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의 힘, 김서형에게서 나온다

'샐러리맨 초한지'(사진출처:SBS)

우리에게 김서형은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로 기억된다. 물론 '자이언트'에서 깊은 모성애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주었던 유경옥 여사 역할을 했지만,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민소희-"를 외치던 그 강렬한 모습을 떨쳐버릴 순 없었다.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진시황(이덕화)회장의 비서 모가비 역할로 돌아온 김서형은 그러나 초반에 그다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악녀 본색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어느덧 이 드라마의 중심부에 서있다.

현재 모가비라는 캐릭터가 하고 있는 역할을 찬찬히 살펴보면 거의 모든 사건의 동력이 여기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시황 회장의 인슐린을 바꿔치기 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유서를 조작해 천하그룹의 모든 걸 손에 쥔 모가비는 모든 걸 잃은 채 쫓겨난 진시황 회장의 손녀 백여치(정려원)라는 캐릭터를 복수의 화신으로 바꾸었다. 현실을 모르고 철없게만 굴던 백여치가 할아버지의 죽음이 모가비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폐인인 척 속내를 숨기며 복수를 꿈꾸는 인물로 변신하는 그 과정은 이 드라마에 힘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모가비라는 악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항우(정겨운)와 손잡고 유방(이범수)이 이끄는 팽성실업을 무너뜨리려는 것도 모가비다. 자신이 진시황 회장을 죽게 한 사실에 대해 유방이 낌새를 차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가비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팽성실업을 먹어치우려 한다. 하지만 모가비에게 주어진 악역은 단지 이 복수극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모든 걸 다 쟁취한 모가비는 특유의 미인계로로 남자들을 쥐락펴락한다. 그녀를 오래 전부터 챙겨온 범증(이기영)을 밀어내고 장량(김일우)에게 접근하는가 하면 젊은 항우에게 유혹의 손길을 던져 그 속내를 알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모가비의 이 미인계는 권력 구도의 변화를 예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드라마 속의 멜로를 강화시키기도 한다. 항우에게 접근하는 모가비를 본 우희(홍수현)가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즉 모가비라는 악녀 캐릭터는 지금 이 드라마의 거의 모든 관계들을 헤집고 들어가 그 안에 좀 더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중이다.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 초반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였다면 이제는 모가비라는 절대 악이 세워짐으로써 모든 인물들이 목표를 갖게 되는 형국이다. 이것은 드라마 초반에 어딘지 지나치게 가벼운 듯한(물론 여전히 경쾌한 코미디를 유지하지만) 이 드라마에 진중한 무게감을 덧붙여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김서형의 악녀 연기는 때론 유혹적이고 때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딘지 밉지 않은 구석이 있다. 그것은 악녀로서 군림하는 것만큼 확실히 무너지는 모습 역시 잘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거만하고 위세 등등한 악녀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혼자 남으면 자신의 과오가 드러날까 봐 초조해하는 보통여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인물. 그래서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면이 묻어나는 악녀가 바로 김서형 표 악녀의 진면목이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물론 원전이 그러하듯이 유방과 항우의 대결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이 두 인물은 선명한 선악구도로 나뉘기 어려운 캐릭터들이다. 드라마 구조상 항우가 악역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는 사업적인 부분에서 악역이면서도 사적인 차원으로 내려오면 한 여자(우희)를 사랑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다뤄지고 있다. 따라서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 좀 더 강력한 극성을 만들지 못하고 미션 대결로 끝나곤 하는 과정은 조금 밋밋하게 여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샐러리면 초한지'에는 숨겨둔 비밀병기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모가비다. 모가비라는 절대 악녀를 세움으로써 이 드라마는 좀 더 선명한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모가비라는 숨겨둔 악녀가 가능한 것은, 때론 부드럽고 때론 유혹적이며 무너질 땐 심지어 코믹하게까지 느껴지는 독특한 악녀를 연기해온 김서형이란 배우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김서형이 없었다면? '샐러리맨 초한지'는 코믹함과 팽팽함 그 두 차원을 모두 끌어안지는 못했을 것이다.


'놀러와'와 '힐링캠프'의 추락이 시사 하는 것

'놀러와'(사진출처:MBC)

'놀러와'와 '힐링캠프'의 추락이 심상찮다. '놀러와'는 지난 1월30일 '쇼킹 기인열전'으로 14.4%(agb닐슨)의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12.3%(2월6일), 10.9%(2월13일), 8.5%(2월20일) 그리고 7.6%(2월27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힐링캠프'도 마찬가지다. 지난 주 빅뱅의 대성과 G드래곤이 출연해 살짝 시청률이 반등(7.2%)하기도 했지만, 윤제문이 게스트로 나오자 윤종신이 출연했을 때의 시청률(6.4%)로 다시 내려갔다. 연초 박근혜, 문재인이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12%를 상회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걸 생각해보면 너무 빠른 하락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게스트다. '놀러와'나 '힐링캠프' 모두 토크쇼 형식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놀러와'는 그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골방이나 반지하 같은 공간을 고민하기도 했고, 게스트 섭외에 있어서도 카테고리화를 통해 공통 화제를 뽑아내는 방식을 쓰기도 했다. '힐링캠프' 역시 초반에는 '힐링'이 되는 공간으로 게스트를 초대했지만, 차츰 게스트에 맞는 공간을 찾아가는 콘셉트로 변화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토크쇼 형식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청률 변화의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게스트다. 누가 나왔느냐가 그 날의 토크쇼의 향배를 가르는 것이 되었던 것. 이렇게 된 것은 너무 많은 토크쇼들이 난립하다 보니 충성도 높게 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시청하기보다는 게스트에 따라 선별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연예인들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토크쇼들은 더더욱 확고한 팬층을 갖기가 어려워졌다. 여기에는 제 아무리 바꾸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연예인(혹은 영화나 드라마) 홍보'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형식 때문이다.

따라서 비연예인이 나왔거나, 혹은 잘 나오지 않던(하지만 관심은 가는) 게스트가 나왔을 때 오히려 주목도가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놀러와'에서 지난달 했던 기인 열전의 정동남씨나 통아저씨, 신바람 이박사 같은 게스트는 대표적이다. 이것은 '힐링캠프'의 박근혜,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한편 '안녕하세요'가 그다지 큰 부침이 없이 꾸준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 게스트가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일반인 게스트 토크쇼는 이처럼 형식만 제대로 잡으면 다양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인물들의 섭외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연예인을 게스트로 섭외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토크쇼는 '라디오스타'와 '해피투게더3' 정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들 프로그램들이 좀 더 확실하게 '연예인 홍보'와는 거리가 먼 방식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는 게스트를 배려하기보다는 공격하는 토크가 주를 이루고(이것이 결국 이 프로그램의 게스트 배려방식이지만), '해피투게더3'도 형식을 바꿔 개콘4인방이 투입되면서 서로 물고 물리는 토크 형태로 바뀌었다.

결국 게스트를 배려하는 편안한 토크쇼들은 물론 그 자체의 맛이 있지만, 게스트가 누구냐에 그만큼 민감해졌다는 얘기고, 거꾸로 게스트를 배려하지 않는(상대적으로) 토크쇼들은 그 형식 자체의 재미 때문에 보는 고정적인 시청층이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된 것은 이른바 '편안한 토크쇼'들이 너무 난립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연예인들이 나와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주목받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새로움이다. 새로운 게스트가 나왔을 때 주목되고, 똑같은 게스트가 나오더라도 '재발견'되어야 지지를 하게 된다. 연예인 홍보 같은 토크쇼에 더 이상 놀러가지 않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엠넷)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CJ E&M에서 음악사업을 맡고 있는 신형관 국장은 오디션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이유를 이 단 한 마디로 정리했다. 신 국장은 무수한 화제를 낳았던 '슈퍼스타K3'를 기획했고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보이스 코리아'를 기획한 장본인이다.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신개념 콘셉트를 장착한 '보이스 코리아'는 본래 '더 보이스'라는 해외 포맷을 가져와 한국화한 것으로 첫 회부터 대중들의 시선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오디션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된 심사위원의 독설이나 거친 평가에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의 풍경 따위는 '보이스 코리아'에서는 발견하기 힘들다. 이 오디션은 사실상 심사위원이란 존재가 없다. 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로 불린다. 자신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참가자의 목소리가 있다면 버튼을 눌러 회전의자를 돌림으로써 코치들은 참가자를 선택한다. 즉 가창력이 아닌 화려한 퍼포먼스나 출연자의 외모에 휘둘리던 어쩔 수 없는 오디션의 한계를 '등 돌리고 있는 코치들'로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이 오디션은 기존 심사위원과 참가자들 사이에 놓여진 '권력관계(?)'를 뒤집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즉 한 참가자를 복수의 코치들이 선택하게 되면, 이제 선택권은 거꾸로 참가자에게 넘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코치들이 참가자에게 "자신이 무엇을 더 잘 해줄 수 있는가"를 어필하는 역 오디션이 생겨난다.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온 오디션 형식들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오디션은 없다고 여겼던 시청자들에게 이 전혀 다른 콘셉트의 오디션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새롭지 않으면 보지 않는다'는 건 방송계에서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특히 오디션 형식의 예능만큼 그 변화 속도가 빠른 건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엠넷의 '슈퍼스타K2'가 지상파 시청률을 압도할 정도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 전, 오디션 형식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는 낮았다. '슈퍼스타K' 시즌1은 새로움은 있었으나 일반 대중들까지 열광하게 하는 파괴력은 없었다. 하지만 시즌2에 이르러 '슈퍼스타K'는 거의 정점을 찍었다. 환풍기 수리공으로서 우승자가 된 허각은 '허각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현실의 무거움에 허덕이던 대중들은 허각을 통해 일종의 신분상승의 판타지를 대리경험했다.

하지만 '슈퍼스타K2'의 대성공은 거꾸로 이 프로그램의 위기가 되기도 했다. 마침 풀려진 지상파 간접광고 허용으로 지상파에서도 대거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물 타기가 생겨난 것이다. '위대한 탄생', '댄싱 위드 더 스타', '기적의 오디션' 등등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고, 여기에 변종 오디션들인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2' 같은 프로그램들이 가세하면서 작년 1년의 예능은 사실상 오디션 빼고는 찾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또한 오디션 형식의 소비 속도를 더 빨리 진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슈퍼스타K3'가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라고 불릴 정도의 편집증적인 디테일과 엄청난 속도의 오디션으로 재무장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즈음 '슈퍼스타K3'의 거의 폭주하는 듯한 오디션을 통해 이제 대중들은 더 이상의 새로운 오디션 형식은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무얼 봐도 비슷비슷한 형식들이 반복되는 오디션 형식은 그래서 이제 하락기를 걷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작년 말에 시작한 'K팝스타'는 말 그대로 복병이었다. 거대 기획사 3사, 즉 SM, YG, JYP가 함께 한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방송이 시작되면서 일거에 사라져버렸다. 사실 방송 전, 거대 기획사와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물론 거대 기획사에서는 늘 오디션을 보지만, 그 오디션과 오디션 프로그램은 정서적으로 확연히 다른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존 기획사 시스템 바깥에 놓여진 가수 양성 시스템으로 인식되었다. 나이와 성별 심지어 외모와도 상관없이 누구나 가창력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고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건, 기존 거대 기획사 시스템과는 차별화되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장점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일반 대중들의 판타지가 섞여있는 판단일 뿐이다. 현실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들이 결국은 다시 기획사를 찾아가는 그 구조에서 드러났다. 물론 오디션을 통해 인지도는 높지만 가수 활동을 위해서는 기획사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거대 기획사 3사가 참여하는 'K팝스타'는 이제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오디션이 가진 지나친 판타지가 사라지고, 대신 보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이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기획사가 참여하는 오디션이라는 차별성은 프로그램 형식의 차별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기획사가 발굴해내려는 아이돌 콘셉트는 참가자들의 연령을 현저히 낮춰놓았고, 참가자들을 심사하는 방식은 3대 기획사들의 개성과도 맞물렸다. 즉 심사위원으로 앉은 YG의 양현석과 JYP의 박진영은 같은 참가자의 노래를 듣고도 의견 대립이 잦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성과 잠재력을 존중하는 YG와 기본기를 중시하는 JYP의 기획사 특징이 드러나는 식이다. 게다가 각 기획사들이 선택한 참가자들이 그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받는 점도 이 오디션만의 특징이 되었고, 그들이 또 서로 경연을 벌일 때, 기획사들 간의 묘한 긴장감은 기존 오디션 형식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결국 'K팝스타'는 이러한 새로운 차별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숱한 오디션 형식들 속에서도 대중들의 열광을 끌어낼 수 있었다.

'나는 가수다'를 기획하고 만들어냈던 김영희 PD는 "대중들이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고, 따라서 처음 먹혔던 방식을 오래도록 지속한다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되었다"고 말한다. 즉 일단 형식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게 대중들이라는 것이다. 시즌1을 정리하고 시즌2가 시작되기 전 일정 기간의 준비기간을 갖고 있는 '나는 가수다'의 시즌2는 그래서 시즌1과는 사뭇 달라질 거라는 의견이 많다. 사실 어찌 보면 작년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낸 대중문화계 전반에 끼친 충격파는 기존 오디션 형식의 뒤집은 데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일반인들이 참가하는 것을 톱 클래스 가수들이 참가하고, 거꾸로 청중평가단이 탈락자를 선정하는 방식이 그렇다. 하지만 이 혁명적인 진화는 1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이제 새로운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진화는 어디까지가 가능한 것일까. 아니 계속적인 진화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엠넷의 신형관 국장은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결국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큰 틀에 있는 한 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이 당대의 방송 트렌드와 맞물려 계속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 진화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현재의 오디션 형식은 다큐적인 리얼리티 형식과 무대 형식이 맞물린 형태지만 이것은 또 대중들의 기호와 맞물려 새로운 형식 실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신 국장은 "이제 모든 유사 프로그램을 오디션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기가 애매해진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이스 코리아'를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슈퍼 보컬 서바이벌'이라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확실히 지금 오디션 형식은 예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트렌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건, 끊임없는 진화의 덕택이다. 그것이 없는 한, 오디션 형식은 쉽게 소비되고 식상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오디션의 진화는 또 새로운 다른 형식과 맞물려 전혀 다른 이종 예능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높다. 모든 생태계가 그러하듯이.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경연보다 공연, 긍정의 오디션이 뜬다

'K팝스타'(사진출처:SBS)

아이들이 어쩌면 저렇게 잘 할까. 무대에만 오르면 눈빛이 달라지는 이하이, 6단 고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박지민, 노래는 잘 못하지만 아티스트적인 창의력이 놀라운 이승훈, 흑인 감성 가득한 목소리로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미쉘, 절실함으로 심사위원은 물론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이정미... 'K팝스타'의 톱10에 들어온 아이들은 그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실력자들이다. 그 놀라운 기량 때문일 게다. 그들이 무대에 오르면 잠시 이 무대가 경연이었다는 것을 잊게 될 만큼 그 노래와 춤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물론 'K팝스타'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경연의 긴장감이 없을 수는 없다. 실제로 박지민은 너무 긴장해서 실력을 제대로 보일 수 없었고, 이미쉘은 목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최종 10인에 들기 위한 재대결을 벌이기도 했으며, 박제형은 그저 자신을 놓아버림으로써 오히려 훨씬 좋은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K팝스타'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경연 그 자체가 아니다. 이것이 경연이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참가자들의 놀라운 무대와 그 무대를 보며 웃고 우는 심사위원들의 리액션이 진짜 매력이다. 'K팝스타'가 '긍정의 오디션'이라고 불리는 건 그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우리가 집중한 것은 누가 붙고 누가 떨어지느냐는 그 '서바이벌 드라마'였다. 바로 이 경연이 갖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참가자들의 노래 실력이 조금 떨어지고 여전히 아마추어라고 해도(어쩌면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더더욱 동일시하게 됐는지도) 대중들을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서바이벌 드라마'라는 초기 오디션 프로그램의 매력은 이제 어느덧 식상해져버렸다. 심사위원의 독설과 칭찬은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지만 좀 더 정교해지지 않으면 오히려 대중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졌다. 대중들도 이제는 저마다 노래를 평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아마추어들이 나와서 벌이는 경연' 따위를 보는 것에 대중들은 만족해하지 않는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어찌 보면 프로 같은 참가자들이 경연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는 것. 지금 대중들이 오디션에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K팝스타'나 '보이스 코리아' 같은 오디션이 참신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느껴지는 반면, '위대한 탄생2'가 어딘지 식상하고 너무 아마추어적으로 여겨지는 건 그 때문이다. '위대한 탄생2'는 여전히 과거의 오디션(형식에서부터 참가자들까지 아마추어의 경연에 초점이 맞춰진)에 머물러 있어 현재의 달라진 대중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서바이벌로서의 경연의 드라마와 최고의 무대로서의 공연 그 자체의 감동. 이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진 양면이다. '나는 가수다'가 초반에 대중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경연의 긴장감 위에서도 그 자체로 몰입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공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떨어진다는 경연의 부담감조차 결국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위한 장치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공감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1의 후반부로 가면서 무대의 감동이 사라져버리자 모든 것이 흐트러져버렸다. 결국 경연이 갖는 불쾌감만 남게 된 것이다. '나는 가수다' 시즌2 성패의 관건은 그래서 경연의 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최고의 무대와 그 무대를 만들어줄 가수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서바이벌은 실로 대중들을 자극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그대로 현실의 경쟁이야기를 프로그램 속으로 가져오게 해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서바이벌은 불쾌한 자극이다. 따라서 이 서바이벌의 불쾌함을 유쾌함으로 채워줄 수 있는 긍정의 요소가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이것이 경연을 넘어 매번 최고의 무대를 선사하는 'K팝스타'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이고, 자꾸만 경연으로만 매몰되는 '위대한 탄생2'에 대중들이 식상해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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