KBS)

새로 시작한 '1박2일'은 우려했던 것보다 괜찮은 결과를 냈다. 차태현은 '불운의 캐릭터'로 무려 7가지의 불운을 겪으며 "1박2일과 자신은 안 맞는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김승우는 예민한 성격을 드러내며 복불복 게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성시경은 아직 프로그램에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주원은 그런대로 막내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 자체가 풋풋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기존 멤버로서 이수근이 전체 흐름을 이끌고, 김종민이 선배랍시고 나서면서 특유의 엉뚱함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첫 촬영치고 이 정도면 괜찮은 셈이다. 하지만 어딘지 기존 '1박2일'과 비교하면 조금은 밋밋하고 심심한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1박2일'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많이 흐트러져 있다. 이것은 대결구도가 없기 때문이다. 초창기 '1박2일'이 시청자들을 몰입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강호동 같은 강한 캐릭터가 도처에(?) 대결구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출연진들과 대결하면서 각자의 캐릭터를 세우게 했고, 또 제작진과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복불복 게임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강호동의 야생적인 느낌이 조금은 이완될 수 있는 '1박2일' 간의 여행을 팽팽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그가 세워지면 그에게 반항하는 출연진들이 가능해지고, 또 그와 복불복으로 대결하는 제작진들의 캐릭터마저 세워지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막내 작가나 막내 PD들까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대결구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동이 잠정은퇴를 선언을 하고나서 그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다름 아닌 나영석 PD였다. 강호동이 강하게 밀어붙인 것처럼, 강호동 없는 '1박2일'에 나영석 PD가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그 긴장감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새롭게 시작한 '1박2일'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강한 긴장감과 대립구도다. 물론 첫 촬영이라 그럴 것이지만, 출연진들은 너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본래 신입(?)이 들어오면 기존 멤버들과의 대립을 기대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아직까지 그런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또 제작진 역시 복불복 게임에 있어서 출연진들의 요구를 "첫 촬영이니까" 들어주는 호의(?)를 베풀고 있는 단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출연진도 달라지고 제작진마저 달라졌으니 모두가 낯설 수밖에. 하지만 좀더 '1박2일'이 나아지려면 분명 긴장할 수 있게 하는 캐릭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출연진이든 아니면 제작진이든.

또 한 가지 새로 시작한 '1박2일'에 필요한 것은 돌발 상황에 대한 순발력이다. 이번 '1박2일' 백아도 여행은 두 가지 대어를 낚을 수 있는 돌발 상황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섬으로 들어갈 때 본래 새 멤버들을 각각 주변 섬에서 데려가려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배가 회항해 새 멤버들을 모두 태우고 간 상황이었다. 이것은 제작진의 실수지만, 첫 촬영의 실수이기 때문에 거꾸로 보면 그만한 '리얼리티'를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만일 강호동 같은 인물이 거기 있었다고 생각해보라. 새 제작진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했다면 그 감정선(?)은 그대로 복불복 같은 게임의 대결구도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섬에서 빠져나올 때 갑자기 생긴 풍랑주의보로 갇히게 된 돌발 상황 역시 아까운 기회라고 생각된다.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에 의해 본래 가려던 길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야말로 '여행'이라는 아이템의 가장 매력적인 소재가 되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억지로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돌발 상황이 나왔을 때 당황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방향으로 틀어놓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흐름이 자연스러우려면 좀 더 최재형 PD가 프로그램 전면에 드러날 필요가 있다. 촬영 상황 자체 역시 흥미로운 리얼리티가 되는 게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제 첫 술일 뿐이다. 그러니 어찌 배부르기를 기대할까. 그리고 그 첫 술도 그다지 빈약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앞으로 프로그램이 진화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팽팽한 대결구도이고, 또 하나는 여행의 야생성을 드러내는 돌발 상황마저 예능으로 만들어내는 유연함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출연진이나 제작진 모두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포진은 나쁘지 않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존 '1박2일'이 내 놓은 길 위를 열심히 달리는 일만 남았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1박2일'만의 길이 열릴 것이다. 여행이란 본래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제2의 김준호를 꿈꾸는 차세대 유망주, 정태호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

정태호라는 이름은 아직은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발레리노', '감사합니다' 그리고 '용감한 녀석들'에서 랩을 한다고 하면 누구나 "아 그 친구!"하고 그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코너를 만들고도 한 켠에서 누군가를 받쳐주는 개그를 주로 해왔다. 그가 들어간 코너는 늘 대박이 났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코너의 한 파트로 기억될 뿐 중심이 된 적은 별로 없다. 아이디어도 좋고, 연기력도 좋으며, 성실한 그에게 이른바 '깔아주는 개그'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사실 '깔아주는 개그'에 대해서 서운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 자주 받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김준호 선배님도 제 연차 때 그랬거든요. 그리고 신인 때 주인공 역할을 한번 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역할에서는 별로 배우질 못했죠. 받쳐주는 역할을 하면서 개그에 대해 배우는 게 생겨요. 개그는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앞에서 어느 정도 깔아줘야 뒤에서 터질 수 있는 거죠. 그 흐름을 이해 못하면 주인공 역할을 해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워요. '개콘' 시스템은 이런 것들이 잘 되어 있죠. 물론 개인적인 성격도 좀 있어요. 나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하지만 저도 언젠가 김준호 선배처럼 되는 날이 있겠죠."

최근 '개콘'을 다룬 '다큐3일'에서는 단 몇 마디의 대사를 치기 위해 일주일을 전전긍긍하면서도 늘 웃으며 열심히 하는 개그맨들의 일상이 공개돼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3분에서 5분의 무대를 위해 일주일을 꼬박 준비하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성실함' 그 자체였다. 정태호에게서 보이는 것은 그 특유의 '성실함'이었다. 코너의 한 구석 역할이지만 너무나 열심히 연기하는 그 같은 개그맨들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코너 전체의 웃음이 빵빵 터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같은 코너는 아이들에게는 거의 아이돌 수준이었죠. 아마 어른들은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개콘'은 다양한 세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서수민 PD는 '개콘'이 가족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4인용 밥상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코너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거죠. 처음에는 '개콘'에는 어울리지 않는 개그라고 해서 꺼려졌던 코너이기도 했죠. 좀 반복적이기도 하고. 그런데 의외로 이 반복적인 개그가 중독성이 있더라구요. 이 코너로 증권광고도 찍었죠."

정태호가 얼굴을 제대로 알렸던 '발레리노'라는 개그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데가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 성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개그, 그것도 남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기존 개그의 금기를 깬 듯한 인상이 짙었다.

"꽤 성공한 코너지만 '발레리노'는 빨리 없어졌죠. 아줌마들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어딘지 남편이랑 보기에는 민망했다고 해요. 우울증 있는 어머니들이 방에 들어가서 웃음을 참고 봤다는 그런 개그였죠(웃음). 여러모로 모험이긴 했죠. 특히 발레를 희화화하는 그런 느낌을 주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홍록기씨를 통해 소개받은 유니버설 수석 발레리노를 찾아가 첫 시연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수석 발레리노의 감수를 거친 개그가 된 거죠. 후문이지만 그 발레리노분은 단장님한테 당시 무지 혼났다고 합니다. 물론 후에 코너를 통해 발레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발레단하고 교류하기도 했지만요."

'용감한 녀석들'은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느낌을 주는 개그다. 시작은 마치 예전에 있던 '독한 것들'처럼 뭔가 직설적으로 독한 이야기를 던지다가, 중간에는 누군가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끝은 랩이 이어지면서 음악 개그로 연결된다. 아직은 앞쪽에 배치된 '독한 멘트'에 더 주목되는 경향이 있다. 신보라가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 난립에 대해 "지겨워"라고 한 것이나, 박성광이 줄곧 "개콘 PD가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개콘' 조예현 작가와 결혼한 정태호도 이 코너에서 한 방을 날렸다. "기자들 잘 들어. 앞으로 기사 똑바로 써. '정태호 미녀 작가와 결혼하다?' 그냥 작가와 결혼이다."

"'용감한 녀석들'은 작년부터 고민했던 코너죠. 다 만들어 놓고 뭔가 빠진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신보라가 힙합 개그를 짜왔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붙여서 지금 코너가 생긴 거죠. 신보라가 너무 잘해서 '신보라와 아이들'이라고 불리지만요(웃음). 사람들은 아직까지 앞부분 독한 멘트에 집중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랩이 들어가는 뒷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개그입니다. 개그를 구성하고 완성도 있게 만드는데 선배님들이나 PD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정태호는 분명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지만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개그맨이기도 했다. 어쩌면 착하다는 건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한다는 단점이 되기도 하는 세상,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해야할 일을 성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서수민 PD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이디어가 좋고 구성력도 뛰어난데 정작 자기가 잘 안 보이는 개그를 짜 와요." 과연 그가 자신이 어떻게 하면 돋보인다는 걸 모르고 그러는 것일까. 정태호의 부드러운 인상 뒤편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은 그것이 그저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 했다. 그가 말했듯이 언젠가 우리는 '제2의 김준호'를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